[기자수첩] 화장실 퍼즈 이슈, 그리고 보완이 필요한 롤챔스

칼럼 | 김홍제 기자 | 댓글: 153개 |
"이후 오더를 다 맞춰놔야 해요! 지금 이 시간을 아주 귀중하게 써야 합니다. 칼같이 말을 맞춰놔야 퍼즈가 풀리는 순간 칼같이 타다닥 이어지거든요."

바로 27일 있었던 2015 스베누 LoL 챔피언스 코리아 섬머 시즌 1라운드 5일 차 2경기 CJ 엔투스와 KT 롤스터의 3세트, 경기 종료 직전 바론을 두고 가장 중요했던 순간 CJ '스페이스' 선호산 선수가 생리 현상으로 인해 퍼즈를 요청했고, 경기가 잠시 중단된 상황에서 '클템' 이현우 해설의 멘트다.

그런데 퍼즈로 중단된 상황에서 이현우 해설의 멘트를 듣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경기가 중단됐을 때 선수들끼리 경기 내적인 부분에 대해 입을 맞추는 게 가능한가. 더더욱 컴퓨터나 인터넷 문제가 아닌 선수 개인의 사유로 인한 퍼즈일 경우에 말이다.

다른 리그들을 살펴보면 심판이 당시 상황과 현재 상황, 그리고 어떤 조치가 주어졌는지 방송에서 팬들과 시청자들에게 통보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 퍼즈와 그 이후 처리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3일, 라이엇은 리그 오브 레전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롤챔스 규정집을 공개했고, 규정에 의해 CJ 엔투스는 '주의'라는 조치를 받았다.


■ '스페이스' 선호산의 화장실 퍼즈, 당시 상황은 어땠나?





▲ '스페이스' 선호산의 빈자리

1세트와 2세트, 서로 한 경기씩 주고받은 CJ 엔투스와 KT 롤스터. 그리고 승, 패를 좌우하는 마지막 3세트 경기 시간은 이미 40분을 넘긴 중요한 상황. 미드에서 팽팽히 대치 중이던 양 팀은 KT 롤스터 '나그네' 김상문의 르블랑이 CJ 엔투스 '엠비션' 강찬용의 누누에게 딜을 퍼부으며 누누의 체력은 순식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KT 롤스터는 곧바로 바론를 치기 시작했다. CJ 엔투스는 누누의 체력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방해를 하지 못했고, 전원이 바론 지역 뒤에서 와드를 설치하며 바론을 스틸 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경기가 중단됐다.

상황은 너무나도 긴박했고, 승, 패를 좌우할만한 중요한 상황이었다. 바론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정글러의 체력을 많이 깎아놓은 KT 롤스터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찬스였고, CJ 엔투스 입장에서는 위기이자 곧 기회의 상황이었다. 퍼즈가 된 순간 게임 내적으로는 멈춰있었지만, 부스 안의 선수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잠시 뒤 '스페이스' 선호산이 돌아왔고, CJ 엔투스는 바론 스틸에 성공하며 한타에서도 대승을 거두며 그대로 몰아쳐 경기에서 승리했다.


■ 5:5 팀 게임 LoL에서 갖는 퍼즈의 의미




▲ LoL은 5:5 팀게임이다.


스타크래프트처럼 1:1 종목의 경우 개인적인 사유로 퍼즈가 됐을 때 코칭 스태프와 대화를 나눌 수 없을뿐더러 합을 맞출 필요가 없이 본인 생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여지가 적다.

하지만 LoL은 5:5팀게임이다. 선호산의 퍼즈 사유가 규정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게 아니다. 어쨌든 긴박한 상황에서 벌어진 퍼즈로 인해 9명의 흐름에 영향을 끼쳤다는 건 사실이다. 매번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힘든 AOS장르 게임에서 개인 피지컬만큼 중요한 게 팀의 호흡이다.

어떤 상황이 나올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상황에서 5명의 팀원이 같은 의견, 생각을 맞추는 게 팀게임 연습이고, 그게 곧 그 팀의 색깔이자 호흡이다. 솔로랭크나 이번 시즌 합류한 아나키만 봐도 개인 피지컬에서 프로게이머들과 비등한 실력을 갖춘 아마추어는 많다. 하지만 솔로랭크에서는 자주 이기고 지고 해도 팀게임에서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기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퍼즈가 된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흐름이 끊긴 상황에서 양쪽 선수들은 서로 뭔지 모르지만 계속 대화를 주고받았다. 선호산의 퍼즈가 없었더라도 CJ 엔투스가 바론 스틸에 성공하고 경기에서 이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승, 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찌 됐건 퍼즈로 인해 선수들의 흐름이 끊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분명 불리한 팀에게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멘탈을 추스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승기를 잡아나가던 팀에게는 자신들의 바이오 리듬이 깨질 수 있다.


■ 의문점 1. CJ 엔투스에게 주어진 '주의', 그리고 드러난 허점들






화장실 퍼즈 이슈로부터 1주일 뒤인 6월 3일, 라이엇은 "리그 오브 레전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CJ 엔투스가 '스페이스' 선호산의 생리적인 원인에 따른 일시 정지 요청으로 '주의' 조치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위와 같은 공지와 함께 라이엇 게임즈, 한국e스포츠협회, 그리고 온게임넷으로 구성된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운영진은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대회 운영을 하기 위한다는 명목하에 롤챔스 규정집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규정집 중
8.3.2. 선수에 의한 일시 정지 (p. 39)

선수는 본인의 질병, 부상 또는 생리적인 이유로 직접 일시 정지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이유로 일시 정지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경우 심판에게 통보해야 한다. 이러한 통보를 받은 심판은 재량으로 적절한 시점에 일시 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고, 해당 선수가 10분 이내에 경기에 복귀할 수 있는지 확인 후 일시 정지 상태를 유지하거나 게임 속행을 선언할 수 있다. 만약 심판이 해당 선수가 게임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거나, 10분 이내에 게임에 복귀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선수의 소속팀을 기권패 처리할 수 있다. 질병, 부상 또는 생리적인 이유로 일시 정지를 야기한 선수의 소속팀에게는 “주의” 또는 그 이상에 해당되는 페널티가 적용된다.


한국e스포츠협회의 주관으로 치러지는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같은 경우 한국e스포츠협회 소속 공인된 심판들이 리그에 투입된다. 과거 협회의 주관이 아니었던 온게임넷 스타리그나 MSL 같은 경우에도 협회 소속 공인 심판이 투입됐다. 또한, 뭔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심판진들이 모여 내용을 파악한 뒤 경기가 재개되면 현장에서 바로 심판이 공지한다.

하지만 현재 롤챔스의 심판은 협회 공인 심판이 아닌 온게임넷 소속이다. 명확한 규정이 있었음에도 자세한 상황 파악 언급도 없었고, 별일 아닌 듯 경기는 재개됐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주의를 받았다는 판정을 공개했다. 규정을 읽다 보면 애매한 경우 '심판의 재량'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한국e스포츠협회에 확인한 결과, 롤챔스 심판들은 협회 소속 공인 심판은 아니지만, e스포츠 대회 생리에 잘 알고 있고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고용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협회 소속 공인 심판이 아닌 경우 믿고 맡길만한 '재량'이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롤챔스 규정집을 보면 총 52페이지로 이를 다 외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부스 안에 있는 심판이 따로 규정집으로 보이는 파일을 들고 있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롤챔스 심판이 아무리 재량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라고 해도 라이센스를 획득한 공인된 한국e스포츠협회의 심판과는 분명히 다르다. 프로들의 경기에는 프로 심판이 필요한 법이다.

또한, 다른 매체에서 보도한 CJ 엔투스 강현종 감독의 멘트를 보면 "선호산 선수가 감기 기운이 있었고, 3세트 직전에 화장실을 다녀왔음에도 화장실을 가게 됐다. 아직 롤챔스에 선수들의 용변 관련 규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KT 롤스터 이지훈 감독은 “일단 너무 아쉽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퍼즈가 걸려서 흐름이 한 번 끊긴 게 사실이다. 그 부분은 규정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게임단이나 선수들이 롤챔스에 관련된 규정을 100% 모두 숙지하진 못하더라도 충분히 경기 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인 장비, 퍼즈 같은 문제만큼은 숙지가 필요한 부분인데, 라이엇이나 온게임넷 측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불과 두 달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지난 시즌 4월 11일 삼성과 나진의 1세트 경기 시간 15분경, 삼성의 '레이스' 권지민은 생리적인 현상으로 퍼즈를 요청했고, 경기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전용준 캐스터가 "선수 개인적인 생리적 현상으로 인한 퍼즈이기 때문에 규정상 주의가 주어진다"고 말했다. 라이엇 관계자는 "이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삼성에게 주의를 줬다"고 말했다.


■ 의문점 2. 퍼즈 중 대화에 대한 규정





▲ 퍼즈 중 팀원들과 대화 중인 김찬호, 홍민기



8.3.5 게임 중단 시 선수 커뮤니케이션

경기의 공정성을 위해 선수들은 게임이 중단된 동안 어떤 형태로든 서로 대화할 수 없다. 선수는 중단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판이 요구한 경우에만 심판과 대화가 가능하다. 게임 중단이 길어지는 경우 심판의 재량으로 각 팀은 게임 속행 전에 경기 상황을 논의할 수 있다.


경기가 종료된 뒤 CJ 엔투스 '코코' 신진영은 조은정 아나운서와 방송 인터뷰에서 "경기가 중단된 상황에서 심판이 대화를 하지 못하게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VOD를 되돌려보면 무언가 대화를 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KT 롤스터쪽 부스도 마찬가지로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경기가 중단됐을 때 선수들은 어떤 형태로든 서로 대화할 수 없다고 분명히 규정에 나와있지만, 양 쪽 부스 모두 대화가 이어졌고, 심판의 별다른 제재도 없었다. 이는 곧 심판이 이런 규정에 대한 숙지를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온게임넷 관계자는 "CJ측 부스에 녹음된 파일을 확인한 결과, 당시 게임의 영향을 끼칠만한 말들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게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롤챔스 규정상 명백히 경기의 공정성을 위해 선수들은 게임이 중단된 동안 어떤 형태로든 서로 대화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 발표된 내용에서는 CJ 엔투스 측에 퍼즈로 인한 주의만 있을 뿐, 퍼즈 시 대화를 했던 내용에 대한 조치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 좀 더 명확하고 확실한 규정과 조치가 동반돼야..



▲ 대한바둑협회에는 투명하고 공정한 경기를 위해 규정집을 예전부터 공개하고 있다.

1:1게임이지만 e스포츠와 흡사한 부분이 많은 멘탈 스포츠인 바둑 같은 경우, 예전에는 조훈현 9단이 대국 시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며 상대 선수의 흐름을 끊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국에서 수 읽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이는 선수마다 생각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계시기를 통해 시간을 제한한다. 그리고 2010년 삼성화재배 대회에서는 세계대회 사상 최초로 점심시간을 없앴다. 점심시간도 수 읽기의 연장선상이라는 판단으로 승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2014년 겨울부터는 화장실 사용 등 개인적인 사유로는 계시기를 자유롭게 정지할 수 없는 규정도 논의됐었다. 계시기를 정지하면 시간이 가지 않는데, 그만큼 화장실에 간 기사는 시간을 자유로 쓸 수 있고 상대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롤챔스에서도 경기 규정에 관한 내용이 보다 명확하게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들을 정리해보면, 심판은 물론, 선수 및 코칭 스태프들에게도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규정 숙지 교육이 필요하다.

심판들에게도 규정 숙지에 관해 다시 한 번 체크 및 관련 내용을 상기시켜야 하며, 한국e스포츠협회 공인 심판이 롤챔스에 투입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만약 이번 화장실 퍼즈에 대한 규정과 퍼즈 시 대화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변화 없이 넘어간다면 또 어떤 이슈를 만들어낼지 모르고, 굉장히 위험한 요소를 안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삼성 건 때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주의'라는 조치를 내려줬음에도 공지가 전무했다. 앞으로 경기에 관련된 주의 등 조치에 대해서는 규정에 의거하여 빠르고 정확하게 현장에서 심판들이 즉각적으로 팬들과 시청자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공개된 규정집도 앞으로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르므로 더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규정을 만들기 위해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내 최고의 LoL리그라고 평가받는 롤챔스, 하루빨리 프로 선수들의 경기력에 걸맞은 '프로 규정'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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