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장인, 스페셜리스트, 그 특별함에 대하여

칼럼 | 김홍제 기자 | 댓글: 69개 |




지난 10월 17일 피즈 장인으로 알려진 ahq e스포츠 클럽의 '웨스트도어'가 은퇴를 선언했다.

'웨스트도어'는 지난 2013년 ahq e스포츠 클럽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고, 특히 피즈 장인으로 대만 최고의 미드 라이너로 군림했다. 매번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피지컬과 스플릿 푸쉬 능력을 선보이던 '웨스트도어'는 이번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시즌5 SKT T1과의 8강에서 '페이커' 이상혁을 솔로킬하는 등 멋진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여 은퇴 소식에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웨스트도어'의 은퇴 소식을 접하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게이머들의 실력은 점점 상향 평준화 되어가는 와중에 '웨스트도어'처럼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선수들은 거의 없다는 거였다.

분명 '웨스트도어'의 좁은 챔프 폭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모든 선수들의 실력이 올라가고 있는 시점에서 몇몇 챔프에만 특화된 선수는 살아남기 힘들다. 저격밴을 하면 그만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요즘 시대는 다재다능하고 넓은 챔프 폭을 가진 선수를 선호한다.

모든 능력에 있어 점점 완벽함을 추구해가는 게 맞고, 동시에 선수들의 실력도 상승되어 가지만, '웨스트도어'처럼 색깔 있는 뭔가 하나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들이 사라져 간다는 점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아쉬움으로 자리 잡는다.

이번 롤드컵을 준비하면서 롤챔스와 LCS EU, NA, LPL, LMS 등 다양한 지역의 경기들을 모니터링 했었다. 그리고 '웨스트도어'보다 잘한다고 느껴지는 선수들은 꽤 많았으나 더 특별하고 스타일리쉬하다고 생각이 드는 선수는 딱히 없었다.



▲ 묘하게 닮았다..

나루토라는 인기 만화에서 '록리'라는 인물이 있다. 록리는 나뭇잎 마을 대표하는 닌자 중 하나지만, 인술과 환술을 사용하지 못한다. 애초부터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록리는 자신의 몸 즉, 손과 발만을 이용한 체술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최강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멋진 체술 스페셜리스트로 거듭났다.

실제로 록리는 나루토에서 엄청난 비중을 가진 인물은 아님에도 2014년 일본에서 진행됐던 나루토 인기투표에서 9위를 차지했다.

과거 스타크래프트1 브루드워 시절에도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한 선수들이 인기를 끌었다. 당시 게임의 양상이 정형화되지 않았던 부분도 있지만, 꿈같은 플레이를 실현했던 '몽상가' 강민이나, '불꽃테란' 변길섭, 폭풍처럼 몰아치는 '폭풍 저그' 홍진호, 다크 템플러의 아버지 '사신' 오영종, 공격적 저그의 대표주자 '투신' 박성준 등 스타일리쉬한 선수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최연성이나 이영호처럼 컨트롤이면 컨트롤, 물량이면 물량,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수들이 리그를 장악해 나갔다. 모든 능력치에서 최고의 정점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게임 양상도 비슷하게 흘러갔고, 색깔 있는 선수들이 점점 사라져 갔다.



▲ 과거 폭풍같이 몰아치는 플레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홍진호

그렇다. 프로는 이겨야 하고 성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이기기 위해서는 최신 트렌드를 따라야 하며 멋지고 재밌는 스타일리쉬한 경기도 좋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정석적이고 변수가 적은 운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LoL도 마찬가지다. '메라' 홍민기의 블리츠 크랭크, '프로겐'의 애니비아, '라일락'의 자르반4세, '인섹'의 리 신, 그리고 '웨스트도어'의 피즈까지. '페이커'처럼 모든 챔프를 잘 다루고 완벽한 선수가 최고의 선수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실력은 조금 뒤처질지언정 뭔가 색다르고 특화된 스페셜리스트 선수에 열광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작은 실수 하나가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요즘 시대에서 뭔가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얼마 전 롤챔스만 되돌아봐도 드래곤이나 바론 등 오브젝트가 한 타를 만들어낼 뿐, 굉장히 지루한 경기 양상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었다. 팬들은 '스타 플레이어'에 열광한다. 요즘 시대에 남들과 다른 스페셜한 뭔가를 가진 스타 플레이어의 탄생이 쉽진 않겠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선 그런 스타 플레이어가 나타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