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행처럼 번진 무난함... 그리운 e스포츠 '매력가이'들

칼럼 | 박범 기자 | 댓글: 97개 |


▲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던 '막눈' 윤하운과 '갱맘' 이창석, '카카오' 이병권(좌측부터)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6 시즌 2라운드 4주 차 2경기 진에어 그린윙스와 SK텔레콤 T1의 3세트. 이병렬은 어윤수를 상대로 저그 동족전 승리를 차지하며 팀의 5연승을 이끌었다. 두 선수의 뛰어난 경기력도 빛났지만, 더욱 돋보였던 것은 이병렬의 독특한 세레머니였다.

승리를 확신하게 된 순간, 이병렬은 부스에 그대로 앉아 자신을 비추고 있는 방송 카메라를 지긋이 쳐다봤다.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여러 번. 패배를 직감한 어윤수의 굳은 표정과 상반되는, 승자의 여유가 느껴지는 '섹시한' 세레머니였다.


이병렬은 과거 진행된 영어 인터뷰에서 "I'm sexy boy(나는 섹시한 남자)"라고 언급해 팬들에게 '섹시저그'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이후, 중요한 경기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색다른 전략을 자주 선보여 다른 의미로 '섹시'한 저그가 됐다. 이번 세레머니는 그런 이병렬에게 딱 맞는 옷과 같았다. 패배한 선수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매력은 한껏 어필한 '착한' 돌발행동이었다.

이와 같은 프로게이머의 특색있는 이미지와 '튀는 행동'은 팬들에게 수준 높은 경기를 감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도저히 자신이 따라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컨트롤과 상황 판단을 보여주는 그들에게서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 말 그대로 '팬심'을 제대로 자극해주는 셈이다. 그리고 이 선수들은 팬들에게 남다른 사랑을 받곤 한다.

관련 예시는 얼마든지 있다. 스타크래프트가 유행하던 당시 프로게이머였던 이성은 감독은 승리 이후 바다에 뛰어드는 등 재미있는 세레머니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초기에도 선수들은 매력발산을 아끼지 않았다. 승리 직전 상대 우물로 들어가는 '우물 다이브' 세레머니와 거침없는 언변의 '막눈' 윤하운, 벽과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와 함께 재치있는 인터뷰 등으로 유명한 '갱맘' 이창석, 각종 예능에서 개구쟁이 이미지를 선보인 '카카오' 이병권 등이 팬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 선수들이 모두 국내 무대에서 떠난 이후, 소위 '개구쟁이' 같은 매력을 아낌없이 발산하는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현재 프로게이머 대부분은 언제나 무난하게, 튀어나온 부분 없이 행동하는 것을 '매너'로 삼고 이를 지킨다.

물론, 이러한 모습을 질타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경쟁이라지만 자신이 승리했다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행위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매력을 억제할 필요는 없다. 상대를 무시하지 않는 선에서 보여주는 돌발행동이나 과감한 세레머니, 화려한 언변 등은 분명 e스포츠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불러올 것이다.

팬들의 강도 높은 비판이 선수들의 돌발행동을 억제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금이라도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발언을 하거나 승리 이후 과감한 세레머니를 하면, 어김없이 커뮤니티에는 해당 선수를 몰아세우는 게시글이 올라온다는 것. 팬들 역시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선수들의 매력발산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선수들의 톡톡 튀는 매력은 e스포츠에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생성하는 원동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e스포츠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경기 외적으로 크게 주목받을만한 선수가 별로 없다"고 말한다. 확실히 그렇다. 선수들의 돌발행동은 언제나 e스포츠에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시했다. 팬들 역시 이들의 매력발산을 지켜보며 다양한 별명을 붙여주는 등 함께 즐겼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개구쟁이'가 없어진 e스포츠. 이따금 거침없이 상대를 도발하고 예상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보여주던 그들의 남다른 존재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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