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끊이질 않는 버그와의 전쟁, 불편했던 ESC와 kt의 재경기

칼럼 | 김홍제 기자 | 댓글: 37개 |




이제는 대낮에 걷기만 해도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무더위가 찾아온 듯하다. 일주일의 피로를 날려버릴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 밖에 나가봤자 무더위와 고생만 할 것 같다. 그래. 가끔은 안락한 방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치킨 한 마리와 함께 롤챔스 시청도 뭐,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음, 그럼 어디 오늘의 매치를 확인해 볼까? 1경기는 ESC 에버와 kt 롤스터?! 아프리카 프릭스를 2:0으로 잡으며 순식간에 6위까지 올라선 ESC 에버와 기존 3강 체재에서 현재 5위까지 떨어지며 자존심에 금이 가버린 kt 롤스터라. 꽤 흥미 있는 경기가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다.

예상보다 경기는 흥미진진했다. 1세트, kt 롤스터가 조금씩 유리해져 가는 상황이지만, ESC 에버도 한 번 크게 잘 받아치며 바론도 가져가고 '크레이지' 김재희의 피즈가 쿼드라 킬을 달성하며 알 수 없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크레이지' 김재희의 피즈 스킬 중 e스킬인 '재간둥이' 스킬에 오류가 생긴 것. 분명 흐름 상 바론과 쿼드라 킬을 가져오며 반전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상황에서 선수나 방송사의 문제가 아닌 게임 내 버그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여기서 ESC 에버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재경기를 치르거나 E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기를 계속 진행하는 것.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ESC 에버 김가람 감독은 "경기를 속행하는 경우 피즈의 재간둥이 스킬이 없는 채로 경기를 치른다. 레벨업을 하면 버그가 풀릴 수도 있다고 들었지만, 레벨업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릴듯해서 재경기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패배해서 피해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겼다면 아닐 수도 있었다. kt 롤스터가 이길만해서 이긴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게임 에러에 대한 문제는 라이엇의 잘못이 맞다"고 말했다.





앞서 말했지만, 선수들이나 방송사의 문제가 아닌 게임 내적인 버그로 인해 재경기를 강요받은 상황. 이미 흥도 깨졌고, 롤챔스를 위해 시켜놓은 치킨도 금세 식어버린 기분이었다.

게임 내 버그야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고, 웬만한 상황이면 팬들 역시 수긍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너무 잦다. 다른 리그에서도 같은 사유로 재경기가 펼쳐지는 일이 간혹 있긴 하지만 LoL에서는 그 빈도수가 거슬릴 정도로 많이 발생하고 있다.

보통 선수들이나 팀 차원에서의 실수로 재경기나 퍼즈를 요청할 경우 그에 따른 경고나 제재를 받는다. 하지만, 게임 내 문제로 경기가 중단될 경우는 이에 대해 중계진이 양해를 구할 뿐, 별다른 조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엇이 피해를 받은 팀들에게 보상을 해준다거나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겠지만, 현 시점에서 LoL 프로게이머라는 사명감만으로 게임 내 문제가 생겨 일어나는 재경기는 '감수해야 할 당연한 일'로 여겨야만 한다. '운이 없었네. 그럴 수도 있지, 좋은 경험으로 삼아'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일방적인 피해를 보는 건 '팀과 선수들'이며, 잦은 버그로 인해 경기의 흐름이 끊기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팬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ESC 에버와 kt 롤스터의 유불리의 격차가 극명하게 벌어진 상황이었다면? LoL은 꽤 불리해도 변수가 많아 역전의 가능성이 있는 게임이라 쉽사리 승, 패 판정을 내리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버그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 셈인가?

아마 9:1, 8:2 이상으로 유리하지 않는 이상 판정승을 내리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을 테고, 약간의 유리함 만으로는 유리한 팀에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재경기 제의를 승낙하는 상황이 나오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팬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버그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3월 2012 롤챔스 스프링 오프라인 예선 AEON과 NEL의 경기에서는 버그로 2연속 재경기가 발생했다. 첫 번째 버그는 케넨이 다른 플레이어들의 화면에 보이지 않았고, 재경기에서는 40여 분의 접전 도중 타워에 피해가 들어가지 않는 버그가 발생해 재재경기가 펼쳐졌다.

2012년 10월 28일 롤챔스 윈터 2012~2013 2차 오프라인 예선 GSG와 거츠의 3세트에서는 노틸러스의 평타가 나가지 않는 버그로, 2013년 5월 2일에는 2013 NLB 스프링 LG IM 2팀과 MVP 블루 경기 도중 룰루의 평타가 나가지 않는 버그로 재경기가 펼쳐졌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2014년 3월 LCS EU에서는 SK 게이밍과 겜빗 게이밍의 경기에서 이미 겜빗 게이밍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되었음에도 이후 아트록스 W버그가 있었다며 승, 패를 무효화 하고 재경기를 치러 결국, SK 게이밍이 승리한 바 있다.

그리고 2015년 10월 SK텔레콤 T1과 H2K의 경기에서는 레넥톤 W버그로 인해 경기가 잠시 중단됐다. 객관적으로 SKT T1의 상황이 매우 유리했다. 하지만 최소 H2K는 레넥톤의 W 스턴으로 '벵기' 배성웅의 이블린은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잡지 못했고 재경기가 아닌 경기 속행 판정이 내려졌다.

2015년 10월 18일에 펼쳐진 2015 롤드컵 8강 2세트 프나틱과 EDG 경기에서는 그라가스의 Q스킬이 나가지 않아 재경기를 펼쳤다. 특히 그라가스 Q스킬 버그 같은 경우는 이미 유저들 사이에서 수개월 전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버그임에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 황당해하는 프로겐

2015 롤 올스타전 1:1 매치 프로겐과 더블리프트의 경기에서는 귀환 도중 눈덩이를 맞았음에도 귀환이 취소되지 않는 버그로 2번 재경기를 치렀다. 또한, 가장 최근 세계대회였던 2016 MSI에서는 G2 이스포츠와 슈퍼메시브의 경기 중 엘리스가 포탑에 끼는 현상이 발생해 재경기가 선언됐다.

라이엇은 정기적으로 신챔피언도 내놓고, 챔피언, 아이템, 오브젝트 등의 변화를 주는 패치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려 한다. 이는 굉장히 긍정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발생하는 버그를 빠르게 잡아낼 기술이 부족한 것인지, 일손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가끔씩 발생하는 버그로 인해 리그에 영향을 끼쳐도 크게 문제 되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만약 버그의 원인이 잦은 패치로 인한 것이라면 지금보다 더 완벽한 테스트를 통해 최대한 버그가 없는 버전으로 완성시킨 뒤 패치를 적용시켜야 하지 않을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작은 것들도 계속 모이고 쌓이다 보면 큰 덩어리가 되기 마련이다. 작고 눈에 띄지 않던 버그로 인한 피해들이 조금씩, 잊을 만 하면 계속 발생하면서 이제는 눈에 띌만큼 꽤 큰 덩어리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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