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태권도는 어떻게 올림픽 e'스포츠' 종목이 됐을까?

칼럼 | 김병호 기자 |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가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올림픽 e스포츠 시리즈 2023에 대한 세부 내용을 3월 1일 공개했다. 올림픽 e스포츠 시리즈는 전통 스포츠 중심인 올림픽이 새로운 세대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만들어진 e스포츠 대회이다.

이번 올림픽 e스포츠 시리즈에는 눈에 띄는 종목이 새로 생겼다. 바로 우리나라의 국기(國技)인 태권도이다. IOC는 발표를 통해 기존의 세일링, 사이클링, 모터스포츠, 야구 외에 신규 종목으로 태권도가 양궁, 체스, 테니스, 댄스 등과 함께 추가됐다고 발표했다.

태권도가 올림픽 e스포츠의 신규 종목이 됐다는 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e스포츠는 ‘키보드, 마우스, 콘솔, 모바일 등을 활용한 전자오락으로 상대와 경쟁하는 것’이다. 반면, 태권도는 실제 몸을 사용하는 격투기이기에 대중이 생각하는 e스포츠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렇다면 태권도는 어떻게 e스포츠 종목이 됐을까?

힌트는 지난 첫 대회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올림픽 e스포츠 시리즈는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가상 올림픽 시리즈(Olympic Virtual Series)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였다. IOC는 첫 대회에서 여러 종목의 게임을 선보였는데, 야구 제외하고 모두 가상 시뮬레이션 형태의 게임이었다.

예를 들어, 사이클링 종목의 즈위프트(Zwift)라는 게임은 특수 장비가 연결된 실내 자전거를 타고 가상의 공간에서 상대 사이클링 선수와 경쟁하는 형태의 게임이다. 신규 e스포츠 종목인 태권도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모션 트래킹 기술을 활용하여 선수를 대신한 아바타가 가상의 공간에서 상대와 대결하게 된다.

▲ 가상 시뮬레이션 사이클링 게임 즈위프트(Zwift)(출처: 션TV)

IOC가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에 집중한 건 지난 도쿄 올림픽 때부터이다. IOC는 본래 e스포츠에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e스포츠가 시범 종목이 됐을 때만 해도, 토마스 바흐 IOC 총재는 e스포츠에 부정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IOC가 다른 스포츠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올림픽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자연스럽게 코로나 기간에도 대회를 진행한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대중들에 친숙한 일반 e스포츠 게임이 아닌, 실제 스포츠에 보다 가까운 가상 시뮬레이션 형태의 게임들을 주로 모아 가상 올림픽 시리즈라는 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IOC의 가상 올림픽 시리즈는 결과적으로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IOC는 지난 도쿄 돌림픽에서 가상 올림픽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세일링, 사이클링, 모터스포츠까지 네 종류의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을 선보였는데, 이 대회를 시청한 90%는 정작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에는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닌 나머지 한 종목이 90%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 게임이 바로 코나미의 ‘e베이스볼 파워풀 프로 베이스볼 2022’이었다. ‘e베이스볼 파워풀 프로 베이스볼 2022’는 일반 e스포츠 게임처럼 게임 패드로 경기를 치르는 게임이다.

블래드 마리네스쿠 IESF 총재는 가상 올림픽 시리즈 시청자의 90%가 코나미의 게임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서 “코나미 게임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대중들에 친숙한 타이틀이고, 게임 패드로 경기가 진행됐기 때문이다”라며 IOC가 e스포츠를 대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IOC가 그런 비판을 받아들인 것일까? 이번 대회에서는 이름도 가상 올림픽 시리즈(Olympic Virtual Series)에서 올림픽 이스포츠 시리즈(Olympic Esports Series)로 개명했다. 그리고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뿐만 아니라 모바일 게임인 양궁(Tic Tac Bow)과 테니스(Tennis Clash), 웹 게임인 체스(Chess.com)를 추가했다. 시뮬레이션 게임 형태에 집중하지 않고 보다 진보된 개념으로 e스포츠에 접근한 것이다.

신규 종목으로 추가된 태권도는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스포츠 종목이다. 덕분에 신규 종목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도 클 것이다. 그러나 가상 시뮬레이션 기술이 태권도의 빠른 발차기를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만약 지난 대회처럼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흥행에 실패하고, 대중들에 친숙한 웹, 모바일, 콘솔 게임이 대부분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다면, e’스포츠’에 집중해온 IOC의 고집도 꺾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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