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록수 '페이커'

칼럼 | 김홍제 기자 | 댓글: 62개 |



우리네 인생은 대부분은 활엽수다. 세월이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는데, 공기가 잎새를 오르게 하고, 봄에는 만개하며, 색깔도 변하고,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이게 자연스러운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무도 있다. 소나무는 대표적인 상록수다. 상록수라 함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사시사철 늘푸른나무. 이런 점에서 상록수는 '변하지 않는, 굴하지 않는 의지'로 많이 표현되곤 한다. 푸른 소나무는 가을에 낙엽이 지는 활엽수와 달리 엄동설한에도 푸른빛을 유지하고, 우직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페이커'는 상록수다. 그것도 아주 멋들어진 푸른빛을 뽐내는 우직하고 듬직한 소나무 상록수. '페이커' 이상혁은 데뷔 10년 차를 맞이한 올해 V10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앞으로 한 명의 선수가 은퇴전까지 V10이라는 기록을 깰 수 있을까? 아마 어렵지 않나 싶다.



▲ 2013 LCK 첫 우승 당시

우직함의 대명사인 나무들도 1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데, '페이커'는 10년 동안 (좋은 의미로)변함이 없었다.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땐 어색함, 풋풋함이 묻어났다는 것 말고는 적어도 인간 이상혁이 아닌 프로게이머 '페이커'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페이커'의 연대기를 쭉 돌아보면 그동안 정말 수없이 많은 선수들과 경쟁했다. 단기적으로는 '페이커'보다 뛰어난 기량,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았던 선수들도 없지 않지만, 세월이라는 벽 앞에서는 다들 장사가 없었다.

'페이커'도 슬럼프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나무, 꽃들이 피고 질 때마다 잠시 우리가 바라보지 않았을 뿐, '페이커'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고 우직하게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페이커'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꾸준함'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선수다.

꾸준함이 대단한 이유는 다들 잘 알고 있다. 오래 지속하지 못할 뿐이다. '꾸준히 해라'라는 말은 우리들도 자주 사용하는 말이지만, 쉽지 않은 이유는 꾸준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귀찮음'이기 때문이다.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 '페이커' 이상혁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페이커'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로 여러 번 불탔던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논란을 직접, 선수답게 경기를 통해서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페이커' 이상혁은 데뷔 10년 차 만에 V10, LCK 700경기, 2,500킬 등 이번 스프링 스플릿에도 역사를 써내려갔다.

첫 결승전 관람을 왔던 장소에서 10년 후 열 번째 LCK 트로피를 들어 올린 '페이커' 이상혁. 우승은 노력의 결실이라 말하며, 가장 큰 동기부여는 좋은 경기를 팬들에게 보여주는 거라고 말한다. 오랫 동안 '페이커' 이상혁을 지켜봤지만, 9년 차 겨울이 지나고 10년 차 봄이 돼서야 '페이커'라는 푸른 소나무는 쉽게 시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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