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선수의 목소리를 내어줄 누군가

칼럼 | 김병호 기자 | 댓글: 2개 |



LCK가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 도입되는 신규 제도 3종을 25일 공개했다. 발표된 세 가지 제도는 대체로 팀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번 발표를 맡은 이호민 LCK 리그 운영팀장은 신규 제도가 선수보다 팀을 위한 제도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냐는 질문에 “팀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돕기 위한 제도라는 건 인정한다”고 말했다.

발표가 끝나고 LCK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LCK 관계자는 이번에 도입하는 세 가지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게임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팀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제도다. 다만, 이 제도를 만들 때 선수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없었던 건 아쉬웠다. LCK 관계자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선수의 의견을 듣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LCK가 선수의 의견을 듣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LCK에는 선수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줄 사람, 혹은 단체가 없다. 그래서 선수의 의견을 묻고 싶어도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선수의 입장을 대변할 누군가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LCK가 직접 선수 입장을 대변할 누군가를 골랐다면, 그 사람이 과연 LCK 전체 선수를 대변할 자격이 있냐는 질문이 따라붙게 된다. 또, LCK가 선정한 사람이기에 LCK에 유리한 증언을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선수의 입장을 대변할 사람은 선수가 직접 골라야 한다.

설문조사, 혹은 투표 같은 방식으로 선수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제도가 정해진 이후에는 찬반 의견을 듣는 형태로 쓰일 순 있다. 그러나 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보다 빠른 피드백이 필요하다. 설문조사, 투표 같은 방식은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기에 알맞지 않다.

무엇보다 선수의 권리는 선수가 직접 챙겨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챙겨주지도 않고, 챙겨줄 수도 없다.

1988년,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리그에서는 처음으로 선수협회를 창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프로야구에는 선수보다 야구단의 권한이 강력했다. 야구단은 그 힘을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낮은 연봉을 제시했고, 선수는 따라야만 했다. 그래서 당시 프로야구 선수들은 처우 개선을 목표로 선수 협회를 만들려고 했다. 그렇게 KBO, 그리고 야구단과의 오랜 갈등 끝에 2000년 마침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설립됐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선수의 권익 보호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LCK 신규 제도 발표 후, 치러진 기자 간담회에서 선수 노조 결성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정훈 사무총장과 이호민 리그 운영팀장은 같은 결의 답변을 내놓았다.

“리그나 팀이 선수의 권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선수들이 나름대로 의견을 피력할 단체를 만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수들의 협의체가 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해야 한다. 그에 대해 리그가 제지하거나 어떤 조처를 할 생각은 없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만난 LCK 관계자는 선수협회가 만들어지기를 내심 바라는 듯 보였다. 선수협회의 등장은 LCK에도 반가운 일일 거다. LCK가 선수협회에 권한을 넘기는 만큼, 책임도 함께 넘길 수 있다. 선수협회가 없는 지금은 LCK가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그에 따른 비난도 모두 LCK의 몫이다.

LCK에 선수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어줄 선수협회가 등장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게 보인다. 현직 선수들은 너무 어리고, 바쁘다. 은퇴한 선수들은 수가 많지 않다. 그리고 은퇴 후의 삶을 걱정하기에도 빠듯하다.

그러나 선수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누구든 그 자리에 서게 될 거다. 그 순간이 너무 긴박하거나 아찔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혹은 그런 위기 없이도 선수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어줄 누군가를 찾는다면, LCK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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