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벼랑 끝에서 싸워 온 프로게이머 ‘크라운’ 이민호

칼럼 | 장민영 기자 | 댓글: 66개 |



며칠 전 '크라운' 이민호가 은퇴를 알리는 글을 올렸다. 쉽사리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글은 마치 ‘크라운’의 프로게이머 여정을 보는 것 같았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이제 진짜 끝으로"라는 말을 하고도 쉽게 끝내지 못했고, 그토록 하고 싶은 말이 "이 우승을 시작으로 앞으로 2회-3회 우승 계속해서 발전하는 프로게이머 이민호가 되겠습니다"라는 게 더 안타까웠다. '크라운'은 여전히 마음가짐만큼은 2017 최강의 자리에서 성장을 바랐다. 더 증명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 속에 은퇴라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은퇴하는 '크라운'에게 가장 많이 따라온 말은 ‘17 세체미'다. 당대 롤드컵 우승과 함께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였나’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프로라면 최고의 경력이 자신의 상징과 같겠지만, ‘크라운’의 프로게이머 인생을 설명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듯싶었다. ‘크라운’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자리에 선 다른 선수들과 우승 전후로 조금 다른 길을 걸었기에 그렇다. LCK 하위권 팀에서 활동한 2015년으로 시작해 수직으로 상승한 2016년, 2018년 롤드컵이 끝난 이후 LCS 하위권-챌린저스 코리아로 내려오기까지. '크라운'은 안 되는 일에 좌절해봤고 가까스로 이를 극복해본, 어쩌면 벼랑 끝에서 싸움을 이어갔다.

동시에 우승이라는 한 번의 진한 조명에 '크라운'의 발자국은 가려지기도 했다. '크라운'은 정상에 다다르기까지 유쾌한 질주를 해본 적이 없는 선수다. 힘겹게 발을 떼어야 비로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하위권이었던 삼성 갤럭시에 들어왔을 때도 시작부터 치열한 경쟁이었다. 'ABC' 미드 라이너(Ace-Bliss-Crown)라고 불리는 세 명의 선수 간 주전 경쟁 속에서 가장 늦게 빛을 본 경우다. 세 명이 주전 경쟁을 하는데, 확실한 한 명이 없다는 건 정말 암울한 상황이었다. '크라운' 역시 주전을 달고 나서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2015년은 뚜렷한 빛줄기 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런 '크라운'이 속한 삼성 갤럭시는 ‘앰비션’ 강찬용이 들어오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크라운’의 걸음걸이는 팀 흐름을 따라가기 벅차 보였다. 팀은 중위권 이상으로 올라왔으나 상위권으로 향해야 하는 '크라운'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미드 라이너가 약하면 상위권에 들 수 없다는 냉정한 평가 속에서 지내야 했다. 챔피언 폭은 '크라운'의 발목을 잡아끌었고, 다른 미드 라이너들은 새 친구를 찾아 협곡을 날아다녔다. 냉담한 현실 속에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 속에서 '크라운'은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자신이 삼성 갤럭시에 어울리는 미드 라이너라고. 그 방법은 상위권 미드 라이너를 넘는 것밖에 없었다. 일단, 팀의 승리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플레이가 멋있어 보이지 않더라도 승리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게 '크라운'이 처한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랬던 '크라운'은 저평가 받던 프로게이머가 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반전을 해낸다. 그에게 주어진 2016년의 마지막 기회는 롤드컵 진출 하나뿐이었다. 시즌 내내 아쉬운 평가 속에 살았던 '크라운'이 2016 선발전을 통해 모든 걸 바꿔놓았다. 단순히 꾸준히 열심히 해왔기에 달성할 수 있었던 성공은 아니었다. 이른 PO 탈락 이후 선발전 사이에 주어지는 휴가까지 반납하며 일궈낸 성과였다. 롤드컵 진출이라는 결과는 '크라운'을 비롯한 많은 팬들에게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고, 처음 도전하는 이에게 거대해 보이는 롤드컵이란 관문을 넘어봤다는 것은 큰 성장 동력으로 남았다. 진정으로 절실하게 임하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면서 말이다.

한 번으론 '크라운'의 증명은 끝나지 않았다. 롤드컵이라는 산을 넘었음에도 매해 더 큰 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롤드컵 결승에서 만났던 ‘페이커’ 이상혁은 더 굳건히 커리어를 쌓으려고 했다. 거기에 ‘비디디’ 곽보성-‘쵸비’ 정지훈이라는 신예들이 매해 새롭게 등장해 '크라운'에 관한 평가가 낄 자리를 주지 않았다. 시즌 전반을 돌아봤을 때 평가는 모두 '크라운'보다 높았다. 게임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 자체가 달랐다. 미드 라이너의 솔로 킬로 게임 전체가 흔들리는 시기까지 찾아오면서 '칼'을 잘 쓰지 못하는 '크라운'에 관한 평가는 더욱 박해져만 갔다.




하지만 '크라운'은 이를 다시 한 번 버텨낸다. 2016년에 경험한 반전 때문일까. 롤드컵 선발전이 다시 찾아오기까지 끝까지 버텨내면서 결국 최종 승자가 된 것도 '크라운'이었다. 1-2번 시드로 순탄하게 롤드컵으로 향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버티고 또 버틴 자의 승리 방식을 세 번이나 입증했으니까.

이런 삼성 갤럭시의 상황은 '크라운'의 모습과 가장 비슷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처럼, 리산드라-말자하로 미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 칼과 칼의 대결이 일어나는 미드 구도가 나왔음에도 끝까지 버텨냈다. 미드 캐리가 곧 승리라는 공식을 뒤집어 버리는 경기였다. 자신만의 생존법을 가장 극적인 순간에 끌어낼 줄 알았고, 이를 팀적으로 풀어가는 또 다른 미드 라이너의 스타일을 확립한 게 '크라운'이었다.

그렇게 ‘크라운’은 17 롤드컵 8강의 ‘비디디’, 18 롤드컵 선발전의 ‘쵸비’의 돌풍을 잠재우고 올라갈 수 있었다. 그가 팀에서 해준 역할의 소중함은 18 롤드컵 선발전-19 KeSPA컵 결승전으로 이어지는 그리핀과 젠지 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전까지 '크라운'이 이를 악물고 '쵸비'의 이렐리아를 버텨냈다면, 그 다음 대결에서 '크라운'이 떠난 젠지의 미드가 뚫리고 말았다. '크라운'이 18 롤드컵에서 무너지며 아쉽게 떠난 것도 맞다. 하지만 KeSPA컵 결승 만큼은 '크라운'의 빈자리가 씁쓸하게 느껴지곤 했다.



▲ '크라운' 빈 자리... '쵸비' 이렐리아 vs 18-19 젠지




아쉽게도 2018 롤드컵 이후 '크라운'이 걸어간 길은 어두컴컴했다. 국내를 떠나 도착한 북미는 '크라운'에게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일어서 보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북미의 CLG에선 최하위권을 면하지 못했다. 시즌 중에 다른 미드 라이너가 투입되더니 팀을 나오게 되는 일까지 한꺼번에 닥쳐왔다. 주전으로 뛴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프로게이머의 자존심을 제대로 구긴 일이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서 본 선수라면 도저히 용납이 안 될만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크라운’은 끝까지 버텼다. 프로게이머로 남기 위해 2부 챌린저스 코리아로 향하는 선택을 했다. 우승자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아래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아쉽게도 새롭게 도전하는 무대에서도 '크라운'은 빛을 보진 못했고, 결국 챌린저스 코리아마저 사라지면서 자신이 설 무대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마지막이 참 어두웠던 '크라운'의 프로게이머 생활은 그래도 은퇴하기 전까지 많은 이들에게 빛을 전달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는 것. 일찌감치 멈췄다면, ‘크라운’은 그 한 번의 우승조차 달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근성이 있었기에 롤드컵 우승자임에도 챌린저스 코리아부터 올라오는 도전이 가능했다. 롤드컵 우승자에게 2부 리그로 향하라고 하면 뛸 수 있는 프로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무너진 자존심을 부여잡고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게 ‘크라운’만이 보여줄 수 있는 프로다움이었다.




결국 ‘크라운’은 신인 시절부터 자신의 우상이라고 말했던 스타 프로게이머 이제동이 되진 못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롤드컵 2-3회 우승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말 역시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렇지만 ‘크라운’은 뚜렷한 한 번의 우승을 남기고 간 선수다. 롤드컵 우승 1회를 달성하기까지 과정, 그 이후 보여준 행보 역시 프로게이머 ‘크라운’다웠다. 그 한 번이 누군가에겐 큰 울림이었고, 1회 우승의 이전과 이후에도 '크라운'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크라운’에겐 '프로'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는다. 프로게이머라는 딱지를 떼면서 많은 생각이 들 듯하다. 한때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고, 많은 좌절과 성공을 모두 경험해봤으니까. 어쩌면 롤드컵 우승이라는 타이틀은 더 성장하기 힘든 '크라운'의 프로 생활을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크라운'은 끝까지 자신의 1회 우승이라는 경력과 끝까지 싸워본 몇 안 되는 프로게이머다. 어디에 있더라도 1회 우승이란 기록과 대결을 신청하는 그의 모습은 뚜렷한 인상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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