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021년, T1 덕에 울고 웃었다

칼럼 | 김홍제 기자 | 댓글: 97개 |




2021년 T1의 라이엇 주관 공식 대회가 모두 막을 내렸다. 가장 많은 팬들을 보유한 T1은 어느 하나 팬들의 시선이 쏠리지 않는 곳이 없다.

살아있는 전설 '페이커' 이상혁을 시작으로 비시즌마다 새로운 선수들이 합류하고 떠나는 과정에서 이번 2021년은 칼을 갈고 또 갈았던 T1이다. 롤드컵 3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보유한 팀이지만, 마지막 우승도 벌써 5년 전 이야기.

심지어 작년에는 롤드컵 진출 자체를 이루지 못했다. 그렇기에 2021년 반드시 뭔가 보여줘야 할 상황. '페이커' 이상혁도 이제 절대 프로 선수 사이에서 적은 나이가 아니고, 그들과 과거에 경쟁하던 선수들은 경기석보다 이제는 마이크를 잡거나 군대에 가거나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 이들이 훨씬 많다.

2021년 T1은 선수도 선수지만 감독, 코치진에 큰 신경을 썼다. 오피셜이 발표되기 전부터 퍼진 T1의 루머로 세간이 들썩였고, 작년 롤드컵 우승 타이틀을 가진 양대인-이재민 코치가 합류했을 때 올해 T1은 어떤 모습일지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T1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최강,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항상 어떤 문제점에 봉착하고, 그걸 멋지게 해결해나가는 T1이었기에 팬들을 매료시킨 게 아닐까.

올해도 쉽지 않았다. 양대인 체재는 LCK 팀들 중 거의 유일하게 10인을 모두 기용하며 새로운 조합, 구성을 끊임없이 찾고 시도했다. 거기에 팀 간판 스타이자 베테랑 '페이커'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명 부작용도 있었다. '페이커' 이상혁이 벤치에 있는 시간이 늘수록 팬들의 물음표는 계속 늘어났고, 양대인 체재가 추구하는 LoL에 대한 명확한 무언가를 팬들도 느끼고 알고 싶어했다.

4위로 스프링을 마감한 T1은 서머에도 쉽지 않았다. 2021 시즌 절반이 지난 시점인데도 여전히 확실한 주전이라 불릴만한 선수는 '케리아' 류민석이 유일했다. 그런 상황에서 성적은 물론 경기력까지 좋지 못하니 팬들의 불만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7월 15일. T1은 서머 스플릿 절반이 지난 시점, 양대인 감독, 이재민 코치와 결별 소식을 전했다. 이 타이밍에 이런 행보는 LCK 팀들 중 처음이기도 하고,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다. T1은 다음날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이날 보여준 최성훈 단장의 대답은 사이다 없이 먹는 고구마와 같았다.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둘 다 최선의 길이라는 함축적인 말만 돌려 할 뿐이었다. 팬들이 내부 사정은 정확히 알 수 없는 건 당연하나, 납득할만한 대답들은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결국, T1에게 남은 건, 거두절미하고 성적. 오로지 성적만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T1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칸나-오너-페이커-구마유시-케리아'라는 현재 주전 멤버를 확정 짓기 시작했고, 서머 후반부에 경기력이 점점 가파르게 상승했다.

비록 결승에서 담원 기아에게 패배했지만, 여기까지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만한 행보였다. 롤드컵 진출을 확정 지은 T1은 대표 선발전을 통해 한화생명e스포츠를 꺾고 그룹 스테이지에 직행했다. 그룹 스테이지에서 보여준 T1의 경기력은 발군이었다. 준비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연습과 공을 들였는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노력이 느껴졌다.

8강 토너먼트 한화생명e스포츠전에서 T1은 경기력의 최고점을 보여줬다. 담원 기아와 대결을 기대보다 체념이 더 앞섰을 팬들의 어깨를 잡으며 붙잡는 경기력이었다. 하지만 담원 기아 역시 롤드컵 무대를 통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고, 그렇게 역사에 남을 DK VS T1의 4강전 경기가 시작됐다.

1세트, T1은 벽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분명, T1도 정말 잘했는데, 담원 기아가 그냥 훨씬 잘했다. T1이 수많은 노력과 훈련을 통해 뭔가를 체득한 인간이라면, 담원 기아는 그냥 완벽 그 자체의 기계 같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T1의 0:3패배를 예상했던 사람이 훨씬 많을 거다.

T1의 진심, 노력의 결실이 피어난 건 2세트부터다. 1세트, 완전한 정석 대결 패배 후 멘탈이 흔들리고 부담감은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인데, 선수들은 웃었다. 그리고 롤드컵 메타 기준 비주류인 야스오, 그리고 이번 4강 최고의 백미로 불리는 질리언 서포터를 차례대로 선보이면서 전승을 이어가던 담원 기아에게 2연패를 선사했다.

하지만 뒷심이 더 강했던 쪽은 담원 기아였다. 만약 이번 4강에서 T1이 승리했다면, T1 그리고 '페이커' 이상혁의 4회 우승 도전이라는 앞으로 깨지지 않을 기록 코앞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사정이 없는 선수, 팀이 어디 있겠냐만, 생각보다 담담했던 '페이커' 이상혁의 마지막 모습이 오히려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때 '페이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아무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4강이라는 무대의 기억은 결승보다 빨리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두 팀이 4강에서 만난 게 너무 야속했다. 그럼에도 2021년 롤드컵 DK VS T1의 4강, 나아가 2021 T1은 국내를 넘어 전세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T1의 2021년은 끝이 났다. 하지만 T1이 줬던 울림은 아직도 어딘가로 크게 퍼지고 있다. 2021년, 아마 많은 팬들이 T1 덕분에 울고, 또 웃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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