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형은 지휘관과 서약하지 않았다
11. 보금자리
지휘관의 집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조명이 따듯했고 온도도 적당했다. 여름날에 그 온도를 맞추기 위해 오랫동안 냉방을 틀었을 터였다. 그 탓인지 지휘관은 한여름에도 목까지 올라오는 니트를 입고 있었다. 땀을 흘리거나 답답해 보이지는 않았다. 발끝에 닿는 마룻바닥은 차가웠고, 차가움은 집 안의 포근한 냄새와 맞닿아 깔끔한 인상을 빚었다.
달달한 음식 냄새 때문이었는지, 예상치 못한 집의 아늑함 때문이었는지, 지휘관의 집은 감각을 부드럽게 감싸는 맛이 있었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필요한 가구들은 모두 있으면서 쓸데없는 가구들이 없었고, 가구들은 집 구석구석에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구들은 집 안에 온전히 섞여들어 있었다. 배제되거나 겉도는 물건들이 없었고 모든 물건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적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썰렁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집이었다. 가구나 집안 물건 위에 먼지가 쌓여있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먼지가 떠돌고 있었을 집 안에는 오후의 햇볕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지휘관은 그녀를 곧장 부엌으로 안내했다. 4인용 식탁이 부엌과 거실이 맞닿은 지점에 있었다. 부엌이 조금 난잡했지만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싱크대 안쪽으로 붉은 양념들과 물이 묻은 설거지들이 쌓여 있었다. 오래된 설거지는 아니었는지 냄새는 나지 않았고 세제 냄새가 살짝 풍겼다. 세제 냄새는 깔끔한 인상을 주면서 오히려 차려진 음식의 식욕을 돋구었는데, 음식들에서 김이 나고 있었고 종류가 많았다.
그녀가 식탁 앞에서 머뭇거렸다. 지휘관이 싱크대와 부엌을 마저 정리하면서 설명했다. 그가 살았던 한국이나 주변 국가에서 식사하던 방식이라고 했다. 한 끼에 먹을 음식들을 모두 올려두고 한두 가지의 주 요리와 여러 가지의 부 요리를 함께 먹는다고 했다. 온 식구가 모여 먹었는데, 자리가 가까워서 이야기하기 좋고 머리를 맞대고 식사해 쉬이 정이 든다고 했다. 메인 디쉬로 보이는 두 요리 모두 빨갰고 매운 냄새가 났다. 지휘관이 옛날부터 항상 먹던 음식이라고 했다. 그는 조금 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주도 곁들일까 해서 꺼내 놓았다. 먹을 건가?”
지휘관이 찬장에서 수저를 꺼내며 물었다. 그의 손길이 작고 투명한 소주잔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식탁 한 켠에 녹색 술병이 있었다. 냉장고에서 방금 꺼냈는지 병 바깥을 따라 하얗게 김이 서려 있었고, 식탁 유리가 그 김을 따라 동요하면서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HK416은 그 낯익은 녹색 병을 보면서 소주의 비릿한 향과 관자놀이를 가로지르던 두통을 동시에 떠올렸다. 취하고 싶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프로토콜을 정지해 취하지 않을 수는 있었으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양할게요.”
“그래. 천천히 마셔야겠군. 앉게. 배고플 텐데.”
“감사합니다.”
“손님이 온 게 오랜만이라……준비를 한다고는 했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
지휘관이 수저를 놓고 그 곁에 소주잔을 놓았다. HK416이 자기 몫의 수저를 받아 지휘관이 놓은 대로 따라 놓았다. 소주병의 뚜껑이 열리면서 가볍고 경쾌한 소리를 냈다. HK416의 시선이 고정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젓가락을 먼저 들어도 되는지, 소주를 따르는 지휘관을 기다려야 하는지, 어떤 음식을 먼저 먹어야 하는지, 어떤 절차 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익숙치 않은 음식들과 익숙치 않은 식사 방식이었다. 지휘관이 소주를 따르고 나서 머뭇거리는 HK416을 보았다. 그는 천천히 젓가락을 들고 고기볶음을 집었다. HK416이 따라서 젓가락을 집었다. 쇠로 된 젓가락은 매끈해서 음식이 곧잘 미끄러졌다.
HK416은 지휘관이 집은 반찬을 따라 먹었고, 지휘관은 그녀를 빤히 보다가 다른 음식들도 먹어볼 것을 권했다. 먹고 싶은 것을 순서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 지휘관은 사이드 디쉬들을 반찬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 반찬들의 재료, 이름, 맛을 설명했다. 목소리는 조용했고 HK416은 지휘관의 설명을 따라 음식들을 먹으면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
차분하고 느릿한 목소리였다. 지친 듯 한 중저음이었는데 힘이 빠진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성대에 무리가 많이 갔었는지 옅게 쇳소리도 들렸다. 아늑하고 조용한 집이었다. 젓가락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지휘관이 음식을 씹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고요와 안정 속에서 지휘관의 목소리는 진하게 들렸다.
그는 편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반찬을 집는 몸짓부터 음식을 씹는 턱, 눈의 깜빡임과 고개의 움직임이 느렸고 안정적이었다. HK416은 음식을 먹으면서 자주 지휘관을 흘깃거렸다. 그리폰에서 겪었던 무거운 느림과 조금 달랐다. 자신의 주변을 의식하지 않았고 마음을 내려놓아 무게중심이 잡히지 않은 느림이었다. 그는 숨을 깊게 쉬었고 가끔씩 음식을 씹으면서 겉눈썹을 들썩였다. 음식 맛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지휘관의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부터 HK416은 마인드맵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해야 하는 질문이 쌓여 있었고 그 질문과는 별개로 지휘관의 개인 공간에 스며들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이 쌓여 있었다. 지휘관은 항상 그녀의 예상 밖에서 뛰놀았다. 이번에도 그의 집은 예상 밖으로 포근하고 편안했다.
처음 보는 공간에서 처음 보는 음식을,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처음 보는 모습을 보며 먹고 있었다. 모든 것이 생소했고, 정보들은 데이터베이스에 곧장 스며들지 못했다. 의심과 불안을 거친 데이터들은 미심쩍은 태도로 데이터베이스에 새겨들어갔다. 방금 먹었던 반찬의 맛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지휘관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끼쳐오던 냄새는 기억났다. 판단해야 할 것이 많았고, 과부화가 걸린 마인드맵은 모든 처리를 저장하지 않고 흘려보냈다. 그 사이에 드문드문 저장되는 기억들은 새기듯이 파고들었다.
그 감각은 불쾌하지 않았다. 바쁜 계산의 영역을 넘어서 감각과 감성의 영역은 안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지휘관의 처음 보는 모습이 신기했고 그와 함께 먹는 음식이 즐거웠다. 오래 전 그와 함께 식사를 했을 때와 다른 감정이 어깨로부터 쏟아져 흘러 온 몸을 감쌌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휘관은 한결 가벼워 보였고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여유로운 지휘관의 태도를 따라 HK416도 여유롭게 그를 음미하고 있었다.
“……의외네요. 지휘관이라면 집에서도 빡빡하게 살 것 같았는데.”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내 집이다. 집에서만큼은 편히 쉴 수 있어야지.”
“모든 걸 의심하시고 모든 걸 믿지 않으시잖아요.”
“그래서 내 집만큼은 믿을 수 있도록, 입주할 때부터 신경을 써 놓았다.
“……그렇군요.”
수프는 짜고 매웠다. 고기 기름의 육중한 맛과 김치라고 불린 채소 무침의 날카로운 맛이 어우러져 맛은 큼직했고 강렬했다. 지휘관이 세 잔째 소주를 따랐다. 아직 소주는 부드럽게 잔에 흘러들어가 안기고 있었다. 지휘관의 목소리나 몸짓이 떨리지 않았지만 말이 조금 많아지고 있었다. HK416은 그런 정보들을 곱씹어 가며 지휘관의 대답을 들었다.
“내가 직접 갈무리를 해 놓았으니, 이 공간이 내가 믿을 수 있고 마음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애착도 있고……어떤 것에도 애착을 둘 수 없는 내 삶에서 마지막 보루 같은 거지.”
지휘관이 말을 마치고 소주를 넘겼다. HK416이 돼지고기를 씹으면서 술을 넘기는 지휘관의 목을 보았다. 복잡하고 고요한 마인드맵과 감성의 한가운데에 애착이란 말은 슬그머니 다가와 깊숙이 파고들었다. HK416은 비계를 천천히 씹었다. 돼지기름이 새어나와 혀 뒤쪽을 감쌌다. 함께 집어넣은 밥알이 부서지면서 입 안을 구르고 있었다. 지휘관은 숙주나물을 집었다. HK416의 시선이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고기가 완전히 식도를 넘어서 위장기관에 처박힐 때, 그녀의 시선은 빨간 국물이 스며든 자신의 밥공기에 처박혀 있었다.
그녀는 애착이라는 말에서 지휘관이 취한 날 밤을 생각했고, 작전에서 복귀했던 어제 아침을 생각했다. 술에 취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눈동자를 부르짖는 그 심정과 인간이 아닌 것에게 따듯한 위로를 건네는 것을 생각했다. 지휘관은 그 모든 애착을 부정했다. 사진 속 여자가 시시때때로 튀어나와 그 모든 애착들과 충돌했다.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HK416이 씹기를 그만두고 움직임을 멈췄다. 마인드맵이 달구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에 애착이 없으시다면, 그 사진에도 애착은 없으셨나요?”
“…….”
“정확히는 그 사진 속 사람 이겠죠.”
“……그 사진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 않았나?”
“오늘 여쭤보고 싶다고 했던 게 그거에요.”
“……왜 그 사진에 집착하지?”
HK416은 대답하지 않았고 지휘관은 다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휘관은 HK416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식사했다. 시선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음식의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HK416은 수저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휘관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희고 얇은 블라우스가 HK416의 숨을 따라 고르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검고 단정한 테니스 스커트 위에 HK416의 두 손이 놓여 있었다. HK416은 죄인처럼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휘관이 결국 대답하지 않을 가능성과 지휘관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을 가능성 사이에서 그녀는 가라앉아 있었다. 재차 질문함으로써 HK416은 지휘관에게 한 발짝 다가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그 걸음은 404 소대원에게 치명적이기에 HK416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입을 여는 순간 마인드맵에서 후회가 밀려올라왔었지만 말은 이미 떠나 지휘관에게 도착해 있었다. 지휘관이 네 잔 째 소주를 따르다가 갑자기 대답했다.
“내 아내였던 사람이다.”
지휘관의 대답은 오랜 침묵에 비해 단조롭고 순탄했다. 툭 털어놓듯 던지는 대답이었다. HK416이 고개를 들어 지휘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미간이 좁혀져 있었고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지휘관이 했던 행동들의 진정성이 전부 뒤집혀 HK416을 공격했다. HK416이 입술을 옴작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곧 입술을 세게 깨물며 입을 닫아버렸고, 지휘관은 돼지고기를 한 점 집어 먹고서 젓가락을 놓았다.
“답이 되었나?”
“……예. 그 사진을 우연히 보았을 때, 저랑 너무 닮아서…신경이 쓰였습니다.”
여전히 평탄한 지휘관의 말과 반대로 HK416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답이 되었다니 다행이군.”
“저는 인형이니까……제 성격은 만들어 진 거예요, 지휘관.”
무미(無味)한 지휘관의 말이 HK416의 마인드맵을 돋구고 있었다. HK416이 시선을 내리깔고 빠르게 말했다. 억눌리지 않은 말은 생짜로 거칠게 흘러나와 지휘관에게 닿았다. 젓가락을 놓고 식사를 마친 지휘관은 고개 숙인 채 말을 쏟아내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지랄맞게 마인드맵을 설정해 놓아서……그런 사진을 보면 신경써버려요. 하루 종일…하루 종일 그 사람이 누굴 지 생각하고, 그 사람이 지휘관과 어떤 관계일지 생각하고…지휘관에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생각하고,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일지 생각하고……”
지휘관이 시선을 살짝 낮추더니 다시 소주병을 들었다. 다섯 잔 째 소주였다.
“저는…저는 질투심이 강한 건지, 욕심이 많은 건지……누군가의 생각 속에서 항상 제가 최우선이길 바라요. 누군가가 관계 속에서 저에 대한 것을 생각했을 때, 저를 제일 우선적으로 생각해줬음 좋겠어요. 그러지 않고선 마음속이 뜨거워지고 견디지 못하게 되어 버려요. 특히 내가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면 더욱……”
HK416이 말끝을 흐렸다. HK416은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튀어나왔다는 듯 말했고, 그렇게 시선을 돌렸으며 그렇게 어깨를 움츠렸다. 자신 없게 내비친 문장은 그래서 더욱 돋보였다. 지휘관에 대한 분노와 여자에 대한 분노와 지휘관에 대한 애정과 여자에 대한 부러움이 한데 섞여 날뛰었다. 그녀는 술을 먹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고, 지휘관은 다섯 잔 째 소주를 털어 넣었다. 그는 쓴내를 견디면서 낮게 말했다.
“그리폰에 들어오기로 결정된 날, 처음으로 인형에 대해서 들여다보았다. 그 전까지는 인형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 인형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감정이 깃들어 있다 광고하더군. 인형과 사람은 절대 같을 수 없고 그 감정의 형태도 똑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광고를 보고 사기극이라고 생각했었지. 인형의 감정은 계산결과와 프로그래밍 된 알고리즘일 뿐이기 때문에…….”
“맞아요. 맞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 마인드맵에 기록되어 있는……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생각들과 느낌들은 프로그램이나 마인드맵 같은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저도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프로그래밍에 의해 발설하지 못하도록 막혀 있어서 설명할 수 없다던가, 그런 게 아니에요. 제 감정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정말로 모르겠어요, 지휘관…….”
HK416의 말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지휘관이 HK416을 바라보고 있었다. HK416이 고개를 들어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교차하고 있었고 음식은 식어가고 있었다. 돼지비린내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지휘관이 방금 한 말을 듣고 작은 소원이 생겼어요. 지휘관이 저를……아니, 우리를 동료로 바라보는 건 바라지 않아요. 하다못해 부하 정도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인간이 아닌 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그래도 감각이 있고 생각을 해요. 개나 짐승에게 부하라는 말을 쓰지는 않잖아요…….”
지휘관은 시간을 두고 나서 대답했다.
“……내가 방금 했던 말은 어디까지나 예전의 생각이다. 지금은 너희를 만나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 특히 너에게서……너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고, 그래서 나를 보는 것 같았고, 또 반대로 예전의 아내를 보는 것 같았다.”
HK416의 입이 벌어지고 미간이 좁혀지고 있었다. 지휘관이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너를 볼 때마다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네가 무슨 경위로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런 사실들에 대해 집착하는 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나도 나름대로 네 덕에 많은 생각을 했다. 나도 모르게 널 부관으로 임명하고, 아내와 너를 함께 떠올리고……. 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는 아내와는 다른 사람이고 나는 너를 아내의 대체품으로 보아선 안됐으니까. 아내와 너를 철저히 구분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의 이야기를 네게 하지 않았었다. 좀 더 완전한 답이 되었을지 모르겠군.”
지휘관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곱씹듯 말했다. HK416의 표정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완전히 일그러졌다가도 지휘관이 아내와 그녀를 구분하려 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금세 표정이 풀렸다. 마인드맵이 수많은 정보들을 해독하고 분석하느라 분주했다. 감정이 주체되지 않았다. 지휘관이 조용히 눈감았다. HK416은 지휘관이 그 어둠 너머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판단하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의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침묵과 같은 소리가 났다.
***
UMP9가 그리폰의 정문에 도착했을 때 노을은 거의 다 지고 없었다. 하늘을 따라 주황빛이었던 흔적들이 조금 남아 있었다. 따듯한 색은 차가운 검은색에 섞여 사그라들었고, 정문의 경비병은 그녀의 신원을 조회하고 나서 영내로 들여보냈다. 저녁 바람은 드러난 UMP9의 맨살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UMP9가 어깨를 움츠려 반팔 티셔츠 밑으로 드러난 팔을 쓰다듬었다.
그리폰의 복도는 소란했다. UMP9는 조용한 숙소로 곧바로 들어갔다. 숙소에서 UMP45와 G11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를 반기는 G11의 인사에 UMP9는 멋쩍게 웃었다. UMP45가 카드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일찍 왔네? 지휘관은 만났어?”
“으응……아니, 지휘관은 못 만났어.”
“왜?”
UMP9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목소리가 옅게 떨리고 있었다.
“글쎄……바쁜가 봐. 괜찮아.”
G11이 풀하우스를 외쳤다. UMP45가 카드를 내려놓으며 UMP9를 보았다. UMP9가 눈두덩이에 팔을 올린 채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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