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가는게 많아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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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RPG 시장에서 어떤 게임이 시장에 새로 등장하던 이제 WOW와 비교되는 것은 숙명이 되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WOW를 플레이해 본 유저는 전체 MMORPG 시장의 대다수가 되어 있고, 그들의 눈높이가 거기에 맞추어져 있어서 게임의 요소 하나하나에서 비교를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이 굴레에서 코난의 시대도 빗겨가지 못하고 좌절했고 워해머 온라인도 같은 과정을 밟고 있으며, 아이온도 이 비교 속에서 상처를 입고 있다.
아이온은 그래도 이 비교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편인지도 모른다. WOW에 완전히 잠식당한 전세계 MMORPG 시장에서 유일하게 국산 MMORPG들이 여전히 자생하고 있는 환경이기도 하고 NC라는 리니지와 리니지2를 출시한 기업의 인지도도 있을 뿐 아니라 '한국형 MMORPG'라는 독특한 게임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황한 서론은 사실 아이온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다. 리니지 스타일의 캐주얼 MMORPG 혹은 한국형 MMORPG - 북미의 MMORPG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몹의 난이도가 낮아 같은 레벨의 몹을 무난히, 무한히 사냥할 수 있는 방식 - 의 팬들이 완전히 만족할까를 고민해보면 답은 분명하다. 어중간한 리니지 스타일과 어중간한 WOW 스타일의 게임으로 버무려져, 어느 한 쪽의 취향에 꼭 맞게 만들어져있지도 않고 양쪽을 모두 건드리고 있지만 결국 양쪽 어느 쪽도 제대로 만족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이온을 플레이 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한 클래스가 목표로 하는 파티 안에서의 독보적인 색깔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다방면에 유리한 - 방어력과 공격력이 뛰어난 - 클래스를 선호하게 되고,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하나의 클래스를 선택한다. WOW의 도적이 PVP 최강이라 모두가 선호하는 천민이 되었지만, 아이온의 검성은 클래스 자체가 완전무결하여 천민이 되었다.
사실은 각 클래스들의 상성 관계가 명확하게 잡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적(살성)이 마법사(마도성)의 기술 시전을 계속 방해하면서 잡아낼 수 있는 천적(counter class)도 아니고(그렇게 보기에는 상대의 마법 시전을 방해하는 기술이 전혀 없다), 레인지 클래스(궁성)가 밀리 클래스들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교묘한 컨트롤로 잡아낼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전체적으로 파티 플레이라는 컨셉과 클래스의 차별화라는 부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전사(수호성)처럼 방어력도 좋고 도적(살성)처럼 공격력도 좋은 검성으로 몰리거나, 다양한 CC 기술로 상대를 근접하지 못하게 묶고 강력한 공격력을 쏟아내는 마법사(마도성)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이 두 클래스의 전체 비율은 8개의 클래스가 있는 게임에서 각각 20%씩 되어 40%에 육박한다. 마치 WOW의 도적이 모든 클래스와의 필드 PVP에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전체 플레이어의 20%를 훌쩍 넘기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런 '게임 철학의 부재와 컨셉의 부조화'는 게임 전반에 걸쳐 있다. 각 클래스의 플레이는 플레이어의 선택 - 전략적 선택 - 이 개입할 곳이 적게 되어 있고 곧 이 말이 곧 캐주얼하다 쉽다는 뜻으로 연결되지만, 이 클래스들이 모여서 파티 플레이를 하기 시작하면 플레이의 난이도는 급격하게 증가한다. 전사(수호성)는 몹의 어그로를 끌기 쉽지 않고 힐러(치유성)와 마법사(마도성)는 어그로를 떼어내기 힘들다. 게다가 여러 마리의 몹과 전투를 해야할 경우 이 몹들을 잠재우고 기절시키고 혼란시켜 전투 상태 밖으로 밀어내고 한두 마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조절(crowd control)이 하나의 클래스(마도성)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난이도를 증가시킨다.
게다가 각 클래스들이 가지고 있는 기절, 혼란 등의 기술들은 확률로 발동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적절한 상황을 선택해서 기술을 발동한다고 해도 이 기술이 실제로 기절, 혼란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몹이 파티에 치명적인 기술을 시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더라도 적절하게 끊어서 파티 플레이의 난이도를 낮추는 것도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각 클래스들의 기술은 알 수 없는 기준에서 쿨타임이 설정되어 있고 적은 기술의 종류 수에 긴 쿨타임으로 기술을 다 쓰고 나면 (WOW처럼 기술이 들어가는 중간에 소위 평타가 꾸준히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시간이 존재하게 된다. 여기에 플레이어의 시야에 따라서 평타는 끊기기도 하며, 내가 상대의 뒤를 잡아 공격하는 도중에도 상대가 기술을 사용하는 순간 자동으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밀리 클래스들이 난이도 높은 컨트롤로 상대의 뒤로 돌아가 기술 시전을 방해하며 뒤에서 괴롭히는 컨트롤도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FPS 스타일의 WASD 컨트롤도 아니고 클릭 이동 방식의 컨트롤도 아닌 어중간한 방식도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이는 아이온이 가장 자랑하는 공중전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가특이나 좁은 시야 - 생각보다 컴퓨터 모니터가 캐릭터를 중심으로 보는 시야각은 매우 좁다 - 에 지상과 공중을 견제하며 PVP 지역에서 퀘스트를 하거나 몹을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혹여 비행 중이라면 다른 적대 플레이어가 접근하는지를 이리저리 찾기 위해 카메라를 돌려야 하고, 적대 플레이어에게 추격을 받는 상황에서 카메라를 이동하는 키(휠 버튼)에서 손을 떼는 순간 카메라는 자동으로 정면을 향하기 때문에 카메라를 돌려 상대 캐릭터를 타겟팅하고 반격하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공중전에서 밀리 클래스들은 손쓸 방법도 없이 원거리 클래스들에 농락당하기가 일쑤다. 마치 육안 관측으로 기관포를 쏘는 프로펠러 전투기가 레이더 조준으로 날아오는 16km 밖의 미사일에 농락당하듯. 플레이어가 아무리 이멜만 턴(Immelman turn)을 한다한들 공중에서는 대책이 없다 치고, 지상은 나은가 하면 또 그것도 별로 아니다. 개발팀에서는 공중전이 아이온 최고의 컨텐츠라고 자랑할 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최악의 컨텐츠 중의 하나이다.
이 글의 결론을 내자면, 아이온은 꽤 잘 만든 게임이다. 쉽게 MMORPG의 컨텐츠 완성도 기준으로 WOW를 100%로 놓고 봤을 때 아이온은 70%는 되는 게임이고, 오해할까봐 덧붙인다면 코난의 시대는 40%, 워해머 온라인은 50%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온이 잘 만들었다면서 왜 70점 뿐이냐면,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철학이냐고 묻는다면 간단하다. 이 게임을 개발하는 수뇌부에서 어떤 컨셉의 어떤 게임을 만들겠다는 결정을 해서, 이 컨셉을 모든 게임 디자인에 적용하고 하나의 색깔로 칠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뜻이다. 파티 플레이 게임도 아니고 솔로 플레이 게임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 둘을 적절히 맛있게 조합한 게임도 아니다. 양쪽 모두를 건드리고 있으되 그 맛이 제대로 버무려지지 않아 중간중간 소금 조각이 씹히기도 하고 양념이 쳐지지 않아 아무 맛도 없는 곳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치밀하지 못한 설계 안에서 아이온이 반드시 칭찬받을 곳은 월드 디자인에 있다. 넓고 풍부한 공간은 아니지만 화려하고 깔끔하게 구성되어 플레이어들에게 볼꺼리를 제공하고 있는 맵은 이미 WOW 이상의 수준이며, 이 월드에 채워져 있는 퀘스트는 WOW에서 그랬던 것처럼 깨끗하게 플레이어들을 동선에 따라 새로운 지역으로 안내해 준다. 마치 WOW처럼 퀘스트만 적절하게 따라가도 플레이어는 솔로 플레이와 파티 플레이를 적절히 경험하면서 성장할 수 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 물론, 게임 전반에서 플레이어들에게 언제 파티 플레이를 가르치고 언제 솔로 플레이로 돌아가야 하는지는 덜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작업자들은 훌륭한데 수뇌부가 갈팡질팡한 프로젝트의 결과. 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