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양작업 하는데 여행일지가 꼭 나와서
가방 자리가 없어서 버리기전에 정리해봄
#002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은 여행에 지친 내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하토라 마을에서 약품을 팔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슈하나. 그녀는 어린 내게 좋은 것을 준다며 자신이 새로 개발한 약을 내게 먹이곤 했다. 그때 그녀가 줬던 많은 약 덕분인지 오랜 객지생활 속에서도 나는 늘 건강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녀는 지금 또 누구에게 자신이 새로 개발한 약을 먹이고 있을까...?
#006
쇠무루 마을에서 엔나라는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 함께 밥을 먹었다.
엔나는 쇠모루 마을 밖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조금만 더 신경 쓴다면 그녀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루달의 여행일지#008
그림자 매 소굴에서 탈출했다.
그림자 매의 소굴에서 나를 지키던 아즈나라는 여인의 동정심을 자극해서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임자 있는 여자를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011
호랑이 눈에서 어린 나라야나를 만났다.
어른이 된 나라야나들은 모두 흉측하게 생겼는데 어린 나라야나는 너무 사랑스럽다.
나라야나의 성장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변괴가 있었길래 어른이 된 나라야나는 죄다 이 모양일까?
#014
여비가 떨어져서 사금 채취장에서 잠시 일을 했다.
물속에 금덩어리가 있다니 몹시 신기한 일이다.
마하데비 강 상류에 있는 나라야나의 도시인 할 하파가 황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있던데... 혹시 그 소문이 사실인 걸까?
#018
마하데비 항구에서 하세미안을 만났다.
관능적인 몸매 때문에 그녀와 함께한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와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있고 싶었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대장장이 아바바가 망치를 휘두르며 나타난 탓에 나는 그녀의 곁을 떠나야만 했다. 그녀도 내 운명의 상대는 아니었나 보다.
운명의 그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023
오스테라에서 미얀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미녀가 아니어서 접근할 일이 별로 없는 여자였는데, 우연히 그녀의 오빠가 마하데비 검문소에 있는 검문소 감독관 아비마르라는 말을 듣게 됐다.
복수하는 셈 치고 미얀을 꼬셔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024
지금까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꼬시지 못한 여자가 없었다.
그래서 아비마르의 동생 미얀도 당연히 내게 넘어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특출난 미녀도 아니니까.
그런데 미얀은 내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이미 정혼자가 있다며, 내 달콤한 속삭임을 무시했다.
젠장! 패배감이 느껴진다.
#028
미얀의 정혼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그녀가 내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미얀의 정혼자인 그리맥스는 칼리아 가문의 호위대에서 일하는 무사였다.
나는 미얀의 정혼자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그가 칼리아 가문의 중요 인사를 호위할 때 황금 바다 해적단에 그 정보를 넘겨줬다.
#029
황금 바다 해적단에서 칼리아 가문의 차남과 그를 호위 하던 미얀의 정혼자를 납치해 갔다.
해적단은 둘의 목숨 값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칼리아 가문에게 요구했다.
칼리아 가문에서 차남의 몸값만을 해적단에 지불하려 하자, 미얀은 칼리아 가문의 장남을 찾아갔다.
#033
미얀의 정혼자가 술에 취해 미얀을 폭행했다. 그 모습에 분노한 나머지 나는 미얀의 정혼자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가슴에서 치솟는 분노가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 알 수 없었다. 쓰러진 남자의 얼굴에 정신없이 주먹을 휘두를 때, 미얀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슬픈 눈동자가 내 심장을 가르는 듯했다.
그루달의 여행일지#035
오스테라를 떠나 마하데비로 떠났다.
여왕의 약초농장에서 자라는 약초가 아픈 기억을 잊게 해준다는 소문을 들었다.
#041
발목이 부러진 반달 여우를 치료해준 후, 재회의 사당을 찾아갔다.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미얀의 명복을 빌고, 그녀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내 삶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그녀를 잊지 못한 내 손에는 아직도 항상 술병이 들려 있다.
#042
재회의 사당에서 고릴라에게 습격당했다.
왜 이런 사당에 고릴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흉포한 놈들의 공격을 피하려다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나 역시도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곤 정신을 잃었다.
그루달의 여행일지#043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방안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내가 잠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려 하는 순간, 새하얀 손을 지닌 여자가 내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직 움직이면 안 돼요. 조금 더 주무세요."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루달의 여행일지#050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냥꾼 무리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구했던 만년삼으로 담근 술을 꺼냈다.
"술은 함께 마셔야 맛있는 법이지요. 달빛이 참 아름다운데 함께 술잔을 기울이도록 하지요."
사냥꾼 무리의 눈빛에서 경계심이 차츰 사라져 갔다.
그루달의 여행일지#052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반요의 가녀린 몸을 부둥켜안았다. 그녀의 부드러운 털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신의 권능을 얻으면 너를 하리하란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내가 널 하리하란으로 만들어줄게. 조금만 기다려줘."
부평초처럼 떠돌기만 하던 내 여행에 목표가 생겼다.
#054
숲의 수호자 부락에서 만난 그린드 헤임에게 신의 권능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린드 헤임은 이 거대한 숲 자체가 신의 권능을 품고 있다고 대답했다.
신의 권능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 숲의 나무가 산봉우리처럼 커다랗다는 것이었다.
그 권능의 핵심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56
고고학자 제이슨은 침묵의 호수 바닥에 신성한 기운이
잠들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호수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신성한 기운을 침묵의 호수가 가로막고 있으며, 극히 적은 양의 기운들이 땅속에 스며들어 나무를 거대하게 자라게 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호수 바닥에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루달의 여행일지#059
침묵의 호수 바닥을 헤엄치면서 신성이 잠든 장소를 찾아다녔다.
숨이 막혀서 오랜 시간 동안 잠수할 수 없었지만, 넓은 호수를 조금씩 훑어가며 구석구석 찾아 나섰다.
일주일가량 호수 바닥을 헤집고 다닌 끝에 나는 마침내 침묵의 호수 바닥에서 기묘한 장소를 찾아냈다.
#60
침묵의 호수 깊은 바닥에서 굵은 빛줄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빛줄기를 따라 호수 바닥까지 잠수해 들어갔다. 빛줄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호수 바닥에는 인위적으로 누군가가 만든 듯한 거대한 석판이 놓여 있었다.
그 석판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루달의 여행일지#062
침묵의 호수 바닥에서 정신을 잃은 뒤부터 몸에 힘이 용솟음치는 느낌이다.
그린드 헤임이 말한 신성한 기운이 내 몸 안에 흘러들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신성한 기운은 내가 찾는 신의 권능은 아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064
구름 협곡에서 아웅손이라는 늙은 페레를 만났다. 대륙 곳곳을 여행했지만, 늙은 페레는 처음 만나보는 것이었다.
탄탄한 육체를 자랑하던 젊은 페레와 달리 늙은 페레는 등이 굽은 모습에 얼굴이 몹시 수척해 보였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늙으면 저렇게 변해버리는 것일까?
#067
암흑갈기 오크 부락을 조심스럽게 탐색하다가 그만 붙잡히고 말았다.
암흑갈기 오크들이 후각이 민감한 암흑갈기 늑대를 기로고 있을 줄이야...
늙은 페레들이 붙잡힌 곳에 함께 붙잡혀 우리에 갇히고 말았다.
반요를 완전한 하리하란으로 만들어주기로 약속했는데, 약속도 못 지키고 여기서 오크의 밥이 되고 마는 걸까…
#74
단검이 또 부러졌다. 높은 빙벽의 절반밖에 오르지 못했는데, 가지고 있던 단검의 절반이 부러지고 말았다.
단검을 쥐고 있던 손에서 흘러내린 피가 차가운 추위 때문에 얼어붙어 내 손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손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틀 동안 단검으로 구멍을 파가며 빙벽을 오른 탓에 피로가 몰려온다.
이대로 포기한 채 그만 쉬고 싶다.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다.
#077
로카의 정상은 구름 아래의 땅보다도 별이 반짝이는 검은 우주와 더 가깝게 위치한 것처럼 느껴진다.
멀리 노래의 땅의 비파 항구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범선의 모습이 마치 작은 개미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하찮게 느껴진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자 마치 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구름 아래의 모든 것들이 하찮게 느껴진다.
그루달의 여행일지#084
석 달 동안 여후작 메테 마릿의 전속 하인 노릇을 한 끝에 마침내 내가 원하던 정보를 얻게 됐다.
신들의 고향이라는 원대륙에서 신의 권능을 찾기 위해 북방 이슈바라나 서방 이슈바라 뿐만 아니라, 누이아 대륙의 두 왕관과 초승달왕좌에서도 원정대를 꾸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 나는 원대륙에 대한 소문이 진실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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