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으로 또한번써봅니다 즐겁게?봐주세요 ㅎ
오늘날 암스테르담 항에는 오래되고 낡은 등대가 하나 있답니다 네덜란드 어부들의 어머니와 아내들은 이 등대 아래에서 오랜 세월동안 바다로 향하는 아들과 남편들을 배웅했으며 그곳에서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그들이 돌아 오기만을 묵묵히 기다렷습니다.
하지만 바다로 떠난 사람들중에는 그 낡은 등대를 다시 볼 수 없엇던 사람도 많앗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인들은 이등대를
눈물의 등대라고 부른다는군요 지금도 이 등대는 상업 제국 네덜란드를 건설하기 위한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가리는 기념비로 보존되어잇다고하는군요,
바다는 네덜란드를 지탱 시켜주는 힘의 원천입니다 과거에는물론 현재도 그렇죠
북해를비롯한 네덜란드 인근바다는 홀란트주와 젤란트주 어민들의 생계터전이엿으며
연해에서는 다양한 어종의 어류를 잡을수 잇엇습니다 아이슬란드 등의 인근 해역에서는 대구도 잡혓습니다.
(게임내에서도 대구어장은 북해한가운대 혹은 스코틀랜드지역윗부분의 작은4개의섬지역입니다)
1596년 네덜란드 항해가 빌렘바렌츠가 북극해의 스발바르제도를 발견하엿다고 합니다 당시 포를 이용한 고래잡이 기술을 발명한 네덜란드인들은 그곳을 장악하엿습니다 이로써 네덜란드 찝어말하면 암스테르담은 고래잡이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엇고 대량의 고래기름과 고래수염을 얻을수있엇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어업하면 뭐니뭐니해도 청어잡이를 제일로 꼽을 수잇죠
청어잡이는 잉글랜드 연안에서 매년 2차례씩이루어 졋습니다 어기가 되면 북해에서는 1500여척의 배 위에서 1만2000여명의 어부들이 한 번에 30만통을 가득 채울만한 어마어마한 양의 청어를 잡아올리는 장관을 펄쳣습니다
청어는 네덜란드의 금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암스테르담이 경제걱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 최초의 원동력도 바로 청어에서 비롯되엇습니다. 이후 청어 무역은 발트해 연안 국가와 무역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이때문에 암스테르담을 청어위에 새워진 도시라고 불럿습니다.
15세기에 네덜란드어업은 빠르게 발전하엿습니다 청어잡이가유행하자 선박의갯수도 급증하고 어민의수도 30만명에 달하엿습니다
당시 영국-벨기에(이당시에는 같은나라엿으나 갈라졋으니)-스칸디나비아도 청어잡이의 참여는 합니다만
그들은 청어를 좋아하지 않앗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사람들은 청어를 무척이나 좋아햇고 청어 수출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졋습니다
결국에는 러시아-독일에 청어를 수출하면서 최대 청어 수출국으로 부상햇습니다.
신용을 가장 중요하게여기는 네덜란드느 뜻밖의 행운을얻게됩니다 당시 해류의변화로 발트해에 있던 청어때가 밀려 네덜란드북해까지 오게된것입니다 더많은 청어를 얻게된 네덜란드 인들은 청어 절임기술을발명햇습니다
생선을 소금에 절여서 저장하는 이관리법을 염장법이라하는대 바다에서 잡은 청어는 잡는 즉시 소금에 한번절이고 육지로 돌와와서 한번더 절이는겁니다 이기술을 개발한 어부 빌렘 벤켈소어는 높이평가되엇고 현재 네덜란드 교과서에도 이사람의 이름이 들어가잇다고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