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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일지] #2. 먼 바다의 여정 - 1

아이콘 앙리에트
댓글: 3 개
조회: 472
2006-12-04 14:00:49


#1. 교역상의 고충


그리 멀지 않은 도시라 할지라도, 국가가 달라져 버리면 그 느낌마저도 자못 다르다.
포르투갈이 늦은 아침의 나른함, 밝음과 같다면 에스파냐는 태양이 가장 강할 때의
타오르는 오후와도 같았다. 에스파냐인들은 그만큼 정열적이었다.


그들이 강력한 군사적 힘으로 대양의 패권을 노리는 것이
헛된 열망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강한 기지와 실제로 패권을 노릴만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불패를 자랑하는 무적함대. 그리고 용병들.



"수고했다. 다들 주점에라도 가 있어."



에스파냐의 수도 세비야의 항구에 정박한 퍼플 세이렌에서 내리며 앙리에트가
뒷정리를 마무리 짓고있던 선원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기세좋게 대답하고선
그녀를 지나쳐 항구 안쪽의 주점으로 기쁜듯 발걸음을 서둘렀다.
배를 관리해야하기에 남아있어야 할 몇 선원들은 아쉬운 눈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고작 나흘 째에 기항인데 너무 관대하신 것 아닙니까?"



일항사인 길레스가 내려와 앙리에트의 옆에 서서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어차피 앞으로 갈 길은 멀고, 중간에 기항지는 많다. 처음부터 너무 풀어주는게 아닌가 하는
사려의 말이었다. 앙리에트는 엷게 미소지으며 길레스의 등을 툭툭 두어번 두들겼다.


"긴 항해가 될거같으니까. 미리 먹고 마셔두라는걸세. 자네도 이리 있지 말고 한잔 하러 가."

"괜찮습니다. 딱히 술을 즐기는건 아니니까요."

"뱃사람 치고는 특이한 성격이로군?"

"괴롭고 답답할때가 아니면 마시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길레스를 앙리에트가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흠칫 놀란 그가 당황하며 한걸음 물러섰다.


"뭐, 뭐하시는 겁니까."

"그럼 지금은 괴롭고 답답하지 않다는 의미라는 거군?"

"......"

"즐거워 한다니, 나도 참 기쁘다네."

"아니, 그것이-"


길레스가 변명꺼리를 찾아 허둥거리고 있는 것을 작게 웃으며
지켜본 앙리에트는 스스럼없이 걸음을 돌려 항구 관리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타이밍을 놓쳐버린 길레스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표정으로 그녀와 두어걸음
차이를 두고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뭔가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린 것 같다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것을 어쩌하리.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항구 관리에게 정박 신청서를 제출하고 돌아서려는데
명부를 뒤적이던 항구관리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마르세이유로 간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네만. 뭔가 잘못된 것이라도?"

"아니오. 다른게 아니라 이 곳에 머무시고 계신 한 상인께서 지중해 안쪽으로 향하는 선장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보수는 나쁘지 않게 줄테니 자신의 부탁을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혹시 선장님께서 관심이 있으시다면 찾아가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몇주째 찾고 계신데 보기가 안쓰러워서......"

"그래? 그 상인은 어디에 있지?"

"늘 뱃사람의 주점에 가 계시는걸로 압니다."

"한번 만나보기는 하지."


항구관리가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항구에서 멀어지자 길레스가 입을 열었다.


"뭔가 꺼림칙한 부탁일 것 같습니다만."

"자네가 꺼림칙하지 않은게 어디있나?"

"농담이 아닙니다. 서 지중해 안쪽으로 향하며 기항하는 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몇 주째나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상당히 골칫거리인게 분명합니다.
여차하시면 발을 빼는게 좋을 것 같군요."

"우선 이야기나 들어보자구."


뱃사람의 주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앙리에트를 앞서 도착한 선원들이
시끌하게 술을 마셔대고 있었다. 주점 주인에게 그들의 술값을 계산한 후 상인에 대해 묻자,
가장 안쪽 구석 테이블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젊은이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보기에도 근심과 걱정을 등 뒤로 쌓아놓은듯한 모습이었다. 앙리에트가 다가가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길레스는 근처의 테이블 의자에 앉아 거리를 두었다.
하여간 걱정은 어지간하다. 저정도면 이미 일항사가 아니라 부관이래도 믿을 것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인에게로 눈을 돌렸다.


"지중해 안쪽으로 가는 선장을 구한다 들었소. 마르세이유 까지 간다만."


어그러져있던 젊은 상인의 얼굴에 대번 화색이 피어올랐다.


"마르세이유로 가신다고요? 그럼 제 부탁좀 들어주십쇼."

"그걸 들으러 온거니 진정하고 이야기나 해 보시게."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워낙 다들 거절하는 통이라......"

"어떤 일이기에?"


앙리에트가 그가 마시고 있던 싸구려 와인의 병을 멀찌감치 떨궈놓고선 물었다.
그는 민망하게 웃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바르셀로나의 식품교역상입니다. 아, 소개도 안했군요. 모건이라고 합니다."

"앙리에트."

"예. 반갑습니다. 실은 바르셀로나의 한 귀족에게서...... 이름은 밝힐 수 없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쨌든 귀족에게서 세비야의 부호에게 보내는 편지를 맡아서
여기까지 왔었습니다. 물론 제가 세비야까지 온 것은 교역을 위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편지를 받더니 부호는 제게 40상자나 되는 무기를 내놓고 배달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조금 손해를 감수하더래도 보수를 넉넉하게 줄테니 거기까진 괜찮았다 이겁니다.
식량 실을 공간이 여의치 않아지긴 해도 조금씩 먹는걸 줄이면 어떻게든 가능할테니까요. 그런데......"


모건은 목이 타는지 잔에 남아있던 와인을 들이켰다.
그는 긴장되고 떨리는 어조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 일을 맡고 돌아오는 길에 습격을 당했습니다.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분명히 제가 싣고 가야할 무기를 노린 자들이었습니다."

"한몫 챙기려는 건달들 아닌가?"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똑똑히 보았다구요,
세비야 외곽에 정박해있는 배는 분명히, 발레아레스 해적의 깃발이었습니다."

"발레아레스 해적이라고?"

"어디서 샌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값나가는 무기들을 싣고
바르셀로나로 돌아갈 것을 안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적은 무역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교역상인지라, 그들을 상대로 해상에서 교역품들을 지킬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 때부터 줄곧 저 대신 바르셀로나로 이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을 찾았지만......
다들 발레아레스 해적이라면 손사레부터 치더군요. 40상자의 무역품도
보통 창고를 잡아먹는게 아닌지라 다들 자신의 교역에 손해를 입게 될테니까요."


파리해졌던 안색이 이제는 노래진다. 안된 기분이 들어 치워두었던 와인을
그의 잔에 따라주었다. 그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두려움을 잊으려듯이 그저 죽 들이켰다.


모건이 한숨을 내쉬며 좌절해 있는 동안 앙리에트는 옆자리에서 줄곧 이야기를 들었을
길레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역시나 골치아픈 일인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발레아레스 해적은 세비야의 안쪽 내해의 발레아레스 제도에서 주로 출몰하는
대표적인 해적이었다. 앙리에트도 직접 대면한 적은 없었지만 그들에게 나포되어
교역품을 잃어서 한탄하는 상인들을 여급시절 주점에서 종종 본적이 있었다.


발레아레스 제도에 포함되는 도시와 기항지가 적은 숫자가 아니기에,
아마 상륙해 있던 차에 모건의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앙리에트 선장님.
보수는 제 전재산을 털어서라도 아쉽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개를 숙이는 모건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길레스는 언짢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이대로 발을 빼는것도 석연찮았다.


"그 무기들은 어디있지?"

"들어주시는 겁니까!"

"선장님!"


앙리에트의 말에 두 남자가 튀어오르듯 의자에서 일어서며 각기 다른 말을 동시에 외쳤다.
그녀는 두 손을 들어, 두 남자에게 의자에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두 사람이 부끄러워하며,
불만스러워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을 만족스럽게 지켜본 앙리에트는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했다.


"진정하게, 두사람 다. 우선 모건씨."

"아. 예."

"내 배는 상업용 수송선이 아닐세. 크기는 작지만 어엿한 군선이기에
창고의 적재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냐. 그리고 앞으로의 기항지에서 팔아야할
교역품들 때문에 당신이 부탁할만한 교역품의 공간을 확보하려면
선원들의 식량 배급을 줄이는 수 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예에......"

"그래서 한가지 제안을 하지. 내 배의 교역품을 당신의 배에 옮겨 싣겠어.
나는 상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 교역품들이 그저 제 값보다 비싸게 팔린다면
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 하지만 상인인 당신이라면 좀 더 적절한 가격에
매각할 수 있겠지. 대신, 나는 당신이 부탁한 40상자의 무기를 싣고 바르셀로나로 향할걸세."


모건은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그의 표정은 이제 화색이 만발해 있었다. 파노라마로 변하는 모건의
표정이 우스워 폭소가 터져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기서 딜을 하자고. 당신이 내 교역품을 사주게.
단 원가보다 더 비싸게 쳐준다면 고맙겠어. 수고비를 거기에 더한다면 이야기는 쉽겠지.
당신의 상인으로써의 자질을 믿도록 하지. 대신 나는 무기들을 바르셀로나에 전달하고 사례금을 받겠어."

"물론입니다! 당장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길. 나는 군인이고, 내가 항해하는 길에 민간인을 괴롭히는 이들을
처벌해야하는 의무가 있어. 이런 곤경을 못본 척 지나치는건 군인으로써의
마땅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나의 이 결정이 태풍때 돛을 내리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는 어리석은 일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가?"


길레스는 한참을 불만스러운 얼굴로 앙리에트와,
뭐가 뭔지 모르는 모건을 번갈아 보더니 나즉히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딜 가나?"


길레스가 내려다본 앙리에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분명 또 꿰뚫어 본 것이다. 어쩐지 울컥 하면서도 반쯤은 마음속으로 포기했다.
상대방이 고단수인지, 자신이 약해진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어 저도 모르게 투정 부리듯이 답했다.


"적재 보급을 다시 해야 한단 말입니다. 선장님은 결정만 하면 그만이지만
계획이 바뀔 때 마다 새로 관리를 해야하는 제 입장도 좀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길이라 부르지 마세요."


그러고선 휙 주점을 나가버렸다. 멀뚱하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 앙리에트가
기분좋게 소리내어 웃더니,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의 모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나의 일항사는 잔걱정이 많을 뿐이라네. 그러면 당신의 배로 안내해 주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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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편 끊어 올릴께요~ ^^; 댓글들 감사합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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