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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기사단 집중탐구! 1탄!

린드버그
댓글: 6 개
조회: 2426
2005-11-14 00:11:54

안녕하세요

아폴론섭 영국유저 린드버그입니다.

제가 예전에 튀니스 퀘뺑을 했을때 로도스 기사단이란 퀘스트가 떴었죠 어린시절 참 기사를 좋아하던 저에게 성전 기사단, 튜튼 기사단,  로도스 기사단 삼대의 종교 기사단은 선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아테네뺑이를 돌던준 기사단장 공관이 그곳에 있는걸 보고 이게 어떻게 된거지 하고 뒤져보기 시작하다가 이 글을 쓰게됬습니다;

로도스 기사단 혹은 몰타 기사단 이라 불리며, 정식 명칙은 예루살렘의 성 요한 병원 기사단(Ordo Equitum Sancti Johannis) 일명 병원기사단 혹은 구호기사단(Knight Hospitalers)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아말피의 상인들이 예루살렘이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갔을때 순례자들을 위해서 의료봉사를 하고 여관을 짓고 하던 것이었죠 어느샌가 이 수도회는 아말피의 이탈리아인들로 부터 프로방스출신들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프로방스 출신의 수도사였던 제라르는 예루살렘 함락 전후를 하여 교묘하게 여관겸병원인 시설을 잘 운영 하였고 1099년 결국 예루살렘이 함락 되면서 그 노력이 빛을 보게 됩니다.

1103년 교황 파스칼리스 2세가 이 조직을 종교와 군사 및 병자 치료에 봉사하는 종교 단체로 공식 인가하여 "성 요한 병원 기사단"정식 몇칭을 얻게 됩니다.

성요한기사단은 오랫동안 이어진 십자군 전쟁시대로 인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순례를 오는 순례자와 이교도를 말살하고 성지를 지키며 순례자의 안전을 보장해야하는 십자군들의 건강 까지도 지켜야 했지요

기사단은 의료활동으로써 이름을 날렸지만 거세게 불던 종교기사단 붐과 십자군 전쟁의 연속으로 대 이교도에 대한 무력항쟁이 꼭 필요했던 시기 점점 무력단체로 변질되어 갑니다.

성지를 이교도들에게서 빼앗아 내고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진 후에는 팔레스티나 지역의 기독교도의 왕국의 최대의 황금기가 오고 여러 종교기사단들도 부흥하게 됩니다.

그때 부각된것이 위에서 언급한 삼대종교 기사단인 튜튼,템플,성요한입니다.  이때 성요한 기사단은 팔레스티나 최대의 성채이자 마지막 보루라 불리우는 아크레 성채를 짓게됩니다.

1119년 순 군사적 종교 단체인 성전 기사단이 창설되고 1190년 튜튼 기사단이 창설된데 비해 엄청나게 빠른 것이죠 성 요한 기사단은요 같이 부흥했어도 다른 이유가 있지요.

기사단이 군기를 하사 받은 것은 1130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에게서 였죠 이것은 명백히 기사단이 무력단체가 되어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군기를 받았다는건 그만큼 군기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원래 병자구호를 중점으로 삼았던 아말피 상인 주축의 조직은 사라지고 푸른피의 기사들로 채워진 전투집단이 되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본을 소홀히 한것도 아니죠 팔레스티나 지역 전체에서 볼때 기사단의 병원은 최고급 시설이었고 어차피 베네치아 정도 가면 볼수 있는 유럽인 의사가 아니라면 대부분 유럽전체에 퍼져있는 것은 유대인 의사였으니 의술의 차이는 거의 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 당시 베네치아 본국병원과 견줄 정도는 기사단 병원 밖에 없었다고 할 정도 였으니 본업을 소홀히 한것도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탈환으로 이루었던 부흥도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1187년 예루살렘이 다시 성지 예루살렘이 정복 당하고 차레대로 밀려나는 기독교 국가들..

결구 1291년 4원 팔레스타인 최후의 보루 "성 요한 의 아크레"가 함락 당하고 이때 튜튼 기사단은 거의 완전 독일로 떠나가게 되고 템플기사단은 남프랑스쪽으로 이동하게됩니다.

남겨진 성요한 기사단은 일단 키프로스로 이동하게됩니다.

예전에 예루살렘 왕에 올랐지만 단숨에 패퇴 자신의 몸값으로 퇴위를 한 기 드 뤼지냥이란 프랑스인 기사가 있었죠, 그는 사자왕이라고 불리던 리처드에게 키프로스 섬을 샀고 키프로스의 왕이 됩니다. 그의 일족들은 그가 죽은 뒤에도 남아서 키프로스를 통치했지요

강력한 무력단체인 기사단이 자신의 영토에 머무는걸 좋아할리 없던 키프로스왕의 구박에 기사단은 꾿꾿이 참으며 살아갑니다.

돌아갔던 기사단중 템플 기사단은 프랑스왕과 교황의 협공으로 대부분이 죽고 거점이 파괴되고 보물과 금은보화를 모두 뺏기고 1314년 기사단장이 죽음으로써 패망하게 됩니다.

튜튼 기사단은 착실하게 프로이센의 식미화를 일궈내고 있었지요

이때 대 이슬람교도에 대한 성전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던 성 요한 기사단은 싸울수 없게되자 명분과 자본의 근원을 잃어버리게 됬고 키프로스왕에게 꼬투리를 더 넘겨주게 됩니다.

결국 키프로스 배의 몸을 실고 해적업을 시작하게되며 병원도 다시 시작합니다. 해적질은 오스만배를 털어서 명분을 채우고 교역품과 금을 강탈해 실리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방법이었고 그들은 그렇게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키프로스에 머무른지 15년 기사단에게 제노바 해적 비뇰리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동업을 하자는 것이었죠 그는 당시 쇠퇴기를 걷던 비잔틴 제국 황제에게 코스섬과 레로스 섬을 빌리는데 성공했는데 그곳을 거점으로 해적질을 하면서 섬을 점령하자는 이야기였죠

그의 제안은 매년 수입의 1/3을 달라는 것이었죠 기사단은 단장에 승낙했고 결국 세력이 커져 1306년 가을 합법적인 비잔틴 제국의 영토인 로도스섬을 최초로 침략 하지만 거센 저항에 실패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기사들이 아니었고 "본거지를 갖고싶다!"라는 일념에 불타는 기사들의 끈질긴 원정에 1308년 완전 정복을 이룹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은 항의할 힘 조차도 없을 정도로 쇠퇴해 있었고 항의란 그저 말 뿐이었을 뿐입니다.

서유럽 쪽은 당연히 대 이교도 항쟁거점이 생겼다며 좋아했고요 교황은 교서까지 내려 로도스섬이 기사단의 영토임을 인정해 줍니다. 비잔틴 황제가 얼마나 약한 존재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1310년 키프로스에서 로도스로 완전이주를 완료한 기사단은 완벽한 자택을 가지게 되었고 "로도스 기사단"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프랑스에서는 아비뇽 유수의 직면했던 교황 클레멘스 5세와 프랑스 왕의 합작으로 성전 기사단원들의 육체가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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