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아마리아도 같이 있겠다고 했으나 칼과 프레드릭의 필사적인 만류로 자리에 끼지 못하였다.
“겨우 떨어뜨려 놨군.”
“아마리아랑 같이 있으면 뭔가 불안해. 어쨌든, 넌 그 나폴리산 자기세트가 아니었으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야. 감사히 여기라고.”
“알았다. 오늘은 무슨 술인고?”
“이게 무언지 아느냐?”
프레드릭이 들고 있는 병엔 백색 와인이 담겨있었다. 칼은 색만 보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쉐리로군. 어디서 구한거야?”
“포르투갈의 친구에게서 좀 구했다고. 너 먹여 볼라고 아끼고 아껴둔거다. 하하하.”
“제길, 어지간히 센가 보군. 아마리아가 그러던데, 앤트워프 쪽에 해적있다며?”
쉐리가 담긴 병을 들고 술잔 세 개를 채운 프레드릭은 술병을 놓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턱을 괴며 말했다.
“음. 사실이야. 잉글랜드, 에스파냐 해군들이 습격 받았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나가보면 없어. 얼마나 빠른지 털어가고 사라진다니까. 벌써 수 십 차례야. 왜? 네가 걷어내려고?”
“나만큼 좋은 미끼도 없지. 뭐 좋아. 실전 경험 없는 부관에게 실전이라는 걸 가르쳐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뭐라고, 아가야?”
에스텔의 서릿발 같은 말이 새어나왔으나 칼은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그리고 술잔을 들며 말했다.
“사실이잖아. 그래서 해군에서 잘린 거 아니냐? 대충 정황을 봤을 땐 그런 것 같은데?”
에스텔은 할 말을 잃었다. 어이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칼은 쉐리를 한 모금 넘기고 얼굴을 찡그렸다.
“독하군.”
“꽤 독한 놈이라더군. 에스텔, 당신은 그 한잔으로 끝내는게 좋을거야. 이놈처럼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간 내일 예수님과 면담을 가질지도 모른다고.”
“전 어린애가 아니에요. 호호호.”
에스텔은 칼의 입장에선 전혀 어울리지 않는듯하게 웃었다. 칼은 그 모습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프레드릭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웬일인지 칼이 조용했기 때문이다. 어제만 봐도 서로 죽이니 살리니 했던 그가 아까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매우 조용했다.
“너 오늘 뭐 잘못 먹었어? 왜 그래?”
“아니, 별로.”
‘절대로 누나가 생각났다고 말 못해.’
애써 속으로 말을 삼키며 표정을 관리해온 그였다. 약한 모습은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오직 강해져야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살아온 그였다. 자신의 검에 달린 누나의 머리칼을 보며 그 의지를 더욱 굳혀갔다. 칼은 술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어쨌든. 앤트워프에서 정확한 얘기를 들으면 되겠지. 좀 귀찮아 지겠군. 클리퍼라 전투도 못하겠고.”
“하필이면 클리퍼냐?”
“뭐, 안 털리면 그만이야 안 털리면. 내가 다 가라앉히면 그만이지.”
“그래그래. 한잔 더 받고.”
칼은 프레드릭이 따르는 술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무심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이걸 마셔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하는 것이었다. 그의 심중을 눈치라도 챈 듯 에스텔이 그의 귀에 조용히 말했다.
“그냥 마셔도 돼. 누나가 있잖니.”
그 말에 칼은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끊지도 않고 그냥 단번에 잔을 비워버렸다. 그 모습에 에스텔은 물론 프레드릭도 깜짝 놀랐다. 에스텔이 그에게 물었다.
“너 왜 그래, 갑자기?”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그 독한 술을 원샷을 해버리는 건데?”
칼은 묵묵히 술잔을 내려놓고 프레드릭에게 말했다.
“더 따라. 네 말대로 뻗을 때까지 마실거다.”
“이, 이 녀석이. 그러다 죽으면 너희 어머니는 둘째 치고 라이자한테 내가 뭐라고 해야하는데?”
“시끄러. 잔말 말고 따라.”
그의 차가운 말에 프레드릭은 입을 다물고 술을 따랐다. 가득찬 술잔을 든 칼의 모습이 또 원샷할 기세로 보이자 에스텔은 얼른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그의 차가운 말투가 계속됐다.
“놔.”
“싫어. 그러다 진짜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거 독한 거라며!”
“보드카보다 약해. 걱정하지 마.”
“뭐, 뭐?”
칼은 그녀의 입술에 두 번째 손가락을 살며시 댔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거 마시고 안 죽어. 그리고, 걱정해줘서…고마워.”
칼이 말을 끝내자 에스텔의 얼굴을 붉게 변해있었다. 그 모습을 본 프레드릭은 자신의 턱수염을 매만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애정행각은 런던에 돌아가서 하는게 어때?”
그 말에 칼은 신경질적으로 응수했다.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다만?”
그리고 몇 시간 후. 칼은 멀쩡히 술잔을 바라보고 있었고 프레드릭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어라? 너 멀쩡하냐? 이상하다? 벌써 이게 몇 병째냐?”
“네녀석은 발음이 꼬이는게 벌써 취했군.”
“어 그런가? 이상하게 피곤하군. 난 들어가서 자련다. 잘 쉬라고.”
프레드릭이 먼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걸음은 정말 웃겼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비틀거렸다. 칼은 그를 보며 비웃었다.
“흥. 나보다 먼저 나가떨어질 놈이 무슨.”
“칼, 너도 자야하는거 아냐?”
“글쎄.”
칼은 술잔에 남은 술을 바라보았다. 아까의 쉐리가 아닌 다른 술이었다. 바로 네덜란드의 진이었다. 칼은 술잔을 그녀 쪽으로 밀어준 후에 그녀에게 말했다.
“자, 남은건 네가 해결해. 이건 별로 독하지 않으니까.”
“뭐?”
에스텔은 술잔에 든 진의 양을 가늠해보았다. 절반쯤 남은 것 같았다. 에스텔은 주저없이 그 술잔을 들고 한 번에 들이켰다.
“자, 됐지? 가서 자.”
“음.”
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곧 휘청거리며 제자리에 앉고 말았다. 에스텔은 그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너도 취했구나.”
“…….”
“자 누나가 데려다 줄테니 일어나 봐.”
칼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거리던 찰나에 에스텔이 그의 팔을 잡아 그를 붙잡았다.
“너도 참 대단하다.”
“뭐가?”
“취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결국엔 취한거 아냐?”
“그래?”
“으이그, 내가 잡아주면 걸을 순 있겠어?”
칼은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휘청거렸다. 에스텔은 그를 꼭 붙잡아 주었다. 칼은 그녀의 모습을 표정 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무표정은 냉소적으로 바뀌었다.
“뭐, 뭐야?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는다.”
“흥, 누가 뭐래? 됐으니 빨리 가서 자.”
“…….”
칼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에 맞춰 에스텔도 그를 붙잡고 같이 걸었다. 분위기는 참으로 냉랭했다.
“다 알아. 너 오늘 분위기 착 가라앉은거 누나 생각나서 그런거 말야.”
“쓸데없는 것만 잘 알아내는군.”
“어쨌건. 자 이제 방이네.”
에스텔은 칼의 침실의 문을 열고 그를 안으로 끌었다. 그리고 그를 침대에 앉히고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훑어냈다. 그리고 칼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더니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 너 정말 취한거 맞아?”
“그건 왜?”
“아니 너 얼굴만 봐서는 멀쩡한 것 같은데 실제는 취해 있잖아. 어머, 눈이 조금 풀려있네.”
“…….”
에스텔은 그의 등을 받치고 천천히 그를 눕혔다. 칼은 그녀의 손길에 따라 조용히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에스텔이 그에게 물었다.
“옷 안갈아 입어도 돼?”
“괜찮아. 애초에 편한 옷이라 그냥 자도 문제될 건 없어.”
“그래? 그럼 잘 자.”
그때였다. 침대에서 자리를 뜨려던 에스텔을 칼이 붙잡았다. 에스텔은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놀라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울고 있었다.
“너, 너 왜 그래?”
“난 참 무력한 인간이야…”
“왜? 누나가 너 때문에 죽은 것 같아서?”
칼은 대답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에스텔은 침대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리고 칼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누가 그래? 너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거 아니야? 어머니가 뭐라고 하신 줄 알아? 너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뚝.”
에스텔은 칼을 달래었다. 마치 어린 동생을 보살피는 큰누나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칼의 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말했다.
“너 잘 때까지 옆에 있어줄까?”
“됐어. 너도 가서 자.”
“괜찮겠어? 절대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
“괜찮아.”
“그래, 알았어. 그럼 내일 봐.
에스텔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의 방을 나섰다.”
네네, 엠티갔다오고 이제야 올립니다.
데이트..끝났습니다...남자친구 생겼다고 문자가 왔네요...
정말 슬픕니다....정말 좋아했던 누나였는데...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엠티때도 과 동기중에서 제일 빨리 뻗었구요..;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끝났다는 패배감만 남아있네요...
어쨌든 좋은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