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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툰] 부서진 낙원 6화 : 거대 거미(1)

로엔베르트
댓글: 1 개
조회: 778
2011-03-14 00:40:38

“도착했군.”

 

거대 거미가 난동을 부리고 있는 4층 옥상. 피오나조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모두 무사히 올라왔다. 돌아갈 때 무사할 지는 전적으로 티이에게 달려있지만 말이다. 새하얀 거미는 예상대로 종탑의 구조물을 이곳저곳 꼼꼼히도 부수면서 점점 위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통나무 같이 두꺼운 다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단단하게 맞물려있는 벽돌 덩어리들을 부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런 어마어마한 광경을 처음 목도한 이비는 오금이 저려왔다. 이비의 심리를 눈치 챈 카록은 처음으로 등에 맨 기둥을 꺼내들며 말했다.

 

“네 역할은 지원사격이다. 빗나가기라도 하는 날엔 각오하도록.”

 

냉기가 풀풀 날리는 얼음장 같은 말투. 같은 신참 주제에 베테랑 중에 베테랑 같은 기운을 물씬 풍기는 카

록의 말은 분명히 차갑고 사무적이었지만 분명 초심자인 이비를 배려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카록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자, 이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티이. 어서.”

“응 언니.”

 

-키에에에엑

 

티이는 멈추지 않고 날뛰는 거대거미에게 다가갔다. 높은 종탑의 허리를 뚝 잘라먹을 듯이 발광하는 거미에게 다가가는 한 소녀. 화폭에 담는다면 분명히 세기의 명화라는 찬사를 받을 법도 하건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저 무지막지한 발에 스치기만 해도 전신이 으스러질 것만 같은 소녀는 겁내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었고, 마침내 거대거미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자

 

-키에에엑

 

거대거미는 고막이 찢어질 듯 높은 괴성을 지르며 티이를 향해 앞발을 들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희미한 햇빛에 반사되며 번들거렸다.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티이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거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바닥에 박혀버린 앞발톱. 흉포한 내려치기와 그로 인해 피어난 먼지가 티이의 상황을 보지 못하도록 막았지만, 그 사이로 새어나온 목소리가 그녀가 생존해있음을 알려주었다.

 

“이제 괜찮아.”

 

소녀의 가냘픈 목소리. 그 목소리가 전한 하소연이 거대 거미에게 전해졌는지, 거대거미는 두 다리를 내려놓고 구슬프게 울었다. 티이는 조금 더 거미에게 다가가 두 갈래로 나뉘어진 거미의 거대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많이 놀랐지. 이제 안심해도 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의외로 상황이 안정되어가자, 피오나들은 천천히 경계태세를 풀었다. 좋아. 이대로만, 이대로만. 머릿속으로 아련한 메아리처럼 울리는 그것은, 티이가 위로해줄 때마다 점점 사그라드는 거미의 분노와 함께했다.

 

“왜 그랬니. 왜 그렇게 놀랐어.”

 

티이가 거미에게 묻자 거미는 그르릉 거리며 티이에게 화답했다. 티이는 커다란 눈으로 거미를 응시하며 재차 물었다.

 

“누가 그랬다구? 누가…….”

“피해!”

 

거미는 바로 앞에 티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몸을 수직으로 세우며 또 다시 포효했다. 리시타는

빠르게 튀어나가 영문도 모르고 어리둥절해 있는 티이를 안고 달렸다. 일어나기 직전, 거미의 머리 위가 붉게 빛나는 것을 확인한 피오나가 외쳤다.

 

“마족의 징표. 거미의 머리에 마족의 징표가 있어! 리시타! 어서 티이를!”

“이미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으니까 말 시키지 마!”

 

거미는 방금 전까지 티이가 있던 곳을 내리쳤고, 그 자리엔 깊게 홈이 파였다. 대포알이 강타한 흔적마냥 둥글고 깊게 박힌 구멍. 티이가 맞았더라면 몸 성히 여신의 품에 안기지 못했으리라. 리시타는 충격에 휩싸인 티이를 안고 달려 이비 곁에 두고서는 자신도 빠르게 전투구역으로 진입했다. 이미 달려 나가 거미와 대적하고 있는 거대한 전사와 작은 방패를 든 여성은 아슬아슬하게 거미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고 있었다. 카록은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거미가 내리치는 발을 손으로 쳐내어 방향을 바꾸어댔고, 피오나는 간간히 날아오는 두 번째 다리를 방패로 흘리며 거미의 다리를 검으로 찔러댔다. 리시타는 그가 고안해 낸 보법으로 둔한 거미의 공격을 미꾸라지처럼 피하며 이곳저곳을 베어냈다.

 

“벤샤르트……. 어째서…….”

“언니…….”

 

상황을 파악한 티이는 이비의 옷깃을 붙잡았다. 무언가라도 붙잡지 않으면 의식의 끈조차 놓아버릴 것 같

은 무시무시한 공포. 그제야 저 거대한 거미가 더 이상 자신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한 그녀는 이비의 품에 안겨 울었다.

 

“으윽……. 어쩜 좋아……. 어떡해….”

 

이비는 조용히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전투장면을 지켜보았다. 오금이 저릴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거미와 싸우는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한 자이언트. 이비는 자신이 맡은 역할이 뭔지 완벽하게 잊어버린 채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의 옆에 쓰러져 우는 마을의 무녀를 품고서.

 

“으악!”

 

열심히 다리사이로 피하던 리시타가 건물 벽에 가로막혀 진행을 멈춘 틈에 거대거미는 뒷다리로 리시타를 쳐내었다. 변변한 방어구도, 방패도 없이 두 자루의 검만을 들고 전장에 임한 리시타는 거미의 발길질에 저항한번 못해본 채 나가떨어졌다.

 

“리시타! 크윽.”

 

그 탓에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모두 방패로 버텨낸 피오나의 오른팔이 부러졌다. 대부분의 힘을 흘려냈던 지금까지와 달리 모든 힘을 받아낸 결과였다. 방패 또한 오른팔과 별 다를 바 없이 반으로 쪼개졌고, 수 번을 구르던 피오나는 벽에 부딪히며 정신을 잃었다.

 

“크윽…….”

 

결국 공격수인 두 사람이 전투에서 빠져버리자 홀로남은 카록은 힘겹게 거미와의 힘겨루기를 계속하면서 외쳤다. 술통 같은 팔뚝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지원사격은 뭣 하고 있나!”

 

참다못한 카록이 외치자, 이비는 깜짝 놀라 매직 애로우와 파이어 볼트를 급히 날렸다. 자신의 발 앞쪽에서 불꽃이 튀기고, 턱을 왠 칼바람이 툭툭 쳐대자, 거미는 카록을 치려던 손을 놓아버리고 이비를 향했다.

 

“이런 멍청한!”

 

카록은 전속력으로 달려 거대거미의 앞을 또 다시 막았다. 그러기를 수 차례. 더 이상 거미의 힘을 버틸 재간이 없는 카록은 두 발 사이로 날아들은 거미의 박치기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거미는 득의양양하게 두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동시에 울리는 파공음.

 

-쐐애애액

 

검고 두꺼운 쇠창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

 

‘제발,제발,제발,제발! 오 스쿨드여! 제발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기를!’

 

카이는 연두색 더벅머리가 올백머리가 되도록 달렸다. 절벽을 달려서, 평지로, 평지를 달려, 용병단이 있는 종탑 입구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거리를 눈 깜짝할 새에 달려온 카이는 종탑 위쪽을 확인했다. 아이단을 보호하고 있던 마렉이 카이를 발견하곤 말했다.

 

“카이 네가 왜 그쪽에서!”

“잘 하면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겠어.”

“무슨 소리야? 설마 지금 저기까지 올라가게?”

 

도착한 카이가 종탑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게렌이 비꼬듯이 말했다. 그 말을 철저히 무시한 카이는 천천히 거미와의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

 

“기준은 북. 횡편 좌로 54.2! 상하 42.6! 체인은 최대로!”

 

카이가 외치자, 발리스타를 잡은 자들의 손이 빨라졌다. 굴림쇠를 굴려 각도를 조정하고, 발리스타의 활시위를 최대로 끌어당겼다. 사람 하나 정도 크기는 될 법한 거대한 검은 창을 그 위에 올려 놓은 뒤에 창을 조준하는 대원들의 얼굴에 땀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마렉이 카이에게 외쳤다.

 

“야! 카이! 저기엔 무녀님도 있고 네 조원들도 있잖아? 너 지금 미쳤어?”

“리시타와 피오나라면 잘 피할 겁니다! 이비도 자신을 지킬 정도의 힘은 있어요! 그리고 그 자이언트라면 발리스타 한 방으론 잘 죽지도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저 거미. 지금 단순한 폭주가 아니에요!”

 

마렉의 꾸짖음을 듣고도 카이는 조준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멀리서 날아오는 거창을 그들이라면 반드시 피해 낼 것이다. 그보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저 거미는 종탑 뿐 아니라 마을 전체에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발리스타를 쏘는 데에 한 몫 했다.

 

“증거는! 증거는 있어?”

“에이잇! 지금 저 거미 위에 붉은 표식이 있단 말입니다! 대장님이 주으셨던 마족의 징표와 똑같은 문양이요! 뭣들하느냐! 발리스타! 발사하라!”

 

할 말을 잊은 마렉은 더 이상 카이를 막지 못했다. 그 틈을 타 카이는 발사 명령을 내렸고, 수 십대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발리스타는 종탑 4층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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