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이 있는 곳에서 외부로 통하는 출구는 하나, 생활관은 북서쪽과 북동쪽 끝에 위치한,
훈련된 저격수가 두 명씩 교대로 근무를 하는 등대타워의 조명아래 24시간 감시되고 있고,
출구로 통하는 복도는 2명씩 총 6명의 교도관이 교대로 순찰을 돈다.
생활관에서 복도로 나갈 수 있는 기회는 하루에 두 번.
무기를 만드는 부품을 조립하는 작업장으로 갈 때 한 번과,
프릭스가 그레이브즈를 불러내서 고문과 폭행을 할 때 한 번.
그나마 두 번째는 이제 재미가 없어진 건지 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고,
작업장에 있을 때 끌려가는 일도 없지 않으니 사실 상 기회는 한 번이다.
그레이브즈는 작업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탈주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사실 2년 간 마음만 먹는다면 혼자서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그레이브즈는 혼자 도망칠 생각은 아니었다.
그 소년에게 바깥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노인의 부탁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 컸지만,
소년에게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술집 근처에 버려진 그는, 술집 여인들의 손에 주워져 길러졌고,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곳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자라다가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해적들이 합법적으로 약탈을 하는, 아니, 해적들이 곧 권력의 중심인 빌지워터는
그런 작은 아이에게 인심을 써줄 만큼 풍족한 곳이 아니었기에,
무엇하나 배우지 못한 그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좀도둑질로 연명하는 것뿐이었다.
좀도둑질로 그곳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누구보다 빠르고 튼튼한 다리를 가졌고,
뒷골목의 깡패들과 어울려 그의 하루 생활비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강인한 몸과 싸움기술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였기에 누군가에게서 빼앗는 것,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란 것이 있을 리 없는 그였지만, 그것은 그가 ‘그런 일을’ 생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유일하게 이해해 주었던 소녀가 나타나기 전 까지, 그의 삶은 그저 하루하루의 연명일 뿐이었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여성답지 않은 미모를 갖춘 그녀는,
그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남자를 통틀어도 몇 안돼는 능력자이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자의 것을 빼앗고,
조금이라도 더 나쁜 자의 것을 빼앗자.
그것이 다른 깡패들과 그들이 다른 점이었고, 그들이 통하는 점이기도 했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에서 그녀와 함께 달리는 것으로,
그녀와 함께 있는 것에서 그녀와 안정된 삶을 사는 것으로,
그의 목표가 확고하게 변해갔고, 존재하지 않았던 삶의 이유가 생겨났다.
그렇게 그곳에서의 생활이 점차 나아져가는 시점에서 그녀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악명 높은 해적을 잘못 건드려 일가족과 함께 몰살당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큰 빚을 져서 잠적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같이 축적한 부와 함께 그녀가 자취를 감춘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차피 그녀가 아니었다면 축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라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배신? 변심? 실종?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할 수 있었지만 부정적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를 찾는다면 밝혀질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약 1년간 그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서야 그곳에 그녀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녀가 살아있다는 가능성도 발견했다.
그리고 무작정 육지로 향하는 배를 탔다.
사람을 찾는 일은 어두운 경로를 통하는 것이 가장 빠르기 때문에,
그곳과 통하는 유명인사들과 접선하는 방법으로 도박을 택했다.
사실 도박은 생활비를 비롯한 푼돈을 벌기 위한 잔업이고,
진짜 이유는 도박을 명목으로 유명인사들과 접선해 보수가 높은 청부를 받는 것이었다.
물론 보수는 물질적인 것 외에 정보일 수 있었고,
고위 관직이거나 돈이 많은 자 일수록 좋은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일을 하기에, 가진 자들에게 법률이 관대한 자운은 최적의 국가였다.
일을 하는 도중 제법 쓸만한 자를 만나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묘하게 설득력 있는 화법을 구사할 줄 알았고,
기묘한 손놀림과 정확한 계산력, 탁월한 센스를 동원하여 카드도박에서는 지는 법이 없었다.
그런 도박을 통해 유명인사를 다룰 줄 알았고,
자신이 가진 선천적인 매력을 활용하여 이성을 유혹하고,
자신에게 이롭게 이용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레이브즈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었기에,
그와 함께 일을 하면 그레이브즈는 주로 행동하는 역할을 했고,
그것은 상당히 효율이 좋았기에 그 역시 그레이브즈와 동행하는 것에 만족해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갑자기 작업실의 조명이 전부 꺼져버렸다.
“정전인가.”
교도관이 짜증스러운 어투로 말했고, 작업실의 어떤 창문을 통해서도
빛이 들어오지 않음을 확인한 그레이브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