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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37화

아이콘 강철안개
댓글: 3 개
조회: 801
추천: 6
2017-05-07 21:50:44

 #. 소나

 ‘아아아악!’

 소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푹신한 침대가 그녀의 몸을 감싸주고 있었다. 하지만 소나는 방금 전까지 차디찬 황야 위에 서있던 것처럼 온 몸을 마구 문질렀다. 그런 그녀의 잠옷은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 불길, 그 황야, 그리고 그 눈빛……. 모든 게 너무나 생생하게만 느껴졌다. 소나는 와들와들 떨리는 손을 애써 뻗어 침대 옆에 있던 에트왈을 끌어당겼다. 마치 에트왈만이 지금 이 순간이 현실임을 알게 해주는 열쇠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에트왈을 끌어안은 채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숨결이 에트왈을 통과하며 오직 소나만이 들을 수 있는 희미한 떨림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소나는 점차 마음을 가라앉혔다. 점차 진정이 되면서 그녀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평범한 꿈이었을 리가 없어.’

 소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여 나갈 채비를 했다. 한낱 꿈일 리가 없었다. 꿈을 통해 그의, 잭스의 모습을 보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문제는 깨어나면 그가 잭스란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데, 꿈속에서는 그가 누군지 도저히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생각한다 해도 모를 터였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은 조금 달랐다. 그 황야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또 푸른 불꽃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나의 머리를 맴돌았다. 지금까지 소나는 그 푸른 불꽃이 그저 무언가 질 나쁜 마법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잭스를 괴롭히는 병으로 말이다. 하지만 꿈속에서, 아니 꿈같은 공간 속에서 그 푸른 불꽃은 분명 그녀를 지켜줬다. 그 악몽 같은 그림자로부터 말이다. 그때까지는 그 불꽃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황야에서 그 불꽃을 다시 봤을 때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마치 이 세상 모든 절망과 슬픔을 응축시킨 덩어리 같았다.

 ‘모르겠어, 아무 것도…….’

 머리가 복잡해지자 소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대충 머리를 묶는 걸 마지막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분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잭스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곧 베사리아가 그녀를 데리러 올 터였다. 소나는 그러기 전에 지금껏 계속 연습했던 마법 음악들의 멜로디를 되짚으며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그것에는 최악의 상황에서 애써 눈을 돌리려는 의도도 숨어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소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베사리아를 기다렸다. 하지만 불안이 그녀의 마음을 빠른 속도로 좀먹고 있었다. 그에 따라 시간은 점점 더 더디게 흘러갔다. 1분, 아니 1초가 마치 1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잭스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의 인내심은 가문 날 저수지처럼 메말라가고 있었다.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결국 소나는 직접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정말 상황이 급박해서 베사리아가 오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에트왈을 불렀다. 바람노래를 이용해 잭스 곁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트왈은 그녀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아니, 평소라면 그녀의 바람에 맞춰 자연스럽게 떠올랐을 에트왈이, 이번에는 그저 보통의 악기처럼 침대 위에 얌전히 놓여있기만 할뿐이었다.

 ‘에트왈?’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에트왈을 향해 손짓했다. 좀 더 세게. 하지만 에트왈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고집을 부리는 강아지처럼 말이다. 짜증이 확 솟구친 소나는 직접 가서 에트왈을 들었다. 어차피 악기, 오지 않으면 이쪽에서 가면 그만이었다. 

 ‘분명 또 뭔가가 맘에 들지 않은 거겠지.’ 

 소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에트왈은 잭스에 관한 것이라면 늘 그녀와 마찰을 일으켜왔다. 하지만 그 문제만큼은 그녀 역시 한 발짝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짜증과 절박함이 섞인 얼굴로 바람노래의 가락을 떠올렸다. 이제 이전처럼 감에 의존해서 악상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정확한 멜로디를 구성할 수 있었다. 연습의 성과였다. 이제 잭스만 머릿속에 또렷이 떠올리면, 금방…….

 ‘……?’

 소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집중했다. 이번엔 눈까지 꼭 감고 집중했다. 잭스를 느끼기 위해서.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가 느껴지지 않았다. 손에 잡힐 듯 느껴지던 그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텅 빈 어둠 속에 헛손질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도.

 묵직한 둔기로 힘껏 맞은 것처럼 소나는 비틀거렸다. 욕지기가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소나는 에트왈의 현을 퉁겼다. 허나 그녀가 당면한 문제는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팅
 ‘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에트왈의 현에서 들려오자 소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여느 때처럼 공간을 부드럽게 울리는 음색이 아니었다. 싸구려 악기에서나 들을 법한, 텅 빈 종이 상자를 두드린 것처럼 공허한 울림이었다. 

 소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분명 요즘 에트왈 쪽에서 직접 말을 걸어주는 횟수가 많이 줄긴 했었다. 하지만 워낙에 에트왈이 기분파라서 소나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에트왈이 말을 하던 안 하던 서로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고, 굳이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소나는 요즘 들어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에게 있어 요즘 가장 중요한 일은 잭스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룬 일을 내팽개치기에는 소나는 너무 여리고 성실했다. 

 ‘…도움을 바랄 수는 없어.’

 침대 옆 조그마한 황동 시계는 새벽 2시 언저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설명하기에는 대체 어디서 시작해야하고 어느 것을 숨겨야 할지 너무 복잡했다. 게다가 솔직히 소나는 그런 걸 능숙하게 말할 만한 말재간이 있지도 않았다. 그녀는 에트왈을 한 번 보고, 뭔가 결심한 듯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도움도 없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게 잭스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 에트왈

 “주인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에트왈.”

 아브릴이 노래하듯 말했다. 에트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연결 끊고 있을 거야? 어차피 주인은 그에게 가버릴 거야.”
 “…….”
 “아이참, 에트왈! 마차로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뛰어가게 할 거야? 고집쟁이!”

 다시 한 번 재촉하는 아브릴이었지만, 에트왈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앞을 노려보는 그의 눈매가 어찌나 매서운지 눈에서 불똥이 튄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보통이라면 그 눈빛만으로도 주눅이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아브릴은 그 ‘보통’에 해당하지 않았다. 그녀는 불러도 대답 없는 에트왈에 흥미가 식은 건지 잘 정돈된 잔디밭에 풀썩 몸을 던졌다. 그녀의 머리 위로 황금빛 나비 몇 마리가 이리저리 맴돌았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푸른 초원 위로 드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초원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한가득, 마치 보석처럼 피어 있었다. 꽃과 나무, 그리고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금빛의 나비들……. 분명 아름답고 신비한 장소였다. 하지만 뭔가 채워져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처럼, 뭔가 텅 비어 있는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했다. 

 초원 한가운데에는 그보다 더 신비한 존재가 있었다. 황금의 가지와 옅은 푸른색의 잎사귀를 가진 나무였다. 때때로 바람이 살랑거릴 때마다 나무는 흔들렸고, 그러면 낮은 콧노래 같은 음색이 주위를 울렸다. 그것은 조용하게, 허나 확실히 초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가 스러지길 반복했다. 음색이 밝으면 초원의 풍경 또한 화사해졌고, 반대로 음색이 어두우면 초원의 풍경은 음침해졌다. 이곳은 에트왈의 세계였다. 동시에 소나의 내면 그 자체이기도 했다.

 허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에트왈의 표정은 썩은 감자라도 씹은 양 잔뜩 구겨져있었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 초원 끝에 있는 은빛의 다리를 향해 있었다. 다리 끝은 안개에 휩싸인 듯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히 거기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던 에트왈이 혀를 쯧 하고 찼다.

 ‘제기랄, 정말 그 용병 자식과 관련되면 일이 제대로 흘러가는 게 하나도 없군.’

 에트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일부러 소나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응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아예 그녀와의 연결을 반 이상 끊고 있었다. 그게 이 세계가 소나의 절박한 심정이 물들어 우중충하게 변하지 않고 있는 이유였다. 만약 연결이 제대로 이어져 있었다면 지금쯤 이 초원에는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을 터였다.
 
 에트왈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안다, 그가 왜 모르겠는가. 아무리 연결을 반쯤 끊었다 해도 기본적으로 이 세계는 소나의 마음을 토대로 만들어진 세계였다. 물론 에트왈이라는 존재 자체 역시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감정은 절절하게 그에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다급함과 절박함. 하지만 그것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역시 또렷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마음이 무른 탓이야.’

 그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정말 제대로 한다면 소나와의 연결을 아예 끊어버렸어야 했다. 그래야 뒤탈이 없었다. 허나 연결을 완전히 끊지 못한 건, 역시나 말은 항상 거칠게 해도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고 싶은 미련 때문이었다. 참으로 모순된 행동이었다. 그녀를 지키고 싶어서 연결을 끊었는데,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위험 요소를 남겨 두다니 말이다.

 에트왈은 그 용병 놈의 목숨을 살릴 때로 돌아가 그런 결정을 내린 과거의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그때 무리하게 아스트라시온 시스템만 쓰지 않았더라도 그의 주인이 이런 짜증나는 일에 휘말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때 마음을 모질게 먹었어야 했는데, 차마 소나의 우는 모습을 보기 싫어 부탁을 들어준 게 후회라면 후회였다. 그때였다. 기분 나쁜 진동이 그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그것은 멀리서 오는 불길한 징조였다. 은빛의 다리 끝을 보는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에트왈.”
 “알아.”

 이번엔 아브릴의 목소리에서도 심각성이 느껴졌다. 아브릴 역시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눈길을 두고 있었다. 은빛의 다리 너머는 희뿌연 안개로 가로막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느낄 수 있었다. 안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그 순간, 다리 너머에서 푸른 불꽃이 솟구쳤다.

 푸확!
 라라라라…….

 불꽃이 솟구침과 동시에 아브릴의 입에서 부드러운 음색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도 그렇다고 어느 악기의 소리도 아닌 신비한 음성이었다. 초원에서 부는 산들바람이 벽이 되어 불꽃을 막았다. 불꽃은 은의 다리를 넘어 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만 같았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바람과 엎치락뒤치락하던 불꽃은 결국 제풀에 지쳤는지 사그라졌다. 그러나 분명히 불꽃은 조금씩 은의 다리를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불꽃에 타버린 다리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바람의 벽에 스며들더니, 다시 안개의 벽이 만들어졌다. 그제야 쉬지 않고 노래 부르던 아브릴의 입이 닫혔다. 그녀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에트왈은 그런 그녀를 향해 물었다.

 “앞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어?”
 “음…세 번 정도?”

 고작 막는 게 전부라니. 에트왈은 씁쓸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누군 저 빌어먹을 놈의 연결을 통해 들어오는 푸른 불꽃 때문에 뭐 빠지게 고생하고 있는데, 주인이란 놈은 그깟 용병 놈팡이에게 빠져 헬렐레 거리기나 하고…….”
 “애초에 주인한테 알리지 않고 해결하겠다고 한 게 누군데…….”
 “시끄러워!”
 “왜 나한테 짜증이야? 자기가 말해 놓고선!”

 에트왈이 으르렁거리자 아브릴은 잔뜩 볼을 부풀리고선 다시 풀밭에 몸을 내던졌다. 그런 아브릴을 싹 무시하고선 그는 다시 회색 안개에 휩싸인 은의 다리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다리는 이제 절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저 은의 다리는 소나와 잭스의 정신이 이어진 흔적이었다.

 본디 이곳은 그녀의 심상 세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장소였다. 에트왈에게는 정말 분하디 분한 일이었지만, 소나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그가 잭스와 연결되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의 모든 풍경은 소나의 무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소나가 생각하는 잭스와의 연결은 통짜 은으로 만든 다리에 견줄 정도로 의미가 깊다는 뜻이니, 그의 배알이 안 뒤틀리려야 안 뒤틀릴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이래서 그토록 떼어 놓으려고 했던 건데…….”

 에트왈은 은의 다리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잭스라는 놈팡이의 몸에 깃든 그 ‘푸른 불꽃’을 알고 있었다. 베사리아인지 뭔지 하는 얼빠진 마법사년은 그걸 저주라고 했지만, 그는 그딴 마법사가 추측하는 것보다 그것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소나에게 말해주지 못했냐면, 참으로 ‘빌어먹게도’ 그의 기억과 행동에 제약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알고서도 알지 못하고 말로 꺼낼 수도 없다니 기분 더럽네.”
 “뭐야 그거? 철학이야? 나 머리 아픈 얘기 싫어해.”
 “…입 닫고 그냥 누워 있어.”

 에트왈에겐 아직 밝히지 않은 수많은 비밀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자신의 비밀을 밝힐 수 없는 상태였다. 그의 기억과 행동은 모두 원래 그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노래’들에 나눠져 있었다. 즉 겨우 2개의 곡밖에 없는 지금, 그는 자신에게 지식이 있다는 사실은 알아도 그걸 알 수는 없는 상태였다. 이를테면 잔뜩 먼지가 낀 희뿌연 유리 장식장 안을 보려고 하는 것과 같았다. 

 물론 모종의 이유로 흩어져 있는 다른 곡들을 모으면 그의 기억을 찾을 수 있기는 했다. 허나 그것은 당장에 실행이 불가능한 일일 뿐더러, 에트왈에겐 그러고 싶은 생각 따윈 손톱만큼도 없었다. 애초에 그는 자신이 이렇게 실체를 가지고 깨어난 상황부터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의 바람은 소나가 그냥 아무 것도 모르고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생을 마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조그마한 소망이 저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용병 놈 하나 때문에 모조리 깨지게 생겼으니, 에트왈이 잭스를 증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랴, 일단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이대로 저 불꽃이 저 다리를 건너온다면 이 세계는 불길에 휩싸일 게 뻔했다. 저것은 실체와 정신의 틈새 사이에 있는 존재. 저것이 소나의 세계로 옮겨 온다면 소나마저 그 ‘푸른 불꽃’의 저주에 당해버릴 터였다. 영문도 모른 채 몸속에서 터져 나오는 푸른 불꽃에 괴로워하는 소나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자, 에트왈은 이빨이 부서져라 악물었다.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꼴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계속 이대로 막기만 할 거야, 에트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주인 쪽의 연결 다시 이어서 도와달라고 하자, 응?”
 “그러다 저놈이 발작이라도 일으켜서 미친개처럼 달려오면 어쩔 건데? 막기가 고작인 이 상황에서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하라고? 그것도 주인의 목숨을 담보로?”
 “어차피 주인은 잭스에게 갈 거야! 뛰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갈 거란 말이야! 그걸 제일 잘 아는 건 너면서 왜 그러는 거야? 그토록 주인을 생각하면서! 그래서 연결도 완전히 끊지 못한 거 아냐!”

 아브릴은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주제에 에트왈의 아픈 부분을 마구 찔러댔다. 

 “이제 그만 주인을 믿어! 주인은 성장했어. 아직 부족하지만, 예전이랑은 달라! 느껴져? 지금 이 순간에도 주인은 최선을 다해 뛰고 있어! 나도 느끼는 주인의 의지를 네가 느끼지 못할 리 없잖아!”

 아이처럼 천진난만해도 아브릴은 바보가 아니었다. 봄을 노래한 곡이라서 그런지 그녀는 쉽게 웃었지만, 그만큼 쉽게 화를 냈다. 하지만 아브릴이 화를 내면 낼수록 에트왈의 표정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믿으면 뭐? 우리가 주인을 믿으면 저 불꽃이 감동이라도 해서 멈출 것 같아?”

 에트왈은 비꼬듯 말했다.

 “아직 우리 잘난 주인은 부족해. 의지만 앞서고, 정확한 계획 따윈 없지. 지금도 봐. 이 애가 열심히 뛰어가는 게 무슨 해결책을 가지고 가는 거냐? 아무 것도 없잖아.”
 “그래서 우리가 있는 거 아냐? 주인을 도와야지! 방법은 아직 있잖아! 아스트라시온을 한 번 더 한다면 어떻게든…….”
 “야!”

 에트왈이 처음으로 움직이더니 달려오다시피 와서 아브릴의 멱살을 잡았다.

 “그게 뭔지 알면서 그딴 소리를 해? 그걸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면서 그러는 거냐고! 한 번도 충분하다 못해 넘쳤어! 그걸 또 쓰면 이 애의 일상은 무너진단 말이야!”

 에트왈은 비명 지르듯 말했다. 그것은 아브릴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외치는 것과도 같았다.
 “난 그냥 소나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난 그냥 신기하게 생긴 악기 정도로만 생각하고,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결혼하고 애 낳아서, 그렇게 살면 좋겠단 말이야! 저딴 저주 걸린 괴물 놈 하나 살리자고 저 애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아!”
 “…….”
 “소나는 그놈과 같이 있어선 안 돼.” 

 에트왈이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소나가 성장하길 바랐어. 하지만 이렇게는 아냐.”
 “에트왈…….”

 아브릴이 에트왈을 슬픈 눈길로 바라봤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오직 소나만을 위해 생각하는 그의 모습이 애틋하기만 했다. 괴로울 터였다. 소나가 원한다면 툴툴거리면서 하늘의 달이라도 따다 줄 존재가 바로 에트왈이었다. 하지만 소나의 행복을 바라는 그가, 지금 정말로 소나가 그를 필요로 할 때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 모순된 선택이 죽을 정도로 괴로운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일 터였다.

 “저 불꽃이 계속 타오른다는 건 아직 그놈이 살아있다는 증거야. 저 정도로 제어력을 잃었다면 그놈은 얼마 못 버티고 죽을 거야.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해.”
 “그 전에 불꽃이 다리를 넘으면?”
 “그땐 소나와의 연결을 완전히 끊고, 우리 쪽에서 끝내야지.”

 그것은 죽는다는 말과 똑같았다. 그들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처럼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 본질은 노래였으니까. 하지만 저 불꽃에 휩싸여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그 비참한 최후를, 에트왈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게는 소나의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주인이 때맞춰 잭스에게 간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야? 에트왈……. 이럴 거면 차라리 모습을 드러내서 주인을 막자. 나, 너무 괴로워……. 주인의 절박한 심정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져. 응? 에트왈, 제발…….”
 “모습을 드러내면 난 제약에 걸려.” 에트왈이 그녀의 멱살을 풀며 말했다. “내가 소나 앞에 나타내면, 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바람을 들어줘야 해. 난 그런 존재니까. 너 역시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내보낼 수 없어. 그러니까…이 방법밖에 없어.”   

 에트왈이 슬프게 말했다. 아브릴은 그런 그를 보며 절박하게 매달렸다.

 “주인을 한 번만 믿어보면 안 돼? 우리는 주인의 것이잖아. 우리가 주인을 믿지 못하면 누가 믿어줄 수 있겠어?”

 분명 그녀의 말도 옳았다. 하지만 에트왈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녀와의 연결을 끊을 때부터, 그것은 이미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실패의 대가가 내 선에서 끝난다면 얼마든지 그랬을 거야.” 그는 아브릴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하지만 실패하면 소나의 목숨이 위험해져. 그런 짓은 할 수 없어.”

 짜악!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씁쓸한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아브릴이 에트왈의 뺨을 있는 힘껏 때린 것이었다. 때린 건 아브릴이건만, 오히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겁쟁이.”
 “…….”

 아브릴은 그를 밀치고 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이 세계에서 힘을 쓰는 데에 거리 따윈 의미 없었지만, 그래도 에트왈의 곁에조차 있기 싫은 모양이었다. 에트왈은 막지 않았다. 소리가 울릴 정도로 뺨을 세게 맞았건만 그의 볼은 멀쩡했다. 당연했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아브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저 인간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분명 그럴진대,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운 것일까. 에트왈은 아프지도 않은 뺨을 자꾸 어루만지며 다시 아까의 나무 아래로 걸어가 앉았다. 그리고 슬픈 눈길로 다시 다리를 바라봤다. 

 “난 네게 미안하지 않아, 잭스.”

 그는 처음으로 잭스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옳은 일이니까. 난 소나를 지킬 거야. 그게 널 죽이고…나마저 죽이는 선택일지라도.”

 에트왈은 다리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울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대신 자신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꽉 안았다. 마치 터져 나오는 슬픔을 억누르려는 것처럼.

 불꽃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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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오랜만입니다. 격조하셨습니까? 이제는 잊혀진 글쟁이 강철안개입니다.

1. 그동안 취직해서 너무 바쁘게 일하느라 글이고 뭐고 컴퓨터 자체를 앉질 못했네요.

2. 아 스트레스.

3. 하지만 1년 넘게 안쓰는건 도리가 아니다 싶습니다. 계속 써야죠...

4. 이제부턴 열심히 써서 올리겠습니다. 와우도 계정비 안냈습니다(비장).

5. 에트왈의 고뇌가 드러나는 부분인데 잘 드러나면 좋겠네요.

6. 아직 초입부라는 사실이 한탄스럽습니다. 이거 쓰기 시작한게 분명 14년도인데....어....

7.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아마 너무 오랜만에 써서 앞부터 복습을 좀 하셔야 하지 않을까...싶네요.

8. 최대한 빨리 다음편 내오겠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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