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테란 감사제 감명깊게 봤습니다.
디렉터와 제작진들의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제작자와 유저 사이의 신뢰를 어느정도 회복할 수 있었던 좋은 이벤트였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제가 초반부터 감명받았던 부분이 이겁니다.
바로 셀프 카메라 기능.
자기 케릭터 스샷찍기를 좋아하는 유저들을 위해,
쿼터뷰 게임에서는 구현할 필요조차 없는
하늘 배경을 새로 만들기까지 하겠다는 것.
정말 예상도 못한 충격이었습니다.
소위 '자케딸'을 위해 시야가 제한되는 쿼터뷰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
정말 유저들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죠.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스샷을 찍으면 어디에 올리지?
인벤 스크린샷 갤러리에요?
물론 예쁘고 좋은 스샷이 많고 저도 가끔 봅니다만
로아를 즐기는 유저가 모두 인벤을 하지도 않을 뿐더러
인벤을 하는 유저들도 스샷 갤러리를 모두 보는 것도 아닙니다.
공식 스크린샷 갤러리요?
전 지금까지 몇번 캐쉬 충전하러 공홈에 들렸지만 잘 눈에 안띄더군요.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한번 찾아봤는데,
메인 화면에 노출도 안돼있고,
커뮤니티 카테고리 하위 UCC 카테고리의 하위 카테고리에 스크린샷이라고 걸려있더군요.
심지어 최근 업데이트 날짜가 작년 12월 29일이고,
조회수도 몇몇 게시글을 제외하면 몇백을 넘지 않아요.
스샷을 찍으면 뭐하죠?
그저 자신만 보고 만족할 뿐, 남에게 보여주면서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RPG를 하는 이유 중 굉장히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과시욕'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니지 같은 게임도 자기 돈 많은 거 자랑하는 게임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뭔가 자신만의 개성, 특별함을 MMORPG에서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컨데 이런 거죠.
이번에 로아가 쿼터뷰 게임으론 정말 파격적인 선택을 하고
유저들을 챙겨주는 건 좋은데,
이런 스샷들을 과시하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정말 소수만을 위한 업데이트가 돼버릴 겁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프로필 사진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이 존재하는 게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블레이드 앤 소울이라고,
지금까지도 그 어떤 게임도 못따라올 훌륭한 장점을 많이 가졌지만
태생이 엔씨인 탓에 지금은 언급하기도 싫은 추악한 흉물이 돼버린 게임이죠.
그 게임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프로필 사진 시스템입니다.
한 유저가 다른 유저의 스팩등을 보기 위해 상태보기를 하면,
그 유저가 정해놓은 프로필 사진이 뜨고 옆에 장비가 뜨는 형식이죠.
(블소를 해본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오래된 스샷입니다.
지금 블소도 이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 쓰려고 블소 홈페이지를 오랜만에 들어가서 봤는데
이상하게 케릭터 프로필 사진이 안보이네요. 설마 블소도 바뀌었나???)
유저가 스크린샷을 찍으면, 그 스크린샷으로 저렇게 인게임에서
남에게 보일 수 있도록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기능으로 어떤 일이 생겼었냐면
자기는 스샷 잘 못찍는다고 통칭 '스샷장인'에게 자기 케릭 빌려줘서
대리 스샷을 찍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 스샷은 구글에서 블소 프로필 사진으로 검색해서 나온 걸 대충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여러 보정을 넣어서 자기 케릭터 프로플 사진을 예쁘게 꾸미거나
다른 금손 그림작가에게 커미션을 줘서
자기 케릭터를 그려달라고 하고 그 그림을 프로필 사진으로 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위 그림은 현재 데스티니 차일드의 일러스트레이터인 혈라 님의 그림입니다.
당시 블소에서 커미션을 받아 그림을 그린 적이 있으시죠)
즉, 프로필 사진 시스템 하나만으로
자신의 케릭터에 그만큼 강한 애착이 생기게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블소도 로스트아크랑 똑같았습니다.
다 똑같은 아이템, 똑같은 악세.
장비로는 전혀 다른게 없는 케릭들이었죠.
(물론 과금 요소는 천지차이)
그런데 블소는 이런 남들과 똑같은 장비를 차고 다녀도 자기 상태 보기를 하면
자신이 정성을 들여 찍은 스샷, 혹은 돈들인 그림들이 나옵니다.
로아는 그냥 남들과 똑같은 장비를 찬 케릭의 전신샷이 나올 뿐이죠.
커마를 어떻게 했든, 뭐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더구나 블소보다 커마 자유도도 떨어집니다.
게임에 현타가 와서 접어야하나 하고 고민하며 자기 상태창을 봤을 때,
자신이 정성 혹은 돈을 쏟은 예쁜 프로필 사진과,
얼굴도 잘 보이지 않고 마네킹처럼 전신샷으로 서있는 케릭터를 보면
어느 쪽이 접어버리고 싶어질까요???
만약 이 프로필 사진 시스템이 생기면
정말 게임역사에 남을 병크였던 레이드 즉시 완료권 같은 병크가 또 터져도
한두번은 사람들 발길을 붙잡아 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프로필 사진 시스템이란게 그만큼 케릭에 애창이 생기게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위의 블소의 예에서 봤듯 또다른 효과도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활성화인데, 로아처럼 레이드 들어갈 때마다
남의 템렙 확인하는 게임에선 반드시 남의 프로필을 보게 될거고
예쁘면 예쁘다 멋있으면 멋있다 뭔가 말할 거리라도 생깁니다.
예로 실제로 블소하며 겪은 일이 있었습니다.
저렙구간이어서 사람 별로 없는 지역이었는데
A: 얘들아 얘 프로필 봐라 존나 야하다
B: 누군데?
A: C라고 있어
B: 오 보고 왔는데 진짜네 근데 이 사진 누구냐
D: 누구누구임
A&B : 감사감사
이런 식으로 하잘 것 없는 일이지만 뭔가 해프닝이라도 하나 더 생깁니다.
정말로.
그리고 그림 커미션의 경우, 그 자체로 하나의 시장과 컨탠츠를 형성합니다.
제작사 쪽에선 뭐 아무 일도 안했는데,
유저들이 자기 게임 케릭을 멋있게 보이게 하고 싶어서
자기 돈 줘가며 게임 관련 그림 컨탠츠들을 그림작가들에게 의뢰하는 거죠.
위에 올렸듯이, 혈라 님이 그래서 블소 유저 사이에서 좀 유명했고,
저런 그림이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프로필 사진을 더 많이 꾸미기 위해 유명한 금손 작가들에게
계속 커미션을 의뢰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금액을 쏟았다고 알려졌는데,
프로필 사진에 돈 넣는 사람이 게임 내 자기 케릭터에게 돈 안 부을까요?
그분이 상당히 높은 레벨의 랭커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유저들의 이미지 파일을 케릭마다 어느정도 용량에 서버에 업로드 해야하니 비용적인 문제도 있을테고,
어디에나 있는 트롤 문제로 스펙 보려고 상태보기를 했는데
혐짤이 나오거나 대놓고 성기노출이 된 야동 스샷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죠.
이런 유저들을 단속하는데 더욱 운영 측에서 신고 시스템을 더 면밀히 지켜봐야하는 수고로움도 있겠죠.
로아가 만약 예전과 똑같이 쿼터뷰 시점만을 고수하고자 하는 게임이었다면
굳이 이런 프로필 사진 시스템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쿼터뷰의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탈피해서
스샷으로나마 자유 시점으로 유저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고자 한다면,
그 시스템을 제대로 뽐낼 수 있는 무대가 반드시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시너지는 반드시 로스트 아크에 이득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