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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낙원추방] 최선의 선택이 최선이 아닙니다.

아이콘 오시즈
댓글: 3 개
조회: 2688
추천: 6
2015-05-29 00:35:06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네타

 

 

 

 

 

 

17세기 산업혁명이 발발했을때 인류의 기술은 큰 변혁을 겪었습니다. 기존의 농업 및 각종 산업은 어디까지나 인류나 인류가 사육한 가축의 육체적 힘에 의존하였고 그 이상의 결과를 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나온 각종 기술과 과학은 기존 산업의 생산량과 생산품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의 삶의 질을 크게 높였나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불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분명 기존의 자원으로 더 풍부한 결과를 만들어냈는데도 왜 그랬을까요?

 

과학자의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몰라도 사회는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에 열광했고 그것을 위해 그들의 노동의 강도는 줄지 않았습니다. 분명 기계를 이용하면 기존의 결과는 적은 노동으로도 만들어 낼 수 있었겠지만 사람들의 욕심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죠.

 

정확하게 얘기하면 사회의 기득권층이 만족하지 않은 것이죠.

 

사회는 그들의 사탕발린 말에 항상 넘어가 근면성실한 모습을 보이며 그들이 제공하는 달콤한 열매의 단물을 마시며 우리는 발전하고 있다고 자위합니다. 결국 인간을 편하게 하기 위해 발명된 기술들은 인간을 더욱 노동에 밀어넣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이것이 최선인가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봐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 처럼 여러분이 농사를 짓거나 옷을 입기 위해 옷을 짜거나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우리는 공부를 해야하고 사회에 나가게 되면 일을 하는게 당연합니다.  과거에 비해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과연 인간의 삶의 질도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걸까요?

 

 

 

본 작의 주인공인 안젤라 발자크는 미래 인류의 사회인 디바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습니다.

 

디바는 황폐해진 지구를 포기한 인류가 육체를 포기하고 우주 위의 위성의 메모리에 정신을 보관해

 

위성이 만들어낸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자신들의 정신을 구현화해 지내는 사회입니다.

 

즉 인류는 배고픔을 느끼지도 늙지도 않는 영원불멸의 존재로 지낼 수 있는 셈이죠.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자신의 메모리를 할당해 구현해 낼 수도 있으니 작은 신 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본 작의 제목의 낙원은 이 디바를 말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안젤라는 이런 디바에서도 보안국에 속해 있는 공무원 입니다.

 

각종 문제를 해결하던 중 본 작의 메인 사건인 해킹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해커가 숨어 있는 지구로 뿅 날라오죠.

 

가상 육체가 아닌 진짜 육체에 정신을 담고 말입니다.

 

지구에는 우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한 구 인류들이 황폐화 된 지구에서 퇴화한 문명을 안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지구인 어시스턴트 딩고는 안젤라가 생각하기에 이해가 안가는 점 투성이인 인간이죠.

 

 

 

인간의 육체로 지내고 있으면서도 디바에서의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안젤라.  초반의 안젤라를 보고 있으면 전공을 세우기 위해 앞으로 뛰쳐나가는 군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안젤라를 딩고는 어린 아이 다루듯이 조언하고 타이르며 자신의 인간관을 보여줍니다.

 

작중에서는 그 대표적인 장면으로 락이 흐르는 부분이 있었죠.

 

 

딩고가 옛날 락을 듣자 안젤라가 화를 내죠.

 

그러면서 자신들은(디바의 사람들은) 더 높은 고차원적인 향락을 느낀다고 딩고에게 자랑하듯 말합니다.

 

이때 딩고가 말합니다.

 

 

 

안젤라의 모습에서 효율을 중시하며 달려온 인류의 발전 양상을 볼 수 있었다면 딩고의 모습에선 그럼에도 사람이 기계처럼만 살지는 않는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이후에도 식사를 하는 모습에서라던가, 잠을 자는 것이라던가   하는 인간 기본적인 욕구에 적응 하지 못하는 안젤라의 모습이 나옵니다.

 

항상 효율을 중시하면서 살던 안젤라를 딩고가 조금씩 바꿔 놓습니다.

 

작중에서 만난 해커 프론티어 세터는 결과적으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발현한 AI에 불과하였습니다.

 

이 프론티어 세터의 말에서 사람이 사는 의의에 대해서 알 수 있죠.

 

 

 

좋아함 에서 느낀 감정   그것이 자신의 자아의 발생을 인식하는 단서가 되었다.

 

AI가 말하는 이 대사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삶의 의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다르겠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즐거움'

 

즉 정신적 만족에서 그것을 찾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길, 부자가 되길 원하죠. 하지만 내가 부자로 살지언정 거기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그게 정말 좋은 삶일까요?

 

어떠한 삶을 살아도 자신이 즐거운 삶   그것이 정말 바람직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요

 

본 작의 절정 부분에서 안젤라는 영원불멸의 존재인 전뇌인간으로써의 삶을 포기합니다.

 

즉 스스로 낙원의 삶을 포기한겁니다.

 

왜?

 

지구로 돌아가 프론티어 세터를 파괴하겠다고 했으면 디바에서의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지구에서 딩고와 프론티어 세터와 만나고 본인이 살아가는 이유를 새롭게 안게 아닐까요?

 

또한 결말에서 프론티어 세터가 제시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지도 않죠

 

즉 현실을 마주한채 그것으로의 길이 기존의 삶보다 고될지라도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고자 한 것일겁니다.

 

 

본 작의 디바는 낙원이라고 불릴만큼 인류의 최선의 진화를 보여준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선의 선택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게 본 작품이 말하는 주제가 아닐까싶네요.

 

여러분은 즐거운 삶을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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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어휘력으로 전달력이 강하지 않은점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1줄 요약

 

안젤라가 귀여웠어

Lv77 오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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