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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히나 이야기 +2

아이콘 구미
댓글: 4 개
조회: 1859
추천: 6
2016-09-20 21: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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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방프로젝트의 설정, 배경, 인물을 가져온 2차 창작입니다.

*매일 10시 경 업로드 예정입니다.



2.

 

 아침은 평소와 다르게 차가웠다. 빈틈을 뚫고 새어나오는 찬바람에 놀란 케이네는 자신이 역사서를 배게 삼아 책상 위에서 잠든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역사서를 펼쳐보았다. 마치 자연 그대로 자라던 나무에 철사를 메고 가지를 자르는 분재처럼 자신의 능력인 ‘역사를 없애는 능력’으로 환상향의 역사의 곁가지를 지우고 있었었다. 아직까진 능력에 대한 자신이 없어 기존 역사서의 오류를 없애거나 인간 마을을 벗어나 실종된 사람들의 이름을 지우는 정도였다.


 혹시나 먹물 자국이 얼굴에 묻었을까 옆에 있던 거울로 확인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으나, 굳어있던 허리는 우두둑하며 부서지는 소리를 내면서 그녀를 주저앉혔다.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야야야.. 쓰라려라..”


 

 저번에 부딪친 이마도 아직까지 누르면 얼얼함이 기다린 듯이 피어오르는데 허리까지 아프니 이마와 허리를 번갈아가며 꾹꾹 누르느라 왼손이 상당히 바빠졌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늘 있던 자리에 있는 빗자루를 잡고 서당 앞을 쓰는 아침일과를 시작했다. 쓱싹쓱싹. 가벼운 소리 위에 얹어진 먼 하늘의 바람소리와 들새들의 소리들이 들렸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동작이다 보니 머릿속에는 코마치가 알려준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학생들의 건강을 주기적으로 파악하는 것뿐이라니.. 그 정도로 그만한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걸까?”

 


 ‘아마 역사를 없애는 능력을 가진 나도 역사에서는 없어질 것 같네.’라는 말을 속으로 죽여 말하며 음식 찌꺼기를 노리는 쥐를 빗자루로 위협하고 남은 쓰레기들을 한 곳에 모으는 그 때, 저 멀리에서 이른 시간에 등교를 하는 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긴 머리에 약한 발걸음 소리, 히나였다. 


 평소에 푹 숙이고 다니다가 가끔 귀를 두 손으로 막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고개를 들고 살짝 웃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풀죽어서 다니던 평소의 모습과 다른 모습이 신기해서 그녀는 먼저 말을 건넸다.

 

  “오늘 왜 이렇게 일찍 학교에 온 거니? 날 추운데 옷 더 껴입고 오지 그랬어..”

 


 히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케이네를 보고 꾸벅 인사를 한 후 말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케이네 선생님. 오늘은 평소보다 소리가 잘 안 들려서 기분이 좋아서요.”


 

 그 말을 듣고 케이네는 가까이 다가갔다. 혹시나 자기 목소리가 안 들렸을까봐 얼굴을 마주보고 최대한 입을 크게 벌려 아까 했던 말을 다시하려고 하자 그녀는 옅은 미소를 유지하면서 케이네에게 말했다.


  “옷은 가방 안에 한 벌 더 들고 왔어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으.. 음? 방금 잘 안 들린다고 하지 않았...“

 

  “그런게 있어요~.”


 

 그러면서 히나는 사뿐사뿐 교실로 들어갔다. 머리가 복잡해진 케이네는 빗자루 끝에 턱을 괴고 자세한 건 히나 부모님을 만나 물어보자고 마음먹었다.

 

 

 한편, 코마치가 일을 하는 듯 안 하는 듯 지내는 피안에서는 중유의 길에 널린 가게들에서 현세의 미련을 씻고 염마님의 재판만을 기다리는 생령들이 미련 따위 없는 자비로운 말투로 강을 건너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었다. 코마치는 손을 흔들며 탑승을 거절하고 있었다.

 

  “아이 참, 그러니까 지금 좀 복잡한 일이 있어서 재판이 미뤄졌다니까요.”

 

  “그렇습니까. 여기에 있은 지도 어언 49일이 지났습니다. 기다리긴 하겠습니다만 맛있는 술 좀 주실 수 있으십니까. 중유의 길의 술들은 맛이 전부 없습니다.”

 

  “나도 그건 잘 아는데.. 술 맛의 절반은 물맛인데 물이 이러니 어쩔 수 없어요. 미안.”

 


 그러자 생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중유의 길로 떠났다. ‘사람이 미련이 없으면 저렇게 편안하게 웃으며 독설을 쏘아붙일 수도 있구나,’라고 코마치는 생각하며 배를 탔다. 지금 판결을 내리는 것 보다 더 바쁠 염마님의 상태를 보기 위해서였다. ‘거리를 조절하는 정도의 능력’으로 강물의 폭을 크게 좁혀 금방금방 건넌 후 시비곡직청의 문을 두드렸다.

 

  “시키 님 계십니까?. 오노즈카 코마치입니다.”

 


 잠시 기다리니 시비곡직청의 문을 열고 닫으면서 생전의 업을 태우고 있는 생령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것에게 인사를 건네고 익숙하게 시키의 개인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빨간 외곽 기둥들 사이에 담긴 연노랑 빛 벽이 정갈하게 느껴지고 나머지 잡화들도 쓸모없는 장식 없이 정말 필요한 것만 있는, 사는 사람의 성격이 그대로 담겨있는 방이었다.

 


 책과 문서들이 가득 쌓인 책상에서 환상향의 재판을 담당하는 염마, 시키 에이키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찌푸린 눈으로 말라가는 붓을 휘두르고 있었다. 곁눈질로 코마치가 자기 방에 들어온 걸 확인한 그녀는 고개를 들고 건조한 눈을 꾹꾹 누르면서 말했다.

 

  “오셨군요. 방금처럼 평소에도 거리를 조절하는 능력으로 일을 했으면 일찍 끝내고 술이던 이야기던 하고 싶은 걸 다 했을 텐데 왜 당신은 매일..”

 

  “으에, 시키 님. 피곤할 것 같은데.. 설교는 나중에 모아서 하면 안 될까? 그리고 그 능력이 거리를 좁히거나 늘이는 건 맞지만 내가 그 거리를 걷는 건 똑같다고... 히잉.”

 

  “뭐라고요!”

 


 그러면서 그녀는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충혈된 녹색 눈이 피로 때문에 파들거리며 코마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도 안 좋은데 더 안 좋게 건드렸나 싶어서 코마치는 뒷걸음질을 했다. 그녀의 작은 몸은 갑자기 일어난 데에 대한 반동으로 잠깐 비틀거리더니 겨우 쌓여있던 책들과 부딪치는 걸 피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보기에도 굉장히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인 것 같았다.

 

  “하아... 알겠어요. 시비곡직청이 휴정이라니. 그것도 정확한 기한도 알 수 없고, 원인도 알 수 없이 조금씩 뽑혀나간 생령들의 액이 이승을 나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사유로 적으려니 참 머리 아프네요.”

 

  “하긴, 원인도 이상하고, 결과도 이상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판결을 할 가능성은 아예 막아두는 게 낫다고 생각해.”

 

  “그것도 올바르진 않지만 휴정도 올바르지 않은 일이에요. 그래서 케이네 씨와는 만나보셨나요?”

 


 그녀는 ‘올바르다’라는 말을 붙이고 살았다. 최후의 심판을 하는 염마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케이네의 경우처럼 오히려 그 ‘올바르다’라는 말이 가끔 그녀의 작은 몸을 붙들고 있는 것 같아서 코마치는 걱정이 들었다.

 

 지금도 부담감에 굉장히 피로에 쌓여있고 말이다.

 

  “응. 시키 님처럼 올곧은 성격이긴 하지만 아직 주변의 수많은 것들에 서투르게 반응하긴 하더라.”

 

  “그렇죠. 아무리 절반이 요괴 백택이어도 태생은 인간이니 서투른 건 어쩔 수 없죠. 꾸준히 그녀와 함께 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이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도록 해주세요.”

 


 놀려먹는 맛은 엄격한 시키 님 보단 서투른 케이네 쪽이 재미있을지 몰라도 설교를 클래식도 아니고 다른 버전으로 두 번 듣는 건 싫어서 드문드문 만나고 싶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시키는 표정에서 보이듯이 자신이 환상향의 삶과 죽음이라는 순리의 끝을 틀어막고 있다는 생각에 초조해 있었다.

 


 연신 한숨을 내쉬며 사유서를 끄적끄적 적어가는 시키를 그녀는 옆에 있던 침대에 앉아 반대로 든 낫에 턱을 괴고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숙제하기 싫은 아이에게 숙제를 시킨 느낌이었다. 눈치를 보던 시키는 그녀에게 말했다.


 

  “코마치. 사신의 낫은 소중히 관리.. 하아. 제발 제 앞에서 바르지 않은 행동을 해서 설교할 거리를 늘리지 말아주세요. 아니면 이 비합리적인 일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사유서를 적는 걸 도와주시던가요.”

 

  “흐음...”


 

 그녀는 어떻게 하면 시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다. 자기 기준이면 술과 안주를 펑펑 마시다가 배도 부르고 취기가 얼큰히 오를 즈음에 운치 있는 장소에서 누워 하늘의 색을 구경하다가 자는 게 최고였지만, 저 행동에 시키를 대입해보니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생각을 하느라 시선이 위로 올라가있자 시키는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조금 더 신경질적이었다.

 

  “그 사신임을 표시하는 낫 좀 제대로 들고 계시라고요. 최소한 제 회오의 봉처럼 말이에요.”


 

 생령의 죄목을 적어 판결을 내리는 봉, 회오의 봉은 확실히 매일 깔끔하게 먼지를 닦고 조심히 다루어 대단히 깨끗했고 각이 잘 잡혀있었다. 매 재판마다 죄명을 적음에도 불구하고 먹물자국 하나 없었다. 쓰는 사람을 닮아있었다. 반면에 그녀의 낫은 흔히 생각하는 서슬이 시퍼런 사신의 낫에 비해 끝이 꼬불꼬불 꼬였었고 이도 드문드문 빠져 있었으며 여기저기 물때와 흙먼지가 묻어있는 게 역시나 쓰는 사람을 닮아있었다.



 괜히 마음에 안 들어 자기 낫에 붙어있던 돌조각을 집어 창밖으로 던진 후 잠시 앉아있더니 그녀는 일어서서 시키의 책상 앞에 다가갔다. 풍채 좋은 몸이 시키의 앞에 서자 아무리 공명정대한 그녀도 잠깐 놀랐다. 그리고 자기는 마르고 작아서 염마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몸매라고 생각해 살짝 질투심도 들었다.

 

  “지금 뭘 하시는 건가요?”

 

  “잠깐 인간 마을에 쉬러 가는 건 어때? 지금 상태로는 시키 님,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 아예 문제에서 멀어져서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짧은 생애에 삶도, 죽음도 한 번 밖에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지식으로 환상향의 순리의 끝을 담당하는 저에게 말을 건네시는 건가요? 저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없다면 큰일이 날...”

 


 화가 났었는지 언성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피곤에 젖어 초점마저 풀린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던 시키였다. 그렇게 높아지던 언성은 갑자기 뚝 끊어지더니 피로를 버티지 못했는지 그 자리에 마치 실이 끊긴 목각 인형처럼 그녀는 쓰러졌다.

 

  “아이고.”

 


 코마치는 우선 그 충격에 흔들리는 책들을 잡아 균형을 다시 맞춘 후 작은 시키를 들어 침대에 뉘었다. 누이는 동안에도 작은 목소리로 ‘전 괜찮아요..’를 말하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코마치는 휴정을 하는 이유가 적힌 글을 읽었다.

 

   “뭐 이정도면 잘 썼네. 참...”

 


 그리고 대강 몇 글자를 더 적어서 밖에 있던 생령을 시켜 이걸 다른 염마들에게 보내라고 전달한 후 그녀는 누워서 잠에 든 시키의 옆에 앉았다. 잠자는 것도 피곤한지 연신 앓는 소리를 내면서 깊은 꿈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찌 자는 자세도 이리 바른지 그녀는 온 생활, 온 몸에 쌓인 시키의 올바름을 보면서 잠깐 웃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한 손은 어깨를 주무르고 다른 손으론 그녀의 초록색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음... 맛있는 거나 잔뜩 먹여야겠다.”

 


 잠시 잠을 자면서 쉬게 그녀를 두고 이래저래 방안을 뒤지며 나갈 채비를 하는 코마치였다.

 

 


*

 

 히나가 학교에 일찍 온 이유는 평소보다 보이지 않는 소리의 양이 적어 마음이 편안한 점도 있었지만, 오늘 수업 중 하나인 미술 수업 때문에도 일찍 왔다. 손이 예전부터 굼떠서 그림 그리기도, 찰흙으로 만들기도 느린 편이었는데 오늘 수업은 섬세한 손놀림을 필요로 하는 매듭과 리본 만들기였다.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차디찬 한숨부터 나왔다. 아침에 혼자 들이마시는 교실의 공기는 먼지 냄새가 약간 났지만 차갑고 맑았다.

 

  ‘어쩌지... 어제 연습할 때도 한 번도 제대로 못 만들었는데..’

 


 부모님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술도가 겸 술집을 하고 있어 엄마는 술을 나르느라 바빴고, 아빠는 가정 방문 알리려는 데에도 그렇게 호통을 지를 정도로 술 만드는 데에 빠져 있었으니. 혼자 연습해도 오히려 손 끼리 엉켜 매듭이 되는 기분이었다.

 


 ‘지금부터 한두 시간 연습하면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노끈과 가위를 들고 왔지만 어제도 못하던 게 지금 연습한다고 될까 걱정이 들어서 자르던 노끈을 들고 고개를 숙였다. 책을 펴고 노끈을 적당히 잘라가며 매듭을 만들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자니 그녀는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자신의 굼뜬 손을 비난하는 것’부터 ‘매듭 묶기가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 노력할 필요 있나’ 하는 자기 합리화까지. 그 와중에도 손은 열심히 매듭을 만들어 보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발이 복도 바닥에 닿아서 나는 오래된 나무 소리가 점점 가까이 오자 그녀는 노끈과 가위를 책상 아래에 숨기고 소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발소리 간의 간격이 자기보다 넓은 걸로 어른이 복도에서 걸어서 다니는 걸 추측했고, 지금 시간에 이 장소에서 돌아다닐 어른이면 케이네 선생님이나 청소하는 스즈키 할아버지 정도로 생각했다. 일단은 책을 읽는 척 하면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드르륵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고 케이네 선생님이 빼꼼 머리를 드러냈다. 예상은 했지만 깜짝 놀란 히나였다. 조심스레 찻잔을 들고 온 그녀는 말했다.

 

  “미안, 놀라게 해서.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감기 걸릴 수도 있으니..”

 

  “아.. 감, 감사합니다.”

 

  “그럼, 마시면서 하던 거 열심히 하세요. 저는 히나 같이 착하고 착실한 학생이 있어서 정말 가르치는 보람이 있어요.”


 

 그녀는 찻잔을 집어 받은 후 자기가 꺼낸 말이 부끄러워 종종 걸음으로 교실을 나가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귀에 좋다는 현미차가 담겨 있었다. 코에 가져다대기 전부터 고소한 냄새와 푸근한 온기가 올라왔다. 지금 마시기에는 너무 뜨거워서 일단은 옆에 두고 발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걸 확인한 후 다시 매듭 만들기 연습에 집중했다.

 


 얼마정도 열중해 있었을까, 대처도 못할 만큼 빠른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짧은 간격으로 우다다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같은 나이대인 것 같았지만 히나는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은 일이었다. 엉거주춤 노끈과 가위를 숨기려고 했으나 작은 손에 있던 노끈 묶음은 데굴데굴 굴러갔고 동시에 교실의 문이 강력하게 열렸다.

 

  “좋았어! 일등으로 도차악!”

 

  “아.”

 


 무심하게 힘이 닿았던 대로 굴러가는 노끈 묶음은 문을 열고 당당하게 소리치는 유우다치의 발 앞에 닿았다. 유우다치는 그걸 집어 노끈이 닿은 방향을 보았고 그 자리에는 그녀가 있었고, 혼자 매듭과 리본 묶는 걸 연습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킨 게 부끄러워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 히나나가 먼저 와 있었네. 으아, 아까워라.”


  “다찌...”


 

 그녀는 유우다치가 미운 것도 아니었는데 들켰다는 마음과 빠른 발걸음과 큰 문 소리에 놀랐던 마음이 섞였다가 동시에 녹아내리면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유우다치는 이유는 자기가 일등을 했다는 것에 대한 고집인지, 아니면 굴러가는 노끈을 잡지 못한 게 분해서 우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은 노끈을 돌돌 말아 올리면서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음, 히나나. 미안해.”


  “그런거.. 아니야..”

 

 

 훌쩍거리는 걸 이어가면 매듭과 리본 묶는 연습을 못하고 유우다치와 다른 아이들에게 추태를 보일까봐 그녀는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파들파들 떨면서 울음을 참는 그녀를 유우다치는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옷깃으로 눈물을 닦은 히나는 대충 말린 노끈 뭉치를 받아서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건넸다.

 

  “사실.. 다찌. 오늘, 리본이랑 매듭 만들기 하잖아..”

 

  “아, 그랬어? 히나나는 그런 것도 아는구나.”

 

  “그 매듭을.. 못 만들겠어.”

 


 그녀는 책상 안에 숨겨두었던 끈들을 꺼냈다. 다들 몇 번 씩 연습해서 끈에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제대로 묶인 끈은 하나도 없었다. 유우다치는 그걸 바라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 번 터지려 했던 눈물샘은 다시 터지긴 쉬워서 지금 눈빛이 자신을 바보같이 보는 거라 생각한 그녀는 다시 울음이 올라와서 침을 삼키거나 고개만 돌려도 왈칵 터질 것 같았다. 대신에 유우다치는 그녀의 한 손에 접힌 자국이 난 끈을 쥐어주었다.

 

  “히나나, 내가 도와줄게. 이거 나 진짜 잘해서 아빠가 칭찬해줬었어.”

 


 능숙하게 작은 손을 이리저리 돌리니 손목에 작고 귀여운 리본 팔찌가 만들어졌다. 평소에 도깨비처럼 뛰어다니고 왈가닥이던 성격과는 달리 이 동작은 굉장히 섬세했다. 성격대로라면 팔목에 자국이 생길 정도로 꼭 묶었을 건데 그렇지 않은 점에서 그녀는 확인했다. 그리고 굉장히 신기해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와아... 정말이네. 그러면 수업 시작하기 전 까지만 도와줄 수 있어?”


  “당연하지, 내가 잘 하는 거니까 히나나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야.”


 

 나중에 알았지만, 유우다치네 아버지, 사토 씨가 짚으로 만드는 바구니는 탄탄해서 인간 마을 대부분의 사람이 쓰는 좋은 물건이었다. 그녀의 집과는 반대 방향이고 유우다치는 워낙 밖에서 요정과 어울리거나 동네 아이들과 우당탕탕 다니는 걸 좋아해서 몰랐었다.

 


 책에 적힌 매듭 묶는 순서 그림은 손도 어른 손이고 묶는 것도 대강대강 보여줘 따라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녀와 크기가 비슷한 유우다치의 손을 보고 천천히 연습을 하니 간단한 매듭과 리본 정도는 따라할 수 있었다. 다음 페이지의 매듭이나 리본으로 넘어가니 다시 꼬이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유우다치는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히나나! 매듭은 잘 못 묶는구나.”

 


 생글생글 웃는 유우다치의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보고나자 그녀는 다른 건 다 섬세해도 손이 굼뜨다는 단점과 오늘 아침에 일찍 와서 열심히 연습한 자신에게 큰 보람을 느껴서 케이네 선생님과 학생들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끈을 묶었다. 귀가 밝아진다는 소문이 있는 현미차는 존재감이 잊혀 진 지 오래였다.

 

 



  시간은 어느덧 해가 중천에 뜰 무렵, 평소의 밝혀두던 등불의 온기와 삼도천에서 부는 차디찬 강바람의 한기와는 다른, 햇볕의 아늑한 온기와 환절기의 시원한 바람을 느낀 시키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평소와는 다른 왁자지껄한 소리들과 식기들이 부딪치는 소리. 씁쓸한 찻잎이 달여지는 냄새와 달콤한 다과의 향 사이에 섞인 흙냄새. 그리고 바람 속 공기처럼 흘러 다니는 요괴의 기운들이 그녀를 깨웠다.

 

  “으음.. 여긴 어디지?”

 

  “안녕. 시키 님.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잠은 잘 잤어?”



 고개를 들고 눈을 부비고 나니 주변에 인간들이 가득하고 그 사이에 코마치는 그녀의 옆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모자와 회오의 봉은 코마치가 가지런하게 정리해 옆에 두었다. 그녀와 시키는 인간 마을에 온 것이었다. 당황한 그녀는 말했다.

 

  “잠,, 잠깐. 여긴 어딘가요? 사유서는요? 일은 어떡하고요?”

 


 당황하는 그녀에게 코마치는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시키의 코앞에 건넸다. 이미 시간이 좀 됐었는지 찻잔은 적당히 따뜻한 온기를 내고 있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꽃향기가 시키의 잠에 잠긴 감각들을 깨웠다.

 

  “사유서는 보냈어. 잘 썼던데. 일단 이거 마시면서 이야기하자. 수소문해서 찾아온 찻집이니까.”



 무작정 휴정을 한 뒤, 한다는 일이 원래 하던 일의 테두리 밖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그녀는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삼도천 앞에 한없이 기다려야할 생령들, 재판이 멈춰 잡무를 해서 업을 태우던 걸 못하고 있는 생령들 등 자기가 없어서 일어나는 온갖 걱정거리들이 그녀의 표정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레 코랑 마주치고 있던 찻잔을 받아 안의 내용물을 바라보았다. 선홍빛 차의 안에 작은 꽃들이 피어서 물결에 따라 살랑이고 있었다. 살짝살짝 잔을 움직이니 꽃이 반응이라도 하는지 진한 꽃향기를 풍겼다. 크게 숨을 들이쉬어 향기를 몸에 담으니 천천히, 몸 안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코마치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보면서 살짝 웃고 있었다. 벌컥벌컥 차를 마시고 컵을 탁상에 놓고 말했다.

 

  “크. 맛없어. 나는 역시 입에 쩍쩍 달라붙는 찐한 술이 좋다니까. 시키 님은 이런 걸 좋아하겠지만.”

 

  “호...”

 


 한 모금 입에 담자 맡던 것 보다 더 강렬한 향이 마치 그녀가 꽃이 된 기분이었다. 기분 좋게 상기된 시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코마치는 씹고 있는 모나카가 달콤했다. 천천히 혀로 머금은 차에 물결을 만들자 씁쓸함 사이에 간간이 피는 단맛과 정신없는 향이 삼키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아직 차가 많이 남았다고 자신을 안심시킨 후, 겨우 삼켜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온기와 꽃향기 때문에 혀끝이 얼얼한 상태로 말했다.

 

  “..맛있네요. 굉장히.”

 

  “그치? 이게 뭐라고 했더라.. 아, 국화차랬다.”

 

  “친숙한 꽃이네요. 그게 이런 향을 낼 줄은 몰랐습니다.”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마시고 있는 그녀였다. 계속 마시는 그녀를 마주보며 코마치는 말했다.

 

  “시키님, 오늘은 푹 쉬어. 그동안 무거운 걸 다루느라 고생했으니까.”

 

  “그런가요?”

 

  “그럼. 그런 무거운 것들에 휘둘리다가 망한 사람이나, 천명이니 거대한 진리라니 하는 무거운 것들을 탓하면서 자기들의 행동을 정당하다고 하는 생령들과 이야기를 나눴었거든.”


 

 잠시 오늘 아침에 정신과 육체 모두가 피로한 상태로 신경질적이게 쏘아붙였던 말들이 떠올라 그녀는 잠시 마시던 걸 멈췄다. 하지만 자신을 걱정하면서 다른 인간들의 예시를 드는게 마치 징검다리를 한 칸 씩 건너편의 친구에게 건너가려는 꼬마아이의 천진난만함 같아서 표정이 풀렸다.

 

  “푸흡, 너무 많은 생령에게 판결을 내려서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그 인간들의 혀는 기름지고 유연해서 지금은 좋은 과수원이 되어있겠네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코마치 양.”


 

  “.......네?”

 


 그 말에 주변 인간들이 그들을 무서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직접적으로 혀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경외의 시선에 의기양양해진 시키와 얼어붙은 코마치의 표정 차이도 볼거리였다. 지금 자기에게 몰린 시선을 의식한 시키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지옥에서 벌을 받기 싫으면 공덕을 쌓으라는 설교를 앉은 사람들에게 하려고 했지만 곧바로 시키를 한 손으로 안고 밖으로 나가는 코마치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같은 시각, 평소보다 시원한 날씨의 6월의 초여름 속에서 적당히 자리를 잡은 히나와 유우다치는 점심 도시락을 꺼내서 먹고 있었다. 술안주로 어울리는 기름진 고기를 삶고 튀긴 게 반 정도 차지하는 히나의 도시락과 야채 절임과 가지 조림이 반을 차지하는 유우다치의 도시락은 보기에도 대비가 느껴졌다.

 

  “점심 맛있게 먹어.”

 


 튀긴 고기 한 점을 유우다치의 밥 위에 얹어주며 히나는 말했다. 유우다치는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 하면서 가지조림을 하나 올려 흐르는 간장을 적당히 털은 후 그녀의 도시락 위에 얹어줄려고 했다. 그때, 반사적으로 히나의 표정은 조금 굳어있었다.

 

  “음? 히나나. 왜 그래? 혹시 내가 손에 간장이라도 흘렸어?”


  “아니.. 아냐.”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녀였지만 배가 먼저 고팠기에 가지조림 하나를 집어 크게 물었다. 입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히나도 배가 고파지기 시작해서 받은 가지조림을 도시락 구석에 치우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절반 정도 먹고 시선이 점점 밥에서 다른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유우다치는 그녀의 도시락을 보았다. 조용조용한 그녀답게 얌전하지만 빠른 속도로 고기와 밥을 먹었지만 가지조림은 구석에 계속 있었다. 유우다치는 물어보았다.

 

  “히나나. 가지조림은 안 먹는 거야?”


  “아? 아아. 그게, 난 맛있는 건 가장 나중에 먹는 걸 좋아해서..”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그녀는 마주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히나나는 어른 같네! 나는 맛있는 건 못 참겠어서 가장 먼저 먹거든.”


  “아하하. 그나저나 오늘 매듭이랑 리본 만들기 가르쳐 준거 정말 고마워. 다찌 덕분이야.”

 

 화제를 바꾸기 위해 칭찬을 하자 기쁜 걸 어쩔 줄 몰라 몸을 꼬는 그녀였다. 부끄럽고도 기뻐서 연신 방글방글 웃으며 눈을 안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단순한 유우다치에게는 꽤 복잡한 감정이라서 반 쯤 남긴 도시락의 뚜껑을 덮더니 새빨개진 얼굴으로 교실을 향해 냅다 달려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듣고 난 그녀는 가지조림을 들어 끝 부분을 살짝 먹어보았다.

 


 혀에 닿자마자 간장의 짠맛, 가지의 이상한 단 맛과 식감, 그리고 야채 즙의 느낌이 더해져 씹지도 않은 채 바로 뱉어냈다. 몸에서 ‘이건 먹는 게 아니다’라고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다찌.”

 


 ‘미안해’라는 발음이 마치 두 개로 갈라져 다른 무언가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히나는 처음부터 거짓말로 친해진 유우다치와의 관계에 대한 미안함과 그냥 평소에도 들리던 ‘보이지 않는 소리’의 일부일거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

 

 히나가 반 밖에 안 먹은 도시락을 몰래 버리고 교실로 들어가는 동안, 서당 옆에 있는 케이네의 집에는 익숙한 손님이 다른 손님을 데려왔었다. 역사서에 작은 깃털을 하나 꼽아서 접어두고 그녀는 마실 거리를 손님에게 챙겨왔다. 작은 그릇을 들고 오면서 그녀는 말했다.

 

  “아이들은 특별히 아픈 부분은 없어요. 곧 장마도 내리고 바람도 부는 날씨라서 요정의 기운 정도는 씻겨 내려가 요정감기가 걸릴 일은 없고요. 그런데 이 정도의 일로 그 정도의 일을 해결할 수 있나요?”

 

  “나이가 어릴수록 환상향에 퍼진 요괴의 기운에 짓눌려 병이 생길 확률이 높으니까요.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당신이 이 일에 어울릴 것 같아 코마치에게 부탁을 전해달라고 말을 했었습니다.”


 

 케이네는 코마치가 데려온 손님을 보았다. 한 쪽만 긴 옆머리의 단발을 하고 있는 체격이 작은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귀여워 보였지만 밝은 눈빛과 예의 있는 자세가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두 주먹만 꼭 쥐고 우물쭈물 하는 것 만 빼고 말이다.

 

  “아? 아아. 그러면 당신이..”

 

  “네, 코마치라면 절 염마님이라고 가르쳐줬겠죠. 시비곡직청 환상향지부에서 생령들의 마지막 재판을 하는 야마자나두, 시키 에이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앉은 자세로 꼬박 인사를 건넸다. 그래서 그녀도 맞받아 인사를 했다. 잠시나마 위엄있는 목소리때문에 재판장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었다. 그리고 시키의 시선은 코마치가 옆에 정돈해둔 모자와 회오의 봉에 향했다. 코마치는 편하게 책상에 더위에 녹은 찹쌀떡처럼 퍼져있었다.

 

  “코마치.. 카미시라사와 씨도 절 아시니 이제 그것 좀 돌려주실 수 있나요..”

 

  “에, 아. 으응. 그래. 잠깐 졸았네.”

 


 책상 위로 그것들을 건네자 시키는 빠르게 각을 잡아 모자를 쓴 후 두 손으로 회오의 봉을 잡아 수직으로 세워두는 자세를 취했다. 시키에게 있어선 안도의 한숨이 나올 만큼 편안한 모자와 회오의 봉을 쥐는 감각이었다. 케이네는 그걸 보며 조금 귀여운 면은 있다고 생각했다.

 


 코마치는 점점 책상에 녹아내려가는 모양새로 오늘 오후 중에 있던 일을 가르쳐주었다. 자기는 사신이 아님을 가르쳐주기 위해 낫도 두고 다니는데 라는 말을 뱀의 다리처럼 붙였다. 그러자 케이네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상관없어요. 딱히 그렇게 입고 다녀도. 사람들 그렇게 신경 안 써요.”

 

  “으에, 정말이야? 낫이랑 저기 꼿꼿해 보이는 염마님이 같이 다녀도 안 두려워한다고?”



 누가 꼿꼿하냐면서 평소 하던 대로 회오의 봉을 탁상에 내려쳐 위협하던 시키였다. 케이네는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요괴들이 인간 마을의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그런 하찮은 표정으로 그녀는 말했다.

 

  “제가 서당을 세운 이유도, 선생님이 된 이유도 그거였어요.”

 


 역사를 모르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뭐든지 적당한 환상향에서 적당히 사는거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삶이라지만, 엄연히 잊혀져가는 환상(요괴)들을 지키기 위해 생겨난 공간이 바로 환상향이다. 적당한 삶 속에서 인간 마을의 인간들은 환상향이란 개념도 멀어지고, 선대에 요괴 퇴치사 위주로 구성된 정신은 퇴색되었으며, 심지어는 환상향 결계들의 중심인 ‘하쿠레이 신사’마저 모르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신사의 무녀가 주기적으로 인간 마을에 내려가 신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피부로 위기가 닿지 않는 이상 시큰둥한 이야기였고, 하쿠레이의 무녀도 이변을 퇴치하기 위해 바쁘고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 무녀가 이런 걸 귀찮아하는 것도 있었다.) 요괴의 인간 마을 나들이는 자연스러워졌고 그들이 놀고 마시고 걸어 다니며 내뿜은 요괴의 기운은 인간 마을의 공기 속에 쌓였다. 그리고 그 무겁고 이질적인 기운은 모든 것에 예민한 아이들을 짓눌렀다...

 

  “... 버티는 건 순전히 아이의 몫이었으니 사람들은 이름을 대충 짓기 시작했어요. 소나기 오는 날 태어나서 유우다치, 벌레와 같으니 요괴가 잡아먹지 말라고 무시코 등등.. 자신들이 무지한 것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이상한 생각방법에 저는 느꼈고. 다음 아이들부터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가르치려고 생각중이에요.”


 

 눈을 감고 이야기를 음미하는 시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탁상에 엎드려있던 코마치가 말했다.

 


  “길 가다 우연히 들었는데, 다른 건 괜찮아도 역사 수업만큼은 못 버티겠다고, 애들이 그러라고. 너무 내용이 많고 복잡하대서. 의미는 좋아도 그게 그 무지하다는 어른들보다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

 

  “아...”

 

  “코마치! 무례한 질문이에요! 저는 카미시라사와 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가르치는 내용이 올바르다면 인간의 천성이 바름을 추구하기에 자연스럽게 역사를 받아들이겠죠. 저도 시간이 된다면 아이들에게 예절과 공덕에 대해 가르치고 싶네요. 저와 당신은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코마치는 그저 들은 내용을 말했을 뿐이라고 살짝 토라져서 턱을 괸 채 고개를 밖으로 돌렸다. 케이네는 시키가 장황하게 자신의 의견을 알아준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코마치의 의견을 귓등으로 듣기에는 지쳐있는 매번 표정들과 태도를 봐왔기에 짧은 소리만 내고 가만히 있있다. 잠시 정적과, 시키의 설교와, 코마치의 시큰둥한 대꾸가 있었다.

 

  “저기.. 케이네 선생님.”

 


 작고 연약한 목소리가 옆에서 살며시 드러난 긴 머리카락과 함께 들리자 셋의 시선은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 슬며시 드러나던 얼굴은 시선을 마주치자 급하게 다시 숨었다. 케이네는 목소리로 대충 누구인가 짐작은 했지만 확인을 위해 살며시 그녀에게 다가갔다. 히나가 있었다.

 

  “히나. 여기는 왜?”


  “수업 시간인데.. 안 오셔서. 미안해요.”


  

 그녀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뿔싸. 이야기에 심취한 나머지 수업시간을 잊었었다. 당황한 케이네는 빠른 걸음으로 서재에 있는 역사서를 챙기러 갔고 코마치와 시키는 히나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분위기와 시선을 버티지 못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햐~ 뽀얗고 머리도 새까만 게 예쁜 인형 같네.”


  “그러게요. 선하게 생긴 게 매력 있는 인간이네요.”

 

  “..고맙습니다.”


 

 시선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히나였다. 낯선 어른과 언니가 주는 시선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발걸음 소리와 책 뒤지는 소리는 됐고 빨리 케이네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코마치는 고개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고 시키는 그것이 아이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설교를 입에 담고 있었다. 코마치는 말했다.

 

  “음, 히나. 아까 너 저기 나무그늘 아래서 다른 아이랑 점심을 먹지 않았...”


  “히이익!”


 

 히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혹시나 자기가 가지조림을 버리는 걸 코마치가 봤을까 싶어서였다. 시키는 그녀의 그런 행동을 보고 코마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코마치~. 아무리 그 아이가 귀엽다고 놀래키는 건 옳지 않아요..”


  “아니, 그냥 아까 저기서 본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건데...”

 


 히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코마치에게 말했다. 온 몸이 떨리고 있어서 그녀는 당황했다.

 

  “저기. 그 일, 못 봤던 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응? 밥 먹는 걸 왜...”


 

 쿠당탕. 코마치의 말은 계단을 부서져라 내려오는 케이네의 발소리에 멈췄다. 어지간히 책이 숨어있었는지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히나야. 가자.”

 

  “미, 미안해요. 코마치 언니! 초록머리 언니!”


 

 히나는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내며 한 손은 케이네에게 잡힌 채 교실로 갔다. 뒤에 더 말이 있었던 것 같지만 거리에 비례해 원래 작은 그녀의 소리가 더 작아져 들을 수가 없었다. 코마치는 영 찝찝한 기분이었다. 왜 밖에서 점심을 먹은 걸 못 봤던 걸로 해달라는 건지.

 


 그리고, 머리 둘 달린 뱀처럼 말끝에서 갈라지던 ‘미안해요’라는 목소리가.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걸로 생각한 코마치는 다시 책상에 엎드려 느릿하게 전병을 집어 들었다. 맞은편에는 언니라는 말에 표정이 풀려서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시키가 있었다. 장난기가 오른 그녀는 손으로 확성기 모양을 만들어서 말했다.


  “시키 언니~.” 


  “당신은 하지 마세요.”

 

  “히잉..”

 


 코마치에게 있어선 더욱 엄격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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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네임입니다. (성+이름 순서)


 카미시라사와 케이네. 시키 에이키 (야마자나두). 오노즈카 코마치. 카기야마 히나, 사토 유우다치 

 

Lv79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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