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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히나 이야기 +7 (끝)

아이콘 구미
댓글: 2 개
조회: 1924
추천: 1
2016-09-25 21:48:06
<- 이전 이야기 히나 이야기

*이 글은 동방프로젝트의 설정, 배경, 인물을 가져온 2차 창작입니다.



7.


 

 후회가 가득했다.


 

 멍하니 케이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끓어오르는 물을 건져온 것처럼 붉으락푸르락 익어가는 하늘에 물결구름이 어딘가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인간의 아이에서 학생으로 의미가 변한 게 이렇게 뼈저리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차라리 숨었던 역사를 파헤치려던 비밀결사만 제지하고 서당을 안 지었다면 돌머리 선생님이라 불릴 일도 없었고 조금 더 덜 아프게 이 상황들을 바라 볼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하아.”

 

  “죄송합니다.”


 

 자연스레 그녀는 한숨이 나왔다. 안절부절 하며 방안을 찾던 시키는 그 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지금도 자신이 판결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피안의 상황은 나빠지고 있었고, 차안 마찬가지로 징조가 나타나고 있었다. 전혀 관련 없던 사람까지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런 눌러앉은 분위기 아래서 코마치는 마당에 서 있었다. 같이 있으면 닮는다고 최근 들어 조금씩 설교가 아닌 조언을 했던 마음이 독으로 돌아와 있었다. 육체와 영체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충격 때문에 어린 생령은 기억의 대부분을 잃고 그저 피안에서 자기가 하던 돌탑 쌓기나 뛰놀기를 하겠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자신이 들어간 점이 불순물 같았다. 걷어내고 싶은 마음은 괜히 잘못 없는 마당을 낫으로 휭휭 쓸었다. 땅에 자국이 남고 흙먼지가 일어났다. 서로가 서로의 방법대로 후회를 하는 시간마저도 일각이 급한 시키는 그녀들을 호명하며 말했다.

 

  “... 이치를 어긋나 버린 제 불찰입니다. 장소 기준으로 환상향 안에서 액을 모으고 내뿜는 곳은 없었으니 유우다치의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찾아보도록 하죠.”

 


 코마치는 휘두르던 낫을 멈추고 소리 나게 바닥을 찍은 후 턱을 괴고 말했다.

 

  “스미레는 몇 달 전에, 동생인 아오이는 논외고. 남은 건 다찌 아빠랑...히나.”

 


 ‘히나’라는 단어가 들리자 정신을 차린 케이네는 초점을 코마치에게 두었다. 그녀의 뒤에 있는 책상에는 불안해하는 시키와 술병이 있었다. 술병에 있는 물이 히나의 영혼을 녹인다는 상상을 하니 무서움에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히나를.. 영멸시킬 생각이신가요?”

 


 코마치는 턱으로 시키를 가리켰고, 시키는 눈을 마주치치 않은 채 회오의 봉에 시선을 피해두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에.”

 


 짧은 신음소리를 내며 몸에 힘이 풀린 케이네였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걸 코마치가 막으려 했지만 막지 않는 편이 더 낫겠다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넘어질 듯 말 듯 그녀가 걸어간 곳은 문 앞이었고 그녀들을 마주보고 두 손을 펼친 케이네는 말했다.

 

  “나가지 말아주세요. 막을 거에요.”

 


 시키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행동이 이해는 됐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모두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에 설교보다는 그녀의 입장을 고려하는 말을 하고 싶었다. 천천히 신발을 신고 문 앞에 일렬로 된 돌담길을 걸으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 계시고, 또 다른 학생들이 액에 물들..”

 

  “제발, 그런 이야기는 짧게 해 주세요.”

 


 처음에는 그 올바른 모습이 보기 좋게 다가와서 서신을 나눠보기도 했던 케이네였지만 지금 천천히 다가오며 여러 가지 말을 하는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의해 밀려서 오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무거웠다. 코마치는 점점 가까워지는 둘을 보고 있었다. 작은 발걸음은 조금씩 빨라지더니 어느덧 한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복잡한 마음이 초록빛 눈동자에, 괴로운 마음이 붉은 눈동자에 맺혀있었다. 그 자세 그대로 그녀는 말했다.

 

  “코마치, 술병을 들고 오세요.”

 


 코마치는 지그시 시키를 보더니 일어나서 탁상에 있던 술병을 집어 들었다. 차안에서 들고 있는 피안의 액체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그녀의 발소리를 들은 시키는 말했다.

 

  “가도록 하죠. 빨리 환상향의 흐름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흐응...”


 

 케이네가 펼쳤던 팔은 점차 수그러들고 있었다. 자기도 알고 있었다. 자기가 막기에는 터무니없이 크고 무거운 ‘이치’란 것을. 수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 것 보다 이미 정을 붙인 유우다치와 히나가 해를 입고, 입을 수도 있는 사실이 더 와닿는 건 자신이 인간이라서 생긴 미련함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팔의 힘이 사라졌다. 코마치의 발걸음 소리가 더 가까워지자 머리 속에는 그저 생각할 시간만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게 고민하는 소리를 내던 코마치는 시키에게 말했다. 뺨 털이 따끔따끔했다.

 

  “아아, 지금 뭘 말하려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지금 뭘 말하는...”

 


 시키는 돌아보았다. 그녀는 술병을 열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모조리 마시고 있었다, 급하게 마시느라 대부분을 옷에 흘렸지만 그 과격한 모습은 그녀들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다 마시고 난 후 입을 닦은 코마치는 말했다.

 

  “으웩, 맛없다. 차안에서 마시니 더 맛없네.”

 

  “코마치!”

 


 꽤 벌어져있던 거리를 한 걸음에 당겨온 코마치는 자신을 향해 놀란 눈으로 소리 지르는 그녀의 바로 앞에 섰다. 중압감이 상당했다. 눈높이를 맞추고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 코마치는 입을 열었다. 험상궂은 선홍색 눈빛이 부담스러워 그녀는 시선을 피했다.

 

  “시키 님, 요 일주일 간 얼마나 자기가 우스꽝스러웠는지는 알고 있어?”

 

  “저는 그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했을 뿐입니다.”

 

  “하아, 아아. 그래서 그렇게 올바른 사람이 추측도 해보고. 자기 몸을 혹사시키고,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단 말이지?”

 

  “환상향의 삶과 죽음이라는 고리를 위해서...”

 


 그 말이 들리자마자 코마치는 두 손으로 시키의 작은 양 어깨를 쥐었다. 꽉 쥔 느낌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험상궂었던 표정은 실망감과 분노, 그리고 자책감이 뒤섞인 복잡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 잠시 말을 삼키던 그녀는 모은 말을 내뱉었다. 케이네는 저 분위기를 피해 문에 기대어 있었다.

 

  “너는 그런 이치란 손에 꼽혀있는 장갑 인형이야? 논리정연하게 판결을 내리고 매사에 흐트러짐 없이 그걸 다루던 너는 어디가고.. 휘둘리는 것도 모른 채 그걸 남한테도 휘두르는 중인 게, 시키 에이키. 너였어?”

 


 시키는 응수했다.

 

  “우둔한 말을 함부로 내뱉지 마세요! 제 직책은 그런 겁니다!”

 

  “그래, 난 그런 거가 싫어서 낫도 가끔 두고 다니지. 우둔하고, 미련하기도 해. 그런 모습을 꽤 동경했거든. 시키 님을 말이야. 요 일주일 같이 다니면서 들은 바보 같은 생각인데.. 힘들면 도와줄게. 휘둘리지 말아줘. ‘시키 에이키’로써 움직이고 말을 해줘.”

 

 

 그 말을 듣고 시키는 마음이 떨렸다. 어느 순간부터 그걸로 남의 말들을 짓눌러 왔을까. 코마치가 피로에 젖어 억지로 사유서를 적던 그때도, 서신으로 아이들의 역사를 지우라는 무리한 부탁을 한 것도, 최후의 방법으로 자신이 재판으로 정해야 할 생령의 운명을 아예 없애려고 했던 것 모두.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아이카도 그렇고, 사신들은 맡은 일을 열심히 해. 나는 좀 아니지만 할 땐 잘 하고. 저기 케이네는 똑 부러지는 거가 얼마나 괜찮은데.. 그러니까.”

 


 이해가 아니라 공감을 바라는 코마치의 말이었다. 더 말을 잇고 싶었지만 떨리기 시작한 시키의 몸이 코마치의 품에 파묻혀서 그만두었다. 자기 모습을 보이는 이럴 때는 참 서투르다는 생각이 들어 꼭 안아주었다. 잠시 감정을 해소할 자리와 시간을 주었다. 가슴팍이 뜨겁게 젖어가는 걸 느꼈다.

 

  “참 모두들 서투르다.. 그치?”

  


 코마치는 케이네에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다가 목소리가 들리자 짧게 미소를 지었다.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코마치고 어렵지만 목에 힘을 주어 하늘을 보았다. 연보랏빛 하늘이 해가 점점 사라지면서 파랗고 어둡게 변하고 있었다. 소나기라도 내리런지 두꺼운 구름들이 층층이 쌓여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검붉은 기운이 끈처럼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기분이 드는 부자연스런 색 조합이었다. 코마치의 목 뒷덜미가 시큰했다. 이야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떠한 기운이 실체가 보일 정도면 요괴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요괴란 것도 크게 보면 기질이 구현된 것이니 별 차이가 없었지만 드디어 암암리에 숨어있던 액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낫을 들춰 멘 코마치는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들기고 앞서서 걸어갔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근원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문을 열자 늘 환상향의 밤이 그렇듯 술잔치에 빠져있는 사람과 요괴가 껄껄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케이네는 머리가 지끈거려서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술판이라니, 저 분들은 저게 안 보이는 걸까요?”

 

  “자기 손가락이 다섯 개인 것도 신기할건데 뭐. 내버려둬.”

 


 인간의 가치를 저렇게 술에 절여서 요괴들에게 수명도 짧고 지식도 부족한 하등생물 취급 받는 걸 껄껄거리며 넘어가는게 케이네는 기분이 나빴다. 가르치는 아이들은 저런 태도로 살아가지 않게 인간의 역사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떠오르는 걸 당장 지워가면서 맞추고 싶었지만 더 급한 일이 있었기에 서둘러 하늘의 검은 자취를 따라 걸어갔다.

 


 서당을 한 바퀴 돌아 가니 이전에 소풍장소로 썼던 공터로 올라가는 길목이 보였다. 하늘에 흘러다니는 검붉은 기운만큼 기괴한 모습이 보였다. 마치 역병의 뱀이 쓸어다니며 지나간듯 올라가는 길목의 나무와 풀, 그리고 묶어두었던 꽃줄기 매듭이 모조리 시들어 있었다.

 

  ‘’으, 지독한 냄새네요. 차가운 기분도 들구요.“

 


 주변을 둘러보니 산의 요정들이 공포에 달달 떨면서 자기 곁에 있는 식물을 붙잡고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네와 눈이 마주치자 자기 주변의 풀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요괴들은 이미 술판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올라갈 수록 불쾌한 느낌이 강하게 들고 환청도 들리는 것 같았다.

 


 서서히 검파랗게 변하는 빛이 나무들 사이에서 비추는 공터의 작은 돌에, 히나는 앉아있었다. 그녀를 보자 케이네는 외마디로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히나!”

 


 거리를 좁힐 수가 없을 정도로 지독한 기운이 그녀의 주변에서 퍼져 나왔다. 이젠 보이기 시작한 수많은 소리들 사이에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두 손에는 풀어져 있는 작은 리본용 천이 있었다.

 

  “아아, 케이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주변에 그 검붉은 기운들은 무엇인가요.”

 


 시키와 코마치는 그것이 액이 내뿜는 기운임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저 작은 아이가 온전한 육신과 영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입을 닫고 있었다. 빛마저 빨려들어가듯이 검붉은 기운을 손에 감으며 히나는 말했다.

 

  “줄곧 보이지 않는 소리라고 불러왔는데, 이제는 보이네요. 여기 오니 계속 미안하다고 속삭이고 있어요. 괴로워해요. 슬퍼해요.”


 

 그러면서 히나는 머리카락을 앞으로 모아 끝에 리본을 묶기 시작했다.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리본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손동작은 틱틱거리며 빗나가는게 안쓰러웠다. 두 세번 시도를 하고 헤진 끈을 쥐고 말했다.

 

  “아. 유우다치에게 스스로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요.”

 

  “... 전학 가서 이젠 못 만나요.”

 


 

 눈을 마주치자 케이네는 빛을 잃고 공허하게 깜빡이는 검은 눈빛 앞에 말을 잠시 삼켰다. 눈동자는 서서히 검은 액들이 감싸가고 있었다. 케이네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히나가 말을 끊고 말했다.

 

  “또 거짓말 하신다. 저.. 봤었어요.”


 

 점점 새카맣게 변하는 눈이 내뿜는 시선과 가볍게 웃는 얼굴에 케이네는 온 몸이 뚫린 기분이 들어 주저앉았다. 바르게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선의로 미루는 충격을 히나는 거짓말과 함께 느끼고 있었다. 미안하단 말을 하고싶었지만 바닥에서 기름처럼 새어나오던 액에서 뿜어나온 연기가 케이네의 마음의 파장에 반응해 그녀를 뒤덮고 있었다.


 

 코마치는 낫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켜서 케이네가 액에 반응하는 걸 막았고 시키는 바르게 서서 히나에게 말을 걸었다.

 


  “카미시라사와 씨는 당신을 걱정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된 건 진 알 수가 없지만 그 액들을 가라앉히세요.”

 

  “초록머리 언니도 두 귀를 막은 코마치 언니 곁에 있었죠. 케이네 선생님도 있었구요. 새하얀 천에 덮여있던 것.. 맞죠?”

 


 고개를 끄덕이자 허탈하게 웃고 버릇처럼 리본을 묶으려하다 실패하는 히나였다. 치마의 흔들림이 마치 바닥에서 조금 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코, 아이코 소리를 내던 그녀가 말했다. 새까만 액의 기운이 입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면 언니가 매듭 묶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한 손으로 여러 번 묶다가 실패해 너덜너덜한 붉은 천을 건넸다. 가까울 수록 가슴을 후벼파는 기운이 느껴질 것 같아 머뭇거리는 시키였다. 히나를 보고싶다고 했지만 이미 많이 지친 케이네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두고 온 코마치는 시키의 행동을 보았다.

 


 시키는 모자와 회오의 봉을 풀이 고르게 쌓인 둔턱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걷자 서 있던 자리에서 느끼던 기운과 확연히 다른 한기가 느껴졌다. 겉이 아닌 속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기운이었다. 발 주변에는 기운과는 다른 진득한 액의 형체가 경사를 따라 공터를 기어가며 주변을 썩히고 있었다. 두 걸음을 걷자 히나는 더 떠오른 몸을 숙여 시키를 향해 리본을 건넸다.

 


 공명정대한 그녀도 마치 심장 안에서 고드름으로 외벽을 긁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온갖 소음들이 귀를 파고 들어왔다. 기후상의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온 사방으로 퍼지는 기운에 비대칭으로 긴 한 쪽 옆머리가 흔들렸다. 부들거리며 주저앉으려하자 히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하아..”

  

  “시키 님!”

 


 코마치는 사이를 파고들어 시키를 안았다. 겉이 얼어붙은 듯이 차가웠다. 말라붙은 입술을 겨우 떼서 시키는 말했다.

 

  “판결..이라도 내려야 할까요?”


 

 빠르게 액이 닿지 않는 곳에 그녀를 누인 후 코마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히나는 여전히 떠올라 있었다. 새까만 눈은 코마치를 바라보더니 살짝 웃고 다시 리본을 건넸다. 마치 시험하는 기분이었다.

 

  “저도 그 정도는 힘들어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오늘.. 길가를 걸어왔다가 그걸 보고 다시 돌아가는데, 여전히 똑같이 마을은 자기 할 일을 했어요. 솔직히 화가 많이 나고, 꿈인줄 알았어요. 하지만... ”

 


 히나의 입에서 끈적한 느낌의 액들이 기어 나왔다. 아마 그릇에서 넘쳐흐르는 물과 같은 모습이었다. 질량이 없는 형체가 마치 맹수의 침처럼 뚝뚝 흘러내려 주변 풀들을 시들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친하게 지내던 곳 모든 곳에 다찌가 없는데, 앞으로도 계속 없을 걸 깨달았는데. 케이네 선생님의 거짓말을 들으니 저도 모르게 그 말을 진짜로 받아들였어요. 받아들이고 싶었어요. 제일 친한 친구였으니까.. 다찌도 마지막에 거짓말을 했으니까..”

 


 눈에서도 검붉은 액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눈물처럼 말이다. 끈적한 눈동자는 깜빡이지 않고 천천히 다가오는 코마치를 바라보았다. 케이네는 힘이 다 빠져 시키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그맣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히나는 끈을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하나 둘 등불을 밝히는 인간 마을을 바라보았다. 액들이 올려줘 높은 곳에서 바라 본 밤의 인간 마을은 마치 십자수처럼 아기자기했다. 귀를 기울이니 취흥에 겨워 악기를 겨누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인간 마을 밖에도 불빛이 있었지만 히나는 모르는 공간이었다. 어느새 자기 앞 까지 다가와 끈을 쥐고 그녀를 올려다보던 코마치에게 들으란 듯이 그녀는 말했다.

 

  “저기 정말 예쁘네요. 제가 좋아하는 이 모습을 유우다치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낫으로 겨우 균형을 잡고 있던 코마치는 그녀의 몸에서 액들이 더 지독하게 새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그녀가 담을 수 있는 액을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했다. 히나는 떠오르는 몸의 기분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밤의 환상향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음.. 가지 조림을 좋아했다면 이런 일도 안 일어났겠지?’

 

 

 그리고 오열했다.

 


 더 이상 나쁜 것들을 듣고 자라 움츠러들었던 자신을 재미있고 활기찬 곳에 데려갈 사람은 없었다. 활기가 넘쳐흘러 마구 뛰어다니지만 매듭을 묶거나 리본을 만들 때는 다른 사람처럼 집중하며 자기를 정성껏 도와주던 사람도 없었다. 인형 말고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스스로 알아내서 보여주고 나누고 싶었던 사람도 이제 없었다. 사람의 감정에, 그리고 히나의 큰 울음소리에 반응한 액들은 액체의 질감에게 기체로 변해 빠른 속도로 주변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검붉은 연기가 닿는 곳의 풀들이 메마르고 나무는 굳어버리고 있었다.

 


 힘이 좋은 코마치도 밀려나갈 정도의 기운 사이에 멀리서 요정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들도 위험할 것 같아 그녀는 땅을 낫으로 크게 베어 그 사이의 거리를 크게 늘렸다. 조금이라도 액이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늘렸는지는 자기도 몰랐지만 대충 검붉은 기운이 느려진 걸 보았다.

 


 한 걸음이 십 리와 같은 그녀였다. 불쾌한 바람이 불어나오고 한기에 힘은 점점 빠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유우다치에 대한 미안함이 액들에 반응하려 하고 있었다. 빠른 시간 안에 끝내지 않으면 자기도 지쳐버릴 것 같아 걸음을 더 빠르게 했다. 방향을 가늠 잡기 어려울 정도로 검붉은 기운이 감쌀 때는 히나의 괴성의 방향을 따라 걸어갔다.

 

  ‘이래서 두 귀를 막는 버릇이 생긴 거구나.’

 


 꾸준히 수치상의 거리를 억지로 늘려서 생긴 연분홍빛 공간을 그녀는 혼자 걸었다.

 


 얼마 정도 걸었을까, 그녀의 눈앞에 히나를 닮은 무언가가 있었다. 히나라고 부르기에는 미친 듯이 자신의 그릇을 넘어선 감정을 뿜어내는 게 마치 포자를 뿜는 버섯 같았다. 고통스럽게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검은 기운 사이에서, 사신의 눈으로도 평소엔 볼 수 없었던 생령의 형태가 보였다. 액들에 의해 찢겨져 나가려는 새하얗고 순수한 생령을 그만큼 밝고 새하얀 매듭들이 에워싸서 그것이 무너지는 걸 막고 있었다.

 

 매듭 모양이라니. 급한 상황인데 웃음이 나왔다. 낫을 쥐는 손이 더욱 무거워져서 제대로 집을 수가 없었다. 시키 님이 순리를 어기고 산 자에게 판결을 내리라고 부탁했다면 확실히 베었을 텐데. 아마 지금 휘둘러 베는 것을 생각하니 쓴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억지로 손가락을 움직여 낫의 자루를 쥐었다. 구불구불한 낫의 날이 잠깐 반짝였다.

 


 그것의 정 가운데를 베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얀 매듭, 까만 액, 하얀 껍데기 상관없이 모조리 두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서로 달라붙으려는 시도를 하다 실패해 영멸하는 과정을 지켜보려는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밖으로 새어나오던 것들이 모조리 히나의 안으로 들어오더니 그 틈을 채우고,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들어온 이후부터는 아무리 사신이라도 생령의 형태를 볼 수 없었지만 평평한 바위 위에 쓰러져 경련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이 아이 안에 있으려고 하는지 히나가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액들이 그 틈을 채우고 메워가자 히나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검은색의 머리와 눈동자가 요사스런 청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조금이었지만 자기 그릇을 키우기 위해 키도 조금 자라나는 것 같았다.

 

 코마치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원인은 알지만 결과가 상상과는 달라서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앞에 있는 것이 히나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코마치였다. 시키와 케이네도 아래의 서당 쪽에 피해 있다가 검은 기운이 사라지자 올라와서 히나의 상태를 보았다.

 

 코마치는 말했다. 너무 많이 걷고,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이 움직여서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 같았다. 히나 앞에 드러누웠다.

 

  “이건.. 뭘까?”


 

 케이네는 아직까지 몸 안이 차가워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더 아팠을 히나가 걱정되어서 입과 눈가에 아직 남아있던 검은 것들을 쓸어서 손에 담아 하늘로 날려 보냈다. 작은 액들은 가루가 되어 새카만 하늘 사이에 사라졌다. 청록빛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키는 어느새 기운을 차렸는지 모자를 쓰고 봉을 든 후 그녀들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카기야마 히나에요..”


 

 액들이 더 이상 끓어오르지 않자 생령의 윤곽도 사라져 히나의 영혼이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케이네는 코마치의 도움을 받아 히나를 등에 업었다. 그녀보다 더 차가운 몸이 등에 닿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한 순간의 긴 악몽을 꾼 것 같았다. 마치 그림자처럼 미안하단 말과 싫다는 말 같은 액들이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둘러 쌀 뿐이지 귀 안으로 닿거나 맘속에서 울리진 않았다. 그저, 자기를 지키기 위해 돌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떴다.

 

  “으음... 음..”

 


 눈앞에는 익숙한 세 사람이 있었다. 모두 피곤한 인상이었지만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지는 않았다. 가장 멀리 있는 케이네 선생님, 조금 가까이 있는 초록머리 언니,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코마치 언니가 있었다. 천천히 겉돌고 있는 기운을 거둬내고 입을 열었다.

 

  “저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하아.. 내가 이 말을 하긴 그렇지만. 넌 카기야마 히나가 맞니?”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철학적인 질문인가? 인문학적으로 서술을 해야 하는가? 우물쭈물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넋이 나간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네. 저, 카기야마 히나.. 맞아요.”


 

 불신의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낫을 쥐었었는지 자국이 남아있는 손을 펴서 확인을 하고 생각을 하는 코마치 대신 시키가 말을 걸었다. 잠깐 고개를 숙이자 검은색 대신 밝은 청록색 머릿결이 보여 깜짝 놀랐다.

 

  “지금 기분은 어떤가요? 히나 양?”

 

  “음. 머리색이 이상한 건 빼고는 뭔가 개운해진 기분이에요. 두 귀를 안 막아도 ‘보이지 않는 소리들’은 겉만 뱅뱅 돌지 속으로 들어오질 않고 있어요.”

 


 애초에 귀를 막는 건 생리적인 반응이고 액이 침투하는 건 별개라고 생각하는 시키 였지만 지금 일어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코마치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순리나 이치 같은 이야기가 나와서 히나가 알아듣기에는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 숙였다. 그리고 케이네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그녀의 뺨을 살살 쓸었다. 차가웠지만 여전히 사람의 질감을 가지고 있어서 케이네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말했다.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딱 하나, 잠깐 긴 꿈을 꾼 것 같아요.”

 


 그 말에 모두가 돌아보았다. 탁상에 올려놓은 새빨간 끈을 잡고 말했다.

 


  “제가 딱 한 번 거짓말을 했으면서, 그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달라는 바보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이 기억은 안 나지만, 매우 미안하다는 생각은 꾸준히 가슴 안을 지금도 돌아요. 이걸 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케이네는 조용하고 나긋하게 말했다. 서투른 말투를 듣자 ‘히나가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말투가 누그러들었다.

 

  “히나는 미안하군요. 저는 히나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선을 시키에게 돌렸다. 피로에 젖어 코 고는 소리를 내며 자는 코마치의 뺨을 살짝 꼬집던 시키는 이야기를 마쳤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히나의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시키는 회오의 봉을 바르게 집고 올바른 녹색 눈빛으로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지금 상황이 적응이 안 되시겠지만, 환상향의 삶과 죽음의 순... 아니. 시비곡직청의 시키 에이키로써 당신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많은 등불은 술 냄새를 맡고 여기저기를 거니는 사람들을 비춰주었고, 요괴들은 그런 인간들을 붙잡고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치면서 쌓여있던 심심한 기운을 해소하고 있었다. 저녁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바닥을 물결 삼아 기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나무 인형을 사 가는 요괴가 있었다.

 


 뭐든지 적당한 환상향이었다.


 

 

0.

 

 강둑을 따라 걸어가며 안주와 술을 고민하던 그녀는 멀리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무언가를 보았다. 이전보다 리본의 개수가 늘어난 것 같았다. 유독시리 시뿌연 피안에서 눈에 띄는 청록빛 머릿결과 눈빛이었다.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상자가 안 흔들릴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달각달각 거리는 종이 상자가 불안해서 코마치는 걱정이 들어서 소리쳤다.

 

  “걸어와! 걸어오라고!”

 

  “아, 아하하하. 괜찮아요.”

 

 

 넘어질 것 같이 어색하게 뛰는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그 충격 때문인지 리본의 한 쪽이 풀리려고 하고 있었다. 카기야마 히나는 살짝 웃고 있었다.

 

  “여기, 이번에 오신 분들의 액을 모았어요.”

 


 코마치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혹시나 새어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상자를 열자 종이 히나 인형이 고르게 자리를 잡고 자기만의 액을 꼭 담고 있었다.

 

  “이야, 어느새 이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하하, 시키님이 부탁하신 일을 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서 저도 의욕이 생겨요.”

 


 그러면서 얇은 고사리같은 팔을 보여주면서 없는 알통을 보여주는 히나였다. 피식 웃은 코마치는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리본 풀려있어.”

 

  “아차차.”

 


 한창 자랄 나이인가 하루가 다르게 몸이 자라는 히나였다. 어쩌면 히나를 감싸는 액이 자기들이 지내기 편하려고 그릇을 키우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행복해하고 시키 님을 휘둘렀던 환상향의 순리도 유지되었으니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능숙하게 풀린 리본을 묶고 있었다.

 


 가볍게 뺨을 꼬집어서 작별인사를 했다.

 


 드레스의 붉은 빛과 머리의 청록색이 저 뿌연 황천의 바람 사이로 사라지는 것 까지 바라보는 그 순간, 누군가가 코마치의 치마를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려보니 꽃줄기 매듭을 묶고 있던 생령이었다. 활짝 웃었다.

 

  “리본, 잘 묶지?”

 

 생령은 따라서 활짝 웃었다.

 

  “네.”

 

  “그럼. 갈까?”

 

 

  “네.”

 


 코마치는 치마를 잡은 손을 맞잡은 후 혹시나 상자의 액이 생령에게 씌일까봐 조심스럽게 들고 배를 향해 걸어갔다. 삼도천은 어른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너무 짧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너무 길었지만. 오늘 생령은 천천히 데려다주고 싶은 코마치였다.

 

 

히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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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Lv79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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