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재밌는 이벤트 스토리였습니다.
블루포치가 (빌라 궁 컷신 빼고)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나는 '안녕, 라야시키' 스토리 이해를 위해서 잡다한 배경지식과 나름의 해석을 붙여봤습니다.
배경지식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긁어온 것들이니 구글링하시면 더 많은 얘기가 나올것 같네요
1. 라야시키의 실제 모티브는?
이곳은 노르웨이의 스발바르(svalbard) 제도 안에있는 러시아 마을인 피라미덴(pyramiden)마을입니다.
위치상 노르웨이 북쪽이지만 러시아와 매우 가까운 위치 탓에, 스발바르 조약(1920)을 통해 러시아가 석탄을 캐던 곳이죠.
1998년 폐광되었고, 스토리에 나오는 수영장이 바로 세계 최북단의 수영장으로 기록된 바 있다고 합니다.
2. 빌라의 모티브인 루살카, 그리고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슬라브 신화에서 루살카는 물에 사는 정령이며,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인어의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고 합니다.
빌라는 설정상 반인 반루살카 이고, 일정 시간 물에 있어야 하는 탓에 항구 혹은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이 루살카에 대한 전설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동화에서 각색이 되어 유명해졌는데,
재밌는게 우리가 알고 있는 디즈니식 해피엔딩(마녀를 물리치고 왕자와 결혼)이나 새드엔딩(물거품으로 사라짐, 파소노가 언급함)과는 꽤 다릅니다.
인어는 자연의 일부이기에 사람과 달리 영혼이 없어서, '불멸의 영혼'을 가지려 한다는 설정이 있으며
원작에서는 왕자와 공주를 축복하며 스스로 몸을 던진 인어는 공기의 정령이 되어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스토리에서 아브구스트가 뜬금없이 말해서 혼란스러웠던 '영원한 영혼'은 바로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죠.
3. 각자에게 라야시키라는 마을의 의미
빌라는 루살카 무리에서는 배신자였고, 마도학의 힘을 가진 인어이니 인간사회에서도 이방인이었습니다.
작중 묘사로는 루살카의 본능적인 공격이 고깃배를 침몰시키고, 인간들은 루살카를 쫓아내어야 뱃일을 할 수 있었죠.
그러나 라야시키는 루살카와 인간, 마도학자와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어 빌라에게 이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자족적이고 스스로 개척하며, 공동체 내에서 서로 도와가며 구분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라야시키의 본질이었고
자신을 받아들여준 라야시키를 위해 빌라는 어느 인간보다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이방인에게도 이를 전달합니다.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비주류 레이라인학 독립연구자인 윈드송과의 첫 만남에서도 말이죠..
스토리가 진행되며 윈드송 또한 어엿한 라야시키 마을의 일원이 되고, 제노의 당근을 뿌리치고 해산 요구에 맞서게 됩니다.
윈드송에게 라야시키는 처음에 자신의 연구를 증명하고 학문적 명성을 가져다 줄 곳에 불과했지만,
끝에는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던 자신을 학자이자 선생님으로서 처음 인정해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4. '영원한 영혼'과 폭풍우 이후의 라야시키
빌라에게 '영원한 영혼'은 무엇이었을까요?
영원한 영혼이 있는 루살카는 폭풍우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혹시 재건의 손의 그 면역주문 일까요?
개인 스토리를 읽어보면 그 가설은 기각됩니다.
그간 일군 라야시키라는 마을이 폭풍우로 사라지고도, 빌라는 울지 않고 아이들에게 당부합니다.
빌라 본인은 라야시키 사람들의 따뜻함와 의연함이 '영원한 영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빌라에게 '영원한 영혼'은 바로 '라야시키 마을의 정신을 후세대에 전승하는 것'이라는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토르 라그나로크의 명대사를 빌려서 말하는 분이 많습니다. 라야시키는 장소가 아니다..)
5. 아브구스트는 왜 종이를 '영원한 영혼'이라고 했을까?
이 부분은 저도 여러 생각이 드네요.
재단으로 간 라야시키 아이들에게는 종이가 한없이 부족합니다. 개구리도 접고 비행기도 접어야 되거든요.
빌라도 라야시키에 편지를 충분히 보내야하니, 종이가 떨어지면 빌라 선생님은 네임데이씨에게 부탁을 하러 가죠.
아브구스트는 빌라 선생님이 (파소노의 말처럼) 물거품이 되지 않는 인어기 때문에, 영원한 영혼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합니다.
그러니 뭔가 소중한 것을 부르는 단어로 알고 있거나, 그게 뭔지는 모르니 늘 들고 있는 종이라고 생각했을지도요.
다르게 보자면, 많은 창작물에서 빈 종이는 가능성을 은유합니다.
라야시키의 기억과 체험이 나에게 남아있다면 라야시키는 언제 어디서든 재현될 수 있습니다.
종이에 글씨를 쓰든, 종이를 접어 바다제비든 개구리든 만들 수 있는 것처럼요.
종이만 충분하다면 폭풍우는 빌라도, 라야시키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말과 글, 체험을 통한 기억의 전승을 비유하기 위해서 빈 종이가 영원한 영혼이라 불렸지 않았을까요.
6. 그외 TMI
- 빌라가 개인스토리에서 TV를 켰을때 백조의 호수만 방영된 이유 : 러시아가 국가적 위기상황일때 그렇다고 하네요
이벤트 스토리 처음에 아이들이 제노 환영행사로 준비한 것도 백조의 호수니까 나름 복선일지도요..?
- 이번 스킨 테마인 Constructivism Concept 는 러시아 구축주의 사조의 디자인 콘셉트를 말합니다. 아방가르드하네요.
스토리 로고도 당연히(?) 구축주의 디자인의 대표적인 작품을 오마주했습니다.
- 예브게니의 희생 또한 실제 비행기 사고를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이 사고가 피라미덴 마을 폐쇄 결정에 단초를 제공했다고 하네요. 엔타로 예브게니..
- 스토리 대사에서 인물 이름 번역 오류가 있는데, 피터슨=표트르 이고 아크시비=아브구스트입니다.
앞은 중국명칭, 뒤는 번역명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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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덕후 블루포치 아니랄까봐 여러모로 뜯어먹을 게 많은 이벤트 스토리였습니다.
그외 재밌는 부분은 알아내면 추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