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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승만 때문에 한국에 못 온 안창호 선생 가족

뮤지케
댓글: 12 개
조회: 5159
추천: 25
2024-02-16 06:38:05
<안수산>
도산 안창호 선생의 3남2녀 중 셋째이자 맏딸인 안수산. 
그는 미국 해군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군인이었습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안씨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참전하자 일본과 싸우기 위해 
1942년에 자원 입대했습니다.




"아버지도 나라도 없이 자랐지만 독립운동은 내 정체성"

가족들의 생활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도산의 장남 필립(1978년 작고)이 특히 그랬다. 사실상 가장이었다. 안 여사는 "오빠는 LA 다운타운에 있는 호텔에서 벨보이 같은 것을 하며 돈을 벌었고 흥사단 일도 했다"고 말했다. 필립은 권투선수를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도산에 이어 흥사단 일을 맡은 송종익 선생(1887~1956)이 "일제와의 전쟁 준비를 위해 폭탄을 만들 때 쓸 수 있도록 화학공학을 배우라"고 말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종걸 = 광복 이후 언제 한국을 가셨나요.

안수산 = 1958년쯤 (큰오빠) 필립만 한국에 갔어요. 나는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초대해서 갔습니다.

이종걸 =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안수산 = 아버지를 죽인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이 됐다는 것이 어찌 큰 기쁨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이승만씨가 아버지 활동노선이 자신과 다르다고 공산주의자로 몰기도 했고 광복 후 임시정부 동지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이승만씨와 다른 동지들 간에 많은 갈등이 생긴 것을 비통하게 생각했습니다. 국민회의에서 임시정부로 부친 자금이 임시정부로 전달되지 않았던 사실이 밝혀졌고 그렇다면 그 돈을 독차지한 것은 한 사람뿐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이종걸 = 이승만 정권 때는 거리를 많이 두셨군요.

안수산 = 이승만씨가 독점해서 차지한 대한민국에 가봐야 공산주의 후손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이 박사 영향하에 있는 대한민국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 우리 가족뿐 아니라 미국에 있는 아버지 동지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습니다.


1919년 4월 한인자유대회 시가행진 때 사용된 현수막을 펼쳐보고 있다








<도산공원>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시립공원이다.
1971년 착공하여 1973년 11월 9일, 즉 안창호 선생의 탄생 95주년 기념일에 개장하였다
현재 서울특별시가 관리하는데, 공원 안에 도산 안창호와 부인 이혜련 내외(內外)가 합장된 묘소가 있다. 
이에 이 공원 앞을 지나는 왕복 10차로 대로 또한 도산대로로 명명되었다.

초 인벤인

Lv97 뮤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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