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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세계의 명문가들 - 2편 신화부터 현대까지! 케트하하흐 가문

아이콘 Shamlock
댓글: 11 개
조회: 27605
추천: 22
2015-08-24 03:13:37

1편 성(姓)과 가문


1. 신화와 역사


▲ 현대 공학의 성배이자 역사에 영원히 남을 순간, 인간의 달 착륙

21세기 인간은 수천년전의 모습과 비교하면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의 기술적, 과학적 진보를 이룩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한 순간을 사진이라는 문명의 이기로 영원히 기록할 수 있으며, 우리의 어머니인 지구를 떠나 달에 도착했고, 이 순간에도 보이저 1,2호는 태양계를 벗어나 인류의 끝없는 지식욕을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둥과 번개가 신이 노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저기압과 고기압 전선이 만나서 발생하는 현상임을 알고, 화학이라는 이름으로 물질을 만들고 없애기도 하며, 심지어는 생물을 복제하는 수준에 다다르기도 했죠.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의 모르는 부분을 설명하기 위한 존재로서의 "간극의 신"은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딘과 토르, 로키의 북구 신화나, 라와 셉트, 오시리스의 이집트 신화 등등은 세계가 구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방법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모티브로써 남아있을 뿐이죠. 오늘은 이 중에서도 아일랜드의 켈트 신화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보통 신화는 역사를 담아낸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현실의 일을 신과 영웅, 그리고 초자연적인 존재의 이야기로 포장해 담아내기에 신화속의 인물 하나하나에 대해 따지기 시작하면 역사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죠. 21세기의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봤을때 온갖 서양 별자리 신화에 담겨있는 것처럼 신이 사람을 별자리, 그러니까 항성 여러개로 만들었다는건 말이 안되잖습니까? 그러니까 신화가 왜 생겨났고,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분명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포인트지만, 신화 속에서 별자리가 된 인물이 현실의 누구였나는 보통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켈트 신화는 약간 성격이 다릅니다. 물론 켈트 신화에도 수많은 신들과 영웅들, 요정들이 등장하기는 하나 그 이야기의 스케일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어느 정도의 신화적 과장을 제외하면 역사에 대한 서술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현실이 잘 반영되어 있죠. 이번 글에서는 켈트 신화에서 등장해 2015년 지금까지도 그 일족이 남아있는 케트하하흐 가문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2. 초원과 호수의 나라, 에이레


▲ 아일랜드의 상징인 하프

아일랜드는 프랑스에서 바다를 건너 영국에 정착한 켈트인들이 다시 한번 해협을 건너 도착한 곳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을 에이레라고 불렀고, 훗날 외지인들과 접촉하면서 Eire에서 E가 빠져서 전파, Ire라고 알려졌고, 이것이 오늘날 아일랜드의 철자가 Ireland가 된 경위입니다.

아일랜드는 북대서양 난류의 영향을 받아 연교차가 크지 않으며, 유럽의 서쪽 끝에 위치하기 때문에 연중 강수량이 고른 해양성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강과 호수가 많고 산지가 적은 평탄한 지형을 가지고 있어 그야말로 목가적 이상향을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이 있었으니까 영국에서 굳이 다시 바다를 건너 아일랜드로 넘어온 것이겠죠.

영국에 남아있었던 켈트인들은 기원전 1세기에 로마 제국에 의해 정복되면서 라틴 계열의 문화를 상당히 많이 받아들였고, 이후에는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빠른 속도로 세계 종교로 확산된 카톨릭을 받아들여 기존의 켈트 신앙과 문화권을 잃고 동화되게 됩니다. 반면에 아일랜드 - 당대 로마 제국이 부르기로는 히베르니아 - 는 로마 제국이 칼레도니아 속주, 그러니까 오늘날의 스코틀랜드에 대한 정복이 실패한 이후 황제가 죽고 정국이 어수선해져 로마 제국의 영향을 덜 받았고, 이후 7세기까지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켈트 신화의 절대다수는 아일랜드 신화죠.

3. 신화 속의 인물, 콘 케트하하흐와 자손들


▲ 콘 케트하하흐의 상상도 

케트하하흐는 정확히 말하면 콘의 성이 아닙니다. 케트하(Cétcha)는 100을 뜻하는 게일어이고, 하흐(thach)는 전투를 뜻하는 게일어입니다. 그러니까 콘 케트하하흐는 우리 말로 번역하면 "백번의 전투" 콘 정도가 되겠네요. 

콘은 100명의 전사와의 결투에서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인물로, 고대 에이레 왕국의 왕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사람이 그 가문의 첫번째 왕이었던건 아니고, 그의 할아버지 투아하 테흐트마르부터 그의 가문이 왕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 전에는 왕들이 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 사람의 호칭이었던 "케트하하흐"를 후손들이 자신의 성으로 쓰면서 오히려 그와 그의 조상들이 케트하하흐를 성으로 가지게 되었죠.

이 케트하하흐 가문의 시조는 171년 사망한 페들리미르 레흐트마르 케트하하흐입니다. 애초에 페들리미르 부터가 신화속에서 인간을 이끌던 지도자중의 하나로 나오는 인물이죠. 그러니까 이 가문은 신화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성(聖)골 가문인 것입니다.


▲ 콘 케트하하흐의 가계도

콘의 둘째 아들인 콘라는 사람들을 이끌고 티르 너 노그, 그러니까 한국에서 잘 알려진 이름으로는 티르 나 노이라는 낙원으로 갔다고 합니다. 물론 현실에선 첫째와의 권력 싸움에 밀려 거점을 옮긴 것으로 보고 있고, 실제로 아일랜드 북서부에는 티르 코네일이라는 지방이 있습니다. 마비노기를 플레이했던 분이라면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만한 이름입니다만, 여기서 중요한건 이 사람이 아니라 콘의 손자인 코르막 막 아르트입니다.

코르막 막 아르트는 아르트 막 콘의 아들인데, 콘과 아르트, 코르막의 이름을 보면 눈치 챌 수 있듯이 막은 ~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코르막은 켈트 신화 최고의 영웅 핀 막 쿨 시대의 왕인 실존 인물로써, 그의 딸 그라니아는 핀 막 쿨과 결혼하게 됩니다. 이에 관해서는 디아뮈드 오 뒤나와 그라니아, 핀 막 쿨의 삼각관계 이야기가 유명하니 한번 찾아 읽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 후대에 색을 입힌 니엘의 그림. 역시 하프를 들고 있네요

이 사람의 후손이 바로 니엘 노이얄라흐, 번역하자면 "아홉 포로의 니엘"입니다. 니엘 - 영어식으로는 넬이 정확히 언제 사람인가는 의견이 분분한데, 주변 역사와 비교해보면 대략 370년경부터 420년경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이 겪었다고 언급되는 일들이 다른 나라의 기록들과 비교해보면 서기 429년부터 516년까지의 일이기 때문에 - 한 세대가 87년이나 갈 수는 없는 법이죠 - 아직까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아홉 인질의 넬은 뛰어난 전사이자 사냥꾼으로써, 그리고 자신의 공정함과 용맹함으로써 널리 인정받았고, 아버지 오하이드가 죽자 다음 왕으로 추대되게 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날 넬과 그의 형제들이 우물에 물을 길러 갔을 때, 두건을 쓴 한 여인이 물을 긷기 위해서는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출것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두 쌍둥이 형은 이를 거절했고 동생은 입을 맞추는 시늉만 하고 물을 길어 왔지만, 넬은 고귀한 여인을 대하는 예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고, 이에 그녀는 두건을 걷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넬에게 그가 아일랜드를 다스릴 자임을 알려주러 왔으며 앞으로 넬의 스물 여섯 대 자손이 아일랜드를 통치할 것임을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역사상으론 429년부터 1603년까지 이어져 스물 여섯대가 넘었다는게 흠이라면 흠일까요.

어쨌던 그는 바다를 넘어 아일랜드를 침략하던 스코틀랜드, 작센, 브레튼, 프랑크 인들과의 네 번의 전쟁과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던 아일랜드의 얼스터, 코나흐트, 레인스터, 먼스터, 뮈드와 치뤘던 다섯 번의 전쟁, 총 아홉 번의 전쟁에서 모두 적장을 사로잡으며 승리했고, 이에 그는 "아홉 포로의 넬"이라는 별명과 함께 아일랜드의 왕권을 확립시킨 영웅으로 남게 됩니다.


4. 영웅왕 니엘 노이얄라흐의 후손들



▲ 니엘의 후손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문장

니엘 노이얄라흐가 죽으면서 왕국은 다시 분열되게 됩니다. 그의 아들들이 서로 니엘의 적법한 후계자임을 자처하고 나선 것인데요, 여기에 니엘에 대항했던 아일랜드의 여러 지방도 에이레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아일랜드는 소국들로 분열되게 됩니다. 이 니엘의 후계자 분쟁으로 인해 결국 이 가문이 분열되면서 케트하하흐라는 성도 사라지게 됩니다. 

니엘의 아들들은 케트하하흐의 자손임을 정통성의 근거로 주장한 기존의 왕들과 달리 당연히 자신의 정통성의 근거로 니엘을 내세웠기에, 새 가문 명은 우어 넬, 그러니까 넬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들은 서로를 넬의 후손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만이 진짜 우어 넬!" 이라는 식으로 서로를 대했고, 나머지 형제들을 각자의 세력 거점 명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당시의 기록을 보면 성이 두개가 합쳐져 있죠.

예를 들면 우어 넬 노이얼라이흐라는 성은 "우어 넬(넬의 자손)"과 "노이얼라이흐(북쪽 윌라르드흐 지역"이 합쳐진 것이죠. 이와 비슷하게 다른 가문들도 갈라서면서 서로를 지역 이름을 붙여 부른 경우가 많았기에 오나가흐타 가문의 분가인 가문들은 이름이 "오나가흐트-아뮈네" "오나가흐트-라이흘린" 등등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 우어 넬, 그러니까 넬의 후손들은 바이킹의 침략이나 대륙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서로끼리 싸우더라도 외적의 침략에는 힘을 합쳐 대응하며 16세기까지는 아일랜드의 명문가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새로 아일랜드의 왕이 된 가문과의 불화가 무력 충돌로 커지고, 이어 아일랜드에서의 세력 확장을 노리는 잉글랜드가 아일랜드의 왕을 지지하면서 발발된 9년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이 때가 1603년으로, 4년 이후인 1607년에 우어 넬 가문의 귀족들은 아일랜드에서 추방되게 됩니다.

이들의 일부는 스페인으로 망명하기도 했고, 당시 막 독립한 신생국가였던 네덜란드로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결국 영국의 지배 하에 영어권 문화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은 아일랜드 인들은 성이 영어식으로 바뀌게 되는데, 우어 넬 가문은 오닐(O'Nill 혹은 O'Neal)로 바뀌게 됩니다. 이후에 18세기의 아일랜드 대기근 같은 자연재해나 캘리포니아 금광으로 인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가게 되면서 오닐은 미국에서 상당히 흔한 성이 됩니다. 

2006년에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대학교의 발표에 따르면 Y염색체를 관찰한 결과 북아일랜드 남성의 21%, 전체 아일랜드 남성의 8%, 그리고 뉴욕 남성의 2%는 부계로 우어 넬 가문과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대략 2백만에서 3백만에 달하는 수로, 여자까지 합하면 5백만은 되겠네요. 물론 오늘날에는 예전처럼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벗어날 일이 적은 것도 아니고, 서로 다른 인종끼리 결혼하는 것이 흔한 광경이기에 실질적인 유전적 동질성은 매우 낮겠지만, 니엘의 후손들은 2015년 지금까지 그 성으로 니엘을 기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 샤킬 오닐도 부계로 올라가보면 아일랜드인이라 이겁니다 

뱀발로 11세기에서 12세기에 심자군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귀족들이 많았고,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새 가문을 차렸다가 귀환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수많은 분가들이 생기게 되는데 이 중에는 우어 넬 가문의 분가인 캠벨 가문도 있습니다. 지금 위스키 상표 캠벨의 그 사람들 맞습니다. 


Lv70 Sham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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