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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히나 이야기 +1

아이콘 구미
댓글: 8 개
조회: 2058
추천: 12
2016-09-19 22:00:03

*이 글은 동방프로젝트의 설정, 배경, 인물을 가져온 2차 창작입니다.
*매일 10시 경 업로드 예정입니다.

 

0.


 뭐든지 적당한 환상향에서 가장 적당하지 않은 걸 뽑아보라고 하면 사신은 단연 삼도천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무지막지하게 넓고 깊어서 가끔은 노를 젓는 소리마저도 물에 잠겨버리는 공허한 공간. 아무리 차안과 피안의 경계라고 해도 중유의 길은 생령들이 살아생전의 미혹과 번뇌의 액들을 씻어내고 미련을 푸는 공간이라 슬픈 듯 왁자지껄한데 여기는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인생의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생령에게 삼도천의 물을 마시게 해 아직도 저 삶의 굴곡에 남아있을 법한 미련을 모조리 씻겨내 순수하게 쌓아온 공덕과 재액만이 일렁이는 걸 보자면 사신은 굉장한 만족감이 들고 희노애락이 가득한 생령의 인생사 이야기와 함께 이 직업을 가진 걸 즐겁게 여기게 된다.


 

 ‘자기 기준’으로 오늘의 일을 끝낸 삼도천의 물길 안내인, 오노즈카 코마치는 어디가 가장 시간을 보내기 편하고 맛있는 술과 안주가 있을까 하는 기쁜 고민들을 정리하기 위해 강둑을 걸었다. 그렇게 거리가 가늠이 안 되는 길을 느긋하게 걷던 그녀는 강둑에서 쪼그려 앉아있는 생령을 보았다. 어디선가 뜯어온 피안화의 꽃줄기로 매듭을 길게 만들고 있었다. 입에 담고 웅얼거리는 생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직 현세에 미련이 남아있었냐. 난 직업병이 있어서 동정 같은 건 안 해줘. 들어주기만 할 뿐.”


 

 고개를 잠깐 코마치 쪽으로 돌린 생령은 텅 빈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더니 다시 돌아서서 웅얼거리며 매듭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린 생령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 그저 자기가 살아생전 했었던 일들만 반복하곤 한다. 그녀는 매듭의 앞부분을 가지고 와서 생령에게 보여주었다.

 


  “하아.. 여기. 풀어헤쳐져 있어. 어디, 네가 닿고 싶은 곳까지 실컷 묶어봐.”

 


 그러자 생령은 그녀의 손을 빤히 보고는 그것을 그 자리에서 묶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오자 익숙한 생령의 한기와 함께 일렁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렁임 때문에 잘 안들렸지만 아마 웃으며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매듭을... 잘 못 묶... 는구나.”

 

  “...아니야. 혼자 잘 묶을 수 있게 되었어.”



 매듭을 묶어 긴 줄을 만들면서 사이사이 꽃을 달아놓은 천상 여자아이 같은 매듭이 묶여지는 걸 보고나서 그녀는 그걸 내려놓고 일어서서 생령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가지고 있는 괴고가 너를 잡아먹게 돼서, 억울하다 억울하다 한 소리만 내지르는 망령 같은 건 되지 말라고. 언젠가 그걸 내려놓으면 특별히 강 건너까지 태워다 줄게.”

 

  풍채 좋은 몸으로 떠나는 한 걸음이 십 리 같은 그녀였다.

 


 

1.

 

 여기는 뭐든지 적당한 환상향, 그리고 요괴가 여흥을 즐기러 오기도 하지만 주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인간 마을. 적당히 나쁘지 않은 성격을 사람들이 모여 적당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살다 떠나는 그런 곳이다. 대충 있을만한 건 있는 이 마을의 갓 지어진 서당에는, 술도가의 딸 히나와 바구니 집 딸 유우다치가 사이좋게 공부도 하고 노는 자리였다.

 


 히나는 작은 두 손으로 길고 검은 머리 사이에 숨어있던 귀를 꼭 막고 눈을 살짝 감았다. 들리던 소리들은 개미처럼 아주 작아졌다. 앞도 보이지 않는 시간은 강풍 사이에서 휘둘리던 풍경처럼 사방팔방에서 꿰뚫고 들어오던 소리들 사이에서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연스럽게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히나나.”

 

 왼쪽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따뜻한 목소리였다. 일부로 더 듣고 싶어서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있었다.

 

  “히나나, 놀자.”

 

 간지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손을 귀에서 떼고 눈을 뜨자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과 드넓은 서당 앞 공터의 풍경과 소리들, 그리고 그 소리들보다 더 먼 곳에서 들려오는 잡음들이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잠시 쉬고 나면 영 적응이 안 되는 ‘보이지 않는 소리’들도 있었다.

 

  “잠은 다 잔 거야, 다찌?”

 

  “응. 역사 재미 하나도 없어.”


 

 종이에 짓눌린 새빨간 뺨에 글자가 새겨진 모습을 보고 히나는 웃음이 터졌다. 히나가 웃는 모습을 보고 기뻤던 유우다치는 배시시 웃더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서당 뒷편으로 뛰어갔다. 선머슴같이 뛰는 그녀의 발걸음을 히나는 균형을 잃다가 되찾는 걸 반복하면서 따라갔다.

 

 서당 뒤에 있는 산뜰에는 비슷한 나이의 외모를 하고 있는 요정들이 서로 자기들의 꽃의 미모나 풀의 싱그러움을 자랑하는 듯한 행동을 하거나 재잘거리며 날개를 파닥이고 있었다. 즐거운 구경거리이자 잠시나마 다른 소리들을 거를 수 있는 자리였다.

 

  “귀엽다..”

 

  “귀엽지? 내가 저번에 토끼풀 반지 만들려고 했다가 여기서 엄청 물렸었거든.”

 


 얼굴을 알아본 듯 한 토끼풀의 요정은 저 멀리서 날아오더니 조그만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찰싹찰싹 때렸다. 장난스럽게 미안하다고 하는 유우다치와 그걸 보고 웃으며 제멋대로 춤추는 요정들을 보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옆에 있던 야생화의 꽃봉오리를 어루만지고 싶다는 행동으로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도 이랬으면...’

 


 그러자 야생화의 요정은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최대한 히나에게서 반대로 꽃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치 위험하다는 듯이. 히나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지금 일을 바라보고 있던 유우다치와 요정들을 둘러보고 난 후 요정에게 사과를 했다.

 

  “미, 미안해.”


 

  “선생님이, 요정을 오래 만나면 어떻게 된다고 말했었죠?”


 

 아마 요정의 비명소리를 듣고 온 것 같았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니 연파랑빛 머리에 새파란 드레스를 입고 둘을 노려보는 선생님이 있었다. 작은 학사모같은 모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요정들은 옆에 있던 기다란 풀숲에 몸을 숨겼다.

 

  “아, 돌머리 선생님!”

  “케.. 케이네 선생님.”


 

 흡!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박치기를 당한 유우다치는 으악 소리를 내며 옆에 있던 작은 개울에 ‘참방!’하며 넘어졌다. 조그맣게 요정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히나는 평소보다 무서워 보이는 선생님에 겁을 먹었지만 아까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요정감기에 걸린다고 했어요..”


  “그렇죠.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고 옷을 털도록 하세요. 감기 걸리면 안되니까요. 

   그리고, 유우다치! 히나 데리고 위험한 데 가지 말라고 했죠!“


  “그게.. 제가 재미있게 봐서 보여주고 싶었단 말이에요..”


 

 또박또박 잘못을 되짚어주고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무서우면서 다정한 느낌이었다. 유우다치는 젖은 옷의 물기를 짜내고 박치기의 통증인지 억울한 마음인지 울먹이면서 말을 했다. 그녀는 그런 그녀의 젖은 옷깃을 잡고 선생님에게 인사를 한 후 서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한숨 소리와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돌머리 선생님 미워!”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유우다치가 말했다. 눈물 콧물 뚝뚝 흘리는 모습이 많이 억울했었나보다. 히나는 옆에서 손을 씻고 옷에서 반짝이는 요정 가루들을 팡팡 턴 후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냐. 둘 다 착한 거야.”

  “그치만.. 그치만..”

 

 울음이 터지려는 그녀를 히나는 재빠르게 옷깃으로 맺힌 눈물을 닦고 손에 물을 훔쳐 콧물을 닦아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울음이 터질 거 같이 훌쩍이고 있는 유우다치를 보고 잠시 생각에 빠진 히나는 까치발을 들어 그녀의 양 볼을 잡고 눈을 마주 보았다.

 

  “자, 다찌. 가지조림!”

  “훌쩍.. 가지조림?”

 

  “가지조리이이이임~.”

  “가지조리이이이임~.”


 마지막 어절을 길게 잡아 늘어뜨린 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이름을 말했다. ‘림’을 기일게 발음하다보니 입이 웃는 상으로 변했다가 앙다문 미소로 마무리 지어졌다.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이빨을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보이는 모습과 들리는 모습이 같은, 히나에게 있어선 최고의 웃음이었다.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아. 가자.”

 

 걸어가면서 자기 옷깃으로 유우다치의 얼굴을 닦는 히나를 케이네는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요 나이 대에 친구가 울면 그 소리와 감정이 무서워서 같이 울어버려 반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는게 일상인데 저렇게 대견한 모습을 보여서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아아, 보기 좋아라..”

 

 이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서재에 가서 오늘의 일지를 적으면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힘이 될 것 같아서 서둘러 서당 옆에 있는 서재로 그녀는 향했다. 혹시나 닳아 없어질까 걸음걸이가 점점 빨라지더니 집 앞에선 거의 달려서 문을 부서지듯 열었다.

 

  “마치 엄마와 딸 같았단 말이지.”

 

  “뭐야. 선생 집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왔나?”

 

 

 케이네의 눈앞에 보이는 건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그리고 눈에 띄는 새빨간 머리와 눈. 마지막으로 정말 편하게 마루에서 햇살이 닿는 쪽을 향해 누워있는 삼도천의 물길 안내인, 코마치였다. 그녀는 크게 놀라서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혀 반동으로 박치기를 했다.

 


“컁!”

“꺄악!”


 

 전혀 생각도 못했던 행동에 코마치는 피하질 못했고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비명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수업을 마무리하는 시간. 이미 보따리를 싸고 엉덩이를 의자에서 올려 살금살금 흔들며 밖으로 뛰어나갈 준비를 하는 아이와 약속을 하거나 잡담을 하는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에게 시선을 집중 시키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오늘은 모든 학생이 케이네 선생님의 새빨개진 이마를 보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케이네 선생님이 박치기에 진거야?”

  “선생님 보다 더 단단한 머리라니.. 도깨비야?”

  “돌머리 선생님이 그렇게 소리 낼 정도면 분명 요괴는 맞을 걸?”

  “와.. 멍들겠다.”

  “푸흡.. 푸흐흡..”

 

  “자, 자. 선생님 이마는 그만 보시고. 다들 알림장을 꺼내주세요. 다음 주에 소풍도 있고, 숙제는 꼬박꼬박 하고. 요괴를 만난다면 깍듯이 인사를 하고.”

 


 케이네는 이마를 손으로 주무르면서 어떻게 시선을 바로 주목시키게 만들어준 코마치를 떠올렸다. 이마는 쓰라리고,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건 부끄럽고.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카기야마 히나, 사토 유우다치는 다음 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가정 방문이 있으니까 꼭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세요. 자, 그러면 오늘도 서당에 오느라 고생 많이 했으니 맛있는 거 먹고 잠도 푹 자세요. 참, 요정이 귀엽다고 길이 안 보이는 곳까지 가면 절대 안돼요!”

 

  “네에!!”


 

 와르르르 소리를 내며 학생들은 서로 뛰어나갔고 그녀는 히나에게 다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히나에게 또박또박 입 모양이 보이게 했다.

 

  “히나 양. 다음 주 수요일에. 가정 방문이에요. 꼭. 알려주세요?”


 

 유우다치의 손을 잡고 있던 히나는 소리의 방향을 잡지 못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선생님이 그녀를 부르는 걸 확인하고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일부러 두 번이나 말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가자, 히나나! 돌머리 선생님도 안녕~.”


 

  “유우다치! 어른에게는 존댓말 써야 해요!”

 


 또 그녀를 데리고 어디를 가는 걸까, 그녀는 고민이 들었다. 안 그래도 소리에 민감해서 조심해야할 아이인데 이리저리 도깨비처럼 뛰어다니는 유우다치는 자기 멋대로 놀다가 히나를 다치게 할 것 같아서였다. 자세한 건 가정 방문 때 물어보

도록 하고 그녀는 코마치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코마치는 여전히 해가 잘 비추는 곳에 누워 식어버린 차와 햇빛에 녹아 눅눅해진 전병을 뜯어먹으며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열리는 문 밖으로 케이네가 보이자 고개만 빼꼼히 들고 집주인을 반기는 손님이었다.

 

“할 말이 있다고 온 손님의 자세가 주인보다 편하군요.”

 

“피안에서는 전혀 못 보는 태양이거든. 처음 나눈 대화가 이마 대 이마여서 앉는 것도, 일어서는 것도 몇 배는 귀찮아졌어. 그나저나 역사가의 일도 하고 있었다니. 몰랐어.”

 

“무례해요!”

 

케이네는 화를 내면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열이 오르자 다시금 이마의 쓰린 통증이 올라와서 그녀는 표정을 찌푸렸다. 코마치는 남은 차를 모조리 마시고 입을 닦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느긋하게 기지개를 펴고 말했다. 기지개를 펴니 풍채가 좋고 풍만한 몸이 더 커보였다.

 

 

 

 

  “목숨을 거두어 가실 일이 아니면 어째서 이 인간 마을에, 그것도 저에게 오셨나요?”

 

  “아아. 난 그런 거 안 해. 보는 것 보다는 마음이 여리거든.”

 


 코마치는 대답 전에 짧은 사담을 한 후, 그녀와 시선을 마주보고 앉아 그 사이에 동그란 전병 하나를 올려두었다. 새까만 김 가루가 골고루 박혀있는 쌉싸래한 맛이 일품인 김 전병이었다. 손가락으로 그걸 가리키며 그녀는 말했다.

 

  “자, 이 동그란 걸 평범한 인간의 생령이라고 생각해보자. 어떤 게 안에 있을까?”

 

  “음... 갑자기 뭔가요? 김 조각이랑 전병 만들 때 쓰는 밀가루, 계란, 소금 같은 게 있겠죠.”


 

 그녀는 케이네의 눈을 바라보았다. 탁한 적색의 눈은 도대체 자신에게 어떤 대답을 얻고 싶길래 이런 선문답을 하는지 자신과 전병을 번갈아보며 바라보고 있었다. 가볍게 웃으며 그녀는 김 가루 부분을 가리켰다.

 

  “그렇지. 그런데, 내가 김 맛이 너무 싫어! 입에 넣은 순간부터 찌릿하게 오는 혀의 감촉과 달콤바삭한 전병 사이에 풍기는 바다냄새, 그리고 쌉사래한 김 맛이 싫어! 이러면 김 전병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만들 적에 김 가루를 덜 쓴다거나 밀가루를 더 넣는다거나.. 정말 싫다면 안 쓰는 방법도 있겠죠.”

 

  “김 가루가 없으면 김 전병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 아예 이쑤시개 같은 걸로 그걸 뽑아내는 건 어떨까?”


 

 그녀가 손가락의 손톱으로 김 가루를 뜯어내려는 시늉을 하자 케이네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매사 진지한 사람이라 친해지면 놀리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친해지는 과정이 험난하겠지만 말이다. 이야기에 빠진 케이네는 그녀에게 말했다.

 

  “무슨 황당한 소리에요. 그러면 부서지고 말아요.”

 

  “이야, 푹 빠졌나보네. 사공 그만두고 만담꾼이나 할까.. 아무튼 맞아. 부서지고 말지. 전병은 달콤하고 바삭하지만 그만큼 연약하니까.”

 


 그러면서 그 전병을 집어 입 안에 넣었다. 계속 먹어도 물리지 않을 만큼 단 맛을 쌉사래한 김 맛이 잡아주어 살만 안 찐다면 계속 먹고 싶은 맛이었다. 땡볕에 오래 둬서 눅눅한 감은 있었지만 이정도면 중유의 길에서 파는 모든 안주들 보다 맛이 있었다. 손가락에 묻은 가루를 핥으면서 그녀는 케이네에게 말했다.

 

  “그 황당한 이야기가, 피안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어.”


 

 그 이야기는 얼마 전, 여전히 자기 기준으로 일을 끝내고 즐겁게 놀던 코마치가 염마님에게 불려 나갔던 것부터 시작되었다. 염마님의 ‘사람의 생애를 비추는’ 정파리 거울과 재판을 받는 생령의 공과 액의 혼탁함의 차이가 있어서 재판 결정에 시간이 더 걸린 이유, 생령이 무너지지 않은 채 세상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나쁜 기운의 위험성과 멀리 보면 환상향의 적당한 순리 자체가 무너져버릴 가능성까지. 


 슬슬 지던 해가 달을 끌어올릴 때 까지 이어진 이야기는 복잡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코마치가 말을 하니 듣기 쉬웠고 재미가 있었다.

 


  “... 그래서 나쁜 기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들과 접점이 가장 많은 당신을 염마님은 이번 일의 적임자로 선택했고. 나는 너를 돕기로 했지. 세상에는 괜히 자기가 못났다는 걸 인정 못하고 남에게 그 액을 내뿜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은 습자지처럼 모든 걸 모방하며 배워가는 나이니까.”

 

  “...아.”

 

 그녀는 케이네의 눈을 보았다. 분명 여기를 향하고 있었지만 초점은 저기 어딘가 ‘순리가 무너진 환상향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올바르지 않은 자가 바른 자로 판결되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원래 있던 자리를 잃은 액들은 ‘나쁜 기운’이 되어 순수하게 태어나는 생명들을 짓누르고.. 그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환상향 자체가 인연 없는 자의 무덤만 가득한 ‘무연총’이 되어버리는 최악의 미래를.

 


 일부러 소리나게 전병을 씹어서 그녀는 케이네를 백일몽에서 깨웠다. 아무 소리 없는 스산한 무연총을 떠올리다 과자 소리가 크게 들리자 정신이 든 그녀는 코마치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큰 이야기를 한꺼번에 해서 그런지 코마치는 고민이 들었다.

 

  “저는, 무얼 해야 하는 거죠?”

 

  “겁 엄청 먹었네. 망상에 사로잡히면 현실을 똑바로 못 바라보니 눈을 바로 뜨라고. 너처럼 올곧은 사람은 부러지면 다시 붙여도 올곧다는 소리를 두 번 다신 못 들으니까.”

 


 코마치는 목이 말라서 찻주전자에 담겨있던 차를 따라 마셨다. 염마님의 설교를 질리도록 듣다보니 자기도 쓸 데 없이 첨언을 하게 되는 코마치였다. 이미 차가워진 차는 쓴 맛이 더 강하게 느껴져서 자연스럽게 전병에 손이 닿았다. 그녀도 따라서 차를 마셨다. 차를 다 마시길 기다렸다. 이야기는 듣는 사람이 소화했을 때 이야기가 되는 법.

 

 느긋하게 기다렸다.

 


  “후우... 오노즈카 씨, 제가 이제부터 해야 할 걸 가르쳐주세요.”

 

  “이제 눈빛이 돌아왔네. 좋아. 환상향의 역사가이자 선생님인 카미시라사와 케이네 씨가 해야 할 일은...”

 

 

 인간 마을의 서당에 이야기꽃이 피다 못해 정원을 이루고 있던 그 무렵, 히나는 술도가 위 층에 있는 자기 방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상하게 자기 방에서는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안 들려 정말 편안했지만 아직까지 하교 후에 들은 아빠의 호통소리가 귀에서 남아 찌잉 하며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가 아팠다.


  “아파..”

 

 배게를 꼭 쥐어서 두 귀를 가렸다. 보이지 않는 소리는 없었지만 아빠가 소리쳤던 울림이 사라지지 않아 혹시나 이렇게 하면 사라질까 해보는 모습이었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됐지만 벌써 유우다치가 보고 싶었다.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니, 아래층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술이 중요해도 그렇지, 히나에게 그렇게 소리지를 일은 아니었잖아요.”

 


 엄마는 아빠를 타박하고 있었다. 물론 이번 갈등에서 중간에 위치했기 때문에 더 타박은 하지 못하고 아쉽다는 뉘앙스로 말했지만 말이다. 아빠는 술잔을 살살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그 문을 한 번 열어서 술 맛을 완전 헤쳤어.”

 

  “술은 당신이 있으니 다시 만들 수 있지만, 히나는 그 소리를 잊지 못해요. 그리고 모레 가정 방문도 온다고 했으니, 사과하세요. 당장!”


 

  강단 있는 목소리에 한 고집하는 아빠는 짧게 탄식하는 소리만 냈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고 자기 방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배게를 더 세게 쥐었다. 들으면 참고 있던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문은 열리지 않고, 은은하게 비추는 밤의 빛 사이로 빼빼 마른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망설이는 웅얼거림이 들리자 아래에서 엄마의 잔소리가 들렸다.

 

  “그렇다고 지금 하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 어휴. 술바보에 똥고집은 있어가지고. 애 잠 깨면 어떡하려고요?”

 

  “저저 잔소리꾼 여편네가... 크흠. 히나야, 자고 있나?”

 


 일부러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보이지는 않겠지만 몸을 문의 반대편으로 돌려 누웠다. 아빠는 계속 고민하더니 짧게 말을 하고 급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으음... 미안했다.. 자라.”

 


 어느 쪽으로 돌려 누워도 히나는 또렷하게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보이지는 않아도 알 수 있는 소리였다. 호통 소리의 진동을 미안하다는 한 마디가 대신 자리를 잡고 히나의 작은 몸을 소리통 삼아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울컥하는 기분에 그녀는 찢어져라 배게를 부여잡았다.

 

  “다찌...”

 

 보이는 소리와 들리기만 하는 소리를 구분하기 시작한 건 순전히 그녀의 청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비정상적으로 좋아서였다. 소리의 양은 불규칙적이었지만 축제날 같은 경우는 마치 마을 모든 소리가 자신을 통과해서 지나가서 자신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아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어야 했다.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이 그녀를 ‘소리를 잘 못 듣는 거’라고 아는 이유도 사실은 들리는 소리들이 너무 많아 구별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점점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면서 들리기만 하는 소리는 줄어들었다. 누가 어떤 소리를 내는 지 확인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평소보다 잘 들리는 날에 작은 인간 마을을 밖의 ‘요괴의 공간’에서 나는 소리들은 흥겹기도 하다가 폭발음이 연달아 일어나기도 하고, 정체모를 괴성이 들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기도 했다. 그리고...

 

 “너는.. 거짓말 안 할 거지?”


 

 안 보일 때는 거짓말을 하고 보일 때는 평소와 같이 웃는 모습들이 그녀에게는 들렸다. 더 이상 생각하면 내일 학교에 늦을 것 같아 그녀는 잠에 들었다. 꿈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유우다치와 처음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 학교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가지조림을 좋아한다고 해서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그때도 헤실헤실 웃던 유우다치. 그리고, 자기소개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고 울먹이던 히나.

 


  ‘아마 그 때.. 좋아하는 음식이 기억이 안 나서 유우다치를 따라 가지조림이라 했었지? 다들 안 좋아하는 음식인데 혼자 좋아해서 바로 친해졌었고...’

 


 생각의 매듭을 맺지 못한 채 꿈에 빠져드는 그녀였다. 그녀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요괴와 함께 춤을 추는 꿈을 자랑하는 아이들과 달리 아무 것도 꾸지 않는 걸 좋아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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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일 정도.


열심히 가다듬겠습니다.


이번 거.. 읽기 편하신가요? 처음 이렇게 올려봐서요.

 

Lv79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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