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지역군을 기준으로 작성했기 때문에 북미, 유럽 등 다른 지역엔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다만 국내 게임시장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온 블리자드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토큰정책을 시행한 것에 문제의식을 제기하고자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5월 7일 블리자드에서 야심차게 내 놓은 ‘wow 토큰(이하 토큰)’이 한국서버에 본격 적용됐다. 블리자드는 토큰의 상용화로 유저들의 필요 충족과 함께 불법 작업장 견제, 사설 업체에서의 골드거래 감소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토큰의 주된 취지는 골드를 필요로 하는 유저가 ‘아이템화’ 할 수 있는 30일 정액권을 구매해 이를 경매장에 올려 골드를 얻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골드가 적은 유저와 많은 유저 모두가 ‘윈윈’하는 구조다. 특별히 레이드던전 골드파티가 세계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한국으로써는 환영할만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토큰 출시를 공식화한 시점부터 유저들의 시선은 달갑지 않았다. 그간 블리자드가 고수해온 현금거래 정책을 스스로 뒤집는 꼴이 될뿐더러, 수요와 공급이 제대로 균형을 맞출지, 그리고 그에 걸맞게 시세조절이 이뤄질지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6.1패치를 적용하고 머지 않아 ‘wow토큰’ 출시를 예고했다.
■ 현금거래의 합법화?
그간 유저간 아이템거래에 극히 제한을 둬왔던 블리자드의 행보를 비춰보면, wow토큰은 다소 아리송한 정책이다. 현금거래 금지를 약관에 명시하고, 실제로 이에 걸맞는 제재를 가해왔던 블리자드다. 그런데 이번에 적용된 토큰은 운영주체가 직접 나서 현금거래를 주도하는 모양새다.
‘획득 시 귀속’, ‘착용 시 귀속’ 이는 오리지널 시절부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부각돼왔다. “노력한 만큼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 현금으로 콘텐츠를 사려 하지 말고, 콘텐츠 그 자체를 즐기십시오.” 블리자드가 줄기차게 내걸은 슬로건이다. 현질없이 하드유저와 라이트유저간 격차를 줄이는 게 와우 개발진이 시리즈 내내 씨름해온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만큼, 블리자드의 논리는 확고했고, 또한 단호했다. 게임 콘텐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그 어떤 외부적 요소도 없을 것이라 했던 블리자드. 하지만 이제 블리자드의 주관 내지는 관장 하에 현금거래를 허용하겠다고 한다.
◇획득한 장비, 혹은 착용한 장비를 거래할 수 없는 와우의 귀속시스템은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모든 사행성을 차단하고 오로지 ‘콘텐츠’로만 승부하겠다는 의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게임 내에서 나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거래가 가능했던 것이 있다. 바로 골드다. 오리지널 시절부터 주고받는 게 가능했던 골드는 제한적이지만 쓸 데가 많았다. 일부 콘텐츠를 활성화하고, 탈것을 배우고, 전문기술을 올리고, 계정귀속 아이템을 사서 레벨업에 활용하고… 그러나 골드로 최고급 장비를 얻을 순 없었다. 경매장을 통해 ‘착용 시 귀속’ 아이템을 살 순 있었지만, 여럼으로 제한적이었다. 결국 PvE에서든 PvP에서든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직접 콘텐츠를 숙지하고, 뛰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러한 제한들을 넘어서는 것이 등장했다. 레이드 골드파티, 투기장 대리가 그것이다. 투기장 대리의 경우 블리자드의 단속 대상이지만, 레이드 골드파티는 예외였다. 게임 내에서 허용한 골드거래로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을 제지할 순 없기 때문이다. 불타는 성전 시절부터 활성화된 골드파티는 점점 정교해졌고, ‘손님파티’라는 체계를 만들어냈다. 공략을 완료하고 어느 정도 아이템수준이 오른 유저들이 아직 콘텐츠에 미숙하거나 아이템을 덜 갖춘 유저들을 파티에 초대해 레이드 보스를 잡아주고, 경매로 아이템을 파는 형식이다. 꽤 합리적인 시스템이지만, 어찌됐든 이는 사설 업체에서의 현금거래, 불법작업장 등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골드 인플레이션의 가속화를 야기했다.
골드파티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판단은 차치하고서라도, 블리자드는 이 시스템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고수해온 ‘콘텐츠 중심’의 논리에 배치되는 행태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리자드는 ‘골드파티’란 용어를 단 한 번도 공지사항이나 패치노트에서 언급한 적이 없다. ‘게임의 방향성’과 ‘골드파티가 성행하는 현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고 애매한 줄타기를 이어온 것이 블리자드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번 토큰 상용화로 사실상 한쪽 축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고집스럽다 싶을 정도로 현금거래에 저항의지를 표했던 블리자드가 이제는 합법적인 현금거래를 할 수 있도록 유저들을 돕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블리자드는 레이드 골드파티를 인정하는 걸까? 분명한 것은 단순 콘텐츠에서 요구하는 골드를 수급하는 데에 대단한 골드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현 확장팩인 <드레노어의 전쟁군주>만 하더라도 퀘스트와 임무, 경매장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주둔지 업그레이드나 기타 콘텐츠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라이트유저들을 위해 골드거래정책이 정 필요하다면 콘텐츠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만 공급하면 될 일이다. 30일 계정가격에 상응하는 골드를 매긴 것은 분명 그 의중이 의심스러운 처사다. 일례로 해외사이트인 wowhead에서 한 유저는 게임 내에서 필요로 하는 골드(주둔지 업그레이드, 계승아이템 구입 등)의 양은 일정함에도 지역별로 상이한 토큰값을 매기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라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블리자드가 지켜온 게임정책에 빗댔을 때 토큰의 가격책정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 누구를 위한 토큰인가
wow토큰 출시에 유저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쉽게 거두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거래의 구조나 방법론에 있어서 일방적으로 유저가 피해를 입는 형태기 때문이다. 특별히 토큰의 값이 기존 30일 계정권보다 2,200원 비싼 것은 중요한 불만요소 중 하나다. 이번에 적용된 토큰의 거래 매커니즘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그러나 토큰거래를 사실상 블리자드와 다중의 유저간 1:1 거래로 볼 수 있다. 유저1이 토큰을 사면 유저2에게 그대로 팔고, 유저2는 다시 블리자드에게 반납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봤을 때 이렇게도 정리해 볼 수 있다.
토큰의 성능은 '30일 계정'이고, 결국 블리자드가 30일 계정을 유저들에게 기존 값보다 비싸게 파는 것으로 정리 가능하다. 게다가 ‘그 비싼 값’에 판 토큰 덕택에 이탈하는 유저 수를 줄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 떠났던 유저들의 복귀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골드가 필요한 라이트유저, 골드가 많은 헤비유저를 위해 준비했습니다’란 포장을 했지만, 토큰의 1차적 수혜자가 블리자드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기까지 그렇다 치자. 실제로 토큰이 갖는 심각한 결함은 따로 있다. 바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시세차익의 피해를 고스란히 유저들이 지게 된다는 점이다. 출시 첫 날인 7일, 12만골드에서 시작한 토큰은 저녁 11시경에 18만골드까지 치솟았다. 같은 날 토큰을 경매장에 판 유저간에 약 6만골드의 차이가 생긴 셈인데, 처음 토큰을 판매한 유저로서는 큰 손해를 보고 말았다.
토큰을 주식투자로 보는 사람은 없다. 정말로 와우가 콘텐츠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라면, 이런 식의 시세차이에 따른 피해를 염두에 두고 대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토큰은 현금으로 구입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출시 당일 12만골드에서 시작한 토큰의 값이 밤 늦게까지 치솟았다. 출렁이는 시세는 악용의 여지가 있다.
■ 수요와 공급은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까
토큰이 출시된 현재 주둔지 공개창이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비일비재하게 대두되고 있는 논란거리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문제다. 여기에서 수요는 골드로 토큰을 사는 것을, 공급은 토큰을 현금으로 구입해 파는 행위를 지칭한다.
GM요청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토큰은 상한이나 하한을 따로 두지 않는 완전경쟁시장을 표방한다.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조정되고, 그에 따라 수요·공급량도 조절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은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하드유저들이 보유한 천문학적인 골드에 무게를 싣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유저 연령대가 대체로 높은 와우의 특성상 다수의 ‘출근족’들이 토큰을 구입해 골드로 환산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한 토큰이 ‘한 달’이라는 기간적인 속성을 갖고 있기에 초반에 수요가 급증하다가도 곧 수그러들어 안정세에 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난립하는 의견 사이에서 낼 수 있는 답은 결국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망론이 유일하다.
다만 한국서버가 북미나 유럽과는 다른 골드수급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레이드던전 골드파티가 이만큼 활성화돼있는 지역이 없거니와 각종 작업장에 의한 골드수급도 무시할 수 없다. 그만큼 토큰의 시세안정화는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서버는 새 레이드던전이 등장하면 골드가치가 급증하고, 이후 점차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레이드던전 공개와 함께 골드파티가 활성화됐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 모든 유저들의 장비수준이 상향평준화 되는 시점에서 골드의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북미나 유럽에 대비해 골드의 가치가 매우 가변적이라 할 만한데, 토큰의 시세차익을 노리는 작업장의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사설 거래사이트에서 본 아즈샤라 호드 골드의 시세변동추이. 2월 26일에 6.1 패치가 있었다.
■ 산재한 문제점들, 블리자드가 ‘제대로’ 안고 가야
‘wow 토큰’ 출시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것은 단연코 블리자드다. 불법 작업장을 근절하고 골드거래를 합법화하는 것은 유저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지만, 블리자드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소식이다.
이미 디아블로 경매장을 통해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또다시 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야심차게 준비하고 기획한만큼, 생기는 부작용에도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지옥불성채 패치를 두여달 남긴 시점에서, 그 전까지 떨어질 골드의 가치와 이후 급상승할 골드의 가치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원문출처 : http://disolate.com/?p=1545
리플 모두가 와우를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씀들이라고 봅니다. 제가 쓴 본문도 그 본질과 다르지 않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사설업체의 사조를 그대로 따라가는 블리자드의 태도를 비판한 것이고, 경매장 시세차액의 피해가 고스란히 유저에게 돌아가는 것을 꼬집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