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에서 골팟이 주요한 레이드 분배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만큼 골팟에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저들이 처음부터 골팟을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접하는 기본적인 분배 방식은 당연히 주팟이고, 지금도 저레벨 던전이나 5인 던전에서는 주팟이 일반적입니다.
즉, 사람들이 주팟을 몰라서 골팟을 선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1. 주팟의 문제
주팟은 간단하고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레이드 규모가 커지고 아이템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예외 상황이 계속 발생합니다. 그때마다 새로운 규칙이 필요해지고, 규칙이 복잡해질수록 출발 전에 합의하지 못한 부분을 두고 분쟁이 생깁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20레벨이 만렙인 클로즈 베타에서 폐광을 돌다가 지능 +6, 민첩 +2 반지가 나왔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전사님이 입찰해서 먹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은 반지 자체가 귀합니다. 그 전사님도 반지가 한쪽밖에 없었습니다. 지능 +6과 민첩 +2가 전사에게 아주 좋은 옵션은 아니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분명히 효과가 있습니다.
민첩은 치명타와 회피 등에 영향을 주고, 지능은 무기 숙련을 빠르게 올려줍니다.
전사 입장에서는 "나도 반지가 필요해서 먹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능이 필요한 직업 입장에서는 "왜 전사가 저걸 먹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가 틀렸다고 단정하기가 애매합니다.
이런 상황이 주팟의 어려운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가 레이드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5인 던전은 그래도 다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이드는 일주일에 한 번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아이템이 매주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몇 주를 기다려서 드디어 원하는 아이템이 나왔는데, 주사위에서 졌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아이템을 가져간 사람이 해당 레이드에서 실수가 잦거나 숙련도가 낮은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주팟에서는 이것 역시 규칙상 허용되는 일입니다.
결국 주팟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크게 불만 갖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규칙이 계속 추가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칙이 만들어집니다.
- 레이드 참여 특성 우선
- 저득자 우선
- 비스(BiS) 우선
- 해당 아이템을 실제로 사용하는 직업 우선
- 특정 아이템에 대한 별도 우선순위
- 경매 전 사전 합의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템의 가치와 활용도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 직업은 그 아이템 안 쓰잖아요."
"저도 그 아이템 쓰는데요."
"그건 비스가 아니잖아요."
"저는 이 세팅에서 사용합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분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주팟의 단순함을 유지하려고 시작했는데, 예외를 하나씩 막다 보면 규칙이 점점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2. 골팟은 무엇이 다른가
골팟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적어도 아이템을 얻을 기회를 운 이외의 수단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골드가 많은 사람이 아이템을 가져가면 "골드로 템을 다 쓸어간다"는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골드를 사용하고도 다음 기회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반면 주사위에서 몇 주 동안 기다린 아이템을 놓치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고정 공격대라면 그나마 상황이 낫습니다.
이미 아이템을 먹은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내가 해당 아이템을 먹을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공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매번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시즌이 끝날 때까지 원하는 아이템을 먹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고정 공격대 역시 아이템을 먹은 사람이 탈퇴하거나 다른 캐릭터로 갈아타는 등의 변수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매주 주사위에서 계속 패배해서 원하는 아이템을 하나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과연 게임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요?
그렇다고 골팟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골팟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골드와 현질의 연결입니다.
아이템과 캐릭터 성능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 혹은 골드를 직접 파밍할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현질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골팟이 현질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현질을 하지 않는 일반 유저가 체감하는 피해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골드가 많은 사람이 모든 아이템을 쓸어가는 경우가 매번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레이드에 필요한 소모품이나 제작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골드를 많이 벌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현질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템을 빠르게 맞추고 싶은 유저에게는 골팟의 경쟁이 직접적인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골팟에도 분명한 단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골팟이 계속 살아남았을까?
저는 결국 아이템 획득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크다고 봅니다.
주팟에서는 운이 좋으면 아무런 비용 없이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이 나쁘면 몇 주, 몇 달을 기다려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골팟에서는 최소한 골드를 확보하면 원하는 아이템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즉,
주팟은 아이템 획득에서 운의 비중이 크고, 골팟은 골드라는 자원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가 골팟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골팟이 막힌다면?
블리자드가 골팟을 제한한다면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주팟으로 돌아가서 끝낼 문제도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해외에서도 여러 가지 분배 방식이 시도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례들을 참고해서 우리 환경에 맞는 규칙을 찾아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일 것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특정 분배 방식의 이름이 아니라,
공대장이 쉽고 직관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가?
공대원들이 규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가?
아이템을 얻지 못했을 때 납득할 수 있는가?
예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분쟁이 적은가?
라고 생각합니다.
골팟이든 주팟이든 완벽한 방법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이 실제 레이드에서 가장 적은 분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게 운영될 수 있느냐일 것입니다.
골팟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골드로 템을 사고 싶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주팟에서 반복적으로 원하는 아이템을 놓치거나, 애매한 규칙 때문에 분쟁을 겪었던 경험 때문에 다시 그런 상황을 겪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골팟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반대하기보다는, 골팟이 해결하고 있던 문제부터 살펴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