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전부터 세계를 뜨겁게 달군 국산 콘솔 게임.
이런 말을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어쨌거나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의 현 상황을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이 말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최근 서구권 매체에서 정치적 올바름(PC)의 시각에서 스텔라 블레이드를 저격하면서 민감한 이슈에 불이 붙어버린 셈이라 조금 부풀려졌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고 해도 보통 게임이었다면 사그라들기 마련입니다. 연료나 장작이 없다면 불이 타오를 만큼 타오르다가 꺼져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스텔라 블레이드'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수로 먼저 유출되어버린 데모 버전의 완성도는 그런 이슈와는 상관 없이 감탄하게 만들 정도였거든요. 빠르고 치열한 액션 공방, 눈을 뗄 수 없는 아크로바틱한 움직임과 카메라 구도, 여기에 플러스 알파로 잘 만들어진 캐릭터가 더해지니 그 짧은 시간에도 인상이 짙게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그 단면은 검증을 받았으니, 그 폭발적인 추진력이 끝까지 쭉 이어질지 또 얼마나 더 진화된 게임플레이를 후반부에 보여줄지가 관건일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텔라 블레이드'는 액션의 바리에이션을 넓히기 위한 집념을 조금은 짧지만 그래도 굵직하고 폭발력 있게, 그리고 끝난 뒤에 아쉬움에 다시 한 번 잡게 만들도록 끌고 가는 작품입니다. 이제 올해 2분기가 시작됐을 뿐이라 김치국 마시는 거 아닌가 싶지만, 올해 게임대상 그리고 GOTY까지 노릴 후보작이라고 과감하게 질러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명: 스텔라 블레이드
장르명: 액션
출시일: 2024.4.26
리뷰판: 사전 리뷰 빌드(1.001)개발사: 시프트업
서비스: SIE
플랫폼: PS
플레이: PS5
소울라이크의 긴장감과 속도감 있고 시원한 액션, 부담감까지 줄인 삼박자
다크 소울 이후로 하드코어 액션 게임들은 대부분 '소울라이크'를 표방하고 나섰습니다. 소울라이크의 특징을 굳이 짚고 넘어가자면 공격 및 회피, 방어와 회복 수단에 여러 제약이 있고 적의 공격이 하나하나 치명적이라는 점, 미니맵은 없고 중간중간 회복하거나 적이나 맵에서 얻은 노획물로 장비를 정비할 포인트가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죠.
이미 시프트업에서 '스텔라 블레이드'가 소울라이크가 아니라고 공언했는데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울라이크에서 긴장감과 이완을 조율하는 요소를 분석하되, 그것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고 다른 여러 스타일과 섞어낸 것이 '스텔라 블레이드'의 액션이기 때문이죠.
사실 '스텔라 블레이드'의 액션을 살펴보면 이미 소울라이크와는 궤가 다른 게 확실합니다. 소울라이크는 실전에 100% 가깝지는 않더라도 그와 유사하게 공격과 방어 모두 리스크가 있다 보니 화려하기보다는 신중하게 내지르는 액션이 주가 되죠. 그런데 '스텔라 블레이드'는 이브의 동작 하나하나가 굉장히 화려하고 아크로바틱합니다. 데빌 메이 크라이나 베요네타가 떠오를 만큼 시원시원하죠.
주인공의 액션이 그렇게 화려한 것을 소울라이크식으로 해석하자면, 곧 빈틈도 많아서 반격 당하기 딱 좋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인간의 한계를 넘는 빠른 속도로 풀어나갔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방어 수단에서 소울라이크식 한계를 과감하게 깨버리고 여러 대응 메카니즘을 설계하면서 특유의 빠른 템포의 공방을 빚어낸 것이 '스텔라 블레이드'죠.
데모 버전 플레이 이후에 해외에서 '세키로'를 언급한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키로'가 소울라이크의 긴박함은 살리되, 여기에 다른 스타일을 더해서 자기만의 액션을 구축한 케이스이기 때문이죠. 기존의 소울라이크와는 다른 빠른 이동 속도와 지형지물을 이리저리 오가는 무브먼트, 그리고 패링이나 가드만으로 대처가 안 되는 특수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을 설계한 사례니까요.
그렇지만 '스텔라 블레이드'는 그것과도 조금 다른 방향입니다. 소울라이크식의 제약을 한층 더 풀어버렸습니다. 공격과 방어, 회피에 스태미나 소모나 어떤 제약도 없죠. 그리고 소위 '한 방'으로 몰려오는 다수의 잡몹들을 일순 제압하는 기술도 비교적 자주 활용할 수 있는 편입니다. 퍼펙트 패링과 업그레이드 이후에는 공격으로 게이지를 쌓아서 사용하는 '베타 스킬'과 퍼펙트 회피 및 이후 연계 스킬로 얻은 버스트 게이지를 활용하는 '버스트 스킬'이 그 좋은 사례죠.
이렇게 말하면 소울라이크에 익숙해진 하드코어 액션 팬들에게 싱겁다는 인상이 들지 모르겠지만, '스텔라 블레이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드코어한 긴장감을 구축해낸 작품입니다. 앞서 '제압'이라 표현한 이유는 그런 기술들이 포위한 잡몹들을 멀리 날려서 다운시키거나 경직시켜서 틈을 만드는 정도지 아예 쓸어버릴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리고 비교적 자주 사용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정통 소울라이크에 비교한 것이지, 그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회피나 패링, 매복 등 각종 시스템을 활용해서 게이지를 쌓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갖춰진 이유는, 그걸 활용하지 않고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생각보다 꽤 자주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죠.
액션의 시스템과 종류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방어에서는 가드, 패링, 회피에 적의 특수 패턴을 피하고 뒤로 돌아들어가서 반격하는 '블링크'와 튕겨낸 뒤 공격 찬스를 잡는 '리펄스'가 있습니다. 공격에서는 기본 공격과 강공격의 분기 공격이 있고, 패링이나 회피 이후에도 기본 공격이나 강공격 홀드에 후속타로 연계 공격이 이어지죠.
그나마 무기는 검 하나라서 무기에 따라 달라지는 템포를 익힐 필요까지는 없지만, 여러 시스템이 더해진 만큼 그걸 100% 활용하지 못하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할 거라는 부담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특히 요즘 액션 게임이 소울류, 소울라이크를 너무 의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매워진 터라 초보들이 지레질겁할 여지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시프트업이 더더욱 '소울라이크가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위 '모르면 맞아야지', '유저 자신의 컨트롤 레벨이 올라가야 하는 게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초보자도 '액션'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공을 들였기 때문이죠.
일단 쉬움 모드인 스토리 모드로 가기 이전에, 일반 모드 이상에서도 버스트 스킬이나 베타 스킬의 다운 및 경직 효과는 보스한테도 상당히 통용이 됩니다. 그 효과를 무시하는 패턴들이 좀 있지만, 그때를 빼면 정말 위급하다 싶을 때 베타 스킬이나 버스트 스킬로 보스를 잠깐 다운시켜놓고 회복제를 부담 없이 거의 확정적으로 마실 수 있죠.
더군다나 나노수트를 안 입은 상태인 스킨 수트일 때 빼고는 실드가 있어서 퍼펙트 패링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피해 없이 가드로 상대 공격을 받아낼 수도 있죠. 물론 그렇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상 전개가 되면 실드를 깰 정도로 적의 공격이 굉장히 빠르게 연달아서 연타로 들어온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맨몸으로 가드대미지까지 받으면서 익히는 것보다는 좀 더 안정적으로 풀어가기 때문에 부담감이 덜합니다. 스킬 및 장비에서도 패링과 가드 판정을 살짝 유하게 풀어주거나 회복약 먹으면 일순 대미지가 경감한다던가 하는 등, 초보자들을 위한 세팅도 확실하고요.
그리고 보통 하드코어 액션에서 쉬움 모드하면 몹의 전반적인 스탯이 낮아지거나, 일부 패턴은 생략하는 그런 정도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스텔라 블레이드'에서도 물론 몹의 스탯은 조금 낮아지지만, 그보다 특정 패턴을 공략할 수 있도록 QTE식으로 팁을 제시해주는 '액션 어시스트' 옵션이 풀리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단순히 보스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정예몹의 패턴도 어시스트를 지원, 소위 '통곡의 벽'을 못 넘고 컨트롤러를 집어던지는 참사(?)를 피하게 해주었죠.
소울라이크, 혹은 정말 어려운 게임을 기대했던 유저라면 신성모독(?)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옵션은 액션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를 위해 마련된 거라 일반 모드 이상부터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시스트 옵션 켜도 자잘한 원투 패턴까지 일일이 QTE를 해주는 게 아니니, 어디서 갑자기 원콤 맞고 쓰러지지 말고 패턴 분석을 해보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꼭 그 버튼만 눌러야 하는 것도 아니고, 회피하라고 할 때 퍼펙트 패링을 해보거나 퍼펙트 패링 타이밍에 회피를 해보는 등 실전에서 직접 체득하기 위한 말 그대로 보조 시스템의 성격이 짙죠.
여기에 자신이 배우지 않았던 스킬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훈련' 등, 초보자들도 어떻게든 끝까지 그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설계가 돋보입니다. 그런 것을 다 해봐도 조금 어렵다고 느껴지는 유저들을 위한 장비 일종의 장비인 기어와 엑소스파인의 세팅도 잘 갖춰진 편입니다. 업그레이드는 캠프에 가야 하지만 비전투 중에 세팅은 바꿀 수 있죠. 그래서 다수전을 위한 세팅이나 보스전을 위한 세팅, 혹은 좀 덜 아프게 맞기 위한 방어적인 구성 등 언제든지 바꿔가면서 시도해볼 수 있게끔 했습니다.
또 여러 걸출한 액션 게임들 중 다수가 미니맵이나 맵을 만들지 않았던 전통(?)이 있는데, 이 부분을 계승하면서도 약간의 디테일로 접근성을 높인 부분도 높이 사고 싶습니다. 짧은 문장으로 주는 힌트나 적과 여러 오브젝트 위치를 살펴볼 수 있는 드론 스캔은 물론, 맵을 잘 살펴보면 뭐가 됐든 길로 이어지는 부근 어딘가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해두는 식으로 마킹해두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불필요하게 길을 헤매느라 스트레스 받는 시간은 줄이고 나름의 동선 설계도 하되, 기존의 하드코어 액션과 궤를 완전히 달리하지 않는 특유의 플레이스타일을 구축했습니다. 거기다가 캠프 위치도 정말 절묘해서, 뭔가 심하게 고생한 뒤에는 바로바로 캠프에 들러서 쉬었다가 다시 긴장의 끈을 붙잡을 수 있게 해놨습니다.
어느 하나에 얽메이지 않고 유연하게 잘 융합한 복합미
'스텔라 블레이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단어가 '아름다움'입니다. 캐릭터의 아름다움과 이를 살리기 위한 구도는 이미 널리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것보다는 게임플레이에서 여러 요소들을 다듬은 '복합미'를 먼저 좀 더 이야기할까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텔라 블레이드'는 여러 액션 게임의 요소들을 가져오면서, 이를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식대로 잘 융합하고 이를 새롭게 다듬어낸 게임입니다. 앞서 트레일러 그리고 데모에서 확인할 수 있던 부분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좀 더 진행하다 보면 정말 의외의 게임이 떠오르게 됩니다. 바로 '바이오하자드'죠.
눈썰미가 좋은 유저라면 아마 초반에 패스워드 코드를 찾아서 잠긴 문을 열거나, B.O.W가 연상되는 일부 네이티브 그리고 '실험'이나 '연구시설' 등이 언급되는 과정부터 뭔가 감이 왔을 겁니다. 그리고 중반에 의뢰를 받아서 지구에 생존했던 인류가 남긴 유적 '레보아'로 들어가는 구간에서부터 확실히 느낌이 오죠. 여기에 맵 중간중간 함정이나 각종 위험 구간을 빠르게 점프와 로프 스윙 등 여러 무빙으로 돌파하는 것에서 플랫포머나 혹은 호라이즌 시리즈, 툼레이더 시리즈 같은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느낌도 납니다.
조금 스포일러를 하자면, '레보아'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이브의 검을 활용할 수 없습니다. 외부와 통신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기능은 활용할 수 없게 프로텍트가 걸려있어서 드론에 부착한 원거리 공격만으로 돌파해야 하죠. 패링과 가드는 불가능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회피는 가능하기 때문에 이리저리 피하면서 슈팅으로 네이티브들을 쓰러뜨리고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스텔라 블레이드'가 이를 베꼈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앞서 여러 게임들을 빗대서 설명한 것처럼, 중간중간 새로운 경험을 주기 위해 그리고 개발진이 빚어낸 세계관을 좀 더 폭넓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잘 변주해서 활용했기 때문이죠.
사실 레보아로 들어갈 때 정도가 되면, 좋든 싫든 퍼펙트 패링과 회피를 상당히 숙련된 상태라 어지간한 적이 나와서는 크게 놀라거나 긴장할 일이 드뭅니다. 그래서 다소 루즈해질 수 있는데, 거기에 제약을 주면서 검증된 방법으로 긴장감을 더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구간이 엄청 길다면 본말전도였겠지만, 그렇게 길지는 않아서 원거리 슈팅으로 이렇게 플레이할 수도 있다는 걸 맛보기로 보여주는 정도였죠. 그런데도 그 장르에서 중요한 '샷건의 손맛'은 어느 정도 살아있어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슈팅 외 구간은 전까지 보여줬던 다양한 이동기들이 이렇게 활용될 수 있으니, 좀 연습해보라고 예고하는 수단이기도 했고요.
앞서 '의뢰'라고 이야기했는데, 초반부가 지난 뒤에 이브는 지구에 생존자들이 '자이온'이라는 도시를 세우고 그곳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네이티브를 통솔하는 엘더에게 접근하기 위한 '알파 코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자이온에 도착한 이브 일행은 단서도 얻고 생존자도 도울 겸 여러 가지 의뢰를 진행하게 되죠.
그렇게 여러 의뢰를 받아서 보상을 얻거나 멸망된 이후의 지구의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도를 더한 만큼, '스텔라 블레이드'는 이 구간에서는 맵 및 마크 기능을 일시적으로 활성시켰습니다. 의뢰 대상이 어디에 있나 세세하게 알려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을 줄인 거죠. 물론 레보아 등 여러 곳으로 이어지는 황무지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맵이 없지만, 서브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난 이후에는 바로 의뢰인에게 복귀하게 하는 식으로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어찌 보면 정말 여러 가지 요소들을 뒤섞다 보니 그 맛이 이도저도 아니게 버려질 우려가 있겠지만, '스텔라 블레이드'는 그 각각의 코어를 잘 살려낸 놀라운 설계를 보여줬습니다. 그 스타일이 주는 핵심 재미 요소는 살리되, 필요하다면 "이건 이래야 한다"는 문법을 과감하게 탈피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다양한 재료를 다듬은 '스텔라 블레이드'는 특유의 빠른 템포의 플레이와 복합적인 경험으로 루즈함 없이 쭉 플레이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죠.
더 설명이 필요한지? 아름다움과 스타일을 살린 그래픽과 구도
사실 국내에선 '김형태', 이 세 글자가 가진 파괴력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빚어낸 특유의 육감적인 그림과 스타일은 이미 20년도 전부터 쭉 이어지면서 발전해 왔으니까요.
그간 김형태 대표의 작품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소위 '과장'이 상당히 심하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단순히 크다거나 이런 식이 아닌, 입체감과 육감적인 미를 불어넣기 위해 고민하면서 발전해온 결과물이죠. 그리고 김형태 대표는 3D에서도 스스로가 '덩어리감'이라고 말하는 것을 살리기 위해 고심해왔던 역사가 있고요.
그 육감적인 스타일의 위력은 이미 오래도록 검증을 마쳤지만, 그 '스타일'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또다른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그 스타일을 좀 더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그래픽과 움직임, 강조할 부분은 강조하되 액션 게임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 연출과 카메라 구도 등을 꼽을 수 있겠죠.
'스텔라 블레이드'의 그래픽은 이미 트레일러에서 본 것처럼 여타 AAA 게임 못지 않은 퀄리티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파편이나 원경, 일부 효과 등 소소한 디테일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스텔라 블레이드를 면밀히 분석하다 보니 체감이 된 것이지, 평소 템포대로 플레이하면 크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그 퀄리티의 그래픽으로 대다수의 상황에서 60fps를 안정적으로 뽑아내다 보니 몰입감도 흐트러지지 않았고요. 물론 해상도 우선 모드를 하면 4k 대응이라 프레임이 떨어지지만 이는 퍼스트 파티 게임도 그런 경우가 많죠. 그리고 그런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 균형+성능 모드로 플레이하는 걸 권장합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공을 들여서 그래픽 작업을 한 결과물을 '어떻게', '어디에' 포인트를 맞춰서 보여주느냐도 관건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 단순히 특정 부위만 집중해서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은 카메라 구도의 자유도를 좀 높여서 유저 개인의 몫으로 남겨놓는 식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어디까지나 다소 루즈할 수 있는 이동 구간이나 대기 구간에만 해당되고, 액션에서는 이 부분을 강제로 어필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설득력 있는 움직임으로 보여줍니다.
실제로 이브의 액션을 살펴보면 마치 체조선수처럼 전신을 역동적으로 활용하는 동작이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브가 만나는 난적들이 거의 이브보다 크거나 혹은 내부에 기계들이 있어서 그냥 내리치는 것 정도로는 흠집이 안 나기 때문이죠.
혹자는 굳이 전신에 힘을 싣는데 그렇게 몸을 비틀어야 하나 의혹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실질적으로 보면 빈틈도 많고, 그런다고 힘이 온전히 실릴까? 싶은 동작들도 있으니까요.그렇지만 그런 것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또다른 수단으로 카메라워크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스텔라 블레이드의 카메라는 평상시에는 백뷰입니다. 그렇지만 특수 동작이 이어질 때의 복합적인 카메라워크는 그 짧은 시간에 일일이 다 설명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찍은 앵글을 교차하거나, 순간적으로 완급을 조절해서 임팩트를 강조하거나, 혹은 드롭킥의 순간에 줌인-줌아웃의 빠른 전환으로 적을 강타하는 느낌을 살리는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설계가 되어있죠.
그러면서 이브의 화려한 동작들을 캐치하면서도, 이브가 온몸의 힘을 다 짜내는 듯한 포인트까지 놓치지 않고 보여줍니다. 온몸을 숙였다가 일어나면서 올려베기를 할 때 정수리의 움직임부터 시작해 몸, 검신까지 이어지는 카메라워크에 완급 조절을 하거나, 적의 팔에 칼을 꽂은 뒤 빙글 돌면서 머리를 칠 때 그 회전 방향에 맞춰 카메라가 움직이다가 임팩트 직전 잠깐 슬로우, 그리고 줌인-줌아웃으로 그 위력을 역동적으로 보여주죠.
혹은 일부 동작은 속도를 느리게 재생했다가 중간에 과감하게 잠깐 생략하고 다른 구도로 다음 동작을 보여주면서 그만큼 빠르게 베어버렸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브의 긴 팔다리, 그리고 팔과 다리 움직임의 기점이 되는 어깨와 가슴, 엉덩이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역동적으로 카메라에 담기는 건 덤이죠.
그렇기에 아쉬웠던 디테일과 빌드업
액션 시스템도 잘 설계가 되어있고 편의성도 잘 갖춰진 데다가,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그 무브먼트도 입체적으로 잘 보여주는 만큼 '스텔라 블레이드'는 상당히 빠르게 훑고 지나갈 수 있는 게임입니다. 볼륨 자체는 엄청 크지는 않지만, 복합적인 설계로 다듬은 게임플레이의 밀도가 꽤 두터워서 한 번 더 해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죠. 여기에 멀티엔딩이기까지 하니 더 망설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것이 없듯, 일견 완벽해보이는 '스텔라 블레이드'의 설계도 예상치 못한 오류가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다회차 관련 편의 기능은 사전 리뷰 빌드인 만큼, 출시 빌드 혹은 데이원으로 패치될 수 있으니 차치해두더라도 뭔가 좀 석연치 않은 인상이 들거든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면, '이브'와 그 주변 인물의 빌드업이 다소 미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브라는 캐릭터의 매력적인 디자인과 액션, 그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큰 그림은 잘 구축했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갈 주연들에 초점이 맞춰져있지 않아서 허전한 인상이 들었거든요. 분명 이브와 아담 그리고 릴리가 중심이 되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건 맞는데, 그들에 대해 유저가 공감하거나 어떤 캐릭터인지 파악하는 것보다 세계관을 소개하기 위해 그들의 입을 빌린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딱딱 필요한 포인트에 맞춰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최근에 나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류 게임에서 종종 단점으로 언급되는 '고유명사 트랩'은 없긴 합니다. 고유명사가 나와도 사실 기존에 알던 개념으로 치환한 것이기도 하고, 지상의 상황을 잘 몰랐던 이브나 릴리 둘 중 하나에게 부연설명하는 식으로 전개가 되니 이해하기도 쉽죠. 그래서 이야기가 스무스하게, 또 빠르게 진행되지만 결국 '임무'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액션이 없는 구간에서는 굉장히 드라이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오히려 그런 공백을 키워놓은 뒤, 그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배제하고 일부 단서들만 던져놔서 상상으로 극복하게 만드는 소울식 해법도 있다 보니 그게 꼭 단점이라 짚기엔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스텔라 블레이드'는 결이 좀 다릅니다. 생존자들에게서 여러 의뢰를 받으면서 교류도 하고, 아담과 릴리가 함께 서포트하면서 소통하는 과정도 분명히 게임플레이에서 드러나있죠. 그래서 그렇게 빈 부분을 채울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분명 이야기는 하는데, 그 속이 비어있고 서로 목적만 이야기하는 빈 소통만 남은 느낌이거든요.
물론 그것이 어찌 보면 삭막하고 황량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보여주는 기재처럼 해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류가 피신한 우주 콜로니에서는 지구에 생존자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철저하게 파괴된 세계고, 더군다나 이브를 제외한 7차 강하 부대원들은 전멸할 정도로 네이티브의 세력이 강력하니 일일이 그런 이야기를 풀어놓을 여유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건 이야기를 플레이한 이후 곰곰이 생각해본 뒤에 떠오른 것이고, 플레이하는 과정에서는 무언가 아귀가 안 맞는다는 껄끄러운 느낌이 있긴 합니다.
사실 그렇게 아쉬운 생각이 드는 이유는, 잠깐 헤매거나 보스전 및 여러 난관에서 트라이하다가 죽어나가는 시간 빼면 플레이 타임이 좀 짧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플레이할 때 서브 퀘스트를 적당히 돌면서 28시간 정도 했고, 그 다음에는 멀티 엔딩을 파악하려고 스피드런식으로 메인퀘만 훑으니 10시간 조금 넘게 걸린 정도였거든요. 그 외에도 수집 요소나 곳곳에 숨어있는 퀘스트 등이 꽤 있으니 그것까지 다 훑어보면 플레이타임이 꽤 확보가 되겠지만, 그것까지 플레이하게 만들 '이유'까지 다다르게 하는 유인 요소로서 캐릭터 빌드업과 스토리는 뭔가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아쉽습니다.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부터 '스텔라 블레이드'의 완벽해 보였던 설계는 조금씩 틀어진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좀 더 이야기를 풀어놓도록 분량을 확보하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고, 또 그 과정에서 종종 무언가 핀트가 안 맞는 BGM도 섞여 있어서 애매하다는 인상이 들었거든요. 물론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불합리하고 무언가 어긋난 세계관을 보여주기 위한 아방가르드한 장치라고 이해할 법하지만, 이 역시도 플레이한 이후에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떠올린 점이라 플레이하는 과정에선 불협화음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다양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설계한 부분도 그 디테일을 훑어보면 완벽하진 않습니다. 특히 원거리 무기나 충격 수류탄 같은 보조 장비들은 좀 미묘한 편입니다. 원거리 무기의 진동이나 트리거는 잘 되어있는 편이지만 스왑은 불편하고, 원거리 조준 보정 옵션 자체는 상당히 준수한 편이지만 면적이 큰 적에게 쓸 때는 불필요한 범위까지 보정이 걸리는 터라 옵션을 자주 바꿔야 하죠. 그리고 탄 보급이 원활하지 않은 터라 리펄스 상황에서 탄을 퍼붓기도 애매할 때가 있어 그 의미가 퇴색되기도 하고요. 수류탄류는 적한테 던지는 게 아니라 바닥에 까는 형태라 어느 정도 게임에 익숙해지지 않고는 쓰는 것부터가 어려워서 도움이 크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입력하자마자 즉각적으로 동작을 취하지 않고 약간의 딜레이로 긴박함을 주는 요즘 액션 트렌드를 보여주는 만큼, 소위 플랫포머식 '무빙 지옥' 파트는 좀 부자연스러운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이 적응된 상태에서 다시 다회차를 도는 건 문제가 없지만, 이미 봤던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똑같이 봐야 하는 상황은 썩 달갑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 서사의 빌드업이 좀 미진한데, 계속 그걸 훑어보다 보면 그 부족한 점이 자꾸 눈에 밟히거든요. 그나마 파고들다 보면 낚시를 비롯해서 이리저리 탐사하는 요소들로 '스텔라 블레이드'의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를 계속 훑어보게 만들지만, 정작 그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할 주인공 일행의 빌드업이 부족하다는 점은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뭔가 여기에 좀 더 풀어놓을 수 있지 않았나, 좀 더 넣어서 간을 맞췄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국산 PS5 머스트 플레이, '스텔라 블레이드'
그렇게 말은 하지만, 솔직히 '스텔라 블레이드'의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 다회차를 주저 없이 또 내달렸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게임대상이니 GOTY니 이렇게 내지르기가 참 두려워지는데, '스텔라 블레이드'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렇게 확 질러버릴 정도로 놀라운 경험을 줬거든요.
물론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짓고,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나니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냥 단순히 재미있게 플레이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떤 게임인지 냉철하게 파악하고 단점도 분석해야 하는 게 제 본업이기 때문이니까요.
사실 액션의 방향성이나 캐릭터, 플레이 방향성 등 취향의 영역은 호불호가 필히 갈릴 수밖에 없고, 그런 문제는 '스텔라 블레이드'뿐만 아니라 어느 게임이든 뛰어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요소를 제외하고 액션 게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요소와 퀄리티를 봤을 때, '스텔라 블레이드'는 정말 상상 이상의 위력을 보여줬습니다. 단순히 멋지고 긴박한 액션 공방을 넘어서 접근성까지 폭넓게 고려했고, 액션을 더 멋지게 보여주기 위한 디테일한 설계에 새로운 경험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플레이하게 만드는 구성까지 멋들어진 복합미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과감하게 '스텔라 블레이드'를 PS5 머스트 플레이 게임으로 손꼽고 싶습니다. 소울라이크 등 어렵고 하드코어한 액션 게임을 즐기는 유저는 물론이고, 패드 조작 및 최근 액션 게임의 어려운 난이도에 익숙하지 못해서 콘솔 액션 게임이 꺼려졌던 유저에게까지 각각의 수준에 맞춰서 이렇게 짜릿하고 손맛 있는 액션을 보여줄 타이틀이 근래에 있었나 싶을 정도였거든요. 더군다나 듀얼센스 활용도도 퍼스트 파티 못지 않고 그래픽 최적화도 뛰어나서, PS5의 기능을 체감하기에 적합한 타이틀 아닌가 싶습니다. 어댑티브 트리거의 손맛을 느낄 구간도 있고, 햅틱 피드백으로 전해지는 세밀한 진동과 3D 사운드까지 더해지면서 PS5로 액션을 하는 맛을 극대화했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다 하고 난 뒤에는 메인스토리의 다소 짧은 분량이라던가 이브나 다른 캐릭터의 빌드업이 미진했던 것이 아쉬울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후속작이나 DLC에서 풀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행복회로를 쭉 돌릴 만큼, '스텔라 블레이드'의 여운은 상당합니다. 그래서 리스크를 무릅쓰고 또 한 번 말하자면, PS5를 갖고 있다면 '스텔라 블레이드'는 무조건 해보길 추천합니다. 이런 완성도에다 신사적인 무브먼트까지 뒷받침된 게임은 아마 한동안 나오기 힘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