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초보 개발자도 눈뜨게 해주는 ‘게임 기획의 정석’

칼럼 | 윤서호 기자 | 댓글: 1개 |



이름: 게임 기획의 정석
저자: 타이난 실베스터(루데온 스튜디오 설립자, '림월드' 제작자)
출판: 스타비즈

"나는 게임 기획을 몰랐다"

새삼스럽고 부끄럽지만, 이 책 '게임 기획의 정석'을 읽고 나서 스스로 이렇게 고백한다. 기껏해야 국비지원 게임 개발자 교육 과정에 포트폴리오 몇 개월, 그리고 유니티와 연이 닿아 클리닉을 받았던 게 전부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3D는 다 잊어버렸어도 2D는 그나마 틈틈이 그림을 그렸던 짬도 있고, 한때 소설가가 되겠다고 글도 쓰고 그러다가 기자가 됐으니 늘 했던 것처럼 뭔가 '공부'하다 보면 될 거란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림월드'의 개발자 타이난 실베스터가 쓴 이 책, '게임 기획의 정석'은 그런 일련의 노력을 부정하거나 어떤 가치에 대해 설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언가 특별한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저자가 20년 넘게 게임을 기획, 개발하고 플레이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던 내용을 각 단계에 맞춰 차곡차곡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Designing Games', 즉 게임 디자인하기지만, '게임 기획의 정석'이라는 제목 번역이 딱 어울릴 만큼 정석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놓치고 있던 것들, 중요하지만 너무 기본적이라고 생각해서 쉽게 망각해버린 것들을 다시금 지적한다.

"왜 그 게임을 하는가?"

게이머 입장이라면 흔히 밈으로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넘어가곤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개발자, 특히 기획자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저자는 한 차례 더 강조한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게임 장르마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이유'가 있다. 그러니 그걸 역으로 설계해서 제공하는 것이 '게임 기획'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 이 게임을 통해 유저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이며, 그 경험이 유저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또 그러기 위해서 어떤 메카닉이 요구되는지 등등. 게임 기획을 공부하다 보면 으레 들었을 말들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런저런 컨퍼런스를 취재할 때마다 매번 들었던 단어라 익숙하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는 것은 다르고, 때로는 눈먼 함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새로운 것이 없어서 실망할 독자들에게 저자는 "새로운 것이 꼭 새로운 경험을 주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색다른 아이디어나 새로운 기술은 분명 새로운 재미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줄 다른 콘텐츠나 시스템의 연계 그리고 레벨 디자인의 조화가 없으면 '게임'은커녕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좌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스스로가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처음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어떻게 해야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까"였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 혹은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아이디어로 남에게 어필하고 싶다는 그런 욕망이 차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무엇이' '어떻게' 그 요소를 뒷받침할지, 더 나아가 '사람들이 여기에서 무엇을 느낄 것이고,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빠져있었다. 일단 만들면 된다는 허파에 바람이 든 허황된 희망만 있었고, 결국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이 기능을 구현할까"에 집중했다. 한 차례 실패한 뒤에는 AI의 도움까지 받아서 '어떻게'에 집중하면서 무언가 빠르게 만들었지만, 그 게임이 어떤 경험과 재미를 줄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스스로 테스트하면서도 이게 재미있을까? 싶었지만 이미 시작해버린 만큼 무언가 크게 각성하지 않는 한 파국으로 치달을 건 분명했다.

결국 그 해결책으로 계획을 너무 많이 짜지도, 그렇다고 허술하게 짜지 말고 스스로의 '의도'를 먼저 분명히 하라, '멋진 경험'이 아닌 그 경험을 만들어낼 방법을 생각하라는 기초적인 내용이 언급된다. 이를 보면 이 책이 기획을 많이 안 해본 초보를 위한 책처럼 느낄지 모르겠다. 실제로 업계에 이제 막 들어간 신입인 지인이 매번 듣는다고 하는 소리와 일맥상통하니까. 그러나 파트2의 후반부부터 점차 경력직 기획자들도 놓치고 있는 것, 혹은 경력직들이 풋내기 티를 조금 벗어나고 있는 후임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내용들을 풀어놓고 있다. 그렇기에 여러 걸출한 개발자와 업계인들이 이 책에 헌사를 흔쾌히 써줬을 것이다.

후반부에는 게임 기획을 처음 짜본 초보에서 벗어나 그 프로젝트를 통해 투자를 받거나 출시 전 테스트, 그리고 마케팅을 하는 과정과 조직 관리에 대한 내용까지 언급되어있다. 테스트나 조직 관리까지는 몰라도 투자, 마케팅은 게임 기획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렇지만 저자는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 그러기 위해 무엇을 구축해야 할지 설계한 '기획'이 뒷받침되야 투자자와 플레이어를 설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테스트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것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흔히 테스트의 목적을 "게임이 어땠나" 평가받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기획자는 자신의 의도가 플레이어에게 전해졌나 여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이전에, 아예 그 부분을 놓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일련의 내용을 단순히 그래야 한다고 설명하거나 주장하기만 하지 않는다. '카운터스트라이크', '스타크래프트', '심즈', '시스템쇼크2', '바이오쇼크' 등 여러 게임을 분석하면서 좋은 게임 기획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얼핏 보면 단순한 내용도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뽑아낼 정도로 그 예시는 방대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친숙한 게임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만큼, 게임 개발자 경험 유무와 상관 없이 보다 보면 게임을 분석하고 그 의도를 파악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책에 나온 예시가 다소 오래된 만큼, 이 책에 나온 내용이 과연 현대에도 걸맞을지 의문일 수도 있겠다.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 나오지만 모바일 게임에 대한 언급은 없고, 최근 이슈가 되는 게임의 양상에 대해서도 소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은 윤리가 아닌 기술적인 측면에서 저자 스스로가 즐기던 게임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기획의 방법을 차근차근 짚어나간 책이다. 그럼에도 기획자라면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고민에 대해 그는 아예 손을 놓고 있진 않았다.

"보상 조정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임들도 있다. 그들의 전체 기획은 핵심 경험을 희생하더라도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기를 생성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이것은 플레이어를 계속 플레이하게 할 수 있지만, 또한 플레이어의 후회로 이어질 수 있다.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의 직업에서 윤리적인 질문에 직면해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때는 보상 강화의 힘을 몰랐다.

(중략) 나는 제작기술을 마스터하기 위해 충분히 신경 쓰는 기획자라면 스키너 박스 이상의 것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이것이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길일 수 있다. (중략)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플레이어들은 플레이어의 후회를 피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들의 무의미한 전리품에 대한 욕망이 소진되고, 우리의 모든 속임수를 눈치챈 후에도, 플레이어들은 게임에서 항상 원했던 것을 여전히 원할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친구들, 그리고 새로운 경험들 같은 것들 말이다.(본문 276p~279p)"


이러한 위로와 함께 저자는 자신의 책이 답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기획자조차 성공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심즈'가 1억 장이 넘게 팔렸듯이, 어떤 아이디어가 세상을 흔들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후반에 조직 관리 같은 분야는 어떤 방법이 있다 정도만 소개되는 정도에 그친다. 그 스스로도 게임 기획자로서 이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했다 정도만 느끼고 익힌 것이지, 그것을 가르칠 정도로 파고들진 않았다. 그럼에도 게임 개발에 관심이 있다면 그간 생각만 하고 구체화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사항을 구체화할 수 있는 '힘'이 이 책에는 담겨 있었다. 정말 정밀하게 기술적으로 파고들기 위한 책 혹은 소위 '잘나가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비법은 없지만, 기획자로서의 기본적인 마음가짐 그리고 정석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다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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