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중국 베이징 시청구에서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회의가 진행되었다. 결과는 기존 국가주석이던 시진핑 주석의 3연임 확정. 과거 공산당의 국가주석직은 2연임까지만 허용되었지만, 2018년 헌법을 뜯어고치며 연임 제한에 대한 법적 장애물을 없앤 시 주석은 최초로 3연임을 달성하며 사실상 장기 통치를 위한 기반을 공고히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좋든 싫든 중국의 정치적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정학적인 문제도 있고, 그 거대한 시장에 의존하는 산업이 적지 않으며, 우리가 '유럽 쪽은 이렇더라'라고 말하듯 한 덩어리로 묶어 표현하는 '동아시아'에도 중국과 대한민국이 모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20차 전국대표회의, 줄여서 '이십대(二十大)'의 결과는 국내외 각종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빅 이벤트이지만, 오늘은 게임 소식을 담는 매체인 만큼 '게임 산업'에 한정해 중국의 정치 변화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에 대해 유추해보려 한다.
■ 2021년 8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규제-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전망
이 모든 것을 말하기 전,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이번 공산당 전국대표회의는 중국 정치사의 큰 이벤트이긴 하지만, 진로가 바뀌는 변곡점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시 주석은 이전부터 연임을 거치며 통치 체계를 견고히 함과 동시에 자신의 사상을 대륙 전역에 골고루 뿌려 두었기에, 실질적으로 이번 행사는 '원래대로라면 끝나야 했을' 정권의 행보가 무기한으로 바뀐 형태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중국 게임 산업의 변화 방향도, 기존의 흐름이 더 확실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쪽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기존의 흐름'은 중국 게임 산업 종사자의 입장에서 절대 좋다고는 볼 수 없는 흐름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5년 전인 2017년 이뤄진 '제19차 전국대표회의'를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19차 대표회의에서 시 주석은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Socialism with Chinese Characteristics for a New Era)'라는 통치 철학을 주창하며, 2021년부터 2049년까지 이어지는 발전 청사진을 제시했다. 덩샤오핑이 도광양회와 흑묘백묘론을 통해 국가의 위상을 다른 웬만한 나라 모두에 비빌 정도로 올릴 것을 꾀했다면, 시 주석의 이 사상은 중국을 세계 유일의 강자로 만들기 위해 계획한 가이드라인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주장하는 요점 중 하나가 바로 민생과 복지의 개선, 즉 '샤오캉 사회(소강사회: 小康社会)'의 이룩이다.
'샤오캉 사회'는 적당히 요약하면 덩샤오핑의 부분적 개방 이후 발생한 부작용인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인민이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춘다는 것인데, 사회주의적으로 매우 이상적인 이 체계를 시 주석은 2021년까지 이룩하겠다고 계획했다.
그리고 이 계획이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난게 목표 해였던 2021년의 대규제, 그리고 '공동부유(共同富裕)' 개념이다. 정리하면 부의 편중을 막고 재분배해 모두가 잘 살아 보자는 뜻이다. 여기서 문제는 대부분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나라들이 빈부격차의 해소를 '과세'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 비해, 중앙 정권의 힘이 막강한 중국 공산당은 직접 칼을 빼들고 고소득 산업을 조져 자발적 기부를 받아내기 시작했다는 거고, 이게 대규제의 시작이다.
2021년 8월, 공산당은 굉장히 강력한 규제를 사회 및 문화 전반에 시행했다. 여기서 타깃이 된 주 업종은 '연예계'와 '부동산', 그리고 '게임&IT'. 셋 모두 중국 내에서 굉장한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업종이었다. 이중 부동산은 전년의 대출 규제에 이은 헝다그룹의 파산 위기로 흔들렸고, 연예계는 '정풍 운동'으로 너덜너덜해졌다.
'게임&IT' 업계 또한 굉장한 타격을 받았는데, 먼저 한국의 셧다운 제도 정도는 애교로 보일 엄청난 수준의 셧다운제를 시행하면서 게임 전체 이용 시간을 줄임과 동시에 미성년자의 게임 접촉을 차단해 e스포츠 유스풀을 사실상 없애버렸다.
텐센트의 주가는 전분기 대비 40% 가깝게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500억 위안을 기부해 정권의 칼을 피하는 선택을 했으며, 알리바바 또한 앤트 파이낸셜 문제로 정권과 마찰을 빚은 끝에 꼬리를 내리고 1,000억 원을 기부해 공동부유 동참 의사를 밝혔지만 2021년의 주가는 2020년 대비 반절도 안 되는 수준으로 급락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IT기업들이 어쩌다 보니 정권과 다투는 모양새가 되어 자발적 기부금을 내고 꼬리를 내린게 현 상황이다.
이렇듯, 자국 기업들에게 철퇴를 때리는 상황이다 보니 당연히 중국에 진출한 국내 IT 및 게임 기업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는게 2021년 여름 이후 지금까지의 흐름이다. 문제는, '이십대'의 결과로 인해 이 흐름이 앞으로 당연히 이어질 것이며, 어쩌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문 닫힌 중국 시장- 외자 판호 발급은 당분간 '불가능'일 것으로
사드 미사일 배치 문제를 놓고 시작된 '한한령' 이후로 판호 발급이 잘 이뤄지지 않아 진출 자체가 어려웠고, 2021년 시작된 규제 이후 기존에 진출한 게임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다가 앞으로의 전망도 딱히 밝다고 말하기 어렵다.
먼저, 중국 진출의 가장 큰 장벽인 서비스 인허가권, 즉 '판호' 발급은 아직도 단단하게 얼어 있다. 판호 발급 건에서 그나마 자유로운건 중국 내에서 개발하는 게임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내자 판호', 이마저도 작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반 년이 넘는 기간 동안은 발급되지 않았다.
올해 4월이 지나서야 자국 게임들에 대한 판호 발급이 재개되었지만, 그마저도 규제 전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 '이터널 리턴'이 현지 퍼블리셔를 통해 내자 판호를 발급받긴 했지만, 외산 게임을 대상으로 하는 외자 판호의 발급 건수는 4월 재개 이후 단 한 건도 없다.
결과적으로 중국 게임들은 국내에서 꾸준히 소득을 올리고 있지만 국산 게임들은 중국 시장 진출이 가로막힌 상황이기에 매우 불공정한 상황이라 볼 수 있지만, 사실상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WTO 제소를 통해 중재를 노리려 해도 중국이 그 중재책에 응할지는 미지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자국 개발사를 우대하고 외산 게임을 차별하는 보호 무역의 연장으로 보기도 어렵다. 공산당은 2021년 규제 당시 게임을 '정신적 아편'으로 표현했는데, 아편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은 데다 현재도 마약 사범에게 용서가 없는 중국의 정서 상 아편에 무언가를 비유했다는 건 타 국가에서 말하는 '게임은 마약이다'라는 언급 이상으로 강경한 표현이다.
이걸 '길들이기'로 봐야 할지 고사 작전의 과정 중 하나로 봐야 할지에 대한 판단은 아직 확실히 내리기 어려운 상태이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 측은 이를 강력한 길들이기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 3월 발행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보고서는 이 규제를 두고 직접 관리가 힘든 게임사들의 폐업과 청산을 유도해 게임 시장을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려는 의도라 분석했으며, 실제 행보도 이에 가깝게 이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공산당 정권이 자국내 게임 산업의 목줄을 완전히 틀어쥐게 되는 그 순간까지 국산 게임의 중국 진출은 어려우며, 그 시점이 지나고 나서도 중국 정부가 해외 게임에 어떤 태도를 보여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현재까지의 관측으로는 그 이후에도 딱히 좋아지리란 기대를 품기는 어렵다.
■ 한국 내 '중국 게임'들의 입장- 현 상태 유지가 최선의 결과
반대로, 한국에 진출한 중국 게임사들의 미래 또한 밝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중국 게임들의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은 채, 서비스중인 게임의 종류만 줄어들 확률이 높다. 중국은 모든 개인의 안면 정보를 수집해 활용하는 빅 브라더 국가이기 때문에 지금도 자국의 문화 정체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게임들은 해외에서도 서비스할 수 없으며, 억지로 했다간 농담이 아니라 게임사가 사라진다.
결국, 지금 해외 곳곳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중국 게임들은 깐깐한 자국의 문화 검열을 통과한 게임들이기에 아마 별 탈 없이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앞서 말한 중국 내 게임 산업 규제에서 살아남지 못한, 비교적 약체에 속하는 게임사들은 어쩔 수 없이 사업 규모를 축소해야 할 테니, 자잘하게는 업데이트 규모가 늘어나거나 한국어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의 문제, 크게는 사업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 현 중국의 태세는 자국 산업을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외산을 배척하는 형태가 아닌, 게임 산업 전반을 골고루 후려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 더 지나면, 다소 이상한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국유화까지 거론하고 있지는 않으나,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분석이 옳다는 가정 하에 중국이 자국 내에서 자국 게임사들을 대상으로 펼치고 있는 강경한 길들이기 정책은 게임 산업에 확실한 목줄을 걸고 나서야 변화를 맞이할게 자명하다. 그리고 이 말은 곧, 중국 게임 산업의 지향점이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수요에 맞춘 공급'이 아닌, 공산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뀐다는 점이며, 이 변화가 곧 문제의 요지가 된다.
이전에도, 중국 게임들이 국내에서 이런저런 문화 갈등 이슈를 만들어내는 사례는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일어나곤 했다. 대표적으로는 한복을 둘러싼 표기 문제나 전통 문화의 대한 의식의 차이, 표기 문제 등인데, 아마 이전까지는 알고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없진 않았겠으나 단순 실수인 경우도 분명 존재할 거다. 규제 이전까지 중국의 게임 산업은 엄연히 자본주의 체제를 따르는 산업이었으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남으려면 수요, 즉 한국 게이머의 입맛에 맞춘 상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산당의 게임 산업 길들이기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중국 게임들이 기존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은 꽤 노골적으로 문화 흡수를 위해 억지를 쓰고 있으며, 이런 저런 매체들을 통해 이를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다. 게임은 젊은 세대의 생활 전반에 골고루 스며들어 있는 매체인 만큼, 이론 상으로는 꽤 매력적인 프로파간다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실효성은 제로에 가깝겠지만 말이다.
이와 같은 미래는 분명 극단적인 모습이지만, 중국 게임들의 '이상 행동'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예측이다. 현재 한국에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는 중국 게임사들은 자국 정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지금도, 기사에 자신들의 게임과 결부되어 중국 정부가 적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문구가 실리면 비상사태가 펼쳐진다. 게임사들 입장에선 영 눈높이가 맞지 않는 한국 게이머들과 자국 정권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외줄을 타는 심정일 거다.
물론, 자국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 시장에 주력하는 방법도 중국 게임사들에게는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해외 곳곳에 지사 및 개발 스튜디오를 늘려가는 중국 기업이 늘고 있다. 이는 심한 규제의 자국 시장 외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자구책으로서 의미는 있겠지만, 본사가 중국에 위치하고 임직원이 중국 국적을 지닌 이상 정권의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볼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내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가 계속 이어진다면, 저울추가 어느쪽으로 기울게 될 지는 꽤 뻔한 일이다. 한국 게이머들은 이들에게 큰 수익원이지만, 목숨줄을 쥐고 있는 이들까진 아닐 테니 말이다.
이와 별개로 중국 내 게임 산업 규제가 한국 시장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게임사도 게임사지만, 플레이 시간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데다 신작 출시도 이뤄지지 않는 자국 시장에서 눈을 돌려 한국 서버에서 게임을 즐기는 중국 게이머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대국인 중국인 만큼 이 수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다, 이를 보다 편하게 만드는 비인가 프로그램을 제작, 판매하는 업체들도 늘어나다 보니 중국 게이머들의 대규모 엑소더스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형편이다. 당연히 같은 서버를 사용하는 한국 게이머들이 접속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정리하면, '이십대'의 결과는 시 주석의 사상이 중국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릴 계기가 되었으며, 고소득 산업에 철퇴를 가해 빈부격차를 줄이겠다는 '공동부유'는 1년 정도의 계도기간을 끝내고 본격적인 국가 운영 철학 중 하나가 되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 게임 산업은 아마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공산당 통제 하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해서 고통받을 테고, 현 정권의 통치 근간이 흔들릴 일은 어지간한 빅 이벤트가 아니면 없을 테니 자연스럽게 정권 통제 하에 편입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중국 게임 시장은 자국 산업을 아편이라 부르며 때려잡고 있는 동시에 외산 게임의 유입을 철저히 틀어막고 있기 때문에 VPN을 통한 중국 게이머들의 자발적 우회에 기댈 수밖에 없으며, 이것으로도 유의미한 수익은 낼 수 있겠지만 정권의 보호는 받지 못할 것이기에 거대하지만 정석적으로 접근하긴 어려운, 동시에 단시일 내의 개방 가능성은 거의 없는 시장으로 유지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한 중국 게임사들은 당분간 지금처럼 서비스를 이어가겠지만 게임 산업 전체에 걸친 규제로 인해 규모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추후 자국 내 산업 길들이기의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 언행 등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십대'가 끝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중국 게임 산업의 상황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