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코 앞에 둔 10월 말, 갑자기 스팀 게임 순위에 새로운 녀석이 나타났다. 최상위권에 방석을 깔고 국밥처럼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도타2에겐 별 영향이 없었지만, 그 바로 아래 단계에서 엎치락 뒤치락 순위 싸움을 이어가는 게임들은 난데없이 한 단계가 밀려 버렸다.
'더 파이널스'. 넥슨 산하 엠바크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슈터다. 사실 낯선 게임은 아니다. 넥슨은 과거 '더 파이널스'의 포커스 그룹 테스트에 여러 미디어들을 초청했던 바 있었고, 당시 나 또한 넥슨을 방문해 직접 게임을 플레이했다. 당시 느낌을 요약하면 '기본은 괜찮은데 마무리가 더 필요한 상황' 정도. 개발사 이력이 있으니 게임으로서의 기본기는 충실히 갖추고 있었으나, 시스템 내적 짜임새는 완성도가 다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버그도 꽤 보였고, 밸런스 면에서도 약간은 아쉬웠다 해야 할까?
그게 지난 3월이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지금, 무료 게임이라는 엄청난 어드벤티지에 별다른 조건이 없이 누구나 플레이할 수 있는 오픈 베타 테스트라는 조건이 달려 있긴 해도 스팀 순위 최상위권에서 이름을 보게 될 줄은 생각하지 않았다. 슬슬 입소문을 타며 일반 게이머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 대체 뭐 어떻게 하고 있길래 이 정도 성적을 낸 건지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요즘 게임'답지 않은 직관성
잘 나가는 슈터 게임은 많다. 현재 스팀 순위에서 동시 접속 상위 5개 게임 중 도타2를 제외하면 모든 게임이 슈터다. 하지만, 슈터가 곧 성공 공식인 건 아니다. 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대체제가 많은 슈터 시장에서 어떻게라도 성공의 맛을 보려면 다른 게임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독보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쌓인 세월이 곧 무기다. 클래식 라운드제 슈터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전통과 오랜 세월 가다듬어진 밸런스, 그리고 고이다 못해 석유가 되어버린 유저 집단이 전부 카운터 스트라이크만의 무기다.
'배틀그라운드'의 경우 고유의 게임성이 가장 큰 무기다.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이후 배틀로얄 게임들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만큼 다양한 전략이 가능하면서도 게이머의 긴장선을 유지하는 작품은 없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전략과 피지컬을 7:3 비중으로 가져가는 배틀그라운드의 비율을 반대로 돌려버린 게임이다. 슈터로서의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면서도 캐릭터 베이스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에이펙스 레전드의 매력이다.
'더 파이널스'의 매력은 이 모든 게임들과 다르다. 캐릭터 베이스 게임도 아니고, 배틀로얄 게임도 아니며, 근본에 가까운 건 더더욱 아니다. 더 파이널스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뚜렷한 직관성으로 인한 낮은 진입 장벽이다. '더 파이널스'는 비슷한 순위의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인데, 단순히 무료 게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게 아니다.
게임 내적으로 봐도 '배워야 할 점'도 상당히 적다. 대부분의 능력이나 장비들이 굉장히 직관적이며, 처음 보는 장비들도 몇 번 써 보면, 혹은 당해보면 파악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에 전투 상황에 돌입했을 때 '몰라서' 당하는 일이 많지 않다. 지형 또한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지형 극복에 필요한 장치들이 매우 눈에 띄며, 적대 플레이어들의 아웃라인이 자동으로 잡히기 때문에 '상대가 나보다 잘해서' 지는 경우는 있어도 '상대가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지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또한, 게임 한 번에 투입되는 플레이어 수가 많지 않은데다 3인 팀 기반이기에 과한 긴장이 생기지도 않으며, 한 게임의 진행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패배에 대한 피로도 덜한 편이다. 그 뿐이랴, 로비 디자인부터가 헷갈릴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
지형과 룰로 만들어지는 변수
그렇다고 '더 파이널스'가 단순한 슈터 게임에서 그치는 건 아니다. 모든 슈터 게임에는 게임적 재미를 창출하기 위해 상황을 뒤집는 변수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더 파이널스'는 이 변수를 게임의 컨셉부터 시작하는 '룰', 그리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지형으로 만들어낸다.
'더 파이널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적을 처치하는 것이 곧 승리'라는 슈터류의 기본 공식을 비틀었다는 점이다. 더 파이널스의 컨셉은 이 모든 싸움이 결국 돈 벌려고 하는 짓이라는 것이며, 승리 조건 또한 적 처치가 아닌 자금 확보에 맞춰져 있다. 싸우는 와중 돈을 확보해 일정 금액 이상을 입금하는데 성공하면 승리하는 형태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팀이 송금 중이면 다른 모든 팀이 싸우다 말고 송금 위치로 뛰어간다던가, 돈다발을 중앙에 두고 세 팀이 각축전을 벌이는 구도가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또 다른 '더 파이널스'의 특징은 대부분의 지형이 '파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오함마로 두드리거나, 폭약을 쓰거나, 하다 못해 중량급이 돌진만 써도 벽이 펑펑 뚫리고 기둥이 부러지다 보니 이 요소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바닥을 부수고 송금기를 아래층으로 내려버린다거나, 쫓아 올라올 계단을 부숴버린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특징이 첫 번째 특징인 '낮은 진입 장벽'과 버무려진다. 게임 내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변수들이 다 굉장히 직관적이다. 현재 어느 팀이 가장 많은 돈을 들고 있는지, 또 돈다발이 어디에 있는지, 돈의 송금 진행 여부까지 모두에게 공평하게 표시되기에 몰래 무언가를 한다거나 도대체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지는 경우가 없으며, 지형의 파괴 또한 상대의 장비 구성을 통해 예측할 수 있다.
적 캐릭터가 처음 보는 스킬을 쓰거나,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숨어서 나를 쏘거나, 엄청나게 튜닝된 총을 가져오거나 하는 등 여러 슈터 게임에서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는 소위 '불쾌한 경험'들이 일어날 여지가 매우 적다는 뜻이다.
테스트에 맞춘듯한 빌드, 정식 서비스에서는?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이 '테스트'라는 현재의 더 파이널스의 상황과 맞물려 엄청난 강점이 된다. 오래 진행하지 않기에 빠르게 게임에 익숙해질 수 있으며, 몰라서 당하기보단 납득할 수 있는 패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게임 외적인 문제가 크지 않다는 점도 지금의 붐에 한 몫을 할 것이다. '더 파이널스'는 다운로드 용량 6 기가바이트, 테스트 버전 전체 용량도 15 기가바이트를 넘지 않는 요즘 게임 치곤 가벼운 무게를 지니고 있으며, 최적화와 디버깅도 무척 잘 되어 있다. 게다가 무료 게임이니 접근성 면에서는 그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우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간결함과 쉬움은 어디까지나 '테스트'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한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이기도 하다. 개발자들이 온갖 변수들을 게임에 집어넣는 건 괜히 하는 게 아니다. 앞서 계속 칭찬해왔던 이 모든 부분이, 정식 서비스에 돌입하고 무게감을 잡아야 하는 시점에 이르면 '깊이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변수가 적다는 건 게임이 천편일률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고, 시스템이 이를 제대로 보조하지 못할 경우 슈터류 게임은 결국 피지컬이 모든 걸 잡아먹어 버리는 고인물 놀음이 되어 버리기 일쑤다. 게이머들이 슈터를 떠나는 경우는 내가 무엇을 해도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걸 확인할 때이며, 이 흐름은 낮은 수준의 캐주얼 유저에서 시작해 점점 코어 유저층으로 향하게 된다. 사멸해가는 슈터들의 공통점이다.
'더 파이널스'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본능에 의지해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포지셔닝한다면, 초반에는 빛을 보겠지만 결국 걷게 될 길이기도 하다. 게이머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변수와 새로운 콘텐츠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결국 '테스트에서 빛났던 게임'에 머물 뿐이다.
물론, 이 모든 우려는 아직 미래의 일이다. 테스트 단계에서 '더 파이널스'는 테스트라는 상황에 맞춘 듯한, 완성된 게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상을 웃도는 접속자 수로 인한 서버 문제나 슈터 게임에 기생충처럼 따라붙는 비인가 프로그램, 즉 '핵' 유저 문제가 도드라지고 있지만, 정식 서비스 이전에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건 앞으로도 충분히 기대를 걸 만하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번 테스트에서 '더 파이널스'는 굉장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테스트라는 상황이 겹쳐서 그렇게 보일 뿐, 정식 서비스에서는 지금의 모습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의 완성도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한다면 기념비적인 작품의 시작이 될 수 있겠지만, 자칫 삐끗하면 사멸 전의 초신성처럼 반짝하고 식을 우려도 동반한 게임. 그게 지금의 '더 파이널스'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