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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왕 일기] 오만과 편견

Ewrin
댓글: 1 개
조회: 1037
추천: 19
2019-05-08 04:24:47

쪽바리 단편소설

오만과 편견


"또 뵙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이번 여름은 유독 더위가 기승이네요. 몸 조심하세요!"

무더운 더위에 지친 발걸음을 가로수 아래 그늘로 재촉하는 백발의 노신사, 뒤늦게 발견한 듯 은근한 눈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녹음의 정취가 고조되는 8월, 너 나 할 것 없이 매미들이 대차게 목청을 뽐내며 적막했던 가로수길의 생동을 더 한다.

"학생도 조심혀.. 내 나이 미수(米壽)지만 이번 더위는 손에 꼽을 만큼이니께.. 암만 좋은 일이라도 쉬엄쉬엄혀.."

물가에 내놓은 아이 보듯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기다린다.

"저도 저지만.. 선생님 오늘 하루만 일 쉬면 안될까요? 제가 동네 한 바퀴 돌아봤는데 폐지나 헌책도 없구요. 오늘 과외 해주는 학생도 쉰다니까 선생님과 장기 두면서 담소 나누고 싶은데.."

걱정이 될 수 밖에 없다. 노인의 나이는 여든을 훌쩍 넘어 아흔을 바라보는 시점, 건장한 장성도 더위를 먹어 응급실에 실려가는 실정에 정부에서는 학교와 군부대 야외 활동까지 금지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선생님께서는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수거하려 하니 봉사활동을 하는 봉사자로서는 모르쇠 일관하면 직무유기가 아닌가? 죄책감인지 책임감인지 이 둘 사이에서의 미묘한 감정이 절대 노인을 보내서는 안된다고 마음속에서 소리친다.

"걱정이면 고맙구.. 연민이면 집어 치아.. 이래봬도 내가 경북 예천군..."

"예천군 군대표 태권도 선수셨다구요? 선생님 이번 더위는 황소도 잡는대요. 쇳덩이 쟁기를 이리 끌고 저리 끄는 황소도 매가리 없이 픽픽 쓰러지는데.."

"내가 말해줬어..?"

"무엇을요?"

"나 선수였던거.. 그 군대표 태권도 선수.."

"아유 말도 마세요. 도복 입은 아이들만 보면 하시는 말씀이 그거였어요."

"껄껄껄.. 나이는 못 속이겠구만.. 노친네 노망났다 치부하겠어.."

노인은 엉덩이와 등에 묻은 나무 껍질을 털어내며 손수레로 향한다.

"에이.. 선생님도 진짜 말씀 서운하게 하신다. 알겠어요! 그대신 같이가요!"

무더운 여름 더위는 거구의 황소를 죽였지만, 노인의 황소 고집 앞에서는 힘을 못쓰는 한낱 기후에 불과했다.

정오가 되고, 정면 하늘 가시(可視)에 있던 태양이 어느새 정수리에 위치하여 직사광선이 어깨를 짓누른다. 아지랑이 일렁이는 아스팔트 위, 더위에 모든 것이 녹아버린 회색 숲에서 더위에 지쳐 작업 내내 침묵 했던 노인이 운을 뗀다.

"말렸지.. 아들, 딸, 며늘아기.. 그리고 우리 손주들두.."

노인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들을 소매로 닦아내며 뒤를 힐끗 한 번 쳐다본다.

"교단에서 지도한 학생들 수만 해도 자네 대학교 학생 수의 열곱절은 될게야.."

평소 하던 대화의 소재와 개연성이 없는 내용이 나온다. 당황스럽지만 이는 곧 호기심으로 바뀐다.

"40년 가까이를 교사로 지내며 참 많은 일이 있었지.. 내 마누라도 같은 학교에서 만났구.."

"첫 째 놈이 안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가 됐지.. 그 밑으로 딸 아이들도 지 오빠보고 감명 받았는지 줄곧 공부만 해서 각자가 바라던 직업을 갖게 됐구.."

수레바퀴가 돌부리에 덜컹이며 폐지가 떨어진다. 노인은 폐지를 주워 수레에 다시 올려놓는다.

"제자들도.. 자식들도.. 건강하게 각자의 꿈을 관철 했을 때.. 교사로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보람과 희열을 느꼈지.."

노인은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며 곱씹는다. 달콤했던 추억이었는지 그의 주름진 눈가에 미소가 핀다.

"정년 은퇴를하구.. 일때문에 바빠.. 핑계아닌 핑계대며..안사람과 함께 서로 못다한 연애나 한 번 실컷 해볼라고 했는데.. 했는데.."

"써글.. 우리 안사람은.. 나보다 고생혔나봐.. 뭐 그리 급하다고.. 말 없이 먼저가버려.."

환한 미소에서 씁쓸한 미소로 바뀌는 노인의 눈가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고여있다.

"혼자 남게되고.. 첫 째 놈이 봉양하겠다며 집으로 데려왔는데.. 뿌리치고 다시 나와부렸어 껄껄"

"아직 학생은 모를겨.. 아니 알 필요도 없구.. 부모가돼서 자식새끼한테 짐이 된다는 그 감정은.."


무거워지는 분위기, 어느새 더위는 잊고 노인의 말에 빠져든다.

"교단에서의.. 그.. 희열은.. 이제 두 번 다시 못느끼겠지.. 더는 바라지도 않고.. 그 시절 그 때는.. 추억으로 남아야 가장 아름다울테니.."

"학생도 궁금할겨.. 내가 왜 무거운 수레 끌면서 이러는지.. 그쟈?"

마음을 읽힌 듯한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한다.

"예. 선생님. 실례가 안된다면 알려주실 수 있나요?"

"허허허.. 큰 사유는 없네.. 다만 땀 흘리면서 일 할 수 있다는 것에 살아 있음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꼈네"

"열심히 살 수 있다는 것.. 그 얼마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건가.. 학생?"

"혹시나마.. 주변에 노인들이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걸 보고 연민을 느낀다면 그러지말게.."

"또는.. 편협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것도 고치게.."

노인의 진심어린 조언에 내 자신도 그러지 않았나 돌아본다. 직업과 생업에 있어서 귀천이 어딨는가 잠시나마 연민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내 자신에게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학생.. 연민의 대상은.. 우리 같은 제2의 청춘들이 아닌.."










































































"방구석에 처박혀 왼종일 게임하며 자기개발은 쥐뿔도 안하는 겜창이라네"


이윽고 수레바퀴가 멈춘다. 하지만 어디선가 아직도 누군가의 PC 냉각팬은 돌아간다.





















쪽바리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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