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겨우 왔네."
나흘 동안 걸어서 겨우 도착한 리스본.
마차를 타면 하루치의 거리이긴 하나 돈 없는 소녀에게는 그림의 떡, 할 수 없이 걸어서 도착한 곳이 리스본이다.
"와~아~! 사람이 많네. 대항해의 중심이 맞는가 보다. 제대로 왔나보네."
숨을 몰아쉬고 얼굴의 땀을 닦으면서 포대에서 리스본의 전경을 보고 있는 저 소녀의 이름은 루시오, 내륙의 코임브라에서 신대륙 개척의 소식을 듣고 상인이 되기 위해 홀로 리스본으로 온 당찬 소녀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래된 종이 뭉치와 짐이 든 가방, 그리고 50 두캇도 안 되는 돈 뿐, 거기에 벌써 이틀은 배가 고파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하지? 상인이 돼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포대에서 시내로 내려오던 중, 루시오는 지나가던 한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저……. 실례지만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
"아……. 네."
"저, 실은 여기 처음 온 사람인데……. 상인이 되고 싶어서 왔거든요. 그래서"
"상인이요?"
"네."
"아 ─! 그럼 마르코씨에게 여쭤 보신 적 있나요?"
"마르코 씨요?"
"네, 여기서 멀지 않은 주점의 주인인데, 박학다식하고 리스본뿐만이 아니라 이베리아, 지중해, 심지어 인도와 동남아까지 다 아시는 분이거든요. 지금 그 쪽 차림을 보니까 무턱대고 상인을 시작하는 것보다 그 분에게 말하시는 것이 낫겠는데요."
"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루시오는 즉시 짐을 챙기고 주점으로 향했다.
조합 거리 근처의 주점에 도착하자, 루시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북적대는 사람들과 은은한 노랫소리……. 루시오는 주점 문 앞에서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렇게 한참동안 멍하니 있던 루시오를 본 마르코, 당황한 빛이 역력했으나, 이내 루시오를 향해 말하였다.
"자넨, 누군가?"
그 소리에 멍하니 있던 루시오도 곧 정신을 차리고 답을 하였다.
"아……. 네! 전 상인이 되고 싶어 먼 길을 온 루시오라고 합니다!"
"상인이 되고 싶어서 왔다고?"
"네, 그렇습니다."
마르코는 서서히 루시오의 위아래를 쳐다보았다.
지금 바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할 허름한 조끼와 모자·신발, 삐죽삐죽 나온 헤어스타일, 낡은 짐 가방과 수상한 종이 뭉치…….
그야말로 거지나 다름없는 소녀가 상인이 되겠다고 나서는 모습에 과거 디아스, 다 가마 제독과 같이 갔던 자신의 청춘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던 마르코는 즉시 바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바로 글 한 장을 쓴 후에 루시오에게 주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 하였다.
"이 글을 가지고 자낸 여기의 상인 조합으로 가게나, 거기 조합의 마스터에게 이 글을 보여준 후에 마스터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여기로 오게나, 알겠나?"
"네"
루시오는 즉시 상인 조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묻고 물어서 겨우 찾은 상인 조합의 입구에 섰을 무렵, 해는 어느덧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루시오가 조합에 들어갔을 때에는 거의 한산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던 터라 쉽게 조합 마스터에게 마르코의 글을 전해주었다.
"음……. 확실히 마르코씨의 소개장이로군."
"상인이 되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하하, 거의 자네와 같은 초보상인들이 늘 그런 말을 하곤 하지. 자, 자네의 이름이 뭐더라?"
"네, 루시오라고 합니다. 올해 19살이고요."
"음, 루시오라…….됐네. 리스본에 온 걸 환영하네."
"와, 그럼 이제 저도 맘껏 항해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다네. 그러나 항해하기에 앞서 준비물이 필요하지. 우선……."
이 날 상인 조합 마스터가 루시오에게 준 건 다음과 같다.
─초보자본금 50,000두캇 + 5,000 두캇(마르코의 소개장으로 인해서…….)
─단검과 선박용/돛 도료, 카리온벨
─선박(상인용 바사 + 한자 코크)
─북대서양 입항 허가서
"시간 관계상 우선 이것들만 먼저 주도록 하겠네. 혹시 입항 허가에 궁굼한 것이 있거나 기타 할 얘기가 있으면 아쉽지만 내일 아침에 다시 오도록 하게나. 오늘은 너무 늦었어."
"네? 벌써 문 닫아요?"
"하긴 자네가 처음 온 사람이니 그럴 수밖에……. 자네도 어서 주점으로 가게. 듣자 하니 마르코씨가 오라고 하지 않던가?"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조합마스터와 작별한 루시오는 다시 주점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반기는 건 바로 크리스티나, 벌써 주점에서 8년 동안 일한 리스본 주점의 대표 얼굴이다.
"어머, 반가워요. 루시오씨 맞죠?"
"네, 크리스티나씨. 그런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여기 주인인 마르코씨가 알려주었죠. 실례지만 나이가?"
"19세요."
"제가 5살이나 많네요.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세요."
"네, 언니."
주점에는 벌써 두 여자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말이다.
●
그로부터 5일이 지났다.
왜 하필 5일이냐고 하면……. 대답하지 않겠다.
아무튼 그 동안 우리의 루시오는 부지런히 상인 학교 수업을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5일 전 만난 조합 마스터가 다시 오라고 한 날 그녀를 상인 학교 초급반 수업을 들으라고 보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지금 그녀는 작지만 빠른 성장을 보여, 회계 2랭과 경계 1랭에 돈도 4만 두캇 가까이 모았고, 모험 3렙에 교역 7렙, 전투 1렙이 되고야 말았다.
그리고 어느덧 상인 학교 초급반 전체 수업을 거의 다 듣고, 2번만 더 다니면 초급반을 졸업하게 된 루시오.
그러나 그 날 오후 1시 30분경, 우유에 햄 샌드위치를 먹고 다시 학교로 가려던 그녀를 마르코가 불려 세웠다.
참고로, 그 동안 루시오는 주점 안쪽의 방들 중 한 곳에서 크리스티나와 같이 머물렀다.
아직 기숙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숙사는 상인 학교 초급반을 졸업하면 상품으로 준다.)
"또 학교로 가니? 아침에도 갔는데……."
"왜요? 빨리하고 상인의 길에 뛰어들려고요!"
"으이그, 그렇게 단순하기는……. 좀 정신 차려라!!!"
마르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루시오의 머리에 따끔한 꿀밤 한 대를 박아주었다.
이마를 쓰다듬는 루시오의 짜증 섞인 표정은 무시한 채 마르코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요즘 너, 거리에 나가보면 그 동안 네가 실어온 교역품와 천지차이가 나는 교역품들을 본 적이 있니? 뭐……. 네덜란드의 진이라던가, 이베리아의 머스켓, 발칸의 양피지, 심지어 인도의 후추까지……. 너한테는 조금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보다 우선……. 전에 조합 최초의 일인가 해서 받은 전직증 있지?"
"네, 아직 안 썼는데요……. 왜죠?"
"그 전직증을 들고 조합으로 가서 우선 가축상으로 전직하고 그 직업과 관련된 스킬을 모조리 배우고 다시 여기로 와라. 알겠니?"
답답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루시오는 조합으로 가서 가축상으로 전직하고 조리와 식료품/가축 거래를 배운 후에 다시 주점으로 오자, 이번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초보자' 조리 레시피 2장하고 편지 1장을 루시오에게 건넨 마르코였다.
"이 곳 광장 번화가에 '라 트라비아타'라는 곳이 있을 것이다. 유명한 맛집인데 사실은 상점도 겸하고 있는 곳이란다. 그 집 주인인 '상디'씨는 조리 14랭의 '마닭의 달인'으로 이 일대에선 유명하단다. 사실 여기 주점보단 덜하지만 거긴 지금 일손이 엄청나게 모자란 형편이란다. 그러니 넌 그 곳에 가서 상디씨에게 이 편지를 준 후에 거기서 일을 시켜라. 아마 학교보다 훨씬 많은 돈과 함께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고, 특히나 그 곳은 수도 없이 많은 항해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많은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네?! 그……. 그럼……. 학교 수업하고 그 식당인지 상점인지 거기서 일하고 같이 하란 말이에요~~~?!!"
루시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꿀밤을 맞은 할 수 없이 레시피는 자신의 보관함에 넣고, 편지를 챙기고 광장으로 향했다.
리스본 광장, 그 곳은 진짜 넓다. 북으로는 성당, 서로는 학교와 은행, 길사들, 남으로는 조선소와 바다, 동으로는 조합거리와 교역소, 도구점, 서고에 왕궁까지…….
뭐라 말 할 수 없는 그 광장의 북서쪽, 수많은 점포들 가운데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있는 '라 트라비아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문턱이 거의 없어질 정도인데 루시오가 갔을 때도 마찬가지라 한참 기다려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여쁜 아가씨, 뭘 도와드릴까요?"
"저……. 다름이 아니라……. 이걸……."
루시오는 얼른 상디에게 마르코의 편지를 보여주었다.
편지를 한참 동안 읽던 상디, 갑자기 얼굴을 약간 찡그리면서 이상한 말투를 하게 된다.
"이 인간이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왔나? 응?!!"
상디가 이처럼 거의 퉁명스럽게 말한 이유는 우연히 옆에서 그 편지를 본 한 항해자가 멍할 정도로 쓴 마르코의 편지였다.
- 그간 잘 지냈나? 요즘 주점에 와서 술도 마시지 않고, 실은 다름이 아니라 너 요새 무지하게 바쁘다며? 특히나 사고뭉치 외아들 때문에 늘 개고생인걸. 누가 모르냐? 하하하.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새로 온 항해자 하나를 자네 식당의 알바 생으로 보냈으니 그렇게 알고 그 항해자 일 좀 시킬 겸해서 견문 좀 쌓을 수 있게 해 주게나.
PS. 참 듣자하니 자네 아들 녀석, 얼마 전에 세우타에서 또 사고 쳤으니 잊지 말게나.
1518년 5월 22일 마르코-
"……."
한참동안 굳은 얼굴로 있던 상디, 그리고 그런 상디를 바라본 루시오의 얼굴도 조금 굳어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상디는 루시오에게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이야기 하였다.
"이거 들고 파루의 교역소 영감에게 여기 종이에 적힌 거대로 달라고 해. 가는 도중에 해적 조심하고. 아, 그리고 나머진 너 필요한 거사고. 알겠니?"
해적은 들은 적이 있는 루시오인지라 허락받고 가게를 나와 교역소에서 약간의 교역품을 사고, 항구에서 한자 코크를 타고, 파루로 가기 시작하였다.
출발했을 때에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으나, 파루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저녁에 가까워졌다.
아무튼 파루에 도착하자마자 루시오는 즉시 교역소에 가서 자신이 들고 온 교역품 상자를 팔아넘기고, 교역소 주인에게
"저기요. 이거……."
"오, 상디 씨의 심부름이군. 잠시만 기다려 주게."
그렇게 기다린 지 30분이 지났을까? 교역품 상자를 싣고 온 교역소 주인.
"여기 종이에 적힌 대로 닭고기 20개하고 어육 10개다. 그리고 이왕이면 네가 살 것도 고르게. 다만, 이미 해가 졌으니, 출항은 내일 아침에 하게. 뭐,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려가겠지만 사실 교역품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상하지는 않으니 말이세."
교역소 주인의 말을 들으면서 루시오는 그 곳에서 시세를 봐 가면서 닭고기 10개와 돼지 5마리를 더 샀다.
그 동안 산 교역품들을 배에 모두 싣고, 배로 돌아가서 몸을 씻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후 쉬고 있던 그 때,
"선장님! 큰일 났습니다!!!"
"응? 무슨 일인데요?"
"누군가가 우리 배로 쳐들어와서 무언가 훔쳐가려고 합니다요. 선원들이 막고 있긴 한데……."
"네?!!!"
선원 와트의 말에 깜짝 놀라 허겁지겁 갑판으로 나온 루시오.
그리고 그녀가 본 것은……. 지하 저장실에서 나온 자신의 교역품 상자들과 쓰러진 몇몇 선원들, 그리고 그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자신의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젊은 청년…….
그리고 그 청년과 함께 몇몇 부하들이 자신의 교역품 상자들을 옮겨 실으려고 하지 않는가?
"야 뭐해! 어서 싣지 않고!!!"
"이 녀석! 대체 뭐하는 짓이야? 이놈을 그냥……. 컥!!!"
청년의 발차기에 쓰러진 구스, 구스의 말을 들은 척 만 척 청년은 밉상인 얼굴로 비웃으면서 루시오의 교역품 상자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나이프 하나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놀란 청년이 위를 바라보니 다른 건 몰라도 교역품과 선원 잃는 것은 용서치 않는 루시오가
허리에 차고 있던 나이프를 던진 것이었다.
“이게 대체 뭐야? 당신들 누구야?”
“흥! 알 게 뭐야. 이년이……. 여기 있는 교역품들은 내가 가지고 갈 테니 신경 끄셔~~~! 뭐하냐? 어서 하지 않고!!!”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앗! 선장님!!! 그건!!!”
“에익!!!”
“(쿵!!!) 으악!!! 이게 대체 뭐야? 으악~~~!!!”
“앗! 저건, 도……. 도……. 도료?!!”
화가 치솟은 루시오의 도료 통 던지기에 결국 도료를 뒤집어 쓴 청년은 선원들과 함께 혼비백산으로 도망쳐 도시 안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