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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RFB) 새로운 게임 모드

렝가는op다
댓글: 6 개
조회: 2985
추천: 4
2017-11-05 03:39:33



1.
요 며칠사이 RFB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뭐 당연히 숙소에 쳐 박혀서 불도 다 끈 상태로 게임을 하고 있을게 분명하지만 이번에는 그 기간이 너무 길다. 평소라면 3일정도 지나면 방에서 시체처럼 기어 나와 작전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1주일이 지나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그녀는 정해진 소대가 없다. 편히 말하자면 프리랜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의식주를 임무에서 받는 봉급으로 살아간다.
물론 그리폰에서 나오는 정기적인 월급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얼마였더라? 한 달에 50만원 정도였나.

그리폰은 인형들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치가 있는 인형들’에게다. 소대가 있는 인형들은 상부에서 임무를 받아 활동하지만 그녀 같은 프리랜서 인형들은 자신이 일거리를 찾아서 활동해야한다. 그것이 그리폰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프리랜서 인형들에게 무자비한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 인형들은 소대가 맡지 않는 조금 어두운 일을 하는데 S급 임무를 한번 완료하면 나도 몇 년 정도 일해야 만질 수 있는 금액을 한 번에 준다. 물론 그 임무는 하나같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임무를 전문적으로 하는 소대가 있는 것 같지만 철저한 기밀로 이루어져있어 어렴풋하게 존재만 인식하고 있다. 내가 RFB에게 가져다주려고 임무리스트를 살펴볼 때마다 S급 임무가 한 번에 몇십개가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절대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소대정도가 되어야 가능하다.
물론 가설일 뿐이다. 갑자기 거물급 인형들이 한번에 S급 임무에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자세한 것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중요한 점은 그녀가 며칠 동안 임무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녀는 굶어 죽고 말 것이다.
 그녀는 S급 임무를 충분히 해내는 인형이다.
완료한 임무로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카리나씨는 평생 펜을 잡고 살아야할지도 모르는 양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녀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RFB는 늘 라면과 삼각 김밥 같은걸 먹고 지낸다. 옷을 살 돈도 없는지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다.
그 이유를 알려면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봐야한다.

똑. 똑.
나는 그녀의 숙소 문을 두드렸다.
‘.......’
 대답이 없다. 게임을 하다 지쳐서 잠에든 것 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느 때처럼 열쇠로 문을 열었다. 일전에 그녀가 자신을 깨우러올 때 사용하라고 준 열쇠다.
방안으로 들어가자 어두컴컴한 거실이 나를 반겨주었다. 며칠 동안 환기를 안했는지 집안은 라면냄새가 가득했다.
 거실벽면에는 각종 게임 CD가 걸려져 있었다. 책장에도 CD가 가득했다. 심지어 신발장에도 CD가 진열되어 있었다. 바닥에도 게임팩들이 널 부러져 있고 여기저기에 게임구동기가 놓여져 있다.
예전에 오락실에서 보던 거대한 게임기에서부터 아주 오래된 타마고치까지, 게임의 역사를 한 곳에 담아놓은 듯 한 곳이다.
 나는 혹시라도 무언가를 밟아서 부서트릴까봐 조심조심 내부로 들어갔다. 전선이 혼잡하게 얽혀있는 거실에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플레이스테이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넘쳐나는 방마다 하나의 게임기와 그 게임기에서 돌아가는 모든 시디를 전열해놓는 취미가 있다.
 거실에 있는 기기는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한 예비 기기들이다. 운이 좋게도 그녀를 한 번에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게임기를 손에 들고 밝게 빛이 나는 거대한 화면을 바라보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게임의 불빛 때문에 방의 벽지와 그녀의 머리카락색이 계속해서 변해갔다.
“나 왔어”
그녀는 게임에 푹 빠졌는지 내말도 안 들리는 듯 했다. 나는 한번 푹 한숨을 쉬고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툭 건들여 보았다.
“....어?”
그녀가 힘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눈은 이미 생기를 잃었고 몸은 엄청난 피로에 찌들어 보였다.
“무슨 일이야? 임무도 안 나오고.”
“아...그게 엔딩 보는 걸 미뤄둔 게임들을 전부 엔딩 보려고 했거든..”
“잠은 잤어?”
“하루에 2시간정도..?”
“그래서 그렇게 해서 몇 개 성공했어?”
그녀가 천천히 양 손가락으로 숫자를 셌다.
“16개”
“앞으로 몇 개 남았어?”
“어....82개”
“..........”
드디어 미친건가.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그녀의 침실로 향했다. RFB는 게임을 끝내야한다고 완강히 거부했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라 끌고 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침대 앞에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아 침대에 던져버렸다. 침대에 나동그라진 그녀는 조금 움찔거리다가 잠에 들었다.
 저렇게 빨리 잠들 정도면 얼마나 몸을 혹사 시킨건지.
잠에 빠진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그녀의 집 청소작업 들어갔다. 이런 환경을 계속 보고 있자니 내가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우선 난잡하게 널브러진 전선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게임팩들도 전부 정리해서 이름순서 별로 꽂아두었다.
 창문을 열고 환기도 했다. 창문을 얼마나 안 열었는지 문틈이 녹이 슬어 잘 열리지를 않았다. 먹고 버린 무수한 컵라면과 음료수병도 분리수거를 했다. 분리수거를 하려고 쓰레기통 앞에 서서야 안 것인데 그녀는 전혀 분리수거를 안 하고 있었다. 어깨에 힘이 풀리는 듯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쓰레기통 내용물도 전부 분리수거를 했다.
내 방도 잘 정리 하지 않는 내가 왜 이런 것 까지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녀의 집만큼은 정리가 하고 싶었다.
물론 나는 이정도로 어지르지는 않는다.
한참 후 힘겨웠던 청소가 끝났다. 5시간정도 걸린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최근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는 임무가 끝날 때 마다 내가 밥을 사줬는데 최근에는 통 나오지를 않았으니 계속 라면만 먹었을 것이다.
 거참. 이러면 내가 요리를 해야 하는 패턴이잖아.
나는 기껏 세워둔 플래그를 깨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조용히 근처 마트로 향했다. 그녀에게 요리다운 요리를 먹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만든 요리를 먹여주고도 싶었다. 막상 장을 보려니 무엇을 사야할지 무슨 요리를 할지 막막했다. 

 평소에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들은 하나같이 난이도가 어려워서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나름 입맛이 고급스러운 그녀가 매일 라면 같은걸 먹는다니... 상상하기가 어렵다. 얼마나 게임을 사랑하는 걸까.
 그런 그녀를 위해서 만들 요리라면 아마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파스타정도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어떤 파스타를 좋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내가 크림 파스타가 먹고 싶어져서 크림으로 만들기로 했다. 집 청소 까지 해줬는데 나에게도 그 정도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재료를 사서 돌아가자마자 그녀의 침실을 확인했다. 혹시라도 일어나서 게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다.
다행이도 아까 그 자세로 자고 있었다. 아기 같이 자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평소의 그녀의 모습과 너무 대비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평소의 RFB는 대범하고 도전 받는걸 즐기는 매혹적인 여자였다면 지금의 모습은 귀여운 아기 같았다.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스마트폰을 두고 왔다. 멍청하긴. 

어쩔 수 없이 그런 진귀한 광경을 뒤로 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파스타는 예전부터 자주 해서 방법은 전부 기억하고 있다.
한참을 요리를 하다 잠시 가스레인지 밑에 쭈그려 앉아 쉬는 도중에 그녀가 눈을 비비며 모습을 드러냈다.
“뭐하는 거야?”
“보면 몰라? 니 주려고 밥 만들잖아.”
“오~ 그건 좀 감동이네.”
그녀가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아까처럼 피곤이 가득하지 않았고, 몸은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피로가 풀려 평소의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하다.
그래도 100%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아직 피로가 보이기는 한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느리고 확실한 걸음걸이로 내가 만들고 있던 것의 앞에 섰다.
“뭐야? 스파게티야? 나쁘지 않네.”
“맨날 라면만 먹는 너에게는 과분한 음식이지.”
내 농담이 재밌었는지 그녀가 피식 웃었다.
 내 옆에 서있던 그녀가 나를 따라 쭈그려 앉았다.
“집이 뭔가... 깨끗해졌네? 청소라도 한거야?”
“다 끝내는데 5시간이었지, 아마?”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그녀가 내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내 말을 맞받아칠지 기대했다.
평소의 그녀라면 “누가 해달라고 했냐?” 라던가 “어지간히 일거리가 없으신가보네. 지휘관?” 이라는 식으로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대답한다면 뭐라고 받아 쳐야 할까? 어떻게 말하면 그녀가 아무 말도 못하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식으로 짧은 순간 고민에 잠겼다
“...고마워.”
어?
예상치 못한 따듯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살짝 웃어주었다.
이럴 때는 뭐라고 대답해야하는 걸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침묵이 조금 흘렀다.
“아...어, 응, 그래.”
나는 부자연스럽게 말을 얼버무렸다.
 이런 상황이 너무 어색한 나머지 시간이 아직 남아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식탁에 앉아 팔을 괴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양파를 볶으며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뭘?”
“게임 말이야. 계속할거야?”
그녀가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빙빙 감으며 말했다.
“글쎄다. 일단은 뭐 좀 먹고 생각하고 싶은걸?”
잠시 후 나는 그녀의 소원대로 파스타를 정성스럽게 접시에 담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예상 밖의 결과물이었는지 그녀는 작게 감탄했다. 그녀가 포크로 면을 둘둘 말아 입에 넣었다.
“어때?”
“...뭐 그럭저럭 괜찮네.”
말로는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에 든 것 같다.
 혹시라도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덕분에 안심했다.
 그녀는 팔을 괴고 ‘마음에 안 들지만 성의를 봐서 억지로 먹는다‘라는 식으로 행동했지만 결국은 내 몫까지 다먹어버렸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거야?”
그녀가 포크를 입에 물고 고개를 갸웃 거렷다.
“뭘?”
“게임 말이야. 뭐 좀 먹으면 말해준다며.”
“아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음....그래도 끝은 봐야지.”
“80몇개라며?”
“작년부터 밀린거야. 더 이상 밀어둘 수가 없어.”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두 명이면 더 빨리 끝날거 아니야.”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소대가 없어도 그녀는 일단 내 소속인형이다. 그녀가 다시 임무에 돌아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게임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내 말을 들은 RFB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엄청 어려울 텐데 괜찮겠어?”
그렇게 지옥이 시작되었다.

2.
처음으로 해본 게임은 RPG게임이었다.
 물론 나는 시작하자마자 보스레이드를 솔플로 깨야하는 미친 난이도로 시작했다. 게임에 적응하거나 컨트롤을 외우거나 공략을 볼 시간도 없이 시작했다.
아니, 게임에 적응이라도 시켜준다면야 감지덕지다. 조작키도 모르고 시작했다.

 보스의 체력에 처음으로 데미지를 준건 게임을 시작한지 4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상대는 지휘관 시험을 2주 준비하고 합격했을 만큼 습득이 빠른 나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웠다.
그 후 나는 2시간 만에 보스를 잡아냈다.
보스를 잡아내고 잠시 휴식을 가지는 동안 그녀가 게임하는 모습을 볼 여유가 생겼다. 내 뒤에서 쭈그려 앉아 게임을 하는 그녀는 ...음 솔직히 게임을 잘하지는 못했다.
 왜 게임이 80개나 밀렸는지 알 것 같았다. 늘 게임만 해서 게임에는 도가 튼 줄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는 조금 충격이었다. 물론 그녀가 게임을 잘하는 건 맞지만 내 생각만큼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는 게임은 격투게임이었다. 어떨 때에는 기가 막힌 센스로 콤보를 넣는가 하면 엄청 느리게 날아오는 파동탄을 점프타이밍을 이상하게 뛰어 맞아주는 등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플레이를 했다.
 엄청 힘들게 보스를 잡아내면 환호를 지르고 아깝게 죽으면 하늘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서로가 따로따로 엔딩을 보면 의미가 없는 거 아니야?”
그녀는 그걸 관과 했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 바보 같은 얼굴이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는 우리는 서로가 힘들 때마다 번갈아가며 게임을 했다. 한명은 지켜보면서 분석을 해주고 한명은 게임을 플레이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예전에 OGN에서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아무튼 기분 탓 일거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집에서 잠시 얹혀 사는 신세가 되었다. 집에 가는 시간도 아깝기 때문이다.
우리는 밥 먹는 시간에도 보스의 패턴에 대해 대화하고 잠에 들기 전에도 효과적인 최단루트에 대해 대화했다.
 게임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이번 기회로 꽤나 게임이 재밌어졌다.
그녀도 이런 생활에 만족하는지 나에게 늘 하던 불평불만이 며칠 사이 하나도 없었다.
 게임을 계속하다 보니 그녀가 왜 2시간만 자고 게임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래도 잠을 자는 시간은 엄격하게 지키기로 했다. 몸이 피곤하면 게임에 지장이 가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나도 게임 폐인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게임을 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게임하나의 엔딩을 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우리는 엔딩을 보며 울고, 웃고, 뭐 이딴 엔딩이 다 있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래도 나름 즐거웠다. 엔딩을 볼 때마다 그녀와 했던 하이파이브도 즐거웠다.

 결국 80개가 넘는 게임의 엔딩을 보고 그녀가 계속 미루어 두던 게임 중에서도 제일 나중으로 미루어두었던 게임만이 남았다.
‘어두운 영혼‘이라는 뜻이 담긴 제목이었다. 그녀는 게임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 게임에 질린 표정이었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름 아쉬우면서도 설레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마음은 게임을 시작한지 5시간 만에 산산히 부서졌다.

 이렇게 어려운 게임은 처음이다.
처음으로 나오는 보스를 잡는데 5시간을 쏟아 부었다.
그녀가 이게임을 분명 플레이를 했는데도 왜 아직도 4번째 보스인지를 실감했다. 앞으로도 엄청나게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마치 에베레스트를 등반 하는 기분이었다.
게임이 역겨워서 토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참고했다. 오기로 버티면서 게임을 했다.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죽고 또 죽었다. 너무 죽어서 이제는 트라이 회수를 세지 않기 시작했다.
상황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압도적인 보스의 패턴에 치를 떨었다. 분해서 눈물이 고이는 모습도 보았다.
한참의 죽음 끝에 나는 잠시 쉬자고 제안했다. 그녀도 그걸 기다렸는지 흔쾌히 승낙했다.
 우리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근처 공원을 거닐었다. 물론 걸어 다니면서도 게임에 대한 묘수를 의논했다. 지금 보니 그녀가 이렇게 순진하면서도 진지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건 처음이라 그녀의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그 게임을 완료 할 수 있을까.
 동시에 그 게임을 끝내면 어떻게 되는 건지도 생각했다. 그 게임이 끝나면 나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순수하게 열정을 불태우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려면 내가 이게임을 언제든지 끝낼 수 있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야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저 지금은 게임에만 집중하고 싶다.

또 다시 며칠이 지났다. 슬슬 끝내지 않으면 내 실적이 위험해진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다시 게임을 했다. 몸도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 더 큰 문제라면 정신적인 문제다. 이제는 게임의 로딩창만 봐도 속이 거북해졌다.
 며칠사이 우리는 유다희양을 수도 없이 만났다. 그 만남을 수로 세자면 출근시간에 지하철이 수용하는 사람의 수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캐릭터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되어버렸다.
체력이 조금 달면 일부러 죽는 나를 발견하고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우리의 엄청난 노력으로 마지막 보스에 다다랐다.
 그때까지의 사투는 다시 떠올리기도 싫다.
지금까지의 보스는 노력과 분석으로 어떻게든 됐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최종보스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자세에서 일격을 꽂아놓는가 하면 다잡았다 싶었는데 체력이 채워지며 2페이즈가 시작된다거나 해서 안 그래도 깨져있던 내 멘탈을 달걀 부스듯 으스러트려 버렸다.
그때 느꼈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 재능의 한계를.
 그래도 참고 게임을 했다. 그녀가 내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화면에 패드를 집어 던질 뻔 하긴 했지만 계속 게임을 했다.
늘 게임을 하던 RFB도 체력에 한계가 왔는지 눈이 퀭하니 생기가 없었다. 아마 나도 이런 모습일거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밤늦게 까지 계속되었다. RFB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봐주었다.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그녀가 전혀 게임을 할 상태가 아니어서 이제 이 보스는 전적으로 ‘내 것‘이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얻어온 정보를 전부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게임을 했다. 

 보스가 팔을 올린다. 내려찍기 패턴 후 바로 옆으로 무기를 돌리는 패턴. 피했다. 공격을 넣은 후 날아오는 공격을 회피. 회피를 하자마자 다시 공격. 그 후 옆으로..젠장. 다시 바로 날아오는 참격을 회피. 찌르기 후 왼쪽 아래로 구르기.....
나는 머릿속에서 끝없이 생각을 했다. 이번 판은 뭔가가 다르다. 보스의 피가 반절이 되었다. 3분의 1이 되었다.
 RFB가 구부정하게 있던 몸을 점점 펴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한 대, 두 대, 세대, 네 대,
계속해서 내 공격은 성공하고 보스의 공격은 회피했다.
그리고 마지막한대가 보스의 몸에 적중했다.
거대한 화면에 커다란 글씨가 떠올랐다.
Clear
순간 내 몸에 전율이 흐르며 들고 있던 패드를 떨어트렸다.

깼다.

내가 환호할 겨를도 없이 RFB가 내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충격으로 내 몸이 뒤로 꼬꾸라져서 그녀가 내 몸 위에 누워있는 형태가 되었다. 그녀가 내 목을 살짝 감싸 안은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가 바로 내 앞에 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래도 그녀의 그 눈빛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침이 말라서 입안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도 느껴졌다.
그녀의 그 아름다운 얼굴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고했어. 지휘관. 그리고 ....고마워.”
 그녀는 나에게 그 말을 남기고 쓰러져 잠에 들었다.
여자에게 덮쳐져서 나쁜 짓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기도하고 불행이기도 하다.
 그녀를 들어서 침대로 옮겨줘야 할 테지만 나도 몸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 정도는 이러고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겠지.

결국 게임을 깨자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로 끝이구나.
그녀의 솔직한 표정을 보고 그녀의 열정 넘치는 얼굴을 보는 것도 이젠 끝이구나. 내일부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그녀는 임무에 나가겠지.
 물론 나쁘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분명 기쁜 일 일텐데 그다지 기쁘지가 않았다.
 보스를 잡은 것도 너무 기뻤다. 너무 기뻐서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무언가 비어버린 기분이다. 그 무언가를 생각해보려했지만 너무 피곤한 머리가 사고를 멈췄다. 나와 그녀는 그 상태로 잠에 들었다.


3. 

창문과 커튼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 절묘하게 내 눈을 자극 하는 바람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었다. 내 위에는 RFB가 곤히 자고 있고 거대한 화면은 클리어상태 그대로였다.
 내 몸 위에 누워있는 RFB를 살펴보았다. 아기 같은 숨소리를 내 귀 옆에서 내고 있는 그녀를 깨우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잠깐이라도 이 숨소리를 즐겨봐야겠다.
나는 손을 살짝 들어 올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이 느껴졌다. 

“일어났어? 지휘관”

그녀의 속삭이는 소리에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뭐...야. 일어나있었어?”

“좀 됐어.”

“그럼 왜 안 일어나고 이러고 있는 건지 좀 알려줄래?”

“그냥...이대로 있고 싶어.”

“...그래 그럼.”

“반항하지 않는 거야? 지휘관이라면 당연히 도망 갈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헤헷.....저기 말이야 지휘관.”

“뭔데”

“이 몇 주일간 어땠어?”

“그 소리였냐. 당연한거 아니야? 즐거웠어.”

“다행이네. 나도 즐거웠어.”

“그러냐.”

“그래서 말인데 지휘관....”

그녀가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나랑 여기서 평생 살지 않을래?”

그 말을 듣고 나는 어젯밤에 느꼈던 마음이 무언가 비어있던 느낌이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면 돈을 벌어야지. 너 무일푼이잖아.”

“그 말은 승낙이라는 거네. 후후. 돈 걱정은 안 해도 돼. 통장에 평생 먹고 살돈이 있으니까.”

“어째서? 돈 다쓴거 아니었어?”

“나는 충동구매가 심하니까 현금은 5000원정도만 가지고 다녀.”

그래서 라면만 먹고 살았던 것인가.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그렇지 식사정도는 좋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지휘관이 내 통장을 맡아준다면 나도 맘 편하게 돈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그럼 이제 내가 가정부가 되는건가?”

그녀는 내말을 듣고 실실 웃었다.

“근데 설마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무슨 소리야 그건”

“후후후 지금부터 새로운 게임모드를 알려줄게 지휘관.”

그녀가 살짝 일어나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따듯한 눈빛에 내 눈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 위로 포개졌다.
달콤했다.
물론 그녀의 입술이 달콤하다는 것이 아닌 그 상황과 그대의 공기가 달콤했다. 또한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어떤 게임을 해볼까?








fin



원래 쓰고 있는 중편 소설 때문에 빠르게 써서 부족한 내용이지만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피드백이 있다면 그것 또한 감사히 받겠습니다.

Lv28 렝가는o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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