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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비

산업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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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20
추천: 3
2014-01-13 22:25:17
남자는 소녀를 이비라고 불렀다. 소녀의 이름을 줄인 이름이었다. 처음 남자가 소녀를 이비라고 불렀을 때, 소녀는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 이름은 줄여 부를만큼 길지 않은걸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여기서 특이한 이름인지라 내 고향 생각이 났단다. 그곳에서 너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이비라고 부른 적이 있거든."
이상한 이름이었지만 소녀는 그 애칭이 마음에 들었다. 어딘가 자신이 특별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소녀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이비라고 소개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비는 사생아였다. 어머니는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가문에서도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환경에서 이비는 기죽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고 그렇게 말괄량이로 자라났다. 놀기 좋아했던 이비는 언제나 마을로 나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는데, 그 당찬 성격으로 어디서든 아이들을 휘어잡았다. 사내아이들도 이비를 당해내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이면 이비는 자기 방에서 옛날 이야기책을 뒤적이며 놀았다. 많은 책들이 있었지만 그중 이비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모험 이야기였다. 보물을 찾기 위해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끝도 없이 물리치며 나아가는 책 속의 인물들을 보며, 이비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모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했다.
이비가 살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숲 입구엔 한 남자가 살았다. 거의 노년이 다 된 늙은 사람이었는데 그는 이비의 고향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외모를 하고 있었다. 피부는 도자기만큼이나 희었고 머리카락은 금색에 눈동자는 파란 색이었다. 이비는 눈과 머리가 검은색이 아닌 사람은 처음 보았다. 거기다 남자는 마을 사람들과 교류도 거의 없어서인지, 마을의 아이들 사이에서 남자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어느 날 언제나처럼 모여 뛰놀던 아이들에게서 남자의 화제가 불쑥 떠올랐다. 이야기는 소문이 사실인지 직접 남자의 집에 가서 확인해보자는 데까지 흘러갔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그 위험한 곳에 들어간다고 나서지 않았다. 그때 앞으로 한 발짝 내밀며 자신이 가겠다고 소리치는 아이가 있었다. 이비였다.
호기롭게 나서긴 했지만 막상 남자의 집 앞에 도착하자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이비는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심호흡을 했다. 문을 열었다. 잠겨 있지 않았다. 이비는 집 안으로 스르륵 들어갔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손톱만한 등잔불 하나 없었다. 살금살금 걸으며 방문들을 열어보던 이비는 이상한 잡동사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책상을 발견했다. 뭔가가 빼곡히 적힌 책들과 괴상하게 생긴 병에 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들이 한가득이었다. 이비는 그중 보석같아 보이는 반짝이는 것을 하나 집어들었다. 자세히 살피려 했지만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이비는 달빛에 비춰 볼 생각으로 창문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덜컥 하고 문 여닫는 소리가 났다. 이비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보석을 떨어뜨렸다. 보석은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둔탁한 발소리가 들렸다. 채 몸을 숨기기도 전에 그림자가 이비의 앞에 나타났다. 이비는 겁에 질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비의 상상과는 달리 남자는 이비를 붙잡아 펄펄 끓는 솥에 집어넣어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등잔을 켜더니 집에 함부로 들어온 이비를 야단쳤다. 남자가 그만 가도 좋다고 이비를 놓아주었을 때, 이비는 방을 나서다 말고 머뭇대며 남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뭘 하는 사람이예요?"
남자는 여전히 엄한 표정으로 이비를 바라보다 말했다.
"마법사."
돌아온 이비는 한동안 바깥 출입이 없었다. 그동안 이비는 이야기책을 읽는 대신 자신이 마법사라는 남자에 대해 수십 번 생각하는 걸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남자에 대한 두려움도 옅어졌다. 며칠 후 이비는 남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 이비를 본 남자는 정말이지 못말리는 개구쟁이라며 이번엔 잘 맞아주었다.
점차 이비가 남자의 집에 가는 횟수가 많아졌다. 남자도 이비를 귀여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무엇보다 이비가 좋아했던 것은 남자가 가끔씩 내주는 딸기주였다. 그때마다 이비는 신이나서 그 달착지근한 술을 받아마셨다. 다 마신 이비가 맛있다고 말하자 남자는 자신의 고향에선 이것보다 훨씬 더 맛있는 딸기주를 만든다고 대답했다. 남자의 고향은 바다 건너 아주 먼 대륙에 있는데, 그곳에선 얼음을 띄운 딸기주를 만든다고 했다.
이비는 남자에게서 조금씩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비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얼마 안 가 금방 싫증을 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비는 이제까지 흥미가 길게 지속되거나 지루한 일에 끈기를 보여준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비는 공부를 금방 그만두지도 않았을 뿐더러 제법 재능을 보이기까지 했다. 남자가 이비라는 애칭을 붙여준 것도 그때쯤이었다.
남자의 방 한 구석에는 커다란 낫이 세워져 있었다. 남자의 고향에 있을 때부터 사용해온 무기이자 마법 도구였다. 이비는 그게 멋지다고 생각했는지 쓰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졸랐지만 남자는 저런 것을 쓰기 전에 다른 기초를 더 닦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마법이 깃든 지팡이를 다루는 방법 같은. 그리고 그 말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비가 자기 지팡이를 뚝딱 만들어내자 남자는 놀랐다. 어설펐지만 겨우 아이에 불과한 이비가 해내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이비는 남자의 생각보다도 훨씬 재능이 뛰어난 아이일지도 몰랐다.
시간이 흘렀다. 이비는 남자 옆에 앉아 있었다. 이비의 얼굴은 아직 앳됐지만 점차 처녀티가 풍기기 시작하는 나이였다. 성격 또한 과거 마을을 휘젓고 다니던 말괄량이의 모습은 다소 줄어들고 그 나이에 걸맞게 발랄하고 붙임성 좋은 소녀로 자라났다.
하지만 오늘 남자의 손을 잡은 이비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남자는 며칠 동안이나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지난 겨울 감기로 시작됐던 병은 해가 바뀌고 봄이 찾아와도 떠날 생각을 않았다. 남자는 이제 자신이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이비는 항상 그런 말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반드시 남자의 병을 낫게 할 마법을 찾아내겠다며 연구에 매달렸다. 남자는 그런 이비를 보면 조용히 웃기만 했다. 이비의 능력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이듬해 남자는 세상을 떠났다. 슬픔에 잠긴 이비는 남자의 방을 청소하다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마법서나 학술책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표지에도 아무것도 써있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넘겨보자 일기였다. 이비는 의자에 앉아 스승의 일기를 넘겨보기 시작했다. 남자의 고향에 대한 글이 무척 많이 적혀 있었다. 남자와 같은 색목인들이 살고 있다는 곳. 언젠가 들었던 얼음 딸기주를 빚는다는 곳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이비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렁였다. 어렸을 적 옛날 이야기책을 보며 느꼈던 그 느낌이었다. 이제 이비는 이야기책을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록을 보자 모험을 동경하던 꼬마의 마음이 되살아났다. 일기장을 덮었을 때 이비는 결심을 했다. 며칠 후 이비는 먼 대륙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보자. 선생님의 고향에. 얼음을 띄운 딸기주를 빚는 고장을 한 번 찾아가보자.


요즘 캐릭터 스토리가 하나씩 추가되고 있길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비로 한 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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