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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59화

아이콘 강철안개
댓글: 1 개
조회: 1332
2020-08-14 13:45:58

 “소나 루알레 이브리테 드 부벨르 영애. 그대 가문의 명예를 걸고 그 용병의 결백을 보증하는가?”
 위엄 있는 목소리가 전당 안을 울렸다. 소나는 얼른 약간의 불안감을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 넣으며 우아하게 치맛자락을 들어 올렸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다는 의미였다. 자르반이 픽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별 망설임도 없이 그러는 걸 보니 그 용병을 굉장히 신뢰하나 보군. 하지만 경고하는데, 부벨르 영애. 가문의 이름과 그대의 소유물들을 함부로 내세우지 말게. 특히 이런 자리에선 더욱더 말이지. 알겠나?”

 찬바람 쌩 부는 태도와는 달리 그에게서 들려오는 감정은 전혀 딴판이었다. 그 감정은 여전히 뭔가를 꾸미는 악동처럼 활기찼고,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듯 조금 느리게 딩딩거렸다. 

 -잭스 님, 부탁이니 왕자님이 말을 거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여기서 함부로 끼어들면 다른 귀족들에게 말꼬리 잡고 늘어질 꼬투리만 제공해주고 말 거예요.
 “…….”

 소나는 재빨리 잭스에게 속삭이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자르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잭스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안 말렸으면 잭스는 분명 화를 냈을 터였다. 용암이 땅을 뚫고 나오듯 그에게서 분노가 치솟듯 들려왔으니 말이다. 소나는 조금 전보다 잭스의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가만히 쉬었다. 자신을 위해 화를 내준다는 사실이 고맙긴 했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

 -자르반 왕자님은 지금 연기를 하고 계세요.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과 전혀 딴판으로 눈엣가시 것들…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저 귀족들을 망신 주고야 말겠다는 악동 같은 감정이 들려오고 있거든요. 지금 저러시는 것도 다 연기에요. 그러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잭스 님. 불쾌하시더라도요. 잭스 님이 꼭 해주셔야 하는 일이 있다면 제가 먼저 요청드릴게요.

 그녀라고 주변의 귀족들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잭스를 이용해 먹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미 평가가 곤두박질치는데 심지어 그들 중 몇몇은 그녀 개인적으로도 불쾌한 경험을 제공해줬던 당사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니, 지금이야말로 ‘참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격언을 그대로 따라야 할 때였다.

 그가 그나마 얌전히 이런 자리에 출석한 이유도 자신과 레오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이라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잭스에겐, 정말 빈말로라도 자르반에 대한 존경심 따윈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물며 주변에 파리 떼처럼 득시글거리는 귀족들에게야 두말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방금도 소나가 안 말렸다면 판결이고 나발이고 가장 가까이 있는 놈부터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팼을 게 뻔했다. 손에 무기가 안 들려 있어도 그 자체가 이미 흉기였다. 솔직히 소나는 잭스가 날뛴다면 과연 여기 있는 근위병들만으로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흥미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가 진다는 모습이 상상이 가질 않는 그녀였다.

 “그럼 이번엔 자네에게 묻지, 잭스. 그때 같이 있었던 데마시아의 일원들이 지금 전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잭스는 그녀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주기로 했는지 최대한 공손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툴툴거리는 기색이 좀 덜 비친다는 정도라 주변의 귀족들이 듣기엔 뜨악하긴 매한가지였지만 말이다. 다행히 자르반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라 그들도 뭐라 말하진 못했다. 당사자가 넘어가고 있는데 옆에서 찌르는 게 더 우스운 일이었다.

 “다행히 셋 다 목숨엔 지장이 없네. 빠르게 지원을 와 준 솔레아 사제단 덕이지.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봐야겠군. 그들 셋의 말로는 자네가 그들을 공격했다고 하던데, 맞나?”
 “맞습니다.”

 잭스는 담담히 말했다. 사실이었으니 뭐라 덧붙일 말도 없었고 뺄 말도 없었다. 주변은 술렁였고 자르반은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자르반의 얼굴엔 주변 귀족들의 분노한 표정과는 달리 흥미롭다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언뜻 보기엔 비웃는 걸로도 보일 수 있겠으나, 적어도 소나는 그의 미소가 진짜 흥미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자기방어였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말이야.”
 “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이라 생각하는 걸 했을 뿐입니다.”
 “하하! 재미있군. 어째 가장 열심히 자기변호를 해야 할 사람이 가장 불리한 발언만 하고 있으니 말이야. 여기 모인 여러분들께 오해 없도록 한마디 하자면, 협곡에서 이 자가 다른 챔피언들을 막무가내로 공격한 건 아니었소. 협곡에 있었던 챔피언들은 강력한 정신 공격을 받고 있었다고 하더군. 남들보다 몇 십 배는 마법 저항력이 강한 쉬바나조차 저항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강력한 공격을 말이오. 그래, 티아나 대원수! 그대가 럭산나 영애로부터 들은 얘기를 좀 더 소상히 말해주겠나?”
 “네, 전하.”

 티아나 크라운가드는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앞으로 나왔다. 위풍당당한 걸음걸이가 아예 가렌을 쏙 빼다 박은 모양새였다. 정확히는 가렌이 티아나를 닮은 것일 테지만 말이다.

 꼭 한 마리 데마시아 독수리 같다, 라고 잭스는 생각했다. 럭스가 좀 둥글둥글한 인상이고 가렌이 이 하나 안 들어갈 정도로 고지식하고 딱딱한 인상이라면, 이 티아나라는 여성은 그 두 가지 인상 모두를 극대화해서 합쳐놓은 것만 같았다. 순간 가면 너머로 잭스와 그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착각이었을까? 잭스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매가 조금 부드러워졌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알아챈 듯 들려오는 소나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꼭 그의 착각만은 아닐 수도 있었다.

 -티아나 님도 잭스 님께 무척 고마우신가 봐요. 전 저분이 다른 사람에게 저렇게 호의적인 감정을 보내는 건 처음 들었어요. 그건 그런데……. 와, 이 자리에 있는 다른 귀족 분들은 정말 싫으신가 보네요. 저분들에 대한 감정이……. 세상에 하수구의 시궁쥐를 보는 감정도 저것보단 나을 거 같아요. 자르반 왕자님도 그렇고 티아나 님도 그렇고 어쩜 저렇게 표정 관리를 잘 하시는 걸까요? 정말 대단해요!
 “…….”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듯 소나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하긴 티아나 같은 고위 귀족도 자신의 편이란 걸 알았으니 마음이 한결 놓일 만도 했다. 문제는 그에 비례해 재잘거리는 말도 점점 더 길어진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단정히 서 있는 소나에게서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건 참으로 묘한 경험이었다. 

 “우선,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모두 럭산나의 증언에 따라 사실대로 전하는 것임을 크라운가드의 이름에 대고 맹세합니다.”

 티아나는 날카롭게 말했다. 그러니까 비록 본인을 데려와 증언하게 하진 못했어도 내가 보증하니까 딴지 거는 놈들은 재미없을 줄 알아라, 뭐 이런 뜻이었다.

 “우선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진영을 나선 건 여기 있는 잭스였다고 합니다. 이 부분까진 경기 장면으로 송출됐으니 다들 아실 거라 믿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의 일인데, 럭산나의 말로는 무슨 소리가 들렸다 하더군요. 이런 표현은 조금 낯간지럽지만, 친근하게 속삭이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합니다.”
 -에스트렐…….

 소나가 낮게 속삭였다. 가면 속에서 잭스의 표정이 점점 더 딱딱하게 굳고 있었다.

 “그 뒤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둥둥 떠 있는 것만 같았다고 얘기하더군요. 자기 앞에 정체도 모르는 이가 말도 안 되는 수치스러운 명령을 내려도 전혀 거부할 생각도 들지 않았고, 심지어 그가 바라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고 합니다. 그 명령이 설령 죄 없는 챔피언 하나를 죽이고, 조국을 위해 같이 싸우는 챔피언 하나를 납치하라는 어이없는 것이라 해도 말입니다.”

 “티, 티아나 님. 그건 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분명 쉬바나 경호대장도 저항하지 못할 정도의 마법이라 했는데, 어떻게 저 용병과 부벨르 영애만 빼놓고 나머지만 조종을 당했다는 건지…….”
 “전 그 아이가 했던 말과 제가 알아낸 사실만을 전달할 뿐입니다.” 티아나가 차갑게 내뱉었다. “그리고 하그리브스 경, 그것은 당신이 생각할 바가 아닙니다. 지금 이 청문회는 여기 있는 잭스가 당시 경기를 혼란에 빠뜨리고 챔피언들을 습격한 주모자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위해 열린 것입니다. 논점을 흐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쏘아붙이는 티아나의 말에 하그리브스라는 귀족 하나는 말도 제대로 못한 채 걷어차인 개처럼 나오자마자 들어가야 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신분으로 찍어 누른 바가 없잖아 있는 모양새라, 자르반이 뒤에서 거들었다.

 “하그리브스 경의 의문은 정당하오. 하지만 그 부분은 전쟁학회의 협력을 받아 조사를 해야겠지. 후에 전쟁학회와, 필요하다면 이번 사건에 연관됐던 녹서스와도 협력을 해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니 그 일에 대해선 걱정 마시오.”
 “전하, 녹서스가 이번 사건의 범인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찔러넣듯 재빨리 외쳤지만 자르반은 능숙하게 싱긋 웃으며 맞받아쳤다. 여유로운 미소를 가장한 비웃음이었다.

 “정신 공격은 그쪽 챔피언들도 똑같이 당했다 들었소. 며칠 전에 녹서스 쪽에서 보낸 공문에 따르면 녹서스 측도 우르곳과 사이온이 거의 박살나는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군. 바로 여기 있는 용병 잭스의 손에 의해서 말이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대의 무력은 정말 대단하군, 잭스. 그러니까 우르곳과 사이온을 격파하고 거기를 점거했던 그 정체불명의 놈들도 물리치면서 우리 쪽의 챔피언들까지 상대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순서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거 정말 놀랍군. 대체…….” 
 “흠, 전하?”

 자르반이 진심으로 감탄하다가, 티아나가 작게 헛기침을 하자 김샜다는 표정으로 다시 귀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봐도 심기가 불편해진 티가 뻔하게 나는지라, 귀족들은 뭐라 더 말도 못하고 질문을 던진 그 귀족만 슬쩍슬쩍 째려볼 뿐이었다.

 “그래. 좀 전의 얘기로 돌아가자면, 전쟁학회가 눈 버젓이 뜨고 있는 협곡에서 고작 적국의 챔피언 넷을 없애기 위해 자국의 챔피언들까지 희생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오. 룬테라 대륙의 대부분이 그 경기를 보고 있었을 텐데 그가 미쳤다고 대륙을 적으로 돌리는 짓을 하겠소? 내가 스웨인 그 작자를 싫어하긴 하지만 무시하진 않소. 그건 멍청한 짓이오. 배가 고프다고 사자 입속에 있는 고기에 손을 뻗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지.”

 녹서스에 대한 증오야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자르반이었지만, 저런 막무가내식 혐오는 지양했다. 무턱대고 잘못의 화살을 돌리는 건 아무렇게나 칼을 휘두르는 것과 같았다. 전쟁터에서 그랬다간 딱 칼 맞아 죽기 좋은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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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쓰다보니 무려 제게 비축분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오오.

이거 뒤로 5장 분량이 더 있습니다. 오오.

역시 사람은 발전하는 동물!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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