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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62화

아이콘 강철안개
조회: 1349
추천: 3
2020-08-31 23:34:33

 “험, 전하.”
 “음, 응?” 
 “하시던 말씀은 하셔야하지 않겠습니까.”
 
 티아나가 예의바르게 재촉했다. 말로만 그러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방금 청문회 때도 흔들리지 않던 그녀의 표정은 짜증과 두통이 밀려오는지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아, 그렇지. 얘기 중이었지. 하하, 이거……. 부벨르 영애의 미소가 워낙 아름다워서 넋을 좀 잃었소. 아, 이상한 의미는 아니니 걱정 마시오. 그런데 그렇게 웃는 건 조금만 자제해줬음 좋겠소. 정말 파괴력이…장난 아니군.”
 -어머.

 아무래도 소나가 자기도 모르게 너무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나가 자르반의 멋쩍은 칭찬에 맘을 뺏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잭스가 전기라도 감전된 것마냥 재빨리 손을 뺐으니까. 소나는 순간 테이블 밑에서 허공에 빈손을 허우적거려야 했다. 

 소나의 표정이 뚱해지는 거야 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들킬 것 같았으면 제가 먼저 놨을 텐데. 그렇게 제 귀를 못 믿으세요? 흥, 은근히 겁쟁이시네요.
 “…….”

 그녀는 작게 조금 전까지 감촉의 여운(?)을 느끼기라도 하려는 듯 제 손을 만지작거렸다. 살짝 입을 삐죽거리는 건 덤이었다. 그 모습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건 매한가지인지라 자르반은 또 넋을 잃었고, 결국 티아나는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해야만 했다. 

 “큼.”
 “아 거참, 알겠다니까 그러네.”
 “…체통을 지키셔야 합니다, 전하.”

 꼭 철딱서니 없는 아들 챙기는 엄마 같은 모습이었다. 항렬이나 이런 거 저런 거 따지면 숙모와 조카 관계에 더 가까웠지만 말이다.

 -보세요. 가렌 님이랑 티아나 님은 왕자님께 신경이 쏠려 있으시잖아요.
 ‘레오나는 뭐 그럼 조각상이나 된단 말이오?’

 잭스는 그 답답한 심정을 터뜨리고 싶은 걸 꾹 참아내야만 했다. 조금 전부터 레오나가 잭스를 거의 꿰뚫을 기세로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손 잡아달라고 해서 잡아준 것뿐인데 이런 따가운 눈총이나 받아야 한다니 세상 억울한 잭스였다.

 …물론 이런 자리에서 소나의 어리광을 받아준 그에게도 잘못이 없진 않았지만 말이다. 

 “루암, 잔이 비셨군요. 포마시움(Pomacium, 사과주) 한 잔 어떠십니까?”
 “응? 아아, 그래.”

 레오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잭스에게 술을 따라줬다. 그제야 자기 잔이 비었다는 걸 깨달은 잭스는 떨떠름하게 잔을 들었다. 찔리는 게 있어도 일단 오는 술은 막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상식이었다. 게다가 레오나의 손에 들린 건 그가 가장 좋아하는 황금 사과로 만든 술 아니던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고맙구나.”
 “별말씀을요. 허나 봄날에 취하시는 것도 적당히 하셔야 할 겁니다.”
 “…….”

 아니나 다를까, 레오나가 부드럽게 채근하듯 속삭였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챙겨주는 걸로만 보였을 테지만, 잭스와 소나에게 슬쩍 눈짓을 하는 그녀의 눈은 거의 달군 석탄만큼이나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레오나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봄날’은, 요약하자면 ‘때와 장소는 좀 가려라’라는 의미였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염장질 작작 해라’ 정도였고 말이다. 

 그제야 레오나에게 신경이 쓰인 듯 소나의 표정도 슬쩍 굳었다. 잭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시선은 술병 목을 으스러져라 잡고 있는 레오나의 손을 향해 있었다. 그는 재빨리 술 한잔 꼴깍 마시는 걸로 딴청을 피웠다.

 “이제 그만 부벨르 영애의 공도 치하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하?”
 “아, 그렇지!”

 분위기가 뭔가 묘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는지 (그 누구도 그녀들이 잭스를 두고 신경전 아닌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티아나는 결국 세 번째로 자르반을 채근했다. 이번만큼은 자르반도 멍하니 있는 걸 멈추고 본제로 돌아갔다. 그가 입을 열자 티아나는 고개를 돌리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 잭스는 뭔가 베사리아가 겹쳐 보이는 듯한 느낌을 지을 수 없었다. 

 그래, 베사리아가 꼭 저랬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고무공 같은 레지널드를 어떻게든 제어하려고 애를 쓰는……. 잭스는 새삼 오늘 처음 보는 이 티아나 대원수라는 중년의 여인에게서 낯익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깜짝 놀랐소. 솔직히 부벨르 영애가 그런 자리에 부담을 많이 가질 줄 알았는데 정말 내 기대 이상으로 잘해 줬거든. 사전에 여기저기 가문의 힘을 뿌려둔 것도 꽤 컸고 말이오. 소개할 때도 가문의 위광을 보여주려는 노력, 아주 좋았소.” 

 자르반은 그렇게 말하고선 미안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그때 소나를 윽박질렀던 일이 생각났으리라. 물론 연기였지만 어쨌든 윽박지른 건 사실이었으니 미안한 모양이었다.

 “그때 겁을 준 건 미안했소.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내세울 만한 작위도 아닌데 나한테 대들기 위해 있는 대로 끌어 모았다는 모양새가 됐었거든. 거기서 화를 내는 척을 안 할 수가 없었소. 하하,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땐 정말 옆에 있던 잭스 경이나 레오나 사제의 눈치를 엄청 봤지.”
 “전하께서 다 뜻이 있으실 거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루암께서도요.”
 “그랬나? 하하, 그거 고마운 일이로군.”
 “…….”

 잭스는 그런 것 따위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었지만 그냥 레오나 따라서 고개만 꾸벅 숙였다.

 -거봐요, 잭스 님. 제가 연기라고 말씀드렸죠? 그때 잭스 님께서도 잘 참으셨던 거예요.

 소나는 그렇게 속삭이며 자르반을 향해 가볍게 목례했다. 그리고선 에트왈의 현을 뜯어 경쾌한 프레이즈 몇 소절로 대답을 대신했다.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의미였다. 그녀의 의도가 전해진 건지 자르반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이해해주니 다행이군. 그때 부벨르 영애에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오. 이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말하자면 좀 조마조마했었는데, 아니 겁먹기는커녕 내 위협에도 당당히 고개를 들고 서있더군. 아주 멋졌소! 마치 개선 후에 돌아오는 장군처럼 위풍당당했지. 덕분에 내 쪽에서 발언의 주도권을 자연스럽게 가져갈 수 있었고 말이오. 하기사 부벨르 가문의 정통 상속자가 직접 뒤를 봐준다는데 감히 어느 누가 선뜻 총대를 메겠소?”

 아닌 게 아니라 자르반은 순수하게 소나의 의연함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 시선과 분위기 속에서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는 건 어찌 됐든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건 그가 소나의 비밀을 몰라서 그런 것도 있었다. 소나에게 있어 시선이나 표정 따윈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녀가 세상을 파악하는 데에 가장 의지하는 건 타인의 감정을 들을 수 있는 그녀의 귀였다. 소나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황, 즉 자기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나 두려움을 느끼지 그런 청문회 같은 곳을 무서워하진 않았다. 그런 곳은 껄끄럽고 피하고 싶은 장소였지 두려운 장소가 아니었다. 

 어쨌든 자르반이 알아서 잘 착각해주고 있었으니 딱히 그녀가 진실을 밝힐 이유는 없었다.

 “뒤이어 레오나 사제가 나서준 덕에 라우자르프 백작도 알맞은 타이밍에 들여보낼 수 있었지. 아, 눈치 챘겠지만 그는 내 심복 중 하나요. 교활하고 유약하지만 조국에 대한 충성심 하나만큼은 정말 알아주는 친구지. 때로는 자신의 평판이나 외모도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말이야. 아,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아까 잭스 경의 옛날 얘기는 정말 흥미진진했소, 레오나 사제. 거의 한편의 희극을 보는 것 같더군! 내 장담컨대 그 친구 성격상 분명 얘기하다 진짜로 구미가 동했을 거요.”
 “후후, 저도 도중부턴 푹 빠져서 딴길로 샐 뻔했습니다. 루암께서 안 막아주셨다면 정말 그 다음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하, 그 쌍둥이 자매라는 분들도 참 대단했소. 새끼 늑대 한 마리 얻자고 늑대 소굴로 들어갔다니, 거 참. 용기 넘치는 건지 무모한 건지.”
 “전하께서도 비슷한 일을 하신 적 있지 않으십니까? 열 살 정도 되셨을 즈음에 데마시아 독수리 한 마리 기르고 싶다고 나무에 오르셨다가…….”
 “그래, 가렌이 밑에서 받쳐 준 덕에 생채기만 좀 생기고 말았지!”
 “그리고 그 뒤에 다시 시도하셨다가 팔이 부러지셨고요.”
 “와하핫! 아직도 그때 아버님께 혼났던 걸 생각하면 다쳤던 팔이 저릴 지경이라네!”

 자르반이 저 혼자 뭐가 재밌는지 폭소를 터뜨리며 치즈 조각 몇 개를 덥썩 집어먹었다. 꼭 어린애가 욕심껏 과자 집어 먹는 모양새라 왕세자라는 체통엔 걸맞을 리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이미 넌덜머리가 났다는 듯 티아나는 제지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미간은 제발 신에게 참을성을 달라는 듯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 옆에서 가렌은 그저 묵묵히 와인으로 입술만 축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자르반이 직접 따라준 술이라 거절하진 못하겠고 근무 중이라 술을 입에 댈 순 없으니 시늉만 하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킬킬대던 자르반은 다시 소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부벨르 영애에겐 내가 큰 폐를 끼쳤으니 연말에 훈장 몇 개라도 주겠소. 사실 사과하는 데에 훈장이라니 썩 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보는 눈들도 있고 하니 양해해줬으면 좋겠소. 대신 내 하나는 약속하지. 이런 바보 같은 청문회 따위가 두 번 다시 벌어지게 하진 않겠소. 훈장은 그 약속의 증거라고 생각해 두시오. 어쨌든 있어서 나쁠 건 없을 테니 말이야. 티아나 경, 레기옹 델 아노르 훈장 수훈 목록에 부벨르 영애의 이름을 꼭 올려놓게. 설마 자격이 모자라진 않겠지?”
 “물론입니다. 하는 김에 여기 잭스 경이나 레오나 사제도 생각해보심이 어떠신지요?”
 “당연히 레오나 사제께도 드려야지. 그리고 잭스 경에게도 말이야. 맘 같아선 그 무지렁이 귀족들을 싹 다 묶어서 그대를 본받게 하고도 싶소. 세상에 데마시아의 모든 고아원에 기부라니. 그것도 자잘한 봉사 단체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이야. 설마 다른 곳들도 전부 그렇게 하고 있는 거요?”
 “…일단 힘 닿는 데까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만.”
 “아, 캐물으려던 건 아니었소.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요. 후우,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놈들이 그대의 1할이라도 좀 닮았으면 좋겠군. 어쨌든 폐를 끼쳐서 미안하오, 잭스 경. 다 귀족들 간수 하나 똑바로 못한 내 잘못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시오.”
 “잘 마무리해주셨으니 괜찮습니다, 전하. 훈장은…….”
 -받으셔야 해요! 왕자님이 말하셨단 건 이미 정해진 거예요, 잭스 님!
 “…감사히 받겠습니다.”

 잭스는 음울하게 감사를 표하며 머리를 숙였다. 오늘은 술 마시는 거 빼곤 뭐 하나 맘대로 할 수 없는 날이 분명했다. 하긴 그 맘대로 했으면 이미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하, 그리고 내 시종장에게 명해서 좋은 술들 몇 통 꺼내두라 이를 테니 나중에 느긋하게 즐기시오. 설마 혼자 있을 때도 가면을 쓰고 마시진 않겠지?”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받은 것 중 가장 좋은 보상 같군요.”
 “와하핫! 그거야 뭐 그러겠지! 맘 같아선 그라가스와 쌍벽을 이룬다는 그 주량을 직접 보고 싶은데 정말 아쉽군. 대신 술은 넉넉히 꺼내놓으라 일러두리다.”
 “감사합니다, 전하.”

 오늘 했던 대답 중 제일 밝은 목소리로 잭스가 답하자 자르반이 그 소박한(?) 태도에 웃긴 듯 호탕하게 웃었다. 레오나와 소나가 살짝 그를 흘겨보긴 했지만 이 정도야 뭐 허용범위 내라고 생각하는 건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긴 자르반의 말마따나 데마시아 소속도 아닌 잭스에게 그깟 훈장 따위야 리본 장식 정도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자르반은 훈장 얘기를 그냥 꺼낸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의 표정이 지금부터 진짜 속내를 꺼내놓으려는 것처럼 사뭇 진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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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늘어지는 감이 좀 없잖아 있는데 그냥 내키는 대로 막 쑤셔넣고 있읍니다

1. 으흐흐 다음화에서 전 잭스의 수치심을 치사량까지 올릴 계획입니다.

2. 으흐흐흐흐헿헤헤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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