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겨울, 2번째 롤드컵
고작 AOS의 변방 국가였던 한국의 대표, 아주부 프로스트의 패권 도전기는
아직도 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LOL의 선두주자로 여겨졌던 북미와 유럽팀을 상대로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픽과 메타를 선보이며
많은 사람이 우승후보로 점쳤던 CLG를 4강에서 완파하기까지......
아주부 프로스트라는 이름을 전세계 팬들의 기억 속에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한 과정이었다.
비록 비슷한 행보를 보였던 TPA와의 마지막 결승전에서 아쉽게 3:1 석패를 했지만
그들이 세계대회에 보여준 새로운 바람은 분명
우리나라 LOL의 부흥을 이끄는 초석이 되었으리라.
2016년 겨울, 우리는 이제 6번째 롤드컵을 맞이했고
한국은 이제 롤드컵 4강에 시드권 3팀 전원이 처음으로 들어가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때의 감동이나 전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그런 것일까?
한국팀을 응원하는건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롤드컵이 LCK랑 뭐가 다르지?
EDG, C9, RNG = KT, 아프리카, 진에어로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어디에도 아시아의, 북미의, 유럽의, 변방의 아주부 프로스트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ANX와 INTZ가 보여준 선전은 눈여겨볼만하다.
그것을 두고 국내와 해외 언론에서는 연일 새로운 바람이 분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일순간의 포장일 뿐이지, 실상은 우리나라 팀과의 갭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한 때 LOL의 선두주자로 여겨지던 북미와 유럽의 추락과도 연관이 되어 있기도 하고......
글쎄, 그들은 더 이상 롤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북미와 유럽에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로 치면 막눈, 클라우드템플러, 빠른별, 건웅과 같은 급인
프로겐, 엑스페케, 더블리프트와 같은 올드 프로게이머들이 아직도 현역으로 뛰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을 이어주어야 할 뒷세대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지조차 않고 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기도 할 것이다.
아, 물론 비슷하게 스코어, 엠비션, 매드라이프와 같은 선수들도 아직까지 현역 생활을 하고 있다.
논란의 여지는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최고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있는것이지, 해외처럼 몇몇 선수들이 기존의 인기를 발판으로 기량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현역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는 느낌은 거의 없다.
글쎄, 단순히 우리나라 선수들의 해외리그 잠식에서 원인을 찾기에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판단이라고 본다.
3개라는 획일적인 밴픽 카드와 스왑픽, 메타를 알아서 선도하는 라이엇의 패치 방향성
데이터와 수치 분석이라는 이성적인 바람에 휩쓸려
프로겐의 애니비아, 웨스트도어의 피즈, 페이커의 리븐, 제드와 룰루, 매드라이프의 쓰레쉬와 블츠 등으로 대표되던
스타 플레이어들은 자신만의 개성적인 픽들을 점점 잃어버리고
오직 팀의 부품과 일원으로서 팀 운영을 강요받는다.
마치 스포츠 엘리트 코스를 밟는 태릉 선수촌 합숙생활처럼
팀 케미와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시되는 시점에서
으쌰으쌰하고 합숙생활을 강요받는 이러한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게이머들이 전세계에 얼마나 있을까?
팀원과의 불화와 기행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나오고 있는 요즘 리그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즐기기 위한 게임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스트레스와 강요로 점철된 삶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롤은 이제 너무나도 안정지향적이고 기계적인 게임에 불과할 뿐, 더 이상 선수들의 자유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스포츠를, 그리고 그 일환인 이스포츠를 보면서 열광하는 이유는
선수들을 보면서 우리가 못하는 점들을 피드백하고 발전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게임을 속박하고 있는 어떠한 '법칙'과 '틀'에서 벗어나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난 생각지도 못한 플레이들을 해내는 자유로움을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현재 메타에서 페이커와 류의 일기토나 엑스페케 대장군의 백도어 같은 명장면이 가당키나 할까?
매번 보는 건 4:2 봇 다이브, 3:1 탑 다이브, 한쪽의 일방적인 카운터정글과 시야장악, 용과 바론 정면 한타에서
한쪽이 쉽게 터뜨리고, 한쪽이 터지지 않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그림만이 그려질뿐......
스타1이 임요환 세대와 마재윤, 김택용, 이영호 등을 거쳐 점점 자유로운 플레이에서 날카로운 운영과 타이밍 싸움으로
바뀌어간 것처럼 LOL도 이제는 그러한 전철을 밟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LOL도 결국 스타1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나가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대단한 선수들이 결국 개인방송에 자리잡아야 하는 시기가 되어가면서
LOL도 새로운 게임에게 왕좌를 내주고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 시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 또한 맞을 것이다.
그것이 이번 롤드컵을 보면서 무언가가 자꾸 씁쓸하게 느껴지는 부분일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밴픽 문제나 패치 방향성 등의 큰 그림 변화로 이러한 사태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가능성은 있을까?
글쎄, 이제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