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로스트아크 세계관과 카멘을 바탕으로 한 비공식 2차 창작 소설입니다.
※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과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 게임 내 1부 시나리오 이후를 바탕으로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 카멘 및 메인 스토리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 대표 이미지는 AI로 제작하였습니다.
24. 에필로그
혼돈의 신이 사라진 뒤에도 세상은 곧바로 조용해지지 않았다. 남은 자들은 설명할 수 없는 공백에 의아해했지만, 곧 각자의 소명과 역할에 집중했다.
세이크리아 본국에서 드디어 새벽의 사제단이 도착했다. 사제단은 황혼의 만행을 알렸고, 이단의 낙인으로 황혼의 존재를 구분하도록 대대적인 의식을 거행했다.
모험가는 혼돈의 신이 말한 ‘남은 것’과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 점차 깨닫게 되었다.
어둠의 존재가 남긴 공포와 절망의 사건은 남아있지만, ‘카멘’이란 이름은 사라져버렸다. 기록에서도 기억에서도. 니나브와 실리안, 카단마저도 그 만행과 사건만 기억할 뿐, 존재를 떠올리진 못했다. 에버그레이스만이 지워진 존재의 공백을 자각할 뿐이었다.
이제 그 이름은 이그하람과 모험가만이 아는 진실이 되었다.
대부분 부정적인 기억이었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모험가는 혼돈의 신이 왜 그런 기묘한 장난을 남겼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다만, 에보니와 루는 달랐다.
그들에겐 세상이 모르는 시간 속의 감정이 남아있었다.
에보니는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루는 인근 영주의 성에서 머물게 되었다. 이는 루의 의중도 있었다. 루는 종종 보육원으로 찾아갔다. 루와 에보니는 함께 마을의 명물이 된 흑단나무가 있는 곳으로 놀러 가곤 했다. 산이 있던 일대는 이제 얕은 호수가 되었고, 그 한가운데서 은은하게 빛나는 나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오늘은 에보니가 이전에 그렸던 그림을 들고 왔다. 그동안 보육원장이 잘 보관해주던 그림들이었다. 에보니는 나무에 기대앉고는 루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누누, 이 사람 기억나? 내가 그린 게 분명한데, 누군지 모르겠어.”
“글쎄다. 분명 동굴에서 만났던 것 같은데.”
“왠지 무서운 사람 같기도 하고.”
루와 에보니의 눈에 아련한 빛이 감돌았다. 기억의 공백은 가슴이 미어지는 그리움이 되기도 했다.
“얘야 괜찮으냐?”
“어? 갑자기 왜 이러지.”
에보니는 재빨리 눈물을 닦아냈다.
“그냥 무섭기만 했던 건 아닌 것 같아. 왠지 자꾸 보고 싶고, 그립고. 우리 어쩌면 행복했던 거 아닐까? 이 그림처럼.”
셋이 함께 웃고 있는 그림.
무섭기만 했다면 남지 않았을 표정이 투박하게 그려진 그림이었다. 루는 나무를 올려보며 공백을 짚어봤다. 분명 동굴 속, 항상 그 자리에 어떤 존재가 있었지만, 그 이상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 공백이 때론 그들을 웃게 했고, 때론 울게 했다.
이후로도 에보니와 루는 함께했고, 떠오르지 않는 기억과 감정을 공유했다.
기억의 공백이 남긴 감정은 비뚤배뚤한 그림만이 증거로 남았다.
태초부터 존재한 그림자들은 사라져갔지만, 아크라시아에 혼돈은 더욱 커졌다.
혹한의 불모지, 슈샤이어가 불타오르고, 심연의 불꽃이 검게 물들었다.
모험가는 또 다른 위협과 맞서야만 했다.
먼 훗날, 모험가는 이그하람과 마주했다.
신의 성물로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심연의 불꽃으로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이그하람은 자신이 온전히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가 남긴 이음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가 마지막에 남겼던 미묘한 미소.
그것이 뇌리에 남아 적잖이 이그하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음새는 틈이 되었고, 모험가의 반복되는 도전 속에 틈은 균열이 되었다.
그 균열로 모험가가 날린 심연의 불꽃이 파고들었다.
그것이 이그하람의 끝이었다.
끝의 순간에서, 이그하람은, 카마인은 깨달았다.
자신이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무엇이었나? 어째서 이렇게 되었지?
수많은 상황과 인물이 의문 속에 스쳐 갔다.
그 끝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존재가 있었다.
잊힌 존재.
지워버린 또 다른 나.
그가 마지막으로 하려 했던 말,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완성되지 않은 자.
그 미묘했던 미소의 의미이자,
그가 마지막까지 가져간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혼돈의 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완성되지 않았을 뿐.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