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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메이플[스토리] 17

Pyapat
조회: 715
2025-01-01 18:01:46
아리는 계속해서 일지에 적힌 내용을 읽어나갔다. 일지에는 진과 설희의 이야기뿐 아니라 선대 다크로드였던 '성'의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XXXX년 X월 X일]

슬리피우드로 향하던 중, 잠시 커닝시티에 들르게 되었다. 특이한 구조물이 많고, 다른 마을에 비해 높은 건물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마을을 구경하던 중, 나는 커닝시티의 도적 전직관 다크로드를 만났다, 그는 마을 주변 몬스터를 퇴치해 달라며 임무를 의뢰했다.
보수로 음식과 돈을 준다고 했기에 마침 가진 것이 거의 떨어져 있던 터라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 역시 임무 진행을 지켜보겠다며 동행을 제안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크로드는 자신이 아끼는 두 아이(남자아이 한 명, 여자아이 한 명)를 데리고, 내가 임무를 수행하는 현장에 함께 왔다. 다행히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고, 단지 ‘구경만 하겠다’고 했기에 마다할 수가 없었다.
임무를 마친 후, 다크로드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처음 약속했던 보수의 배나 되는 음식과 돈을 내게 내놓았다.
하지만 혼자 여행하는 나에겐 너무 과한 양이라, 처음 약속한 양만 받겠다고 고개를 저었는데,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크로드는 기쁜 듯 자기 이름을 밝혔다.

원래 ‘다크로드’란 이름은 커닝시티 도적 담당관의 칭호일 뿐, 그의 진짜 이름은 '성' 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나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권유했고, 거절했다간 끈질기게 달라붙을 것 같아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함께 식사하면서 나는 여행하면서 겪었던 전투나 일화 등을 얘기해주었는데, 그가 데리고 온 두 아이들은 흥미롭다는 듯 계속 질문을 던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식사였고, 나 역시 즐거운 기분으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처음엔 그 아이들이 성의 친자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를 해보니, 남자아이의 이름은 ‘진’으로 그의 제자였을 뿐이였고 여자아이쪽인 설희 또한 딸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어릴 때 몬스터에게 죽을 뻔한 걸 성이 구해준 아이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웬만한 부녀지간 이상으로 깊어 보였고, 내가 보기엔 그들은 평범한 가족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XXXX년 X월 X일]

며칠간 커닝시티에 머무르며, 나는 임무를 수행하며 여행 자금을 마련했다.
그 사이 성의 아이들이 자주 찾아와, 수련을 도와달라거나 내가 겪은 무용담을 물어오곤 했다.
하지만 결국 슬리피우드로 떠나야 했기에, 작별을 고하려 했더니 오히려 성이 서운해하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내게 붙어 떨어지질 않았고, 성은 본인이 직접 다른 도적들에게 임무를 맡겨놓고 아이들과 함께 나의 임무에 동참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의외였지만, 나도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 제안을 수락했다.

우리 넷은 함께 슬리피우드로 향했고, 진은 실전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보여주어 나와 성이 모두 깜짝 놀랐다.
반면 설희는 겁이 많아서, 제대로 된 실력을 다 못 펼치고 몬스터를 보자 도망치기 일쑤였다.
물론 그 나이대 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으니, 나와 성은 설희를 다독여 주었다.

슬리피우드에 도착한 우리는 저주받은 신전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본래 목적이 마왕 발록을 봉인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신전의 위치와 진입 방법 등을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만지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고, 놀랍게도 그는 대대로 신전을 관리해 온 일족의 후예였다.
그 일족은 예로부터 발록의 부활을 막고, 다른 이들이 신전에 들어오는 걸 통제하기 위해 슬리피우드에서 살아왔다고 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신전에 대해 물어봤고, 그 아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정보를 얻었다.

첫 째, 마왕을 봉인한 부적은 여신교의 사제만이 다룰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여신의 힘을 쓸 수 있는 이’가 부적을 관리할 수 있다고 한다.
만지의 일족은 예전부터 조금이나마 그 여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기에, 신전 관리자로 살아왔다고 했다.

둘 째, 발록은 평범한 방식으로는 설령 육체를 제거해도 영혼이 살아남아 다시 부활한다고 한다.
발록을 완전히 소멸시키려면 ‘글라디우스’라는 성검이 필요한데, 만지도 그 검이 어디 있는지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셋 째, 발록은 일정 주기로 부활하는데, 부활 직전엔 항상 지하 신전에서부터 몬스터가 범람해 온다고 한다.
최근 슬리피우드 근처에 대량의 몬스터가 나타나는 것도 이와 관련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발록이 머지않아 다시 부활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다행히 만지가 봉인 부적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발록의 영혼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언젠가 또다시 세상을 어지럽힐 게 뻔했다.

결국 우리는 발록을 완전히 없애 버릴 방법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XXXX년 X월 X일]

슬리피우드에서 발록에 대한 조사를 더 진행했지만, 이미 만지에게서 얻어낸 정보였고, 쓸 만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필요 없는 내용이거나 겹치는 것들이었다.
조사 틈틈이 나는 진과 설희의 수련을 도와주었는데,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만지가 자신도 수련에 참가하고 싶다고 부탁해 왔다. 처음에는 만지의 참여를 거절하려 했지만, 검에 대한 그의 확고한 열정을 보고는 결국 허락해 주었다.

만지의 실력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어린 나이임에도, 보통 성인보다 더 대단한 기량을 갖고 있었고, 그의 검술은 수백 년을 이어온 가문의 전통답게 다른 데서는 보기 힘든 독특하고 신비로운 해석이 담겨 있었다.
결국 내가 해준 것이라곤 자세를 잡아주거나 나쁜 버릇을 교정해주는 정도에 그쳤지만, 그마저도 만지에게는 큰 기쁨이었는지 나를 ‘스승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낯간지러운 호칭이었지만, 기뻐하는 아이를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오늘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으므로, 이만 일기를 마치도록 한다.

[XXXX년 X월 X일]

슬리피우드 인근에서 몬스터의 출몰이 더 심해졌다. 만지의 말로는 곧 발록의 부활이 임박한거 같다고 하였다. 초조한 마음에 나와 성은 우선 만지가 가지고있는 부적을 가지고 임시로라도 발록의 부활을 막기 위해 신전으로 출발할려고 하였다. 그렇게 우리가 출발하려 할 때, 사제복을 입은 이가 마을에 오더니, 발록을 제거할 수 있는 부적이라며 우리에게 부적 한 장을 건네었다. 얼떨결에 부적을 받긴 했지만, 이렇게 좋은 타이밍에 나타난 행운이 어쩐지 의심스러웠다.

그런 나의 의심을 눈치챈 듯, 사제는 자신이 건넨 부적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부적이라며 설명을 덧붙였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 또한 신전으로 동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사제가 있는 것은 확실히 메리트가 있었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수락하였다. 만약 사제가 준 부적이 실패하더라도 만지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기에 최악의 경우는 발생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시가 급했지만, 사제 또한 정비가 필요했기에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신전으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무엇보다 설희를 떼어놓기 위해서라도 그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몰래 도망쳐야했다. 혹시라도 그 아이가 자신 또한 함께 신전에 간다고 한다면 몰래 떼어놓는건 불가능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부디 내일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기를 빈다.




일기는 그 곳에서 끝나 있었다. 아리는 일지를 향해 물었다.

"이 다음 이야기는? 그들이 신전에서 어떻게 된거야?"

자신을 노려보는 아리의 모습에 일지는 겁에 질린 듯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그 때 살아 돌아온건 형님과 다른 아이들뿐이였다고.. 다크로드 님과 트리스탄 님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네 형님이라는 사람한테서 들은 게 아무것도 없냐고!”
아리가 거칠게 되묻자, 일지는 잔뜩 긴장한 채 고개를 저었다.

"히익! 저, 저는 그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을때라.. 트리스탄님에 대한것도 형님이 혼자 중얼거리던걸 들은게 전부 입니다, 진짜에요..!"
그렇게 말한 일지는 아리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형님이 그러셨어요.. 우리의 분열은 그 때부터였다고...이것 외에는 저는 아는게 없어요.. 죄, 죄송합니다.."

떨고있는 일지를 뒤로하고, 아론과 테스가 나서서 흥분한 아리를 말렸다.

"야, 야! 진정하라고! 갑자기 왜 이러는건데?"
"그래! 우선 진정하고 천천히 얘기해봐!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건데?"

하지만 그럼에도 아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결국 파티원 모두가 나서서야 아리는 차츰 진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정신을 되찾은 아리는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았고, 모두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둘러앉았다.

아리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화원에 소속된 블레이더였던 일부터, 메르시와 함께 저주받은 신전에 갔던 일, 발록의 부활을 막기 위해 희생했던 메르시의 이야기까지, 그녀가 슈가와 만나기 전까지 겪은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파티원들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아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알아야겠어, 그 날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왜 그들이 작전에 실패했고, 분열되었는지. 그들이 실패했기에 우리가 그런 일을 겪게 되었던 걸 수도 있으니까"

아리는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채, 일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제발 알려줘… 그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지만 일지도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었기에, 고개를 떨궜다.

“죄송해요… 저도 그 시절엔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알려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 파티원 누구도 쉽사리 그녀를 위로하지 못하였다.

"만지 씨를 찾아가 보자.”

갑작스런 아론의 제안에 파티원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사건의 당사자니까 직접 물어보면 될거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 물어보자.” 
아론의 말에 올리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지만 자기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은 일을 과연 우리에게 알려줄까…?”

“그렇다고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무엇보다 이건 우리 파티의 일이기도 하고.”

아론의 대답에 파티원들은 아리를 바라보았고,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말 안해주면 패서라도 알아내지, 뭐!"
론도의 발언에 옆에서 테스가 일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야, 옆에 동생이 있는데 뭘 팬다는건데..."

"아.. 어, 어쨌든 물어보자고.. 어.."

그리고 그런 그들 옆에서 올리비아와 슈가도 결의를 다졌다.

"아리한텐 도움받은것도 많으니까, 이번엔 우리가 도와주자고!"

"응! 걱정마, 아리. 우리가 꼭 진실을 알아낼게!"

그 모습에 아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얘들아..."

"뭘, 그럼 우선 오늘은 늦었으니까 쉬고, 내일 페리온으로 가보자."

"좋아!"

아론의 제안에 파티원들이 모두 승낙하였고, 그들은 내일의 여정을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리 일행이 마을을 떠나려 하자, 일지가 나와서 배웅해 주었다.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형님, 누님들.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그래, 무리는 하면 안된다?"

"하하, 물론이죠. 차근차근 열심히 나아가보겠습니다."

파티원들과 일지는 서로 덕담을 나눈 뒤, 떠날 준비를 마쳤다. 그 순간, 일지는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테스에게 건넸다.

"편지? 이건 왜?"

"만지 형님께 쓴 편지입니다. 아무래도 낯선 인물이라 경계하실 수도 있으니, 그 편지를 보여드리면 될거에요."

"그래? 고맙다. 잘 쓰도록 할게."

"뭘요, 제가 더 많이 받았는걸요. 그럼, 여러분의 여행에 행운이 가득하길."

"그래, 너도 잘 지내고. 다음에 보자!"

그들은 일지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을 나섰고, 곧 페리온을 향해 길을 떠났다.
파티원들은 페리온으로 향하면서 아론에게 만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만지라는 사람, 어떤 사람이야? 아론, 너는 뭐 좀 아는 거 있어?”

"글쎄, 워낙 사람들과 교류가 적었던 인물이라 나도 아는게 거의없어. 무엇보다 만나기도 힘들고."

"만나기 힘들다고? 수련 중이라 계속 다른 곳에 있는 거야??"

"그런건 아니고.. 하아.."

아론은 답답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파티원들이 의아해하며 되물었고, 아론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항상 페리온 정상에서 머물거든.."

"어.. 정상이라면..?"

파티원들이 불안한 얼굴로 그에게 재차 물어보았다.

"페리온 꼭대기 말이야.."

"젠장..."

모두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페리온은 험준한 바위산 지형에 위치한 마을이며, 그 꼭대기라 하면 족히 몇십 미터 높이의 바위 절벽을 기어올라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리의 마음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페리온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몇 시간 뒤, 페리온에 도착한 그들은 우선 마을사람들에게 만지가 어디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마을을 둘러보았다. 잠시 후, 아론은 한 인디언 복장을 한 여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이얀씨. 오랜만이네요."

"어, 아론이잖아! 모험을 간다더니 여긴 웬 일이야?"

"하하, 잠시 볼 일이 있어서 들렸어요. 저, 그런데 만지씨는 오늘도 여전히 정상에 계신가요?"

"응? 만지씨는 늘 있던 곳에 계시지, 볼 일이라는게 만지씨야?"

"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그래~ 다음에 또 봐!"

아론은 만지의 행방을 확인한 뒤, 파티원들에게 돌아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그러면 저 절벽을 기어올라가야 한다고?"

"중간중간 로프가 있기는한데, 어쨌든 절벽을 올라야 한다는건 똑같긴 하지."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바위절벽을 바라보았다. 그 끝은 얼마나 높은지 고개를 한참을 들어올려야 겨우 보일 듯 했다. 파티원들이 머뭇거리자, 아리는 앞장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파티원들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아리의 뒤를 따라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쯤 도달했을 때, 론도가 불평을 터뜨렸다.

“젠장! 그 사람 변태 아냐? 어떻게 이런 데서 지낸단 거야!”

론도가 투덜대며 밧줄을 잡고 오르자, 옆에서 지쳐 있던 테스가 신음하듯 말했다.

“쟨 저런 상황에도 쉴 새 없이 떠드네… 저게 재능이면 재능이야, 진짜.”

“슈, 슈가… 나도 좀 태워 줘…”
올리비아가 헉헉거리며 슈가 쪽을 보았다. 슈가는 옆에서 ‘마나 웨이브’를 써가며 약간씩 위로 상승 중이었다.
슈가는 미안한 표정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봤고, 결국 아론이 대신 대답했다.

“저걸 계속 유지하는 것도 힘들 걸. 곧 정상이라니까, 조금만 더 참아 봐.” 

그렇게 파티원들을 위로하는 아론이었지만, 그도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른 파티원들과 다르게 아리는 묵묵히 정상을 향해 오르고있었다.
그녀가 이전에 겪어온 수련 덕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목표에 대한 의지가 그녀를 이끌고 있었을 것이다. 아론은 그런 그녀를 보며 묵묵히 따라 올랐다.

드디어 파티원 전원이 정상에 올라서자, 모두 바닥에 주저앉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얘들아, 우리… 내려갈 때 어쩌지?”
올리비아가 지친 목소리로 묻자,

“몰라… 그냥 여기서 살아야 하려나…”
테스도 죽을 상을 하고 대답했다.

“설마 만지란 사람도 여기에 갇힌 거 아니야?”
론도가 농담조로 내뱉자, 모두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뒤에서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밌는 소리군, 그런데 너희들은 누구지?"

그 소리에 파티원들은 곧장 그들의 뒤를 바라보았고, 그는 일지와 비슷한 무사복장에 짚으로 된 삿갓을 쓰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아리는 그를 보고 차분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당신이 만지씨인가요?"

"그래, 그러면 너희는 누구지? 왜 나를 찾아온거냐."

"일지에게 들었습니다. 당신이 발록 봉인 임무의 생존자 중 하나라고 말이죠. 저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것이 있어서 왔어요."

그 날의 일에 대해 묻는 아리를 보고는, 만지는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말했다.

"그 날의 일에 대해서는 알려줄게 없다. 시간낭비 하지말고 그만 내려가."

만지는 냉정하게 대답했지만, 아리 또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20년전 그 날, 무슨 일이 있던거죠? 왜 발록의 제거에 실패했고, 당신들은 어째서 분열하게 된거죠?"

아리의 말에 만지가 순식간에 검을 뽑아 아리의 목에 들이댔다. 그리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아리에게 되물었다.

"어째서 그 일이 20년 전에 있었던 거라는걸 알고 있는거지? 그 일은 당사자들 이외에는 알고 있는 인물이 없다. 너는 정체가 뭐냐?"

"들었어요, 몬스터한테."

"몬스터라고?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거냐?"

만지는 아리의 대답을 전혀 믿지 못한 채, 여전히 칼끝을 아리에게 겨누고 있었다.
아리는 잠시 그의 반응을 살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3개월 전, 저주받은 신전 붕괴 사건"
그 말에 만지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아리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그 사건의 당사자가 저에요, 정확히는 저와 친구 한 명이죠."

"네가.. 그 사건의 당사자라고?"
아리의 대답을 들은 만지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아리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결국 뭘 듣고 싶은 거지?”

"말했잖아요. 그 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 왜 당신들은 그 날 발록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거죠? 그리고 일시적이라도 봉인에 성공했으면서도 왜 당신들은 분열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당신들이 실패했기에, 제 친구는 발록을 막기 위해 목숨을 받치게 되었어요. 그러니 저는 당신들에게서 그 날의 진실에 대해서 들어야만겠어요."

만지는 칼을 거두고 말없이 생각에 잠기었다. 이윽고, 그는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알려줄 수 있는게 없다."
그 대답에 아리가 분노하여 그에게 따지려들자, 그는 아리에게 손을 뻗으며 그녀를 제지한 뒤 말을 이었다.

"이건 나 뿐만이 아닌, 진과 설희가 관련된 이야기다. 그러니 나 혼자만의 결정으로 진실을 풀 순 없다."

"하지만 너 또한 우리의 업보, 그러니 한 가지 만은 알려주마."
잠시 뜸을 들이던 만지는 낮은 목소리로 이어갔다.

"그 날 우리가 실패한 이유는 우리의 나약함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선대 다크로드와 스승님이 돌아가시게 되었고, 진은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짊어지기로 결심했지."

그의 얼굴에는 씻지 못한 죄책감이 어른거렸다. 아리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그에게서 더 많은 말을 듣고 싶었지만, 만지는 더이상 입을 열지 않는 듯 보였다.

결국 다시 떠나려는 그들에게, 만지가 마지막 말을 이었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업보이자, 나름대로의 책임을 지는 방식이었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땐 우리가 너무 어렸기에 옳은 길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애달픈 표정으로 아리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너라면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줄 수 있겠느냐? 우리는 그 날 어떤 선택을 해야 했던건지.. 너라면 그 정답을 알려줄 수 있겠느냐?"

슬픈 기색이 어린 그의 물음에, 아리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몰라요, 저도 어떤 결정이 옳았던 것인지..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있으니까..."
아리는 그 날 저주받은 신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잠시 눈을 감고 그 날을 떠올리던 그녀는 이내 천천히 눈을 뜨고 다시 만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어요, 적어도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제 눈으로 직접 볼거에요."
그녀의 대답에 만지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냐.. 멈추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인가.. 그래, 그렇다면 나아가야겠지."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의 일기를 찾아봐라, 그 녀석이라면 그 날의 일에 대해 기록을 남겨뒀을테니."

만지의 말을 들은 아리는 고개를 끄덕인 뒤, 파티원들과 함께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을 바라보던 만지는 이내 커닝시티가 있는 방향을 조용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진, 그 날 우리의 선택은 그저 회피였을 뿐, 책임을 지는게 아니였을지도 모르겠군."

"저 아이라면,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줄 수 있을까.."

그는 여전히 슬픈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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