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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메이플[스토리] 28

Pyapat
조회: 992
2025-01-29 23:46:27
같은 시각, 아리는 키니와 함께 마을 광장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이야. 자주 마주치는군."

낮게 깔린 목소리에 아리는 눈을 뜨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는 매드가 휠체어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뒤에는 A가 조용히 서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회장님, 그리고 A 씨."
아리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매드와 A도 마찬가지로 인사를 건넸다.
아리의 무릎 위에서 놀고 있던 키니도 폴짝 뛰어내려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아저씨도요."

"반가워요, 키니 양."

"그래, 오랜만이구나. 약은 잘 챙겨 먹고 있니?"
매드가 키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네! 매일 챙겨 먹고 있어요!"

"그래, 꾸준히 먹으면 곧 나을 수 있을게다."

두 사람의 다정한 대화를 지켜보던 아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엔 무슨 일이세요?"

"광장에야 당연히 산책하러 온 거지."
매드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자, 아리가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아, 그렇군요. 그럼 A 씨도 산책을…?"
아리는 자연스럽게 A를 바라보며 물었고, 매드가 그를 대신해 대답했다.

"평소에는 내 손녀와 함께 왔지만, 오늘은 그 애가 보이지 않더군. 그래서 A 군을 데리고 나왔지. 말이 나와서 그런데, 혹시 내 손녀가 어디 있는지 아는가?"

"그,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하…"

아리는 머쓱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매드는 그런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매드는 A를 돌아보며 말했다.
"A 군, 잠깐 키니를 돌봐줄 수 있겠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네."

매드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당황한 것은 아리 쪽이었다. 그 반면에, A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키니의 손을 잡고 광장 근처의 노점상으로 걸어갔고, 매드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A와 키니가 충분히 멀어지자, 매드는 조용히 아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도대체 언제까지 조사를 계속할 생각인가?"

"네? 무슨 조사를…?"

예상치 못한 질문에 아리가 당황하자, 매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비록 내가 이렇게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지만, 이 마을 안에는 내 눈과 귀가 수도 없이 많지."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더욱 진중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그 조사를 이어갈 셈인가?"

매드는 매서운 눈빛으로 아리를 바라보며 대답을 요구했고, 매드를 바라보던 아리는 이내, 더 이상의 거짓말은 의미 없는 일이라 판단했다.

결국 그녀는 진실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하고, 똑바로 매드의 시선을 마주보며 답했다.

"당연히, 진실을 알아낼 때까지요."

매드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도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반응을 살피던 아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곧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제가 여쭙겠습니다. 두 분이 누명을 쓰면서까지 사건을 은폐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 광장 아래에는 도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나요?"

매드는 그 질문을 듣고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판도라의 상자지. 그것을 열어봤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혼돈과 절망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자네라면 한 가정과 한 마을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나?"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 깃든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우리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선택을 했을 뿐이네. 물론, 그 선택이 완벽했다고는 하지 않겠지. 하지만…"

매드는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선택을 해야 한다 해도… 나는 망설임 없이 같은 결정을 내릴 걸세."

"그 선택으로 인해 한 아이가 평생 아버지를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요?"

아리는 저 멀리 A와 함께 솜사탕을 나눠 먹고 있는 키니를 바라보았다.
매드 또한 조용히 고개를 돌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숙이던 매드는,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아리를 마주보며 말했다.

"물론이네, 이 일로 원망을 받는다면 그건 모두 내 업보, 피하거나 외면할 생각 따윈 없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흔들림 따윈 없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숨기려 하시는거죠?"

아리의 물음에 매드는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의 동료들은 이미 금지구역에 들어갔겠지. 어차피 숨길 수 없다면… 모든 진실을 말해 주지."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더니, 마침내 조용하고도 무겁게 말을 이어갔다.

"어린 천재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지. 바로 자신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

"드랭 녀석도 그랬어. 시간만 있으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지."

매드는 깊은 주름이 패인 손을 조용히 맞잡으며 허공을 응시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말리지 못했네. 그의 곁에서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성에는 깊은 후회가 배어 있었다. 

"그가 왜 그렇게까지 연구에 집착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매드는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렸어야 했어… 그 자가 선을 넘기 전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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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게나, 유토. 바쁠 텐데 불러서 미안하군."

드랭은 연구실에 찾아온 손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신경 쓰지 말게. 나도 마침 연구가 막혀서 기분 전환 겸 온 거니까."

유토는 가볍게 웃으며 드랭과 악수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섰다.

"어때? 연구는 좀 진전이 있나?"

그는 연구실을 가득 채운 기계 장치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드랭도 조용히 연구물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본 유토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드랭은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네. 이 정도 난관은 예상했던 것이니.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는 게 문제일세."

그의 말에 유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법은 있나? 이대로라면 연구를 완성하기도 전에 자네가 먼저 쓰러질 것이 분명하네."

"그래서 말인데… 실은 부탁이 하나 있네."

드랭의 말에 유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부탁이라니… 나한테 말인가?"

드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카슨 선생님의 연쇄 융합술식… 자네라면 알아올 수 있겠지?"

"그게 무슨…! 자네, 설마!"

"바로 그 설마네. 카슨 선생님의 연쇄 융합술이 필요하네."

유토는 경악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드랭을 향해 소리쳤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술식인지 자네도 알지 않는가! 도대체 그걸로 뭘 하려는 거지?"

"내 몸에 그 술식을 집어넣을 걸세."

"뭐라고…?"

"기계 장치를 신체에 연결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육체의 붕괴지. 그걸 방지하기 위해 연쇄 융합을 이용해 내 몸을 계속해서 복구하는 연금술을 시행할 거네."

"그렇게 해서 몸의 붕괴를 막는다 쳐도, 신체가 괴사하는 건 어떻게 할 텐가? 연쇄 융합의 코어 에너지를 자네의 그 비루한 육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준비한 게 있네."

드랭은 연구실 책상 위에서 천으로 덮여 있던 플라스크를 가져왔다.
유토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자, 드랭은 광기가 서린 미소를 지으며 천을 걷어냈다.

천 아래 드러난 내용물을 확인한 유토는 경악하며 물었다.

"도대체… 이 끔찍한 건 뭐지?"

"암세포를 연금술로 거대하게 증식시킨 것이네. 이 정도 크기의 암세포라면 연쇄 융합의 코어 에너지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걸세."

"암세포를 코어 에너지로? 생체 에너지를 만들겠다는 건가?"

"정확하네."

"자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정말 모르는 건가? 생체 에너지가 금지된 이유를 잊었나? 결국 살아 있는 완전한 생명체가 아니면 지속적인 에너지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 아닌가!"

"하물며 암세포도 결국은 숙주에 기생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야! 저것이 아무리 거대하다 한들, 숙주 없이 독립적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리 없네!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할 텐데… 자네, 정말 이걸 사용할 생각인가?"

유토의 격앙된 외침에도, 드랭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죽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죽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저 암세포를 내 몸에 심을 거네."

드랭의 말이 끝나자, 유토는 경악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아니, 안 돼. 지금 자네는 연구 때문에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하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차분히 생각해 보게나."

"난 충분히 냉정하네."

"지금 그 소리를 듣고도 자네가 냉정하다고 말할 수 있나?"

유토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만약 정말로 자네 말대로 그 방식으로 실험이 성공한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몸이 되어 필리아 앞에 설 수 있겠나?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이렇게 되었다고, 이게 너와 함께할 미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냔 말일세!"

유토는 격앙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드랭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끝이 떨렸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러나 드랭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유토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뭐…?"

순간, 힘없이 멱살을 잡힌 채 있던 드랭의 눈이 흔들렸고, 이내 그 눈동자에는 분노가 차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억눌렸던 감정이 절규처럼 터져 나왔다.

"지난 몇십 년 동안… 난 필리아와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이 연구를 진행해왔네!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고, 지금은 조금 쓰라리겠지만 분명 함께 웃을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긴 세월 동안, 필리아를 혼자 내버려 둔 채 이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만 해 왔네. 그런데 이제 와서 포기한다면…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난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세월을 허비해 버렸네. 이런 내가 무슨 염치로 포기할 수 있겠나! 설령 괴물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난 필리아와 함께하고 싶을 뿐이네!"

드랭의 절규가 연구실을 가득 채웠다. 그 광기에 찬 외침을 듣던 유토는, 잡고 있던 그의 멱살을 천천히 놓으며 힘없이 물었다.

"그게 정녕… 필리아가 바라는 것인가?"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드랭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차분한 듯 대답했다.

"그걸 생각하기엔 너무 늦었네. 나는 더 늦기 전에 이 연구를 끝내고 그녀에게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유토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참을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숙인 유토는, 여전히 확신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드랭을 보며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결국 자네를 말릴 수는 없겠군."

그는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두루마리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천천히 펼쳐 본 유토는, 이내 마지못해 드랭에게 내밀었다.

"스승님의 연쇄 융합 술식이네. 오래전에 스승님께 부탁해서 받은 것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이야..."

그의 목소리는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유토의 표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드랭은 떨리는 손으로 두루마리를 받아 들었다.

"이게 바로...!"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다.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구원의 문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런 드랭을 바라보며, 유토는 마침내 체념한 듯 덧붙였다.

"이걸 주는 대신, 단 한 가지만 약속해 주게. 1주일만, 단 1주일만 그 술식을 사용하지 말아주게. 그 1주일 동안, 정말로 이 방법밖에 없는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주게나."

드랭은 두루마리를 손에 쥔 채 유토를 바라보았다. 유토의 눈빛은 간절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처럼, 필사적으로 드랭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드랭은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1주일만이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의 흔들림 없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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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어떻게 된 건가요?"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론도가 파웬을 돌아보며 물었다. 파웬은 씁쓸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결과야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그의 말에 일행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확인하고 난 뒤, 그 결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파웬은 다시금 흐릿한 눈빛으로 장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리석었지… 누구보다도 아내를 사랑했으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아내를 전혀 바라보지 못했으니..."

그가 말을 마치자, 눈앞의 시점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더니, 곧 새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또 다시 펼쳐진 연구실에서, 드랭은 유토에게 받은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연금술의 기호와 복잡한 수식들이 빼곡히 적힌 두루마리를 분석하며, 그는 열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집착에 가까운 빛을 띄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일행의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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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랭은 자신의 팔에 암세포를 이식하기 시작했다. 이식이 끝나자마자 그는 곧바로 기계팔을 몸에 결합하기 시작했다. 연구실 안의 수술 기계들이 분주하게 작동하며, 쇠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계들이 작동할 때마다, 그는 끔찍한 고통을 참아가며 이를 악물었다.

수술이 끝나고, 드랭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자신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돼, 됐다! 드디어 성공했어!"

그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환희가 가득 차 있었다.

비록 팔꿈치 아래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그의 팔은 기계장치와 완벽하게 융합되어 있었다. 그는 손끝을 움직여 보며, 자신의 연구 성과를 실감했다.

"이제 장기와 뇌만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다면… 드디어 필리아에게 돌아갈 수 있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수술대에서 내려와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 순간—

"커헉! 크윽… 쿨럭!"

갑작스런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몸을 웅크리며 연달아 기침을 했고, 이내 입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나왔다.

"어, 어째서…? 분명 회복 술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정상적으로 움직이던 기계팔의 결합 부위가 검게 변하며 썩어가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어…"

순식간에 절망과 분노가 그를 집어삼켰다.

드랭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폭발시키며 연구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실험 도구들이 담긴 플라스크를 바닥에 내던지고, 각종 연금술 술식이 적힌 두루마리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연구용 기계장치들은 그의 손길에 의해 하나둘 쓰러져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이 망할 기계가…! 내 연구가…!"

그는 자신의 왼팔에 달린 기계장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그대로 연구실 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쾅!

쾅!

금속과 벽이 부딪히는 둔탁한 충격음이 연구실에 울려 퍼졌다. 그의 주먹이 내리칠 때마다 벽에는 거미줄처럼 균열이 번졌고, 일부는 휘어져 안쪽 구조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드랭은 깨진 벽 너머를 응시했다.

"이건…?"

그는 부서진 틈새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희미하지만 분명 벽 반대편에서 어떤 불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신호를 보내듯, 불빛은 조용히 깜빡였다.

순간, 조금 전까지의 고통도, 연구 실패의 분노도 잊은 채, 그는 마치 홀린 듯이 손을 뻗어 벽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곧 그가 통과할 수 있을 만큼 큰 구멍이 생겼고, 그 너머에는 길게 이어진 동굴이 펼쳐졌다.

"이게 대체… 마가티아 지하에 이런 게 있었단 말인가?"

믿기 어려운 광경에 그는 순간 말을 잃었다.  간신히 허리를 펼 높이의 동굴의 벽면에는 기묘하게도 횃불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듯, 일부는 이미 꺼진 채 잿더미로 남아 있었지만, 아직도 타오르는 불꽃이 있었다.

누군가 이곳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드랭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동굴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는 벽에 새겨진 기묘한 문양과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실험 도구들을 스쳐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공간을 마주했다.

그곳은 단순한 동굴이 아니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넓은 실험실. 사방에는 연금술에 쓰이는 각종 재료들이 쌓여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마치 의식을 위한 듯한 거대한 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제단 위에 놓인 책 한 권.

낡고 빛바랜 가죽 표지. 그 위에는 오래된 금박 글씨로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드랭은 망설임 없이 제단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책을 펼쳤다.

"말도 안 돼… 이건…!"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책장을 넘겼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행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파웬을 돌아보았다.

"대체 저 책에 뭐가 적혀 있는 거죠?"

그들의 질문에 파웬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검은 마법사의 연구일지다."

"네? 검은 마법사라고요?!"

일행들은 경악하며 파웬을 바라보았다.

파웬은 차분히 숨을 고르고 나직이 말을 이었다.

"마가티아의 연금술은 검은 마법사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마가티아가 처음 생길때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후에 그의 연구 자료를 입수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마가티아의 연금술은 검은 마법사의 연금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파웬의 말을 들은 일행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만약 이 사실이 바깥으로 알려진다면, 메이플 월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게 분명했다. 일행들은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애써 외면하며 눈 앞의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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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마법사의 연금술이라니… 게다가 이건… 내 연금술, 아니, 마가티아의 연금술과 똑같잖아…?"

드랭은 손끝을 떨며 눈앞의 책을 응시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의 가슴은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바깥에 알려야 하는가? 숨겨야 하는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얽혀 혼란을 일으켰지만, 이내 그의 사고는 한 방향으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검은 마법사의 연금술이라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메이플 월드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그 대마법사. 전설로 남은 존재.

그가 연구했던 연금술이라면, 자신이 실패한 연구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희망이 머릿속에서 끓어올랐다. 헛된 망상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드랭은 그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눈앞의 책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결론만이 자리 잡았다.

"이거라면… 이거라면 분명…!"

그는 미친 듯이 웃으며 연구실로 돌아왔다. 문을 걸어 잠근 후, 어질러진 책상 위에 책을 펼쳤다. 책의 페이지마다 빼곡히 적혀 있는 검은 마법사의 연금술.

그 광기에 찬 눈빛이 페이지를 따라 흔들렸다.

그 순간, 일행들이 지켜보던 장면은 갑자기 끊겼다.

어둠이 화면을 집어삼키듯, 모든 것이 사라졌다.

Lv42 Pyap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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