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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단편 팬픽] 거미줄

아이콘 Rasse
댓글: 4 개
조회: 3154
추천: 20
2018-01-28 07:41:27





오버워치 단편 팬픽

거미줄

 


 

 

 

어리석은 제라르, 너 같은 여잘 사랑하다니.”

넌 그 이를 몰라.”

 

 

 

 

잿빛 하늘에서 함박눈이 뭉실뭉실 쏟아진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어린 예수의 탄생일을 축하하듯 함빡 흩뿌리는 눈송이가 행인들의 발길을 독려한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활기가 넘쳐흘렀지만, 한 발짝만 물러나면 전혀 다른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행인이 오가는 대로의 뒤편, 동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얼마간 올라오면 눈에 보이는 곳. 이곳도 번화가 못지않게 많은 이들이 모여 있기는 하지만 산 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무수한 비석과 그 아래 조용히 잠든 망자들 사이로 아멜리 라크루아가 걷고 있었다.

평소의 타이즈 슈트 대신 긴 코트와 하이힐로 차려입은 그녀는 세간에선 위도우메이커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라크루아라는 건 실은 이미 잊힌 이름에 불과하다. 어차피 그녀와 같은 이름을 공유하던 이도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멜리의 배우자였던 그 남자는 그녀 자신의 손에 의해 이 묘지의 주민이 되어 잠들었으니까. 눈밭 위를 걷던 아멜리는 이내 어느 무덤 앞에 멈춰 서서, 허리를 굽혀 손 안의 물건을 내려놓았다.

 

[오버워치 요원 제라르 라크루아, 여기 잠들다.]

 

차가운 비석 앞에 타는 듯 붉은 장미 한 송이가 내려앉았다.

 

 

 

 

어머, 이게 웬 장미야?”

 

퇴근한 남편이 건넨 장미꽃을 받아 든 아멜리의 입꼬리가 슬끗 올라갔다. 평소 이러는 일 없던 양반이 무슨 바람인지는 몰라도 기분은 좋다. 하지만 고작 한 송이 꽃에 너무 설레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기에 그녀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아니 뭐, 곧 성탄절이니까 말이야. 집 안이 조금이나마 더 화사해 보이지 않을까 해서.”

 

씩 멋쩍은 웃음을 짓는 제라르에게 아멜리는 짐짓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 이런 꽃 한 송이보다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와 주는 편이 더 따사로운 집이 되지 않겠어? 당신 말처럼 내일은 이브이기도 하잖아.”

 

그저 이브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이었건만. 이렇게밖에 전하지 못하는 자신이 야속할 따름이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최근 탈론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말이야. 내일은 철야임무만은 없기를 기도해야지. 미안해, 자기.”

 

무장테러단체 탈론을 상대하는 일로 제라르가 요사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건 그녀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신의 퉁명스런 말도 오해 없이 알아들어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며, 아멜리는 내일은 부디 그에게 별 일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겉으로는 알았어.”라며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생각보다 빨리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저녁식사 전까진 들어갈게. 사랑해.]

 

짤막한 한 줄의 메시지를 세 번째 다시 읽은 아멜리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평소 남편에게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미소다. 아니, 절대로는 아니다. 결혼할 때 한 번, 1주년 기념일에 한 번. 딱 두 번은 보여준 적 있으니 곧잘 보여주지 않는 미소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토록 귀한 미소를 혼자뿐인 집 안에선 이렇게 한껏 짓는다는 걸 그이는 알까?

 

분명 모르겠지. 헤실대는 얼굴을 너무 자주 보여주면 가벼워 보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도도함은 여자의 미덕. 그녀의 신조 중 하나다.

 

하지만 오늘은 모처럼 일찍 온다니까 큰 맘 먹고 솜씨 좀 발휘해 볼까?’

 

에피타이저는 에스까르고, 메인디쉬는 닭요리, 디저트로는 크림블레를 준비해야지. , 그이는 닭보다는 훈제연어를 좋아했던가? 저녁 준비가 끝나면 서비스로 발코니에서 당신을 기다리며같은 연출이라도 해 줄까. 아니지, 그건 너무 집착이 강해 보여. 역시 디너만 최고의 메뉴로 준비하고 기다리는 편이

기분 좋은 계획으로 머릿속이 꽉 찬 탓에, 초인종이 세 번 울리고서야 아멜리는 간신히 누군가 찾아왔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일순 그이인가?’ 싶었지만 남편의 메시지를 받고서 몇 분도 흐르지 않았음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열녀 났어.

 

누구시죠?”

 

대답은 없다. 듣지 못했나 싶어 한 번 더 물었지만 때 아닌 방문객은 반복해서 초인종을 누를 뿐이었다. 성탄절 모금을 청하는 자선단체일까? 분명 낮에 거절했는데 참 끈질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약간 짜증스럽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자선단체는 아니다. 적어도 검정색 슈트와 기관소총으로 무장한 채 들이닥치는 자선단체는 그녀로선 알지 못했다.

 

 

 

 

[제라르, 그냥 입원시켜서 당분간 용태를 지켜보는 편이 낫지 않겠어? 당신과 그녀 모두를 위해서 말이야.]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지금 아멜리에게 필요한 건 의사가 아니라 접니다. 끊겠습니다.”

 

[잠깐만 제라르, 고집부리지 마. 지난번 검진에서 미확인 약물반응이 나왔어. 이건 상관이 아니라 친구로서 말하는]

 

단호한 태도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제라르는 한숨을 쉬며 소파에 몸을 던졌다. 아나 아마리는 솜씨 좋은 저격수이자 존경하는 상관이지만 너무 걱정이 심한 것이 탈이다. 탈론의 아지트를 급습해 납치당한 아멜리를 되찾은 이후 줄곧, 아나는 그녀를 입원시켜 정밀검사와 정신과 검진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라르는 그 조언을 거절하고 아내를 집으로 데려왔다. 건강이 우려돼 간단한 검진 정도는 받게 하고 있지만 그 외의 시간은 줄곧 곁에 있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을 위해 언제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휴가계도 제출했다.

 

약물이라...”

 

사실 아나의 우려도 일리는 있었다. 제라르 자신도 아멜리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환한 그녀는 외상은 없었지만 줄곧 퀭한 눈에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 멍한 상태였다. 납치되기 전까지 보았던 기가 센 아내의 모습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탈론이 그녀에게 무언가 수상한 약물을 투여한 것이 틀림없다. 혹은 정신적인 세뇌를 가했거나, 어쩌면 양 쪽 모두를 행했을 수도 있다. 탈론과의 전쟁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탈론이 어떤 조직인지 잘 알고 있는 제라르다. 하지만 정밀검사니 뭐니 하는 것을 위해 그녀를 또다시 혼자 둘 수는 없다. 판단 자체엔 망설임이 없었지만, 그것이 진정 아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선택인지 아니면 자기만족을 위한 위선인지 확신할 수 없었던 제라르는 또 한 번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안 돼, 그만! 제발도와줘, 제라르

 

잠들었던 아내가 눈을 뜬 모양이다. 혹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든지. 자신에겐 느긋하게 죄책감을 음미할 여유 따윈 없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제라르는 황망히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간 악몽에 시달리는 아내를 달래느라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해서일까. 침대 옆 의자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잠든 제라르는 통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한밤중에 눈을 뜬 아멜리는 목이 말라 남편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자 어쩔 수 없이 직접 부엌으로 향했다. 결혼하고 삼 년을 살아온 집이다. 제정신이 아니어도 부엌을 찾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왜 부엌에 왔더라?’

 

부엌은 찾았지만 정작 자신이 찾고 있던 물건을 떠올리지 못한 아멜리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다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열어봐야겠다. 그러다보면 찾던 물건도 발견하겠지. 그렇게 결정한 아멜리는 자신의 영특함을 칭찬하며 부엌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멜리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내 흡족한 얼굴로 돌아섰다. 부엌을 나서는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물컵이 아니었다. 팔뚝만한 식칼이 흉흉히 번뜩였다.

 

 

 

 

아직도 그 날의 감촉이 잊히질 않아. 그 이후론 라이플만 쓰게 됐다니까. 그런데 말이야, 자기. 아직도 알 수 없는 게 있어.”

 

아멜리는 무덤 속에 누워 있을 남편에게 물었다. 대답이 돌아올 리는 없겠지만, 정말로 궁금하다는 투였다.


당신의 심장을 찌른 그 순간튀어 오른 핏줄기가 거미줄처럼 번진 그 순간아직도 기억이 나. 그 때 난 잠시나마 제정신이 들었지. 아니, ‘제정신이라고 하긴 이상한가? 아무튼 당신의 아내였던 아멜리로 돌아왔어. 그리고 정말 무서웠어.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두려움에 떨며 고갤 들었지.”

 

그랬는데 말이야, 라며 아멜리는 말을 이었다. 입가엔 조소인지 고소인지 알 수 없는 쓰디쓴 무언가가 담겨 있다.

 

당신은 화를 내고 있지 않았어. 의아함에 가득 차 있거나 배신감에 사로잡힌 표정도 아니었지. 생기가 빠져나가는 당신 얼굴에 남아있던 감정은 그저미안함과 안도. 그 뿐이었어. 대체 왜 그런 거야?”

 

그 답은 영원히 알 수 없다. 궁금하긴 했지만, 그녀도 그다지 답을 바라고 던졌던 질문은 아니다.

이제 복귀할 시간이다. 미련 없이 돌아선 위도우메이커는 이번에도 얻지 못한 대답 대신 발자국만을 남기며 눈밭을 걸었다.

 

"Adieu, chérie."

 

그녀의 인사가 눈송이와 함께 떨어졌다. 거미줄처럼 아름다운 결정을 가진 눈송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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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11월쯤 올렸던 졸작인데 문득 마지막 부분이 다른 내용이 떠올라서 조금 손봤습니다.


부족한 작품성에 조금이나마 보완이 될지 단순한 사족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즐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비평과 질문은 언제든 환영이야!



Lv80 Rasse

퐁?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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