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재미나 그림설명/텍스트 설명을 분리하기 위해 약간의 반말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자료를 토대로 개인적인 의견이 들어간 부분은 "글쓴이 주"라고 표시했습니다.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의견이 들어갔기때문에 틀릴 수 있습니다.)
T-34의 간략한 역사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근방 베르흐냐야피시마 박물관에 전시중인 T-34 초기형
(Музей военной техники Боевая слава Урала УГМК)
역사적으로 2차세계대전 소련군의 기갑부대의 핵심이자, 그렇게 좋은 성능은 아니지만 생산성은 좋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어서 그야말로 물량전에서의 진가를 발휘한 전차입니다.
대량 생산된만큼 종류가 많은편에 속하는 전차이고 종전후 퇴역을 앞둔 이 전차를 다른 공산국가에 건네주기에 공산권 영향이 있었던 국가라면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전차지요.
현대에도 아프리카나 북한을 포함한 일부 공산권 국가에서도 아직 운용중이기도 합니다.
혹시나 해서 재차 말씀드리지만,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이 사용했으며 전쟁초반 빈약한 무장을 한 국군을 크게 압박한 전차기에 기본적인 역사는 인지하시고 상황에 주의하여 언급하십시요.
(글쓴이 주 : 가령 한국전쟁 참전용사분에게 생각하지않고 무작정 언급하신다던가...)
T-34는 다양한 파생형이 있고, 생산 공장마다 형태가 각기 달라 내용이 방대하므로
이 글에서는 반으로 잘라 T-34-85 전까지의 내용만 언급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자체 자막지원] 조국의 구세주 T-34전차
(이 영상만 보셔도 충분할 듯 생각됩니다.)
T-34의 등장계기
1936년 스페인 내전결과를 보고 받은 소련 전차 기술자들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파괴된 BT-5
소련은 전차를 대여한 스페인 내전에서 활약을 할 것이라 기대했던것과 달리 상당히 참담한 결과가 나옵니다. 다름아닌 기동성과 화력이 우세였던 BT-5가 생각보다 저조한 성과를 내고 쉽게 격파당했던거죠.
(글쓴이 주 : 물론 BT전차들은 겨울전쟁,할힌골 전쟁에서도 BT-5, BT-7의 저조한 방호력에 문제가 지적되었지만 이는 시대적으로 보기 힘든게. 겨울전쟁은 프로토 타입이 투입되었고, 할힌골 전쟁은 T-34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3개월 전이므로 약간 문제가 있죠. 후술하겠지만 프로토타입인 A-20이 1937년도에 등장했으므로 즉 이때는 개발중이라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주력전차였던 BT-7
물론 이때 소련군은 BT-5가 아닌 당시 최신형 BT-7라 차이는 있으나 스페인 내전에 같이 공여되었던 T-26보다는 장갑이 얇았는데, 막상 같이 공여되었던 T-26도 별반 다를바 없이 파괴되었습니다.
(글쓴이 주 : 기동력과 화력이 뛰어난데 무엇이 문제였냐 하면...
기동사격의 명중률이 매우 좋지 못함 -> 정지사격 -> 대전차포에 의해 파괴
대전차포 대항 기동전 -> 기동력으로 초근접전 유도 -> 정지사격중인 적 전차 포탄에 맞고 파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비르토프 장군의 증언에도 나와있습니다.
BT-5에 탑재된 가솔린 엔진의 신뢰성이 부족하다.
15~20mm 장갑은 독일제 37mm 대전차포에 무력하게 관통당했다.
주행장치의 신뢰성이 부족하여 45mm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무거운 전차가 필요하다.
이에 장갑이 강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개발을 시작합니다.
(글쓴이 주2 : 물론 이 BT 전차들도 장갑을 포함한 각종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지만 새로 나온 전차들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부터 밀려나 더이상 생산되지 못합니다.)
T-34의 등장, 그리고 활약
GABTU(GABTU BTU: 노농 적군 기계화총국)에서 BT전차의 장갑을 증강시키라는 이야기를 했으며 1937년도 11월경, BT시리즈를 생산중이였던 하르코프 코민테른 열차공착장 소속인 미하일 코쉬킨이 A-20 목업 모델을 제안합니다.
T-34 개발에 핵심적인 인물이였던 미하일 코시킨
(Mikhail Koshkin 1898~1940)
(글쓴이 주 : 미하일 코시킨은 사후 T-34를 개발하여 소련을 구한 사회주의의 영웅 훈장을 받습니다.)
딱 한대면 생산된걸로 알려진 A-20
이 A-20은 BT전차들의 기동성을 유지하면서도 장갑이 증강되고 높은 생산성을 가진 형태였다
(글쓴이 주 : 이후 추가 개량되면서 엔진이라던가 당시 크리스티 현가장치의 형태 변형이라던지 특징인 무한궤도를 탈착후 주행이 가능한 기능 삭제라던지 등등, 상당히 많습니다.)
미하일 코쉬킨은 A-20모델을 제안하면서 좀더 강한 화력을 지닌 전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스페인 내전 결과의 내용을 들었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1938년 8월 초 A-20전차의 추가적인 개량인 A-30 프로젝트를 승인, 이 A-30프로젝트는 계속 된 개량으로 1938년 8월이 끝날무렵 A-32라는 전차 모델을 새로 제안합니다.
(글쓴이 주 2 : 프로젝트 세부 명령은 주포 화력 증가, 장갑을 30mm까지 증강이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A-20의 개량형인 A-32
A-20보다 덩치가 증가되어 승무원 편의성이 늘었고 주포는 76.2mm로 교체
이 두가지 설계안건에 대해 군사회의가 오갔는데 장성들은 대부분 T-26의 3대와 맞먹는 가격인 A-32는 비효율적이라 A-20이 더 낫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스탈린은 이 A-32에 흥미가 있었는지 A-20,A-32 둘다 시제차량을 동시에 제작해보라고 지시합니다.
소련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
(Iosif Vissarionovich Stalin 1978~1953)
KV-1도 그렇고 전차에 대해서 상당히 선견지명이 있었던 인물
1939년 7월 완성된 두 차량을 9월 초까지 테스트한 결과, 전반적인 BT 전차들에 비해 괜찮았고 주행테스트에서 둘다 65Km/h의 최고속도를 가졌지만 아직 어느 차량을 생산해야 할지는 장성급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글쓴이 주 : 하긴 가격은 3배나 비싸고 주포 화력외에는 그다지 강점이 없었던 A-32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질만 합니다.)
테스트 후 코쉬킨은 A-32에 장갑판을 추가하고 현가장치 폭을 늘리고 관측창을 개선하는등 추가적인 개조를 하게되는데. 1939년 A-34라는 이름을 새로 부여 받습니다.
T-34의 프로토 타입격인 A-34
이후 큰 개조는 없이 T-34라는 제식명칭을 받게 된다
이후 A-34는 1940년 2월경에 테스트용 2기가 제작되어 주행을 포함한 각종 테스트를 받고 문제점을 개수하고 난뒤 이후 T-34라는 정식명칭을 부여받고 1940년 6월경 양산되기 시작합니다.
좌측 순서대로 BT-7M, A-20,T-34 1940년 형, T-34 1941년 형
안타깝게도 미하일 코시킨은 T-34가 대량생산되기 전인 1940년초 과로와 폐렴으로 사망하게 되고, 이후 같이 개발했던 알렉산드로비치 모조로프가 대신 이어받게 됩니다.
T-34의 시련
T-34는 생산단계 전부터 장성들의 반대가 있었는데 특히 그리고리 쿨리크 장군이 있습니다.
스탈린과 같이 오래 지낸 측근중 한명으로 상당히 구시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기계화와 현대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행동을 요약해보자면
1. T-34가 채용되는걸 거의 악의적인 수준으로 반대(디스,무리한 수정조건,강제 생산중단)
-> 독소전 초기 전차전에서 밀림, 전차 수석 개발자 미하일 코쉬킨 과로사
2. 관료주의적 행동으로 군수공장 생산 차칠
-> 총탄, 포탄이 부족하여 후퇴해야하될 상황이 잦아짐
3. 기관단총 제식화를 막음 (이전 폴란드전에서 기관단총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 독일군 기관단총에 막대한 피해를 입음
4. 지뢰를 약자들이나 사용하는 방법이라 반대함
-> 독일군이 소련군 진영을 마음껏 휘젓고 다님
5. 불리해도 후퇴는 안된다고 주장
-> 후퇴해서 대형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못하니 각개격파당함
이외에도 아부에 가까울 정도로 스탈린 추종, 군사지식 부족, 쓸때없는 비방이나 엄포, 반 협박, 말 더듬는 버릇, 적국의 각종 무기에 대해 과소평가, 군사적 수구파, 관료주의등...
1940년 초기형 T-34는 원래 600대가 생산될 예정이였으나 쿨리크의 방해로 117대만 생산되다가 중단, 이후 1941년 독소전쟁이 발발할때 도색할 시간이 없을정도로 급박하게 생산되어 투입되기 시작합니다.
(글쓴이 주 : 이 인물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전반적으로 자세하지 않고, 인물열전마냥 비아냥 댄 글도 있으며, 그렇더라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40년 독일의 3호전차를 노획하여 전반적인 성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고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다던지, T-34에 107mm포를 달지 않는이상 의미가 없다던지, A-43이 개발될때까지도 끊임없이 지적했으며, 해당 시험장에서 모스크바까지 1000km를 주행해라 했던지, T-34의 주포생산을 당시 결함품을 많이 냈지만 자신이 후원하고있는 레닌그라드것을 사용했다던지. 인물열전이 전부 재각각이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쿨리크 장군은 독소전쟁에서 제 54군 레닌그라드 수비를 맡았으나 전멸되기 전까지의 아슬한 상황까지 도달했으나 다행이도 총 참모장이였던 게오르기 주코프가 직접 이끄는 지원군이 도착해서 수비진형을 안정화 시켰고 이후 군법회의에서 스탈린의 친분이 있어 사형을 면하고 소장으로 강등되었고.
마지막은 1950년경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숙청되었습니다.
(글쓴이 주 : 정확히는 1946년 청치가들이 군인의 공적을 가로채고 있다고 불평한것이 도청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1950년 재판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이후 1940년경 흐루쇼프 집권이후 복권되었죠.)
독소전쟁에서 첫 모습을 보인 T-34는 초반 대전차포를 튕겨내는등 독일군에게 충격을 안겨줬으나 생산이나 경험이 부족하여 성능에 비해 큰 활약을 하진 못합니다.
1941년 각 전선에서 대파된 T-34
허나 이는 시간이 지남으로써 보완되기 시작하고 1943년 경에는 주포가 한층 강화된 T-34-85로 대체되면서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한층 강화된 주포를 지닌 T-34-85
기타
T-34의 구분은 년도별과 주포 구경에 따른 분류법이 혼용됩니다.
주포 구경별 (이 방법은 독일식 분류법이라 합니다.)
T-34-57
T-34-76
T-34-85
년도식은
1940
1941
1942
1943
(1944년 이후는 T-34-85로 대체됨)
생산 공장마다 차이도 있습니다.
KhPZ - 코민테른 기관차 공장
UTZ - 우랄 열차공장
UZTM - 우랄공장
STZ -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
ChTZ - 첼랴빈스크 트렉터 공장
NTZ - 니즈니 노브고로드 공장
(글쓴이 주 : 공장이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같은 규격이지만 공장마다 장갑두께라던지 포탑 접합이라던지에 차이가 있어 약간씩 다르고 다른공장끼리 부품공유가 안될 정도였다 합니다.)
북한군의 T-34
6월 28일 새벽 1시 수유동 삼거리 인민군 전초부대 진입 영상에 찍힌 T-34-76
북한으로 향하는 소련군 전차부대 소속 T-34-76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은 T-34-85외에도 T-34-76이 운용되는 장면도 있습니다. 물론 화염방사형가 공여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사진을 보시면 기관총구가 화염방사가 아닌 기관총이 탑제된것으로 보아 아니거나, 다시 개수된걸로 추정됩니다.
중국 보도 채널에서 북한관련 영상에서 나온 T-34-76
2012년도 당시 북한군 선전영상 사진
현재에도 T-34-76을 퇴역시키지 않고 운용/훈련용 으로 사용중 인것으로 추정될뿐 최근 자료는 없습니다. 그나마 추측할 뿐이죠. 위 사진은 1943년형이란 것과 T-54/55전차의 부품을 사용했다는 점만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