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하나 풀어 보겠습니다.
전사 직업전당 하늘보루에 설치된 용비어천가 '오딘의 전설' 에 따르면, 오딘은 헬리아의 의식을 통해 위대한 죽음의 영과 거래하여 죽음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오딘은 한쪽 눈을 죽음의 영의 눈과 교환해서 그 눈으로 어둠땅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애꾸가 되었고요.
문제는 이게 오딘 찬양 프로파간다에 가까워서 완전히 진실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특히 미심쩍은 것은 이 전설이 쓰여진 부분의 서두에
'누군가는 거대한 뱀 이실다르가 눈을 빼냈다고 하고 누군가는 헬리아가 훔쳐갔다고 한다. 하지만 수호자 자신이 진실을 말하니까 논쟁 그만!'
이라고 적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연대기랑 교차검증을 해 봤는데, 연대기에는 오딘이 어둠땅을 투시하는 에너지를 공부했다고만 할 뿐 눈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오딘의 전설은 헬리아가 첫 번째 발키르가 된 경위를 명백하게 주작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오딘이 일방적으로 헬리아를 발키르로 만들었지만, 전설에서는 헬리아가 논쟁 끝에 선제공격하고 이기려고 어둠땅까지 갔다오고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다가 오딘이 구해줘서 자신을 발키르로 만들어달라 했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근거는 위 눈얘기와 똑같이 오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게 옳다! 입니다.
따라서 킹리적 갓심을 통해 눈 얘기도 거짓말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딘은 왜 굳이 눈이 파먹힌 것에 대해 저런 얘기를 꾸며내야만 했는가?
저는 그 이유가 이실다르의 정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모론의 핵심은 이실다르가 사실 이샤라즈이고 오딘의 눈을 파먹은 장본인이라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샤라즈는 고대신들 중 가장 강했고, 전성기의 티탄벼림 군대가 자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결국 아만툴이 나서야 처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딘이 대수호자 라, 티르 등과 함께 티탄군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고 또 자존심이 무지 센 성격임을 감안하면 이런 패배는 오딘에게 상당한 굴욕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면으로 달려들다 이샤라즈한테 눈 하나 뽑혔다면 더 그랬겠지요.
오딘의 전설에 묘사된 이실다르는 우리가 아는 뱀 같은 이샤라즈를 어느 정도 연상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얼음처럼 푸른 뱀 이실다르가 대지의 검은 틈에서 기어올라와 브리쿨을 사냥했다. 이 끔찍한 짐승이 몸을 쭉 펴면 지평선 너머로 꼬리가 사라졌다. 흑요석 이빨로 강철 몸체를 부수고 열두 브리쿨을 한입에 삼킬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게 프레이야의 동물 친구였다고 하고 누군가는 어둠의 시대에 태어난 말할 수 없는 고대의 악몽이라고 한다.'
이실다르는 결국 브리쿨의 집중공격으로 강철비늘이 뜯겨지고 몸체에 칼도 박히고 눈도 뽑히고 송곳니 부러지고 수난을 당하는데, 원체 보통 녀석이 아니다 보니 완전히 처치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딘이 지평선 끝까지 늘어졌다는 이실다르의 꼬리까지 '여행해' 꼬리를 붙잡고 하늘로 날려서 대양에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이게 이실다르 얘기의 엔딩입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티탄벼림이 이샤라즈 공략하다 안 되니까 아만툴이 뜯어내 버린 얘기랑 좀 비슷해 보입니다. 기왕 헬리아도 주작한 거 옛날에 죽은 이샤라즈도 아무 딱까리 하나 비슷하게 윤색해서 오딘이 해결한 걸로 정신승리를 하는 거죠.
이샤라즈가 정말로 오딘의 눈을 삼킨 채 아만툴 손아귀에서 찢겨죽었다면, 잘은 모르지만 그 눈도 이샤라즈와 함께 어둠땅으로 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헬리아가 수행했다는 어둠땅 관련 의식은 단순히 그 눈의 시야를 다시 오딘에게 연결한 것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거기 떨어진 눈을 강대한 죽음의 영이 손에 넣은 건 사실이라 뭔가 다른 얘기가 오갔을 수도 있고요.
그럼 일단 음모론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딘의 눈 거래는 사실 원전 북유럽 신화에서도 나오고, 이실다르도 엄연한 실체가 있을 수 있는 녀석이기 때문에 그렇게 신빙성있는 썰은 아니고 이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어 적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