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와우 인게임에서의 지배적인 서사는
세상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메디브나 노즈도르무, 군단의 엘리산드라를 포함해 많은 인물과 설정들을 통해
예정된 미래를 피할 수 없음을 떠들어댔죠.
빛은 공허로, 생명은 죽음으로 전환되는 것이 물리 우주의 정해진 흐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에 속해있는 자들이 뭘 하든, 어차피 다 정해진대로 간다 이말입니다.
이런걸 운명론이나 결정론적 우주라고 말하죠.
쉽게말하면 어떤 존재가 태어나 죽어서까지, 와우에서는 죽음 이후까지,
어떤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고, 이런 것들이 다 이미 창조주에 의해 결정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소설, 만화, 연극 등에서 작가가 바로 그 창조주죠. 독자/관중은 그걸 감상하는거구요.
와우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바로 관중이고, 이 관중들만이 창조주와 함께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창조주가 그렇게 만들어놓은거죠.
미래는 정해져있지만, 플레이어 캐릭터(PC)는 그것을 바꿀 수 있다. 는 방식으로요.
지금까지의 시나리오에서 실바나스는 3번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하이엘프 시절까지 포함하면 4번이지만, 이 경우는 영혼이 어둠땅으로 가지 않고 강령술에 의해
언데드가 된 것이니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실바나스는 3번의 죽음과 부활 - 왕복 3번을 통해 생명과 죽음의 영역을 총 6번이나 왔다갔다 했습니다.
워크래프트사가에 이렇게 죽었다 살아났다 반복한건 실바나스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죽여봤자 부활한다는 설정인 악마들도 육체가 파괴될 뿐, 영혼은 뒤틀린 황천으로 돌아갔다가
육체가 복구되면 다시 활동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죽음 - 어둠땅으로의 이동 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아무튼 실바나스는 이렇게 삻과 죽음의 영역을 반복해서 이동하다가 현타가 온 것일 수 있습니다.
씨x 죽으면 끝이어야지, 왜 계속됨 ㅡㅡ;;
내가 자살하건 남한테 뒤지건 말건 "실바나스"가 할 일이 이미 정해져 있는건가?
그래서 죽어도 안끝나는건가?
이런 느낌인거죠. 즉, 실바나스는 워크래프트라는 세상이 게임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은 캐릭터(NPC)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뭔 일이 나건, 누가 죽건 말건 그런거는 이제 다 아무 의미가 없는겁니다.
텔드랏실 불타서 나엘들 왕창 죽는게 뭔 상관이에요? 어차피 걔들이 이 세계에서 역할이 있었으면
창조주가 다시 되살릴건데? 텔드랏실도 꼭 필요한거면 당연히 복구되는거지~
호드, 니들이 부르짖는 명예? 야야 그딴거 필요없어. 호드 니들도 아무것도 아니야. 얼라도 마찬가지고 ㅋㅋ
어차피 우린 이 세계에서 창조주가 정해놓은대로 춤추는 인형만도 못한 신세거든.
내가 하는 일이 창조주가 그린 미래에 방해가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창조주가 나를 완전히 끝내줄거 아니냐.
개X같은 인생이었는데 빨리 좀 끝내달라고요 ㅜㅜ 어? 이래도 안끝내? 이래도?
자신의 치열했던 삶의 여정이 누군가의 구경거리, 한낱 유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요?
눈물나게 슬프고 분하고 허망하고 원통하지 않을까요?
트루먼 쇼라는 명작영화가 있는데, 거기서는 주인공이 진실을 파악하고, 세계를 탈출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죠.
실바나스도 아마 이것이 목표 아닐까요?
근데 워크래프트 사가에서는 죽어도 안끝납니다 ㅋㅋㅋ
어떻게 아냐고요? 3번이나 죽었다 부활해봤으니까~
이 가짜 세상의 꼭두각시 장난감 같은 삶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방법은 시나리오에서 퇴장하는 것 뿐이죠.
"그러니까 ㅈ같은 세상 어케되든 내 알바 아니고, 깽판 칠테니까 빨리 실바나스라는 캐릭터 없애달라구요,"
라는게 실바나스의 목적이 아닐까 합니다.
실바나스는 나락이라는게 워크래프트라는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문이라고 생각하는거겠죠.
문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혹시 창조주라는 개XX를 만날 수 있다면 칼빵이라도 놔주고 싶은거 아닐까요?
그것이 "포세이큰의 복수" 라면, 지금까지의 불쾌했던 서사조차 극찬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이상 뇌피셜로 써재낀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