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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김일제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

아이콘 닉놀테
댓글: 15 개
조회: 1321
2018-03-09 16:02:54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 문무왕 비문에는 자신들이 흉노왕자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왜 김일제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 해도 되는지 그들의 이력을 살펴보자

한고조 유방은 중국 황제가 된 후 30만 대군으로 흉노 토벌에 나서지만, 흉노왕 묵특선우에게 대패하고 포위되자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게 된다. 공주를 묵특선우에게 시집 보내고 매년 조공을 하는 조건이었다. 이후 유방은 더이상 흉노를 공격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한나라 무왕대에 다시금 흉노 토벌에 나서 흉노를 대부분 궤멸시키는데, 한무제 라고 하면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한 바로 그 사람, 한나라 최전성기를 이끈 황제였다.

김일제는 이때 한무제에게 투항한 흉노왕자로 한무제에게 중국 산동성에 영지를 하사받고 투후에 봉해 진다. (참고로 투후는 중국 역사상 오직 김일제 가문만이 사용, 김일제의 증손자대인 김당 때까지 투후를 세습한것으로 기록에 보인다)

이렇듯 활발하게 중국 역사에 등장하던 김일제 가문이 중국 역사에서 사라지는 시기가 바로 전한과 후한 사이로 왕망이 쿠테타로 잠시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웠다가 신나라가 멸망한 시기와 일치한다. (신나라는 20년 동안 지속되다 후한에 멸망된다) 

여기서 하나 짚고 가야 하는게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의 어머니와 김일제의 증손자인 김당의 어머니가 친자매간 이라는 것이다. 왕망과 김일제 가문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며, 왕망의 쿠테타에 아마도 김일제 집안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보는 이유기도 하다.

결국 김일제 가문은 왕망이 세운 신나라 건국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왕망의 신나라가 20년만에 멸망하면서 한나라 세력의 보복을 피해 도망칠 수 밖에 없었고, 이들 김일제의 후손들이 단체로 한반도 남부로 도피차 들어왔다고 보는 이유다. 중국 한서 공신표 투후조 편에 보면 왕망이 패하고 투후도 끊겼다. 라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김일제 후손들이 한무제에게 하사받은 영지인 산동성 하택시 성무현은 투국이라 불리우고 그 도읍을 금성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뭐 생각나는거 없나? 금성? 어디서 들어본거 같지 않아? 신라의 수도 역시 금성이라는 것.

왕망의 신나라를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김일제의 후손이라면, 한반도로 도망와서 새터전을 일구면서 나라 이름을 신라, 수도 이름을 금성이라고 했으리라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들은 새로운 터전을 자기들 고향인 요크의 이름을 따 뉴욕 이라고 부른것 처럼, 백제인들이 한반도 남부로 내려와서도 자신들을 남부여라고 부른것처럼)


김일제의 후손들이 왜 중국을 떠나야 했었는지, 한반도 끄트머리까지 도망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 신라, 금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는지

왜 적석목곽분이라는 흉노식 무덤이 한반도 남부에 뜬금없이 나타나는지, 고구려 식민지 신세였던 신라가  왜 김씨가 신라 왕위를 독점하면서 갑자기 강성해 지기 시작했는지 (중국에서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울 정도의 경험과 저력을 가진 집단이라면 아직 중앙집권 국가가 없던 한반도 남부에서 다시 작은 나라를 세우는건 충분히 가능했을테고)

신라 김씨 무덤에서만 나오는 동복이라는 흉노계 유목민 특유의 물품이 왜 한반도 끄트머리 경상도에서 나오고 있는지도 다 설명이 되는



Lv87 닉놀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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