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메탈기어솔리드5: 더 팬텀 페인', 코지마 감독이 남긴 또 다른 '환상통'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21개 |



올해 PC, 콘솔 게임 시장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풍년'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양'을 말하는게 아니다. 인디 게임씬이 커지면서, 매년 출시되는 게임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진다. 작품성이 뛰어나든, 좋지 않든 수는 꾸준히 늘어난다. 중요한 건 '내용'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한 해 라인업의 볼륨을 조율하는 가장 큰 가치는 '대작'. 흔히 말하는 '트리플A급 작품'의 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작년인 2014년의 콘솔, PC 라인업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대작은 있다. 2014년 GOTY(Game Of The Year)최다 수상작인 '드래곤에이지 인퀴지션'이나 '어쌔신크리드 유니티', '데스티니'등은 확실히 대작이다. 그 이름에 걸맞는 작품성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심지어 2014년에 출시된 게임 중 가장 높은 '메타크리틱' 점수를 받은 작품은 'GTA5'와 '라스트오브어스'의 리마스터판. 둘 다 2013년에 출시된 작품들이다.

반면 올해의 라인업은 작년에 비해 좋다 못해 풍족하다. '위쳐3'와 '블러드본', '배트맨: 아캄 나이트' 등은 이미 모습을 드러냈고, 하반기로 가면 '툼 레이더2'와 '폴아웃4'등 쟁쟁한 작품들이 버티고 있다. 이 외에도 이름값 있는 작품들이 출시일만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상황. 그 풍요로움에 쌀 한 가마니를 더 얹으니 그 이름이 바로 '메탈기어솔리드5: 팬텀 페인(이하 팬텀 페인)'이다.

첫 인상이 좋은 건 아니었다. 전작이자 서장이라 할 수 있는 '메탈기어솔리드5: 그라운드 제로'가 나름 훌륭한 게임성에 비해 너무나도 어이없는 분량으로 게이머들의 욕을 한바가지 먹은 상황. 나중에야 두 편이 원래 한 작품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감독인 '히데오 코지마'에 대한 비난 여론은 잦아들었지만, 게이머의 입장에서 '팬텀 페인'의 발매 소식은 '속상한 기쁨'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전작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이 이제 나아가는 시점, 그 부족함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작품이어야 한다는 기대만이 그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을 테다.

그리고 9월 1일. 가을의 시작과 함께 업로드된 '팬텀 페인'을 빠르게 확보했다. 망설임 없이 시작한 게임. 정신을 차려보니 2주가 흘렀고, 병사들이 친구들보다 익숙해졌다. 이쯤되니 마음이 잡힌다. "이 정도면 이제 리뷰를 써도 되겠구나."





게임을 말하기 앞서, 감독인 '히데오 코지마'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코지마 감독은 영화 평론집을 저술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영화광인데, 그가 제작해온 '메탈기어 시리즈'에는 이런 그의 취향이 진하게 묻어있다. 시리즈 전반에서 압도적인 연출과 영상 편집, 그리고 복잡하게 꼬여들어간 스토리 라인은 진짜 한 편의 영화, 혹은 그 이상의 몰입도를 선사한다.



▲ 히데오 코지마 감독

대표적인 작품이 4번째 넘버링 작품인 '메탈기어솔리드4: 건즈 오브 더 패트리어트'. 수 시간에 이르는 영상 컷신, 그리고 무려 90분에 이르는 엔딩은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에 비해 플레이 시간 자체는 길지 않았기에, 게이머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처럼 '영화같은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닮은 듯 하면서도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다른 이 두 미디어를 잘 섞기 위해선 제작자의 절묘한 균형 감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출시 전, 공개 영상에서 엄청난 환호를 받은 작품들인 '디 오더: 1886'과 '라이즈: 로마의 아들'의 경우 줄타기 실패의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리얼한 그래픽과 격렬한 연출은 좋았지만, 게임으로서의 재미에서는 의문을 갖게 되는 작품들이었으니까.

'팬텀 페인'에 이르러서도, 코지마 감독은 여전히 '영화같은 게임'을 추구하고 있다. 미션을 수행하러 가는 헬기 안에서 주인공과 적, 그리고 등장 장비들이 마치 영화 오프닝의 배역 롤처럼 올라가는 장면을 보면 대놓고 노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코지마 감독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4편의 피드백을 받아들여 컷신을 대폭 줄였고, 좁은 직선형 진행에 '오픈월드'를 가미해 샌드박스 요소를 넣었다. 실제 플레이하는 느낌은 거대한 하나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연속극같은 느낌. 미션 하나하나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 깨알같이 나오는 '주연: 베놈 스네이크'

물론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팬텀 페인'을 플레이하는 몇몇 기자의 의견을 물었을 때, 어떤 기자는 95점을 주었지만, 또 다른 기자는 50점을 주었다. 50점을 준 기자의 의견은 이러했다. "재미는 있는데, 메탈기어 시리즈같지가 않다". 그가 가장 재미있게 즐겼던 작품은 '메탈기어 솔리드3:스네이크 이터'. 구작 특유의 직선형 진행이 오히려 그에게는 더 '메탈기어 같다'는 인상을 남겼던 거다. 이처럼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연출의 본작은 오히려 구작 팬들에게 익숙치 않은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간 '영상물'과 '게임' 사이에서 펼쳐지는 기획자들의 위험한 줄타기는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다. 하지만 그 중 의미있는 초석을 쌓은 작품은 '퀀틱 드림'의 '헤비 레인'정도. 이후 이 장르는 '인터렉티브 드라마'라는 장르로 분화되었고, 최근 출시된 '언틸 던'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팬텀 페인'은 '드라마'가 목적이 아닌, 넓은 세계에서 펼쳐지는 오픈월드 액션 게임임에도 '필름의 풍미'를 품고 있다. '게임으로서의 재미'와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둘 다 잡으며 말이다. 박찬욱 감독이 뽑은 세 명의 천재 중 하나인 '히데오 코지마'의 줄타기는 성공적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팬텀 페인'은 기본적으로 '오픈월드'가 전제로 깔려있는 게임이다. 게임 상에서 볼 수 있는 무대는 두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 북부의 황무지. 그리고 중앙아프리카인 '앙골라'와 '자이르'간 국경지대다. 무대의 크기는 다소 애매한 편으로, 굉장히 크게 보이진 않지만, 직접 말이나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또 생각보다 넓은 느낌이다.



▲ 오픈이긴 한데 진짜 그냥 황무지

하지만 '오픈월드'라 하기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긴 한다. 현재 오픈월드게임의 정점에 해당하는 'GTA5'의 경우, 세계 자체가 엄청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상호작용이 가능한 다양한 요소, 그리고 밤낮에 따라 변하는 역동적인 변화와 자체적으로 구현된 시스템 등, 플레이어가 가만히 있어도 세계는 끊임없이 순환한다. 하지만 '팬텀 페인'의 세계는 단순히 굉장히 넓은 무대에 불과하다. 무대 전체에 퍼져 있는 다양한 장소들은 모두 적성 세력이 퍼져 있는 일종의 군사 기지일 뿐, 우호 세력이 존재한다거나, 게임 흐름의 중심을 이루는 전투 외의 다른 요소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심지어 민간인은 죄다 도망간지 오래라 전혀 볼 수 없다.



▲ 처음엔 번거롭던 녀석들이 언제부턴가 수집요소가 된다.

멋진 점은, 이 '반쪽짜리' 오픈월드가 '메탈기어'라는 시리즈를 만나면서 굉장히 뛰어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애초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빅 보스'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군인'으로 불리는 이다. 한물 간 은행 강도나, 자신의 미래를 깊게 고민하는 흑인 청년이 아니다. 그런 이에게 '전투 환경' 이외의 무대가 어울릴 리가 없다. 적 세력이 가득 들어차 있는 무대야 말로 빅 보스에겐 최고의 무대일 수밖에.

덤으로 이 일방적 오픈월드는 게임 자체의 시스템과 어우러져 게이머에게 최고의 동기를 만들어준다. '팬텀 페인'에서 가장 많이 쓰게 되는 시스템 중 하나가 전작인 '피스 워커'에서도 등장했던 '풀톤 회수 시스템'이다. 적 병사나 차량, 자원 등에 풍선을 매달아 띄워 보내면 헬기가 잽싸게 채가는 일종의 범용 납치 시스템인데, 이 과정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재미있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기자가 "포켓몬스터 같다."라고 말했을 정도.



▲ 어허잇! 저 먼저 갑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오픈월드'는 개발사가 유저에게 준 또 하나의 '선택지' 정도에 불과하다. 자원 수급이나 병력 확보 등 나가서 활동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제한된 임무 환경에서만 확보하기엔 모자랄 테니 마음대로 가서 휘저어라 이거다. 하지만 뭐 어떤가. 게이머 입장에선 해야 할 일이 많고, 그게 재미있다면 더욱 좋은 일. 이 제한된 '오픈월드'는 두 가치를 모두 충족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메탈기어 시리즈'의 가장 큰 아이덴티티을 꼽자면, 바로 '잠입 액션'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메탈기어 시리즈'를 널리 알린 가장 큰 정체성 중 하나인 이 '잠입'이라는 코드는 시리즈 발매가 거듭될수록 점점 그 존재감이 희미해져갔다. '스플린터 셀'과 같은 강력한 라이벌 브랜드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잠입 연출을 보여준 까닭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메탈기어 시리즈'의 근간이 되는 인물 설정 자체가 '은밀한 공작원'보다는 은밀한 공작원 역할도 무리 없이 수행 가능한 '특급 병사'를 다루기 때문일 테다.

때문에 PSP로 발매되었던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나 전작인 '메탈기어솔리드5: 그라운드 제로'에 이르러 '잠입'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다. 본인이 원하기만 한다면 굳이 포복이나 은신을 통해 잠입을 하지 않고도 압도적인 화력을 갖춘 채 돌입 - 초토화 전술을 사용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팬텀 페인' 역시 마찬가지. 임무에 돌입해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전술적 선택지는 너무나도 많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수도를 포복으로 기어간 후, 한명 한명 제압해 정보를 캐내고, 유령처럼 잠입해 내가 왔다 갔다는 것도 모르게 만들 수도 있지만, 중무장을 한 후 로켓과 경기관총을 짊어지고 악마가 되어 전장을 휩쓸 수도 있다. 강력한 적 기갑부대가 나타난다 해도 수틀리면 헬기를 불러 폭격해버리면 그만. 이쯤되면 내가 잠입을 하고 있는 건지 뭔지 햇갈리는 수준이다.



▲ 답답하다 싶으면 공중 폭격으로 와장창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스타일'을 계속 고집할 수도 없는게, 어느 순간부터 적병들도 나의 패턴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게임 초반 내 플레이스타일은 메탈기어 시리즈의 개념에 충실한, 잠입-비살상 제압의 구도였다. 야간 침투를 통해 은밀성을 살리고, 수면 가스와 마취총을 사용해 유령처럼 플레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적들이 방독면과 야시경을 지참하기 시작했다. 난감했지만 전술을 바꿔 저격 소총으로 멀리서 하나씩 없애다 보니 적들이 방탄 헬멧을 쓰기 시작한다. 아...(물론 나중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나의 행동에 따라 적응하는 적들의 시스템. 이 때문에 임무 투입을 앞두게 되면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이번엔 어떤 스타일의 전투 방식을 택할 것이며, 어떤 무기가 유용하게 쓰일 것인가. 그리고 '버디'는 누구로 정할 것인가. 사실 귀찮을 수도 있지만,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 아직 알 수 없는 가상의 적들을 상정하고, 그에 걸맞은 전투 스타일과 작전을 세운다는 것 자체로 게임에 몰입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풀톤 회수는 파악당했고, 방탄모와 방탄복도 갖췄다. 저격수도 배치해놨네...

여기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버디' 시스템이다. '팬텀 페인'에서는 '버디'를 임무에 같이 데려갈 수 있는데, 대부분의 상황에서 이 버디는 굉장한 도움이 된다. 버디의 종류는 총 네 가지로, 빠른 이동을 돕거나 길거리에 용변(...)을 봐 적 기동대의 이동을 방해하는 말 'D-Horse',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직접 공격할 수 있는 'D-Dog(개다)', 1인용 유인 로봇인 'D-Walker', 그리고 게임 안해도 미션을 깨주는 미녀 저격수인 '콰이어트'가 있다.



▲ 게임 하다보면 개 한마리 키우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네 종류의 버디는 미션의 상황, 목표에 따라 진짜 어마어마하게 큰 도움을 주곤 하는데, 'D-Walker'를 제외한 버디들은 '친밀도'가 존재해 등급에 따라 다양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콰이어트'와 친해지면, 둘이 함께 저격을 해 방탄 헬멧을 날리고 적중시키는 플레이나, 공중에 수류탄을 던지고 그 수류탄을 콰이어트가 쏴 헬기를 격추시키는 말도 안되는 묘기 플레이도 가능해진다. 다양한 임무를 같이 수행한 버디의 경우 시스템 상의 친밀도와 관계 없이 진짜 정이 들기 마련일 정도. 어떤 버디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도 임무의 수행 방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 콰이어트와 친해지면 좋은


▲ 이유...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게임도 단점이 없을 수는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 코지마 감독은 '팬텀 페인'에 이르러 스토리 컷신의 양을 굉장히 많이 줄였다. 가끔 가다 컷신이 나오면 반가울 정도.(4편의 경우 게이머들은 컷신이 끝나고 게임 플레이 시간이 되면 반가워했다...) 하지만 이미 꼬일대로 꼬여 있는 '메탈기어 시리즈'의 스토리를 전달하기엔 하염없이 부족한 분량. 코지마 감독은 그 대응책으로 다른 요소 살려냈는데, 바로 '카세트'다.

게이머들은 임무를 완료하거나, 이벤트를 겪을 때 마다 캐릭터들의 대화가 녹음된 '스토리 카세트'를 얻게 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카세트는 노란 색으로 표시되어 틀어보지 않으면 안될 것 처럼 만들어 두었다. 결국 'ACC(임무 투입 전 Idroid를 통해 여러 가지 상호작용이 가능한 헬기 안 공중 지휘소)'에 있을 때 하나하나 틀어보게 되는데, 이 양이 장난이 아닐 뿐더러 하나 당 재생 시간도 상당히 긴 편이다. '텍스트'가 아닌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전달력 면에서는 영상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카세트 양 진짜 많다...

엄밀히 말하자면, 코지마 감독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을 거다. 컷신이 너무 많다는 피드백이 오니 줄일 수 밖에 없는데, 그러자니 스토리 전달이 전부 다 안되니 '카세트'라는 대응책을 선택하게 되었을 거다. 아쉬운 건, 유저들이 '많은 컷신'을 지적한 이유가 진짜 컷신이 너무나도 길어서 그런 것 보다는 그 때문에 게임 자체의 플레이 타임이 굉장히 짧아지는 데다 스킵 불가능한 컷신 때문에 2회차 플레이가 너무 늘어져서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설령 컷신이 전작보다 더 많아졌다 해도, 게임 플레이 자체의 볼륨이 탄탄하고 선택적으로 스킵이 가능하다면 큰 문제가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전에, 조금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문제가 있으니 바로 '스토리' 그 자체의 문제다. 게임을 아직 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스토리 자체를 말할 수는 없지만, '팬텀 페인'의 스토리 라인은 기존 작품들을 플레이해온 이들에게 썩 호평받지 못하고 있다. 스토리를 핵심 가치로 꼽는 게이머들의 경우 '최악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는 수준. 게임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무거워진 덕에 코지마 특유의 개그 센스가 많이 사라진 것도 아쉽다.



▲ 깨알같은 내러티브는 나름 좋다.

물론 게임의 스토리 자체는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기에 크게 비판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다.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시리즈 사이의 '미싱 링크'를 어색함 없이 연결하려다 보니 완성도가 다소 떨어질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들을 수 있는 카세트 등에서 스토리와 전혀 안 맞는 이야기가 나온다거나, 그 엄청난 양의 카세트로도 설정상의 구멍을 전부 매우지 못했다는 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코지마 감독과 코나미 사이의 불협화음이 불거진지 오래다 보니 공개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고.

그 외에도 자잘한 단점들은 존재한다. 임무 투입 전 1분 가까이 멍하니 지켜봐야 하는 임무 투입 씬이라던가(콰이어트를 태우면 그나마 좀 덜 지루하다.), VAC(Valve Anti Cheat)가 도입되지 않아 핵 유저가 판치는 FOB(상대 마더베이스에 침투, 병력과 자원을 쓸어가는 게임 시스템이다. 물론 아무것도 못하고 당할 수도 있지만...)등등은 마찬가지로 아쉬운 부분이다.






리뷰를 마치며 '팬텀 페인'을 간단한 표현으로 요약해 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절묘한 균형을 끝까지 잃지 않은 작품'. 코지마 감독은 시리즈와 다소 어울릴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오픈월드' 요소를 절묘하게 융합해 게임의 볼륨을 키워냈고, 영화적 연출과 게임으로서의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두 재미를 모두 잡아냈다. 결과적으로 게임은 너무나도 훌륭했고, 굉장히 많은 게임을 거쳐온 나에게도 '기억에 남을 게임'이 되었다. 한글판이 나올 11월 말이 되면 콘솔을 훔쳐서라도 플레이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을 정도다.(진짜 훔치란 말은 아니다. 그만큼 재밌다고...)

물론 게임상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했듯, '팬텀 페인'도 결코 완벽한 게임은 아니고, 게임을 플레이하며 조금씩 느껴지는 단점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팬텀 페인'의 재미는 그 아쉬움을 모두 덮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고, 때로는 그 단점 자체를 잊을 정도로 몰입하기도 했다.

진짜 아쉬움은 따로 있다. 바로 '히데오 코지마' 감독이 코나미와 파국을 맞은 지금, 메탈기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팬텀 페인'으로 '빅 보스'의 연대기와 '솔리드 스네이크' 시리즈 사이를 잇는 의문 사항은 해소 되었다곤 하지만, '팬텀 페인'의 전개는 찝찝함을 남겨둘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지마 감독의 스튜디오인 코지마 프로덕션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이상, '메탈기어 시리즈'의 차후 행보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니, 공식적으로는 스토리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 공식적으로 해체된 '코지마 프로덕션'

이렇게 '메탈기어', 그리고 '메탈기어솔리드'로 이어진 기나긴 연대기는 끝을 맺었다. 잃은 신체 부위에 대한 통증. 즉 환상통을 뜻하는 '팬텀 페인'. 처음 코지마 감독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큰 상실을 경험한 '빅 보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초반, '카즈히라 밀러'가 "매일 밤마다 잃은 팔이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생생히 느껴진다."라고 말할 때 이를 지켜보던 '빅 보스'의 표정은 '고통'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개발 당시 코지마 감독도 생각하지 못했을 다른 종류의 '팬텀 페인'이 게이머들에게 찾아왔다는 점이다. 시대를 이끈 천재 기획자 중 하나인 '히데오 코지마'. 그리고 끝이 나 버린 '메탈기어 시리즈'의 빈 자리. 물론 코지마 감독의 커리어는 지금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코지마 감독이 만들 메탈기어 시리즈'는 이제 끝이 났다. '기대'만으로도 충분한 설렘을 주었던 시리즈의 끝. 시리즈의 팬들에게 이 상실은 꽤나 아픈 '환상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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