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7일 정식으로 공개된 '포탈2'의 팬메이드 게임, '포탈: 레볼루션'이 출시 직후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출시일부터 스팀 기준 공식 최다 동접자 7,400여 명을 기록했고, 현재까지도 5,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2011년 후속작 출시 이후 지금까지 팬들이 직접 제작 커뮤니티 모드가 출시될 정도로, '포탈'은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프랜차이즈입니다. 게다가 팬들의 솜씨도 워낙 출중해, 2021년 출시된 '포탈 리로디드'같은 경우 원작에서는 없었던 '세 번째 포탈'을 활용한 퍼즐을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했죠. 이번 '포탈: 레볼루션'의 출시가 많은 포탈 팬들과 퍼즐 장르 게이머에게 환영받은 것도 분명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포털 레볼루션'의 개발자인 Second Face Software는 이번 작품을 만들기까지 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팬이 직접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는 물론 원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등장인물, 40여 개의 새로운 퍼즐 요소까지 담아 낸 하나의 게임을 완성하는 데는 분명 쉽지 않은 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직접 체험해 본 결과물은, 기대 이상의 높은 완성도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개발자가 전한 포탈: 레볼루션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원작인 포탈1과 후속작인 포탈2 사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며, 플레이어는 새롭게 눈을 뜬 피실험자가 되어 원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AI 코어 '스털링'과 무너져 내리는 실험실을 돌파해나가게 됩니다. 애퍼처 사이언스 실험실 내부라는 것, 그리고 포탈 건을 이용한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제작자의 팬심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새로운 이야기가 가미됐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첫인상부터 원작과 눈에 띄게 달라보이는 점은 아무래도 시각적인 요소입니다. 개발자는 이번 작품을 만들 때 또 다른 팬 메이드 게임 '포탈2: 커뮤니티 에디션' 사용된 엔진을 개량해 활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에 사용된 소스 엔진의 커스텀 버전인 만큼, 십여년 전 출시된 원작과 비교하면 상당히 발전한 그래픽과 물리 효과 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팬이 제작한 모드 게임은 보통 설치나 실행이 쉽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포탈: 레볼루션'은 원작 다운로드 없이도 설치와 실행이 가능했습니다. 스팀에서 무료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손쉽게 플레이 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습니다. 퍼즐을 푸는 실력에 따라 5시간에서 7시간 사이의 플레이타임을 제공하는데, 무료로 제공되는 팬 제작 게임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분량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한가지, 주로 원작에 관심이 많은 팬들이 모여 소비하는 경향이 많은 창작물인 만큼, 팬 메이드 게임은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들을 대상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1년 공개된 팬 게임 '포탈: 리로디드'의 경우가 그런 류에 속합니다. 포탈의 퍼즐 풀이에 익숙한 숙련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해당 게임은 두 개에 포탈에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세 번째 포탈을 추가해 퍼즐의 난이도를 높였던 것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포탈: 레볼루션'의 난이도 곡선은 꽤나 완만한 편입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고 포탈 건을 착용하게 되면 주황색 포탈이 고정된 상태의 실험실에서 퍼즐이 한동안 진행됩니다. 플레이어는 파란색 포탈만은 여기저기에 만들어 보며 실험실을 클리어할 방법을 찾아내게 되죠. 두 개의 포탈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이 포탈식 퍼즐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처럼 느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발자는 스팀 상점 페이지에도 포탈로 이동하는 도중 다른 포탈을 여는 등 높은 수준의 조작을 필요로 하는 퍼즐은 극소수로 담아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공중에서 기묘한 동작을 부리지 않아도, 몇 번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풀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를 갖추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 본 입장에서, '포탈2'가 무려 12년 전에 출시된 게임임 만큼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퍼즐의 난이도는 적정하다고 느꼈고, 일부 퍼즐은 처음에는 대단히 어렵게 느껴졌지만, 가만히 앉아 생각을 더 해보니 풀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렇게 멈춰서서 생각하거나, 시행착오를 하는 시간을 포함한다면, 개발자가 이야기한 시간보다도 많은 플레이타임이 필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원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믹도 일부 존재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기능들 원작의 세계관에 나름 충실한 설정으로 구현되어, 몰입에 방해받는 일도 거의 없었죠. 각종 젤을 지워버리는 세척기나 에어 벤트, 양자 굴절기같은 요소들은 퍼즐을 푸는 데 원작과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쓰게 만드는 신선함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일푸 퍼즐에 한정해 '정답'을 알기 위해 시행착오를 '강요'하는 경우가 더러 있고, 또 잘못된 조작으로 진행이 막혔을 때 힌트를 주거나 하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또 일부 오브젝트는 크기도 작은 데다 유달리 숨어있는 편이어서 일부 구간에서 머리를 감싸쥐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죠.
이처럼 이용자 친화적이지 않은 모습은 팬 게임의 한계로도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원작도 그렇게 친절한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보면, 꽤나 원작의 세계관이나, 게임 시스템 등 다양한 부분에서 몰입에 해가 되지 않는 선을 지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유저 친화적인 시스템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퍼즐이 잘 풀리고 있을 유달리 배경음악이 커지는 것, 그리고 퍼즐의 핵심을 이루는 구간마다 자동 저장이 활성화되는 것 등은 게임플레이에 적잖은 도움을 주는 요소들이었습니다. 정 모르겠거나, 퍼즐이 풀리지 않는다 싶으면 일부러 죽고 해당 구간부터 차근차근 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어주었죠.
위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지만, '원작이 보여준 세계관에 대한 몰입감을 방해하지 않는 것'은 포탈: 레볼루션이 지금까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보입니다. 그것이 게임의 비주얼이 되었든, 스토리가 되었든, 아니면 주된 콘텐츠인 퍼즐이 되었든 말입니다.
게임을 포함한 콘텐츠 전반의 팬 창작물 문화에서 자주 엿볼 수 있는 일이지만, 팬들이 창작한 콘텐츠는 아무리 원작을 함께 즐기고, 좋아하는 이들이라도 모두가 공감대를 얻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저마다 소설을 읽고 상상하는 모습과 상황이 다 다른 것처럼 말이죠. 이런 맥락에서 직접 플레이해 본 '포탈: 레볼루션'은 원작의 설정에서 크게 벗어난 면이 없어 몰입하는 데 큰 어려움도 없는 편이었습니다.
오히려, 원작에서 만나볼 수 없는 성격을 가진 AI코어의 등장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반가운 경험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처음 주인공과 만나는 '스털링'은 우리가 포탈 시리즈에서 보아 온 AI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중반부 이후 만나게 되는 '에밀리아'는 친절하기도 하고, 시니컬하지 않은 점이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거기에 이런 캐릭터의 매력을 살려주는 것은 성우 목소리의 존재감입니다. 중간중간 어설픈 연기나 톤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캐릭터의 매력을 잘 표현해주는 모습이었죠.
팬 메이드 게임인 만큼 감안해야 할 부분 역시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포탈: 레볼루션'은 상당한 완성도를 엔딩까지 유지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느낌이 더 컸습니다. 아마 이런 부분에 공감하는 게이머들이 많았기에, 출시와 함께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포탈 시리즈 특유의 스산한 배경 설정, 그리고 퍼즐 요소를 즐겁게 플레이한 경험이 있다면, 새해 선물처럼 찾아온 '포탈: 레볼루션'을 한 번쯤 플레이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과거의 추억은 물론, 신선함을 동시에 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포탈'을 해본 적이 없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초반부를 차근차근 진행하다 보면, 금방 적응할 수 있을 테니까요.